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오페라의 주제가 된 ‘예루살렘 해방’(La Gerusalemme liberta)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 시기의 타쏘 원작인 대서사시
몬테베르디, 헨델, 로시니, 살리에리, 륄리, 비발디, 글룩, 드보르작 등이 오페라로 작곡
이탈리아의 시인 토르쿠아토 타쏘
‘예루살렘 해방’(La Gerusalemme liberta: Jerusalem Delivered)은 16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토르쿠아토 타쏘(Torquato Tasso: 1544-1595)가 쓴 대서사시이다. 나폴리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세상을 떠난 타쏘는 후기 르네상스를 장식하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그래서 혹자는 타쏘를 그리스의 호머에 비유하였고 그의 ‘예루살렘 해방’을 현대판 일리아드라고 평가했다. ‘예루살렘 해방’은 그만큼 위대한 작품이다. ‘예루살렘 해방’은 기독교적 주제를 지니고 있지만 호머와 비르길의 대서사시 스타일이어서 신화적이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특히 공성장면과 전투장면은 일리아드와 흡사한 점이 다대하다. ‘예루살렘 해방’은 8행 시체(詩體)로서 전 20권(칸토)으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작품이다. ‘예루살렘 해방’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수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의 주제로 선호하였다. 특히 오페라에서 그러하다. 예를 들어서 리날도(르노), 아르미다(아르미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오페라는 모두 '예루살렘 해방'에 바탕을 두고 있는 오페라이다. 오늘날 까지 ‘예루살렘 해방’을 테마로 한 오페라는 무려 30편 이상이나 간직되어 있다. 몬테베르디, 헨델, 로시니, 살리에리, 장-밥티스트 륄리, 비발디, 글룩, 드보르작 등이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타이틀로, 또는 '리날도', '아르미다', '탄크레디' 등의 타이틀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아마 오페라의 주제로서는 오르페오 다음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 것이라고 말 할수 있다. 짐작컨대 역시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의 성지이기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예루살렘 해방' 책자의 표지
‘예루살렘 해방’을 주제로 한 오페라의 작곡자와 제목, 그리고 초연 장소와 연도는 다음과 같다.
- 지아케스 드 베르트(Giaches de Wert): 마드리갈 La Gerusalemme liberta(예루살렘 해방). 1595년
- 피에르 귀드롱(Pierre Guedron): Ballet de la Delivrance de Renaud(르노의 구원). 파리, 1617년
-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마드리갈 Combattimento di Tancredi e Clorinda(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전투). 1624년
- 지롤라모 지아코비(Girolamo Giacobbi): Il Tancredi(탄크레디). 볼로냐, 1629년
- 미켈란젤로 로씨(Michelangelo Rossi): Erminia sulGiordano(조르나도의 에르미니아). 로마, 1633녀
- 베네데토 페라리(Benedetto Ferrari): Armida(아르미다). 베니스, 1639년. 악보분실.
