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좀 더 알기/탄생과 죽음

일본에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다?

정준극 2014. 12. 3. 21:14

일본에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다?

아오모리껜 싱고무라의 이상한 전설

 

예수 그리스도의 묘라고 하는 곳. 일본 혼슈의 북단, 아오모리껜의 아오모리시 남쪽, 싱고라는 마을에 있다. 사진의 왼편에 보이는 대로, 최근들어 무덤의 옆에 작은 교회가 세워졌다. 마을 사람들이 혹가다가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세상을 떠나셨고 장사된지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이 우리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부활하신지 사십일 후에 하늘로 승천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없다. 다만,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아리마대의 요셉이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동산의 어떤 무덤에다가 잠시 두었던 일은 있다. 그런데 세상에 별별 얘기도 다 있지만 그 중에서 하나는 실은 예수께서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며 얼마 후 유대 땅을 떠나 인도의 카슈미르 지방까지 가서 지내다가 한참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Srinagar)라는 마을에는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묘지라는 것이 보전되어 있다. 스리나가르 마을의 그리스도의 묘지라는 것은 로자 발(Roza Bal)이라는 건물의 안에 있다. 로자 발을 번역하면 '예언자의 무덤'이다. 그 건물 안에 유즈 아사프(Yuz Asaf)라는 사람의 커다란 관이 있다. 사실상 유즈 아사프는 인도의 어떤 종파의 예언자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즈 아사프가 예수를 말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유즈 아사프의 묘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묘소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참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은 일본에도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의 무덤(묘)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망발인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무덤은 일본 혼슈의 북단, 아오모리껜의 싱고무라라는 마을에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만 기왕에 싱고무라에 있는 그리스도의 묘라는 것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냥 그런 곳이 있다는 소개 뿐이며 그걸 믿는다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선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묘라는 것이 실제인것 처럼 공식적으로 인정해 놓고 대외적으로 알리며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일본인들의 약삭빠른 처신술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스리나가르 마을에 있는 예수의 묘지라는 것.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본에 어떻게 가서 사시게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일본 혼슈의 북단, 아오모리껜(靑森縣)의 싱고무라(新鄕村)에 있는 '그리스도의 묘'(기리스도노 하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우선 싱고무라에 있는 그리스도 묘의 안내판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아보자. 싱고무라 당국이 공식적으로 적어 놓은 안내문이다. 이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21세 때에 일본에 와서 12년간 신성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탐구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예수는 어디서부터라는 말은 없고 하여튼 배를 타고 미야츠 만 건너편에 불쑥 튀어나와 있는 아마노하쉬다테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후 예수는 후지산 근처에 은둔하고 있는 어떤 대사의 제자가 되어 일본말도 배우고 동양 문화에 대하여도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33세 쯤해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를 거쳐 유대 땅으로 돌아갔으며 그때부터 유대 땅에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기로 공관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 땅에서 30세 때 쯤부터 사역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는데 일본에서는 33세 쯤해서 일본을 떠나 유대 땅으로 돌아갔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지만 그저 그런가보다 하면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안내판을 계속보면 당시 유대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험인물로 생각하여 체포해서 십자가에 매달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말도 안되는 황당무계한 소리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으로 이수키리(Isukiri)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생긴모습이 비슷하여서인지 아무튼 우연히 형인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잡혀가서 십자가에서 대신 처형당했다는 것이다. 동생이 대신 처형되었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으로부터 요행히 도피할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4년에 걸쳐 시베리아를 지나 6천 마일이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천신만고 끝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당시에는 헤라이라고 불렀던 오늘날의 싱고무라에 정착하여 살다가 106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싱고무라의 양지바른 언덕에 그리스도의 묘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싱고무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여 있다. 사지로 사와구치 가족이라고 한다. 사와구치 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시베리아를 거쳐 혼슈의 북단인 무츠 지방에 도착했고 그 지역에서 농부로서 쌀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했으며 마을 여인과 결혼해서 딸 셋을 두었는데 그후 헤라이(오늘날의 싱고무라)에 와서 살았다는 것이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농부가 아니라 어부로서 평생을 살았다고도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마을 전승관


싱고무라의 그리스도의 묘 옆에는 자그마한 묘가 하나 더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 이수키리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땅을 떠나 올 때에 자기를 대신해서 죽임을 당한 이수키리의 귀를 잘라서 기념으로 가져 왔다는 것이며 그것을 묻어 놓은 무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땅을 떠나 올 때에 어머니인 마리아의 머리칼도 한 웅큼 잘라 왔는데 그것은 싱고무라의 '기리스도노 사토 덴쇼칸'(그리스도의 마을 전승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덴쇼칸(傳承館)의 그리스도의 무덤에 대한 안내 책자에 따르면 일본을 '성지'라고 번역해 놓았다. 일본이 바로 성서에 나오는 성지라는 주장이다. 아무튼 사람들이 그러면 안되는데 일본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관찮은 것이 있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선전하는 데에는 도가 튼 백성들이라는 샟각이 든다.

