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수도원의 영욕

괴트봐이그(Göttweig) 수도원

정준극 2011. 1. 1. 13:50

괴트봐이그(Göttweig) 수도원 - Stift Göttweig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는 괴트봐이그 수도원과 교회

 

도나우 강이 흐르는 봐하우 계곡의 크렘스(Krems) 부근에 괴트봐이그 수도원이 있다. 언덕 위에 우뚝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요새와 같다. 괴트봐이그는 200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세계적인 관광지이며 니더외스터라이히 가톨릭 신앙의 본산이다. 괴트봐이그는 '오스트리아의 몬테카씨노'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 이탈리아의 몬테카씨노(Montecassino) 수도원에 못지않게 주위를 압도하는 모습 때문이다. 괴트봐이그 수도원 교회는 마리아 승천 교회이다. 가운테의 탑은 고도 449 미터나 된다. 현재 괴트봐이그에는 약 50명의 수도사들이 기거하고 있다. 베네딕트 수도회에 속한 이들은 지난 900 년동안 Ora et labora (기도하며 일하자)라는 모토아래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

 

괴트봐이그 수도원과 교회는 산정에 있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성채와 같다. 모두들 우선 그 장관에 말없이 압도당한다.

 

괴트봐이그 수도원은 1083년 아우구수틴 공동체에 속한 파싸우의 주교 성알트만(St Altmann)이 창설하였다. 성알트만은 1091년에 세상을 떠났다.  괴트봐이그 수도원은 베네딕트 수도회로 이관되었다. 오늘날 성알트만의 성골을 담은 은상자는 수도원 교회에 정중하게 모셔져 있다. 11세기 당시의 건물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풍우성상을 거쳐 거의 모두 사라졌다. 다만, 교회 앞에 있는 작은 건물인 에렌트루디스(Erentrudis) 채플, 옛 성채, 납골당, 교회의 성가대석(콰이어) 등만이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성모승천교회의 앞에 있는 에렌트루디 채플의 단정한 모습. 그동안 수리는 했지만 아무튼 11세기의 무시못할 건물이다.

 

15-16세기에 괴트봐이그 수도원은 어쩐 일인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1556년에서 1564년 사이에는 수도원장마저 없었으며 수도승들은 모두 수도원을 떠났다. 황실이 관여하였다. 황실은 멜크 수도원의 미하엘 헤를리히(Michael Herrlich)를 새로운 수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헤를리히 수도원장은 1604년까지 장장 40년을 봉사하면서 괴트봐이그 수도원을 신앙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크게 부흥발전시켰다. 그리하여 1580년에 대화제로 파손되었던 수도원을 거의 모두 복구하였다. 이후의 수도원장들도 모두 열심히 봉사하였다. 특히 게오르게 활프(George Falb: 1612-1631)와 다비스 코르너(David Corner: 1631-1648)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확산을 방지하고 가톨릭을 수호하는데 커다란 헌신을 하였다.

 

수도원 교회의 중앙제단

                       

1718년 수도원은 다시한번 불에 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거장 요한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의 설계로 완전히 새로운 수도원을 건설하였다. 폰 힐데브란트는 스페인의 에스코리알 수도원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괴트봐이그 수도원의 신축을 주도하였다. 오늘날의 수도원 건물이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폰 힐데브란트의 신축 계획이 너무나 방대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당시 수도원장이던 고트프리트 베쎌(Gottfried Bessel: 1714-1749)는 극구 반대하였으나 황실의 지원이 있어서 겨우 진척할수 있었다. 수도원과 교회의 내부 장식은 유명한 화가 파울 트로거가 담당하였다. 트로거의 작품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신성로마황제인 샤를르 6세(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를 아폴로 신으로 신격화한 천정 프레스코이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하는 괴트봐이그 수도원이 완성되었으며 그 어려운 중에도 수도원 건물을 신축할수 있어서 오늘날 괴트봐이그 수도원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으며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장엄한 건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수도원교회의 납골당

 

괴트봐이그 수도원은 13만권의 장서와 문서를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역사의 연구에 중요한 수많은 판각화, 주화, 골동품, 악보, 자연사적 수집품 등이 있다. 얼마전 괴트봐이그 수도원 도서실에서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악보가 재발견된 것은 놀라운 기쁨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양대 세계전쟁을 겪으면서도 괴트봐이그 수도원의 장서와 수집품들은 거의 모두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제의 동(棟)에 있는 박물관은 바로크 예술의 정수라고 할수 있다. 괴트봐이그 수도원은 단순히 경관이 좋아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중요한 회의가 자주 열린다. European Forum Wachau라는 회의에는 유럽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참석하여 EU의 장래에 대하여 논의하는 회의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2006년에 괴트봐이그 수도원을 그린 10 유로 짜리 기념주화를 발행하였다. 뒷면에 성채와 같은 괴트봐이그 수도원의 모습과 인근의 포도밭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주화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수도원내의 고벨린 침머(고벨린은 타페스트리와 같은 직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