- 마르코 마라쫄리(Marco Marazzoli): Armida(아르미다). 페라라, 1641년
- 장-밥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파리, 1686년
- 카를로 팔라비치노(Carlo Pallavicino): La Gerusalemme liberta(예루살렘 해방). 베니스, 1687년
- 카를로 프란체스코 폴라롤로(Carlo Francesco Pollarolo): Gli avenimenti di Erminia e di Clorinda(에르미니아와 클로린다의 모험). 베니스, 1693년. 악보분실
- 테오필로 오르지아니(Teofilo Orgiani): Amori di Rinaldo con Armida(리날도와 아르미나의 사랑). 브레스키아, 1697년. 악보분실
- 앙드레 캄프라(Andre Campra): Tancrede(탄크레드). 파리, 1702년
- 오를레앙공 필립2세(Philippe II duke of Orleans): Suite d'Armide ou Jerusalem Delivree(아르미드 조곡 또는 예루살렘 해방). 폰텐블루. 1704년
- 조반니 마리아 루지에리(Giovanni Maria Ruggieri): Armida abbandonata(버려진 아르미다). 베니스, 1707년
- 주세페 보니벤티(Giuseppe Boniventi): Armida al campo(아르미다 알 캄포). 베니스, 1708년
- 테오필로 오르지아니(Teofilo Orgiani): Armida regina di Damasco(다메섹의 여왕 아르미다). 베로나, 1711년. 음악분실
- 조지 프레데릭 헨델(George Frederic Handel): Rinaldo(리날도). 런던, 1711년
- 지아코모 람피니(Giacomo Rampini): Armida in Damasco(다메섹의 아르미다). 베니스, 1711년
- 주세페 마리아 부이니(Giuseppe Maria Buini): Armida abbandonata(버려진 여인 아르미다). 볼로냐, 1716년
-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Armida al campo d'Egitto(애굽의 아르미다). 베니스, 1718년
- 주세페 마리아 부이니(Giuseppe Maria Buini): Armida delusa(아르미다 델루사). 베니스, 1720년
- 앙리 데스마레(Henri Desmarest): Renaud, ou la Suite d'Armide(르노 또는 아르미드 조곡). 파리, 1722년
- 게오르그 카스파르 슈르만(Georg Caspar Schurmann): Das eroberte Jerusalem, oder Armida und Rinald(예루살렘 해방 또는 아르미다와 리날도). 브루스뷔크, 1722년
- 안토니오 보니(Antonio Boni): Armida abbandonata(버려진 여인 아르미다). 프라하, 1725년
- 안토니오 보니(Antonio Boni): Armida al campo(아르미다 알 캄포). 바르샤바, 1726년
- 안토니오 폴라롤로(Antonio Pollarolo): L'abbandono Di Armida(아르미다의 버림). 베니스, 1729년
- 루카 안토니오 프레디에리(Luca Antonio Predieri): Armida placata(아르미다 플라카타). 비엔나, 1750년
- 조반니 바티스타 멜레(Giovanni Battista Mele): La Armida aplacada. 마드리드, 1750년
- 칼 하인리히 그라운(Carl Heinrich Graun): Armida(아르미다). 베를린, 1751년
- 프란체스코 제미니아니(Grancesco Geminiani): The Inchanted Forrest(마법의 숲). 런던, 1754년
- 토마소 트라에타(Tomaso Traetta): Armida(아르미다). 비엔나, 1761년
- 니콜로 욤멜리(Nicolo Jommelli): Armida abbandonata(버려진 아르미다). 나폴리, 1770년
-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 Armida(아르미다). 비엔나, 1771년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Armide(아르미드). 파리, 1777년
- 요셉 하이든(Joseph Haydn): Armida(아르미다). 아이젠슈타트(?), 1784년
- 조아키노 로씨니(Gioacchino Rossini): Armida(아르미다). 나폴리, 1817년
- 요한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Rinaldo(리날도). 칸타타, 1858년
-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Armida(아르미다). 1904년
- 유디트 봐이르(Judith Weir): Armida(아르미다). 2005년
뿌쌩의 '탄크레드와 에르미니아'
오페라는 이 정도이지만 거장 화가들도 ‘예루살렘 해방’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수 남겨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본란에서 미술작품까지 소개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예루살렘 해방’이 얼마나 유명하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거장들의 명화를 소개코자 한다.
- 로렌조 리피(Lorenzo Lippi): Rinaldo in the enchanted forest(마법의 숲에서의 리날도). 1467/1650.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소장
- 푸쌩(Poussin): JerusalemDelivered(1630년대). ‘탄크레드와 에르미니아’를 주제로 한 작품도 두 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나는 생페터스부르크의 에르미따쥬미술관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영국 버밍햄의 바버미술연구소에 있다.