 

그리스도의 묘 안내 표지판. 아오모리 특산품인 사과 선전 내용도 보인다. 영어로 The Grave of Christ 라고 써 놓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의 땅, 다시 말해서 성지라고 하는 일본의 싱고무라에 와서 이름도 다이텐쿠 타로 주라이라고 고쳤으며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미유코라는 여인과 결혼해서 살았다고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알았더라면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오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기리스도노 사토 덴쇼칸에 전시된 다이텐쿠 타로 주라이, 즉 그리스도라는 인물의 모습을 보면 넓은 이마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며 옷은 여러 겹으로 된 코트처럼 생긴 것을 입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가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를 '긴코의 귀신'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싱고무라에서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은 그의 시신을 높은 언덕 위에 4년 동안이나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것이 당시 그 지방의 풍속이었다고 한다. 4년이 지나자 가족들이 그리스도의 유골을 추스려서 오늘날 그리스도의 묘라고 불리는 그 자리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무덤 위의 십자가는 근자에 별도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 온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에서 처럼 전도를 하고 기적을 베풀었다는 기록이나 전설은 없다. 그저 평범한 농부 겸 어부로서 살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혹시 자기의 정체가 들어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서 그랬을까? 유대 땅에서 3년 동안 적극적으로 전도를 하고 기적을 베풀었는데 그런 특별한 사실을 일본에 와서 당장 잊어버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가 일본에서 물을 사케(술)로 변화시켰다는 얘기를 했지만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노 사토 전승관 안내판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일본에 와서 살았다는 얘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이 얘기를 비록 전설이지만 마치 사실처럼 그럴듯하게 각색하여 놓았고 더구나 지명과 안내표지판, 기념관, 도로 표지판 등에도 '그리스도의 묘'라고 공식적으로 표기해 놓았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같으면 정말인줄 알게 만들어 놓았다. 도로표지판이나 관광안내판 같은 것은 당국이 인정하지 않으면 맘대로 설치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묘'라고 적은 안내표지판, 책자 등등은 모두 당국의 인정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다. 당국은 왜 그런 어이 없는 일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일까? 온세계 기독교도들을 모욕해도 분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무튼 전설을 사실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전승관에 전시되어 있는 옛날 싱고무라 사람들의 모습도 마치 고대 유대인들과 연관이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즉, 남자들은 성서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처럼 토가(Toga)와 같은 옷을 입었으며 여자들은 얼굴을 베일로 가린 모습이다. 일본에서 여자들이 얼굴을 베일로 가린 곳은 이 지역에서만 볼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여자들이 어린 아이들을 갈대로 만든 바구니에 담아서 메고 있다. 그 옛날에 아기 모세를 갈대로 만든 바구니에 담아서 나일 강에 띄어 보냈다는 얘기를 연상케 한다. 또한 어린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마치 다윗의 별과 비슷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무언지 모르지만 성지 이스라엘과 연관이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하려고 꽤나 노력한 것 같다.

 

영어로 된 설명판. '예수 그리스도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확실치도 않은 사항을 공공연히 적어 놓고 있을까? 무엇이라고 적어 놓았는가 하니 '예수 그리스도는 21세 때에 일본에 와서 12년간 신성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였으며 33세 때에 유대 땅으로 돌아가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태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대신에 그를 체포하여 십자가에 처형코자 했다. 그의 동생인 이수키리가 그저 우연하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십자가의 처형에서 도피한 그리스도는 여러 곳을 거친 후에 마침내 일본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바로 오늘날 헤라이 마을이라고 불리는 바로 이곳에 정착하였고 106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곳 성지에 무덤을 만들었는데 오른쪽은 그리스도의 무덤이며 왼쪽은 이수키리를 신으로 모신 무덤이다. 이상의 설명은 예수 그리스도 성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사실상 싱고무라는 도호쿠 지방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에 속한 곳이다. 이 마을에 2천여년 전에 그리스도가 와서 가정을 이루고 살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묘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연고가 있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것 마을이다. 왜냐하면 몇 년 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마을 전체를 통틀어서 기독교인이라고 내세운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도 이 마을에는 당연히 없고 30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겨우 하나가 있다. 그만큼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다. 일본은 잘 아는대로 국민 거의 전부가 불교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도인지 무언지의 신자들이다. 기독교인은 전국민 중에서 겨우 1%가 될까 말까이다. 그런 반면에 일본은 국민의 상당수가 민속신앙을 가지고 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들은 초자연적이고 기이한 현상을 자기들의 생활과 감정에 결부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예수와도 가깝다는 감정을 가지게 되며 부처와도 가깝다는 감정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물론 수많은 다른 신들도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일본인의 종교관을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므로 이만 줄이기로 한다. 

