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수도원/수도원의 영욕

하일리겐크로이츠(Heiligenkreuz) 수도원

정준극 2011. 1. 1. 20:20

하일리겐크로이츠(Heiligenkreuz) 수도원

Stift Heiligenkreuz - 성십자수도원

 

하일리겐크로이츠(성십자) 수도원과 교회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니더외스터라이히주 바덴 서북쪽 약 12 km 지점의 하일리겐크로이츠 마을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이다. 비엔나 숲의 남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한적한 주변 경관이 매력적인 곳이다. 1133년 설립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세계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 중에서 두번째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설립이래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문을 닫거나 곤경에 처한 일도 없는 수도원이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2007년 9월 오스트리아를 방문 중에 이곳을 찾아 왔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성가단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08년에는 유니버살 클래식이라는 레벨로 그레고리안성가집 'Chant: Music for Paradise'라는 CD를 녹음하였다. 실제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지나간 8백여년 동안 오스트리아의 중요한 음악센터의 하나였다. 이 수도원의 도서실에는 중세의 중요한 악보들이 다수 보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알베리히 마차크(Alberich Mazak: 1609-1661)의 악보들이다.

 

비엔나 숲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3세가 설립하였다. 신앙심이 대단히 깊은 레오폴드3세는 성자 레오폴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설립한 것은 그의 아들로서 부르군디의 모리몬트(Morimond) 시토회 수도원장인 오토의 간청에 의해서였다. 오토는 나중에 프라이징(Freising)의 주교가 되었다. 수도원을 건축한 레오폴드3세는 모리몬트로부터 12명의 수도사들을 데려와서 수도원의 운영을 맡도록 했다. 이들 수도사들은 비엔나 숲 지역의 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한편 숲을 개간하고 밭을 일구는 노동을 하였다. 이들은 수도원의 이름을 구원의 십자가에 헌신한다는 의미에서 하일리겐크로이츠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루버 문 

 

야소미어고트라고 알려진 하인리히2세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의 군주가 된 레오폴드5세는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 그리스도가 매달려 세상을 떠나신 진짜 성십자가의 한 조각이 있으면 대단히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당시 예루살렘왕인 볼드윈4세는 1182년 성십자가의 조각을 구하여 레오폴드5세에게 헌납하였다. 이로써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더욱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레오폴드5세는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영국의 사자왕 리챠드를 인근 뒤른슈타인의 고성에 가두어 놓았다가 나중에 막대한 돈을 받고 석방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조각은 오래동안 일반을 위해 전시되었으나 더욱 성스럽게 보관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1983년 이래 교회 안의 성십자 채플에 정성스럽게 보관되어 있다. 이처럼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설립자인 레오폴드3세 이후로 버벤버그 왕조의 지원을 받아 융성하게 되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재정에 여유가 생기자 수많은 소속교회들을 건설하고 후원하였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바벤버그 왕조의 관심과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대에도 어려움이 없이 지낼수 있었다. 그리하여 요셉2세의 수도원 정비작업 중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수도원 교회의 콰이어

 

정문을 들어서면 넓은 호프(안마당)가 나온다. 호프의 한 가운데에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성삼위일체탑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비엔나 그라벤의 페스트조일레를 연상시키는 탑이다. 1739년에 조반니 줄리아니(Giovanni Giuliani)가 완성하였다. 교회의 정면에는 대개의 시토회 교회들이 그런 것처럼 세개의 문이 설치 되어 있다.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종탑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정면에 위치하지만 처음에 교회를 지을때 종탑을 설계하지 않아서 없었다. 그러다가 훗날 바로크 시기에 북쪽에 종탑을 추가하였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교회는 두가지 양식이 협동된 것이다. 정면, 회중석(Nave)과 수랑(Transept)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반면, 콰이어 (Choir)는 고틱 양식이다. 교회의 회중석은 오스트리아의 교회 중에서도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것으로 유명하다. 중세 예술의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하는 콰이어의 스테인드 글래스는 13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레오폴드3세를 비롯한 여러 중요 인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인너호프(안뜰). 삼위일체탑이 아름답다.

 

수도원의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에는 바벤버그 왕조의 군주 중에서 13명의 무덤이 있다. 바벤버그 최후의 군주인 '분쟁의 프레데릭 공작'(Duke Frederick the Quarrelsome)도 포함되어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설립자인 레오폴드3세의 아들 오토(프라이징의 복자 오토)의 유골 일부도 수도원의 남쪽 채플에 보관되어 있다. 합스부르크의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스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루돌프 황태자의 애인으로서 이루지 못할 사랑을 비관하여 황태자와 함께 죽음을 택한 마리아 베체라(Maria Vetsera) 남작부인의 묘지는 수도원 공동묘지에 있다. 두 사람이 자살한 마이엘링은 하일리겐크로이츠로부터 멀지 않아서 많은 하일리겐크로이츠를 찾아 왔던 사람들이 발품을 팔아서 마이엘링을 연계하여 관광한다.

 

베르나드리 수도원교회의 뒷편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는 신학대학이 있다. 정식명칭은 철학-신학대학(Philosophisch-Theologische Hochschule)이다. 1802년에 설치되었으며 1976년에 정부로부터 대학으로 인준을 받았다. 이 대학은 현재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제교육기관으로 이름나 있다. 교황 베네딕트16세는 2007년 1월,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신학대학을 교황청 사제양성기관과 같은 자격, 즉 Pontifical Athanaeum으로 격상하였다. 이로써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신학대학은 로마 교황청의 신학대학과 마찬가지의 학위를 수여하는 등 제반 특권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또한 사제들을 위한 재교육 겸 휴양기관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프로그램을 Priesterseminar Leopoldinum 이라고 부른다. 전에는 Collegium Rudolphinum 이라고 불렀었다. 이곳에서 사제로 서품 받을 예비신부들의 사경회(査經會)가 이루어진다.

 

성수반과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수도원 교회는 나사렛의 성모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유럽에서 가장 활동적인 시토회 수도원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수도원장은 2007년까지 오스트리아 시토회 성청의 회장을 맡았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수도원에서 이곳으로 젊은 수도사들을 보내어 견습을 하도록 하고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수도원 중에서는 최초로 인터넷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 등으로 인터넷 선교에 집중하고 있다. 2007년도 오스카 작품상을 받은 울리히 뮈헤 주연의 영화 The Lives of Others(타인의 삶)의 시나리오는 플로리안 헨켈 폰 돈너스마르크(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가 이곳 수도원의 어떤 작은 방에서 완성된 것이다. 플로리안은 현 수도원장인 그레고르 헨켈 돈너스마르크의 동생이다. 플로리안은 오스카상을 받은후 트로피를 들고 와서 수도원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눈물 바다였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이 그레고리안 챤트(성가)를 취입하여 CD로서 발매하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잠시 언급한바 있다. 이 앨범은 영국과 독일에서 골든 디스크를 기록하였으며 벨기에와 폴랜드에서는 100만장 이상이 판매되는 플래티넘(백금) 디스크를 기록하였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취입한 그레고리안 챤트 CD 쟈켓. 노래를 부른 수도사들은 2009년 독일 ECHO Awards에서 국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영국 Classical Brits가 주는 '올해의 앨범' 상을 받았다. 두루두루 상복도 터지고 돈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