- 테오도르 힐데브란트(Theordor Hildebrandt): Tancred and Clorinda(탄크레드와 클로린다). 1830년대
- 로버트 세이무어(Robert Seymour): Jerusalem Delivered(예루살렘 해방). 1822년. 런던 로열아카데미(1백명 이상이 등장하는 대규모 작품)
- 유진 들라크로아(Eugene Delacroix): Clorinda Rescues Olindo and Sophronia(클로린다가 올린도와 소프로니아를 구함)
- 프랑수아 부셔(Francois Boucher): Rinaldo and Armida(리날도와 아르미다)- 프란체스코 헤이에즈(Francesco Heyez): Rinaldo and Armida(리날도와 아르미다)
- 파올로 휘놀리오(Paolo Finoglio): Jerusalem Delivered(예루살렘 해방) 연작. 1640년
- 지안 바티스타 티에폴로(Gian Battista Tiepolo): Rinaldo enchanted by Armida(아르미다에게 매혹당한 리날도). 1742/45. 시카고미술원 소장. Rinaldo leaves Armida(아르미다를 떠나는 리날도)는 비센차의 빌라 발마라나(Villa Valmarana)에 소장되어 있음.
- 도메니코 틴토레토(Domenico Tintoretto): Tancred Baptizing Clorinda(클로린다에게 세례를 주는 탄크레드). 1586-1600. 휴스턴미술박물관 소장
들라크로아의 '클로린다가 죽음에 직면한 올린도와 소프로니아를 구함'
‘예루살렘 해방’의 내용은 제1차 십자군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099년, 부이용(현재의 벨기에 지방)의 고드프리(고프레도)가 인솔하는 기독교 기사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함락하기 위해 무슬림군과 벌인 전투에 얽힌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중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Ludovico Ariosto: 1474-1533)의 최대 걸작인 ‘올란도 후리오소’(Orlando furioso: 1516: 광란의 올란도)에 일부 등장하는 것이다. ‘ 올란도 후리오소’는 십자군 전쟁 당시 샬레마뉴 대제와 기사 올란도의 모험을 다룬 내용이다. 타쏘는 ‘올란도 후리오소’에서 상당부분을 빌려와서 ‘예루살렘 해방’에 인용하였다.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은 기독교도와 무슬림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었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환상적인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어 있어서 종교적이라고 말할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오토만 제국이 유럽에 진입하는데 따른 필연적인 사건들을 다루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타쏘가 오늘날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대서사시를 1575년에 완성하여 처음으로 선을 보였을 때에는 제목이 Il Goffredo(일 고프레도)이었다. 십자군 지휘관의 이름이다. 대시인인 타쏘는 그의 ‘일 고프레도’를 그해 여름에 페라라-루크레치아의 알폰소 공작과 우르비노 공작부인의 앞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이 처음으로 출판되어 대중에게 보인 것은 1580년 베니스에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14편(칸토)만이 출판되었다. 20편의 완본이 출판된 것은 1581년 페라라(Ferrara)와 파르마(Parma)에서였다.
이제 다 아는 것이지만 다시 한번 줄거리를 살펴보자. 대부분의 오페라들은 기독교 십자군이 무슬림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내용부터 다루었으나 나중에는 무슬림군을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맺는다. 다만, 로시니의 오페라 ‘아르미다’는 도입부가 다르지만 그래도 서사시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같다. 십자군 진영에서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예루살렘에 사는 기독교 처녀인 소프로니아(Sofronia: Sophronia)와 그를 사랑하는 올린도(Olindo)가 바야흐로 화형에 처할 위기에 놓여 있다. 소프로니아는 무슬림 왕이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학살할 때에 이에 항거하지 않고 모른척 했음을 고백하며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소프로니아는 사랑하는 올린도를 구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펼친다. 한편, 올린도는 소프로니아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학살 당한 것은 오히려 자기의 잘못이라면서 처벌을 청한다.
아름답고 용맹스런 클로린다(Clorinda)가 십자군과 싸우기 위해 무슬림 진영에 합류한다. 십자군의 뛰어난 기사인 탄크레디(Tancredi: Tancred)는 클로린다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날 밤, 클로린다는 십자군이 점령하고 있는 망루에 불을 놓고 공격한다. 하지만 캄캄한 밤중의 전투에서 탄크레디는 실수로 클로린다를 죽인다. 클로린다는 숨을 거두기 전에 기독교인으로 개종한다. 클로린다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은 마치 비르길이 카밀리아(Camilia)를 설정한 것, 그리고 아리오스토(Ariosto)가 브라다만테(Bradamante)를 설정한 것과 같다. 고대 그리스의 헬리오도루스(Heliodorus)가 그의 작품에서 샤리클레아(Chariclea)를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수 있다.
