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작곡가 기념 극장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극장

정준극 2011. 6. 9. 11:55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극장

Teatro Torre del Lago Puccini (Festival Pucciniano)

 

토레 델 라고 푸치니극장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극장은 세계적인 여름오페라페스티벌인 푸치니 페스티벌의 장소이다. 토레 델 라고는 투스카니 지방의 마사치우콜리(Massaciuccoli)호와 티레니아해(Tyrrhenian Sea)중간에 있는 작은 호수마을이다. 토레 델 라고는 투스카니 리비에라 해변에 있는 비아레지오(Viareggio)로부터 약 5 km 떨어져 있으며 피사와 푸치니가 태어난 루카(Lucca)로부터는 약 20 km 떨어져 있다. 오늘날 토레 델 라고는 푸치니를 기념하기 위해 토레 델 라고 푸치니(Torre del lago Puccini)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졌다. 푸치니 페스티벌은 매년 7월과 8월에 열리며 오페라뿐만 아니라 콘서트, 발레도 공연된다. 푸치니 페스티벌에서는 매 시즌마다 5-6편의 오페라가 공연된다. 이를 보기 위해 해마다 약 4만명의 관람객들이 모여든다. 토레 델 라고에 면한 노천극장은 Teatro dei Quattromila라고도 부른다. 4천명의 극장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푸치니 페스티벌이 열리는 극장은 3천 2백석이지만 편의상 4천명을 수용하는 극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마사치우콜리 호수를 바라보며

 

토레 델 라고 푸치니극장은 빌라 푸치니(Villa Puccini)와 근거리에 있다. 1900년에 푸치니는 호반에 있는 오래된 감시탑을 사들여서 빌라로 만들고 이곳에 머무르면서 작곡을 하였다. 푸치니는 빌라 푸치니가 있는 마을과 호수를 '지상낙원'이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호수 주변이 공해에 오염되기 시작하자 푸치니는 1921년 비라에지오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 빌라 푸치니는 '푸치니기념관'이다.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 후, 사람들은 빌라 안에 있는 방 하나를 영묘로 만들고 푸치니의 유해를 안치하였다. 영묘에는 푸치니의 다른 가족들도 영면하고 있다. 빌라 푸치니 기념관은 월요일, 크리스마스, 그리고 11월의 대부분에는 문을 닫지만 다른 날에는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40분까지 문을 연다. 푸치니와 관련된 사진, 서류, 서적, 기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토레 델 라고 푸치니극장에서의 '투란도트' 공연 장면

 

토레 델 라고에서의 푸치니 페스티벌은 1930년부터 시작하였다. 푸치니는 1924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친구인 조바키노 포르차노(Giovacchino Forzano)에게 '언젠가 이 호수에 와서 나의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푸치니는 자연에 둘러싸인 마사키울리 호수의 무대에서 그의 오페라가 공연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포르차노를 비롯한 친구들은 푸치니의 이 말을 푸치니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호수무대에서의 오페라 공연을 계획하였다. 하지만 푸치니의 손녀인 시모네타 푸치니가 자꾸만 반대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30년 8월 24일, 마스카니와 포르차노가 합동하여 호수를 바라보는 빌라 푸치니의 앞 공터에 무대를 세우고 '라 보엠'을 공연하였다. 주최측은 가설무대이긴 하지만 이름이 있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Carro di Tespi Liciro 라고 부르기로 했다. '라 보엠'의 공연은 순회오페라단이 맡았으며 포르차노가 제작하고 마스카니가 지휘했다. 이듬해에도 똑 같은 순회오페라단이 섭외되어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라 보엠' '나비부인'의 두 편을 무대에 올려싸. '라 보엠'에서는 베냐미노 질리와 아델라이데 사라체니(Adelaide Saraceni)가 주역을 맡았으며 '나비부인'에서는 로세타 팜파니니(Rosetta Pmpanini)와 안젤로 미케티(Angelo Michetti)가 주역을 맡았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레 델 라고에서의 푸치니 페스티벌로 발전하였다.

 

토레 델 라고 푸치니극장에서의 '나비부인' 공연

 

그렇게 시작된 토레 델 라고에서의 오페라 공연이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바야흐로 유럽에서는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오페라 공연은 몇 년을 쉬다가 1937년에 겨우 무대를 만들었으나 그것도 사정상 오페라를 공연하지 못하고 콘서트로서 대신하였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났다. 토레 델 라고의 푸치니 페스티벌이 다시 부활한 것은 1949년이었다. 푸치니 서거 25주년을 그냥 보낼수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페스티벌을 강행하였다. '황금서부의 아가씨'가 무대에 올려졌다. 그리고 1950년에 들어서서는 본 궤도에 올랐다. 1990년에는 푸치니 페스티벌 재단이 설립되었다. 재단은 호반에 아예 고정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비아레지오 마을이 앞장섰다. 마을 당국은 2만 5천 평방미터의 대지를 구입하고 음악공원(Parco della Musica)를 조성키로 했다. 이 사업 중의 하나가 노천극장(Teatro al Aperto)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3천 2백석 규모의 토레 델 라고 푸치니 극장이 조성되었다. 비아레지오 당국은 음악공원에 리허설 시설, 워크샵 공간, 6백석의 소극장도 별도로 만들었다.

 

토레 델 라고 푸치니극장에서의 토스카 공연. 소프라노 노르마 환티니, 테너 마르코 베르티. 2012년 제59회 푸치니 페스티발에서.

 

2000년은 마스카니와 포르차노가 1930년에 푸치니의 오페라를 공연키 위한 야외극장 계획이 시작된지 70주년을 맞는 해였다. 푸치니 페스티벌로서는 46회를 기록하는 해였다. 새로운 연출에 의한 '나비부인'과 '토스카'가 무대에 올려졌다. 이와 함께 푸치니의 첫 오페라인 '빌리'(Le Villi)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했다. 소프라노 카티아 리키아렐리(Katia Ricciarelli)와 테너 호세 쿠라(Jose Cura)가 출연하였다. 2004년은 푸치니 페스티벌이 50주년을 맞는 해였으며 '나비부인'이 1904년 5월 28일 브레스키아에서 초연을 가진지 100년을 맞는 해였다. 새로운 연출에 의한 '나비부인'이 무대에 올려졌다. 플라치도 도밍고가 지휘를 맡았으며 소프라노 다니엘라 데씨(Daniela Dessi)와 테너 화비오 아르밀리아토(Fabio Armiliato)가 주역을 맡았다. 또 하나의 이벤트는 푸치니의 여주인공들에게 헌정된 연주회였다. 미미, 토스카, 마다마 버터플라이, 미니, 투란도트 등이 아리아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플라치도 도밍고가 푸치니로서 해설을 맡았다.

 

토레 델 라고 푸치니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