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소프라노

파리의 유리디스 소피 아르누(Sophie Arnould)

정준극 2010. 10. 27. 05:46

소피 아르누(Sophie Arnould)

글룩의 유리디스 이미지 창조

 

소피 아르누

 

프랑스의 오페라 소프라노인 소피 아르누(Sophie Arnould)는 글룩의 '오르페와 유리디스'(Orphee et Eurydice)의 초연에서 유리디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으며 역시 글룩의 '얼리드의 이피게니'(Iphigenie en Aulide)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아 세계 음악사에 기록된 인물이다. 아르누는 장-필립 라모, 프랑수아 프란쾨르(Francois Francoeur), 피에르-알렉산그르 몽시니(Pierre-Alexandre Monsigny) 등의 작품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하지만 역시 글룩이 가장 총애하는 디바였다. 1740년 파리에서 막델레이느 소피 아르누로서 태어난 그는 파리에서 당대의 성악교사인 마담 마리 펠(Marie Fel)과 라 클레롱(La Clairon)에게서 배운후 1757년, 고작 17세 때에 파리오페라극장에 데뷔하여 무려 20년간을 파리의 오페라 무대를 압도했다. 클레롱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카프리치오'에 나올만큼 유명한 성악교사였다. 클레롱은 음악적 발전과 함께 연기에도 중점을 두는 교육을 했다.

 

 

아르누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성악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르누는 드라마틱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음성을 지니고 있지만 열정적인 연기로서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액션 때문에 음성을 관리하는 것을 소홀히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일찍 무대에서 은퇴하였다. 더구나 글룩과 불화가 있어서 글룩의 새로운 오페라에 주역으로 캐스팅 되지도 못하여 1788년, 아르누가 48세 때 극장에서 물러났다. 아르누는 한창 때에 뛰어난 미모와 재치있는 말솜씨로서 파리 사교계의 스타였다. 심지어 베르사이유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전해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마담 퐁파두 조차 아르누를 칭찬하여서 '당신같은 재능이 있다면 여왕이나 공주가 될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르누는 왕족들은 물론 정부의 고관들과 친분이 있는 연고로 은퇴 후에 국가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연금을 받았다. 아르누는 은퇴한 후 파리 교외의 루차르셰(Lucarches)에 있는 옛 수도원 건물을 사서 저택으로 삼았다. 아르누는 새로운 저택의 현관에 Ite missa est 라고 적어놓았다. 가톨릭의 미사에서 항상 마지막을 장식하는 말이다. '미사가 다 끝났다'는 뜻이다. 수도원이 아니라 개인저택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가브리엘 피에르네(Gabriel Pierne)는 1927년 아르누의 찬란한 삶을 그린 오페라 'Sophie Arnould'를 작곡하였다. 소프 아르누는 1802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