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좀 더 알기/탄생과 죽음

베들레헴의 학살

정준극 2010. 12. 14. 22:49

베들레헴의 학살

 

헤롯대왕(BC 73-BC 4)이 저지른 만행 중의 하나가 베들레헴 학살이다. 보통 '영아학살'(The Massacre of the Innocents)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그 내용은 모두 잘 알겠지만 그래도 다시한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약성경에는 마태복음 2장 26절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이다. 그러면서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 사건이 구약시대의 선지자 예레미아를 통하여 이미 예언된 것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마태복음에서 언급한 구약시대의 예언이라는 것은 예레미아 31장 15절의 기록으로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기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이다. 그런데 구약의 예레미아서만 보면 그것이 과연 헤롯에 의한 베들레헴의 대학살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실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믿을수 밖에 없다. 구약의 출애굽기에는 바로(Paraoh)가 이스라엘 민족들을 보내지 않고 포악함을 그치지 않자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는 재앙을 내리신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베들레헴의 학살을 미리 예견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신학적으로 연관성이 희박하다. 

 

'베들레헴 아기들의 승리'. 윌리엄 헌트 작품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대로 헤롯은 동방에서 박사들이 찾아와서 '새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가서 경배코자 합니다'라고 말하자 속으로 크게 놀라서 '아니, 내가 유대인의 왕인데 새로 왕이 태어나다니 그게 당췌 무슨 소리인가?'라고 생각하여 황당했지만 곧이어 머리를 굴려서 박사들에게 '그런 분이 태어나셨다면 나도 어서 가서 경배해야지요. 제발 어디 계신지 찾아보시고 나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라고 당부하였다.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에 가서 이방인들로서는 처음으로 아기 예수를 경배하였다. 그리고는 헤롯이 당부한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우리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을 경배하고 왔소이다. 현재 베들레헴의 어떤 마구간에 계십니다'라고 보고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에 천사가 나타나서 '헤롯이라는 인간의 심성이 아주 못되어서 아기 예수를 해치고자 하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헤롯에게 아기 예수에 대한 정보를 주지 말고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가시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박사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예루살렘에 앉아서 박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헤롯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화가 단단히 났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다는 아이를 어서 찾아서 없애지 아니하면 나중에 자기의 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고 지레 짐작하여 베들레헴과 인근 마을에 있는 두살 이내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학살하도록 명령했다. 과연 헤롯다운 아이디어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베들레헴 학살'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베들레헴의 학살'. 루벤스 작품. 토론토미술관 소장

 

놀랍게도 신약성경에 나오는 영아학살에 대한 이야기는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에서도 그런 예가 나온다.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등에 그런 얘기가 나오며 아브라함 신앙을 믿는 유대교, 이슬람교에서도 어린이 학살 사건이 나온다. 특히 불교에서 구체적으로 나온다. 불교의 석가모니는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약 6백년 전에 활동하여 불교의 기반을 완성하였으므로 불교는 선배 종교로서 나중에 나온 기독교에 이모저모로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양성경에 나오는 베들레헴 학살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이미 불경에도 언급되어 있어서 흥미를 준다. 크리슈나(Krishna)의 탄생에 대한 얘기이다. 크리슈나는 비슈누 신의 여덟번째 화신이다. 크리슈나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크리슈나의 외삼촌인 카스마(Kasma)는 왕좌에서 물러나야 할 것을 두려워하여 새로 태어난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번에는 마태복음에 나오지 않은 몇가지 궁금증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아기 예수를 데리고 있던 마리아는 어떻게 대처했기에 대학살에서 살아남을수 있었을까? 그리고 아기 예수보다 여섯 달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은 또 어떻게 살아남았다는 것일까? 이에 대한 얘기는 경외서라고 하는 '야고보 복음서'(The Gospel of James)에 약간 기록되어 있다. '야고보 복음서'는 Protoevangelium of James 또는 Infancy Gospel of James 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주후 150년 경에 써진 것이다. 이에 의하면 헤롯의 병사들이 베들레헴에서 두살 아래의 아이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몹시 두려워하여 급히 아기 예수를 포대기에 푹 싸서 소외양간에 감추어 두어 화를 면했다고 한다. 다행하게도 포대기에 싸여 있던 아기 예수는 병사들이 돌아갈 때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고 한다. 한편 엘리사벳은 병사들이 아기 요한(세례 요한)을 찾느라고 마을의 집들을 뒤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자 급히 요한을 등에 업고 병사들을 피하여 무작정 마을 산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누가복음에 보면 엘리사벳은 산골 동네에 살았다고 되어 있으니 동네에 있는 산 위로 피신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산 꼭대기에 올라간 엘리사벳은 아기 요한을 숨길 장소를 찾아보았지만 그럴만한 장소가 하나도 없자 큰 소리로 '오 이 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에미와 아이를 받아 주소서'라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산이 갈라지더니 엘리사벳과 아기 요한을 그 안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때에 빛이 이들과 함께 하였으니 이는 주의 천사가 두 사람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는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의 눈에는 빛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기 요한도 참혹한 학살에서 살아남을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들레헴의 학살' 코르넬리스 반 할렘(Cornelis van Haarlem) 작품