 

그러나 저러나 싱고 마을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부활절 즈음해서) '그리스도 축제'라고 불리는 축제가 열린다. 그러면 전국에서 무려 2만 여명이나 다녀 간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일본의 기독교 순례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축제는 싱고무라의 인근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요구르트회사가 후원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 축제'의 날에는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그리스도의 무덤을 빙빙 돌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노래는 누가 선창을 하면 받아서 부르는 이른바 리타니(Litany)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무슨 내용의 가사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는 것이다. 노래 가사는 대강 '난야 도 야라 난야 도 나사레노 난냐 도 야라'로서 이것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다. 일본어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고 한다. 굳이 풀이를 하자면 '무엇이냐? 무슨 일이냐? 무얼 하려느냐?'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이 이 가사를 줄곧 연구한 결과 이 말은 다름아니라 '요슈아입니다. 제호바의 아이입니다'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축제 행사는 지방 관광당국이 주선해서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별 일이 다 있다. 마을에 있는 '그리스도 고향 전시관'의 입장료는 200엔이라고 한다. 입장료가 써서 그런지 많이들 구경하러 들어간다. 박물관 상점에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머그로부터 컵받침 등등 기념품을 판매한다.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너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기념품인데 어떠냐는 주장이다.  

 

도와다 8 라인으로 가면 그리스도의 무덤이 나온다는 도로 표지판

 

일본 사람들은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도 그렇듯한 근거를 만들어서 기정사실처럼 설명하는데 능숙하다. 싱고무라의 그리스도 묘에 대한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꾸며 내면서 그 이야기를 뒷받침 해주는 그럴듯한 근거 자료를 찾아서 덧붙이는 기술도 있다. 그리스도의 묘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차에 1933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을 기록한 히브리어 고문서를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인지, 또는 일본에서인지 하여튼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고문서를 예수성서(Testament of Jesus)라고 이름 붙였다. 소문에 의하면 일본 정부 당국은 2차 대전 직전에 이 문서를 입수하여 도쿄로 가져가서 비밀보관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그 이후로 이 문서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지만 사람들은 그 소문을 사실인양 믿고 있다. 또 다른 주장에 의하면, 일본에서 그리스도가 살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적은 문서가 이바라기껜의 어떤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1935년에 키요마로 타케우치라는 사람이 발견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고문서에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일본 아오모리껜의 헤라이 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서에는 예수의 유언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자기 동생의 묘를 자기가 죽으면 만들 묘의 옆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이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퍼지자 당연히 대단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 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토쿄에 있는 박물관에 깊숙히 보관토록 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에 도쿄는 대폭격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잿더미가 되었다. 도쿄 박물관도 파괴었다. 고문서의 행방을 알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다케우치 가족들이 이 문서를 당국에 제출하기 전에 복사본을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그 복사본을 오늘날까지도 타케우치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다고 하는데 본 사람은 없다고 하며 다만 어떤 사람이 고문서의 일부분을 사진을 찍어 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오늘날 싱고무라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축제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


싱고무라의 박물관에 있는 그 사진을 보면 고문서는 고대 일본어로 적혀 있어서 일반 사람들로서는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수 없다고 한다. 다만, 몇 몇 학자들이 뜻을 해석하고 번역을 시도했다고 하지만 결과물은 어찌되었는지 모른다. 한편, 아직도 역사학자들은 이 문서의 진위 여부에 대하여 논란을 벌이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묘와 관련해서 확실치 않은 고문서보다는 무언가 확실한 물증이 있기를 바랬다. 예를 들면 뼈나 치아 등이었다. 자,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두고 볼 일이다. 한가지 더 곁들인다면 헤라이라는 명칭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날의 싱고무라는 예전에 헤라이라고 불렀고 한다. 그런데 헤라이라는 단어는 일본어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헤라이는 오히려 헤브라이와 거의 같게 들린다. 헤브라이는 히브리를 말한다. 그런가하면 히브리어에서 헤라이라는 단어는 '산맥'이라는 뜻의 단어와 거의 같다. 예수와 그의 동생인 이수키리(혹은 오우리키)의 묘지는 상당히 험준한 산의 평평한 곳에 마련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묘' 설명판

 

그리스도의 묘와 그의 동생 이수키리의 묘에 대한 내용은 이상하게도 비교적 근자에 이르기까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사항이다. 그러다가 '트예호바 예언서"(Thiaoouba Prophecy)라는 책자가 나타난 이후에 크게 화제가 되었다. 미셀 드마르케(Michel Desmarquet)라는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한다. 처음에 출판되었을 때의 제목은 '제9 위성으로의 납치'(Abduction to the 9th Planet)였다. 드마르케는 이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동생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설명해 놓았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에 의하면 예수(조슈아)는 트예호바로부터 온 천사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태아를 이식하여 베들레렘에서 태어났고 헤롯에 의한 2천 6백 6명의 어린아이들이 학살된 재앙을 피해서 애굽으로 갔다는 것이며 12살 때에는 회당에서 모든 학자들을 놀라게 하였고 그후 부모를 떠나 14세 때에 가출을 하였는데 이 때 두 살 아래인 동생 오우리키와 함께 길을 떠났으며 인도, 버마, 중국을 거쳐 마침내 일본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중국을 거쳐 일본에 갔다고 하면 분명히 한국도 지나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신통하다.) 그런데 14세 때에 유대 땅을 떠난 예수 그리스도는 50세가 되어서야 일본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도 등지에서 세월을 보냈다는 얘기다. 예수는 일본에 와서 현지 여인과 결혼을 했고 자녀로서는 딸 셋을 두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일본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45년을 살다가 헤라이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자에 의하면 유대 땅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은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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