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작곡가 기념 극장

크레모나의 폰키엘리극장(Teatro Ponchielli)

정준극 2011. 6. 9. 06:41

크레모나의 폰키엘리극장(Teatro Ponchielli) - Teatro Amilcare Ponchielli

Il Teatro Ponchielli di Cremona: Teatro Communale Ponchielli

 

폰키엘리극장의 오디토리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 지방의 크레모나(Cremona)는 오페라 '라 조콘다'로 유명한 작곡가 아밀카레 폰키엘리(Amilcare Ponchielli: 1834-1886)의 고향이다. 실은 폰키엘리는 크레모나 인근의 파데르노 화솔라로(Paderno Fasolaro)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크레모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크레모나가 고향이나 마찬가지이다. 파데르노 화솔라로는 폰키엘리를 기념하여 마을의 이름을 파데르노 폰키엘리라고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크레모나는 밀라노의 남쪽에 있다. 크레모나는 오페라의 아버지라고 하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가 태어난 곳이다. 그런가하면 바이올린 제작의 귀재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도 이곳 출신이다. 아밀카레 폰키엘리는 아마도 몬테베르디를 비롯한 크레모나 출신의 여러 음악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크레모나 출신의 아밀카레 폰키엘리

 

폰키엘리극장의 원조는 1747년에 세워진 나자리극장(Teatro Nazari)이다. 대개 그렇듯이 예전에는 정부가 극장건설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뜻있는 부유한 유지들이 자금을 내어 극장을 지었다. 크레모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자리극장이라고 한 것은 마을의 유지인 나자리라는 사람이 극장건설을 지원하고 주도했기 때문이다. 나자리극장은 약 40년 후인 1785년 테아트로 델라 소시에타(Teatro della Societa: 사회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한때는 Nobile Associazione(노빌레 아소시아치오네)라고 불렀다. 귀족들의 협회라는 의미였다. 1806년에 오리지널 나자리극장이 화재로 전소되자 크레모나의 유지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극장만큼은 어서 지어야 겠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극장을 지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폰키엘리극장의 전신이다. 당시에는 극장들이 대체로 목조건물이었기 때문에 전기가 없던 시절이어서 조명을 하자면 횃불을 밝히거나 카바이트 불을 켜야 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니 화재가 빈번할수 밖에 없었다. 단단하게 돌로 지으면 되지 왜 나무로 짓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극장이 대개 임시건물이어서 굳이 돌로 지을 필요가 없었다. 루이지 카노니카(Luigi Canonica)라는 사람이 설계한 크레모나의 새로운 극장은 1808년 오픈되었다. 이와 함께 이름도 Teatro della Concordia(화합극장)이라고 바꾸었다. 폰키엘리극장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1907년 아밀카레 폰키엘리를 기념하여 폰키엘리극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986년에 크레모나 시당국은 폰키엘리극장을 매입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폰키엘리극장은 크레모나의 유지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재단이었다. 시당국이 극장을 소유하자 시당국은 극장이름을 바꾸는 것이 시대적 추세라고 생각해서인지 극장이름을 Teatro Communale Ponchielli (폰키엘리 시립극장)이라고 바꾸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냥 폰키엘리극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1986년 10월 4일 폰키엘리 시립극장으로서 재개관되었을 때에는 시당국이 소유하고 있는 Il Cremonese 라는 명칭의 1715년도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과 del Gesu 라는 명칭의 1734년도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꺼내어 기념연주회를 가졌다. 폰키엘리극장은 1989년도에 리모델링하여 3층의 박스 객석과 2개의 갤러리를 마련하였다. 좌석수는 1,249개이다.

 

폰키엘리극장에서의 '라 조콘다'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