 

그러나 저러나 베들레헴의 학살이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임에는 틀림없는데 과연 몇명이나 희생이 되었을까?  어찌하여 이같은 참으로 참혹한 일이 있을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기에 앞서서 여기에는 도대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몇명이나 죽임을 당했는가를 따져 보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알아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록이 없어서 몇명이 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희생자 수에 대하여도 의견이 분분함을 얘기하지 않을수 없다. 그리스를 비롯한 비잔틴 교회는 1만 4천명의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희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아무런 근거는 없다. 시리아교회는 무려 6만 4천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시리아교회는 그때 죽임을 당한 어린이들이 실상 예수로 인하여 순교를 당한 것이므로 성자의 반열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성인으로 부르고 있다. 이집트의 콥틱교회는 놀랍게도 14만 4천명이 죽었다고 보고 있다. 콥틱교회의 주장은 중세에 서방 교회에 영향을 주어 중세의 유럽교회들도 상당수가 14만 4천명이 죽은 것으로 믿고 있다. 이는 요한계시록 14장 3절의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자가 없더라'라는 말씀을 참고로 한듯 싶다.

 

현대의 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이런 저런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당시 베들레헴의 인구 상황등을 고려하여 15명 내지 20명의 어린아이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또 어떤 학자는 6명 정도라고 주장했다. 현대에서 가장 신빙성이 있는 가톨릭 백과사전은 일찍이 1910년도 판에 1만 4천명, 6만 5천명, 또는 14만 4천명이라는 숫자는 터무니가 없어도 한참 없는 숫자라고 전제하고 최소 6명에서 최대 20명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인근 마을까지도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인근 마을의 희생자는 그저 열두어명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마테오 디 조반니(Matteo di Giovanni)의 '베들레헴의 학살'

 

또 하나의 별로 쓸데 없는 궁금증이 있다. 몇월 며칠에 그런 일이 일어났었냐는 것이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베들레헴의 학살이 며칠날 일어났다고 단정할수 없으므로 1월 6일 동방박사 공현(Epiphany) 축일을 베들레헴 학살 기념일로 삼았다. 이집트의 콥틱 교회는 12월 29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신 날로부터 나흘 후라는 것이다. 동방정교회도 12월 29일을 축일로 정했다. 시리아(수리아)정교회를 포함한 시리아교회들은 그날을 Childermas(칠더마스) 또는 Children's Mass(췰드렌스 마스) 라고 하여 12월 27일을 기념일로 삼고 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지 이틀 후를 학살의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영국 국교회, 루터교회는 1961년까지 12월 28일을 Holy Innocents' Day(성영아축일)로 지켰었다.

 

한편, 스페인과 남미의 스페인계 나라에서는 12월 28일을 마치 만우절(April Fool's Day)처럼 지키고 있다. 이날에는 조크나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다. 그런 조크를 이노센타다스(Inocentadas)라고 부르며 조크 때문에 골탕을 먹은 사람을 이노센테스(Inocentes)라고 부른다. 놀림을 받은 사람은 놀려준 사람에게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되는 것이 풍습이다. 이노센타다스가 되었건 이노센테스가 되었건 이 말은 베들레헴의 아기들과 관련이 있다. 베들레헴의 아기들은 아무 죄도 없이 희생되었다. 그로부터 순진하다는 뜻의 이노센테스(Inocentes)는 아무런 죄도 없이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발전되었다고 다른 사람들의 실없는 장난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을 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