로시니의 아르미다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아네트 다슈(Annette Dasch).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무슬림 진영의 에르미니아(Erminia)공주도 탄크레디를 사랑하게 된다. 에르미니아는 자기의 백성들을 배반하고 십자군의 탄크레디가 승리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탄크레디가 클로린다를 사랑하는 것을 알자 질투의 불길에 휩싸인다. 에르미니아는 무슬림 진영으로 돌아와 클로린다의 갑옷을 훔친후 자기를 숨기기 위해 목동들의 무리에 합류한다.
뛰어난 미모의 무슬림 마법사인 아르미다는 일부러 십자군의 진영으로 들어와 무슬림들을 타파해 달라면서 도움을 청한다. 아르미다의 설정은 호머의 시르세(Circe), 이라오스토의 알치나(Alcina)와 흡사한 설정이다. 아르미다의 미모에 매혹된 십자군의 기사들은 서로 그의 사랑을 차지하기 반목한다. 아르미다가 원하던 바이다. 아르미다는 자기를 죽어라고 좋아하는 일부 기사들을 데리고 무슬림 진영을 공격한다면서 떠난다. 도중에 아르미다는 마법으로 십자군 기사들을 짐승들로 만든다.
아르미다는 십자군을 격파하기 위해 십자군의 뛰어난 기사인 리날도를 죽이려고 한다. 리날도는 아리오스토의 Orlando Furioso에도 등장한다. 이를 미루어 보아 타쏘가 아리오스토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수 있다. 리날도는 베르톨도(Bertoldo)의 아들로서 나중에 유럽의 명문 인 에스테(Este)가문의 창시자가 되는 인물이다. 그건 그렇고 리날도를 죽이려던 아르미다는 리날도의 씩씩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그만 그를 사랑하게 된다. 아르미다는 리날도를 마법의 궁성으로 데리고 간다. 이곳에서 아르미다는 리날도를 환락에 눈이 멀도록 한다. 리날도는 십자군 전쟁을 잊고 아르미다에게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두 사람의 십자군 기사(우발도와 카를로)가 마법의 궁성에서 리날도를 찾는다. 기사들은 리날도에게 다이아몬드 거울을 보여준다. 거울을 본 리날도는 그제야 자기의 모습을 깨닫고 십자군 전쟁을 위해 아르미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상심한 아르미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지만 마법사이기 때문에 그마저도 이루지 못한다. 이것이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리날도가 환락의 궁성에 사로잡혀 지내는 것은 마치 오디세이에서 율리시즈가 마법의 섬에 갇혀 환락속에서 지내는 것과 같다.
200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요셉 하이든의 '아르미다'. 소프라노 모이카 에르드만, 베이스 미하엘 샤데.
‘예루살렘 해방’은 발표되자마자 유럽 전역에서 거의 2세기에 걸쳐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루살렘 해방’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는 얘기는 이미 언급한바 있다. 오페라, 발레, 연극, 가면극 등으로 표현되었다. 미술작품으로서도 훌륭한 소재였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바 있다. 그중에서도 파리 근교 퐁텐블루에 있는 빌라 발마라나의 프레스코 벽화는 유명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어떤 평론가들은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에 대하여 지나치게 마법적인 요소를 가미했느니 또는 대사가 너무 많다느니 하면서 비평하였다. 타쏘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전체 작품을 다시 손보았고 제목도 La Gerusalemme Conquistata(예루살렘 정복)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가들은 이번에는 오리지널 작품이 더 훌륭하다고 입방아를 찧었다. 결국 수정본 ‘예루살렘 해방’은 빛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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