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의 저서 '오페라와 드라마'(Oper und Drama)
바그너가 쓴 '오페라와 드라마' 표지. 출판은 1852년이다.
오페라 작곡가가 오페라에 대한 자기의 아이디어를 에세이 형식으로 써서 책으로 출판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바그너는 그런 책을 썼다. 게다가 한 편도 아니고 여러 편의 책을 썼다. 바그너는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는 '오페라와 드라마'에서 예술 형태의 하나인 오페라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바그너는 1851년 '오페라와 드라마'(Oper und Drama)를 그가 취리히에 있을 때인 1950년 10월부터 1851년 1월 사이에 집필하였다. 그러나 이 책이 처음 출판된 것은 1852년 라이프치히에서 였다. 바그너의 오페라(뮤직 드라마)를 이해하려면 우선 이 책부터 사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바그너의 예술적인 아이디어도 설명되어 있지만 그의 정치적인 아이디어도 적혀 있다. 바그너는 약간 정치적인 인물이어서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자유혁명 사상에 물들어서 드레스덴에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도입하자는 데모를 했다가 경찰의 현상수배자 리스트에 올라 어쩔수 없이 스위스로 도피를 했던 일까지 있다. 바그너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집필하던 때는 '링 사이클'의 대본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므로 '오페라와 드라마'와 '링 사이클'이 전혀 무관하다고 말할수는 없다.
오페라 작곡가들 중에는 글 솜씨가 남다른 사람들이 많아서 오페라의 대본을 직접 집필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데 바그너는 자기가 작곡한 오페라의 대본들을 아예 자기가 모두 썼다. 그러므로 웬만한 대본가는 바그너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할 형편이었다. 바그너는 음악가로서는 보기드믄 뛰어난 문장가였다. 그는 1840년에 '독일 음악론'(Uber Duetsches Musikwesen)을, 1849년에 뮤직 드라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한 '미래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der Zukunft)을, 같은 해에 이상적인 사회에 적합한 예술작품을 다룬 '예술과 혁명'(Die Kunst und die Revolution)을, 그리고 1850년(또는 1851년)에는 '오페라와 드라마'(Oper und Drama)에 이어 예술에서의 상업주의를 극렬히 비난한 '음악에서의 유태주의'(das Judentum in Musik)를 쓴바 있고 1868년에는 '독일 예술과 독일 정치'(Deutsche Kunst und Deutsche Politik)를, 마지막으로 1871년에는 '오페라의 사명에 대하여'(Uber die Bestinnung der Oper)를 펴낸바 있다. 그리고 자서전적인 작품으로서 '나의 인생'(Mein Leben)이 있다.
환상적인 '발퀴레'의 무대
'오페라와 드라마'는 자서전 스타일의 '나의 인생'을 제외하고는 바그너의 저서 중에서 가장 페이지 수가 많은 저서이다. 혹자는 '오페라와 드라마'가 에세이집이 아니라 논문이나 보고서와 같은 성격의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오페라와 드라마'에는 앞서도 언급한 듯이 바그너의 이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학술 논문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바그너는 '오페라와 드라마'를 취리히에 머물면서 불과 두세달 만에 집필하였다. 그런 짧은 기간 안에 이런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바그너는 1851년 1월에 이 저서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간추린 발표회를 가졌다. 바그너의 이상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너무 성급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바그너는 '오페라와 드라마'를 테오도르 울리히(Theodor Uhliig: 1822-1853)에게 헌정하였다. 테오도르 울리히는 드레스덴에서 바그너와 친밀하게 지냈던 작곡가 겸 평론가 겸 비올라 연주자였다. 테오도르 울리히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보고 너무 감동하여서 로엔그린의 주제를 가지고 피아노 편곡집을 발간한바 있다. 바그너는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오페라와 드라마'를 그에게 헌정하였다. '오페라와 드라마'는 초판이 1851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되었지만 인기가 좋아서 1868년에 재판이 출판되었다. 바그너는 재판을 독일 민족주의자인 콘스탄틴 프란츠(Constantin Frantz)에게 헌정하였다.
'오페라와 드라마'는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 파트는 '오페라와 음악의 본성'(Die Oper und das Wesen der Musik: Opera and the Nature of Music)이다. 이 파트에서 바그너는 당시의 인기 작곡가들, 특히 로시니와 마이에르베르를 예술을 배반한 인물이라고 하여 비난했다. 바그너는 이들이 대중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그리고 지나친 관능주의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바그너는 이 파트에서 마이에르베르의 오페라가 '아무런 원인이나 동기도 없이 효과에만 치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째 파트는 '연극과 드라마틱한 시예술의 본질'(Das Schauspiel und das dramatischen Dichtkunst: The Play and the Nature of Dramatic Poetry)을 다룬 것이다. 이 파트에서 바그너는 그가 이상으로 생각한 뮤직 드라마(악극)에서 시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세번째 파트는 '미래 드라마에 있어서 시예술과 음예술'(Dichtkunst und Tonkunst im Drama der Zukunft: The Arts of Poetry and Tone in the Drama of the Future)이다. 이 파트에서 바그너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뮤직 드라마의 개요를 설명하였다. 바그너는 그의 후기 작품에서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개념을 실현하였다. 이 책에서 바그너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라이트모티프 개념을 충실히 제시하였다.
리하르트 바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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