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하우스/작곡가 기념 극장

트리에스테의 베르디극장(Teatro Lirico Giuseppe Verdi)

정준극 2011. 6. 8. 21:27

트리에스테의 베르디극장(Teatro Verdi di Trieste: Teatro Lirico Giuseppe Verdi)

 

트리에스테의 '베르디극장'

 

트리에스테에 있는 베르디극장(Teatro Lirico Giuseppe Verdi)의 전신은 18세기 말에 어떤 무명의 부호가 경비를 기부하여 지은 Cesareo Regio Teatro di San Pietro(산 피에트로극장) 였다. 그러다가 1801년, 트리에스테시가 재정을 부담하여 종래의 8백석 극장을 1천4백석의 극장으로 확장하고 이름도 Teatro Nuovo(신극장)라고 불렀다. 1801년 6월 21일의 신극장 오프닝에서는 독일 출신의 작곡가로서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요한 시몬 마이르(Johann Simon Mayr: 1763-1845)의 오페라 '스코틀랜드의 지네브라'(Ginevra di Scozia)가 초연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 이전이었고 트리에스테는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제국이 관할하고 있었다. 신극장의 설계는 베니스의 라 페니체(La Fenice)극장을 설계한 안토니오 셀바(Antonio Selva)가 맡았다. 그는 고전적인 말편자 모양의 극장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외관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평범하였다. 트리에스테시는 또 다른 건축가인 마테오 페르츄(Matteo Pertsch)에게 의뢰하여 외관을 마무리 짓도록 하였다. 그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를 참고하여 신극장의 외관을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트리에스테의 신극장(훗날 베르디극장)은 내부는 라 페니체 스타일이며 외관은 라 스칼라의 모습이다.

 

베르디극장의 오디토리움

 

극장의 이름은 처음에 '산 피에트로 극장'으로 출발하여 '테아트로 누오보'(신극장)으로 변하여 정착되는가 싶다 했으나 그 후에도 몇번이나 간판을 갈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1821년에는 '테아트로 그란데'(Teatro Grande: 대극장)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테아트로 그란데' 시절에 베르디의 오페라 두 편이 이곳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1848년에 Il Corsaro(해적)이 초연되었고 1850년에는 Stiffelio(슈티펠리오)가 초연되었다. Il Corsaro에는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Giuseppina Strepponi)가 주역을 맡았다. 그렇게 하여 베르디와 알게된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는 1859년 베르디와 결혼하였다. 오페라 Stiffelio는 베르디가 직접 트리에스테까지 와서 공연을 감독하였다. 이처럼 테아트로 그란데에서 베르디의 오페라가 두편이나 초연되었지만 그 전에도 베르디의 다른 작품들이 자주 공연되어 테아트로 그란데의 위상을 한껏 높여준바 있다. 아무튼 테아트로 그란데는 근년에 이르기까지 주로 베르디, 푸치니, 그리고 바그너의 작품만을 공연하였다.

  

베르디극장의 위용

 

테아트로 그란데는 1861년 소유권이 개인으로부터 시당국으로 이관 됨에 따라 Teatro Communale(시립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1881년에는 종래의 1천 4백 좌석을 2천석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때쯤해서 전기가 상당히 보급되었다. 극장측은 조명으로 사용하던 가스시설이 화재에 취약함을 인식하고 모든 조명 시설을 전기로 바꾸는 공사를 시작하였다. 공사는 8년이나 계속되었으며 전기시설의 설비와 함께 좌석 수도 1천 석으로 줄어 축소할수 밖에 없었다. 세월을 흘러 1901년을 맞이하였다. 밀라노로부터 위대한 베르디 선생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트리에스테시는 베르디가 운명하기 며칠 전에 뜻한바 있어서 테아트로 그란데를 테아트로 베르디로 변경하였다. 오늘날 세계적인 트리에스테의 테아트로 베르디(베르디극장)는 이렇게하여 그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베르디극장에서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발레 또는 뮤지컬도 공연한다. 발레 '바야데레'의 한 장면

 

베르디극장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상당하 피해를 보았다. 1차 대전이 끝나고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제국이 트리에스테로부터 철수하자 트리에스테의 시민들은 베르디극장이 오스트리아제국의 잔재라고 하여 소홀히 다루었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 2차 대전중에는 트리에스테가 군항이었기 때문에 온갖 포격을 다 받아야 했다. 1992년부터 5년 동안 또 다시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1997년에 재개관하였다. 재개관기념 프로그램은 Viva Verdi(비바 베르디)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베르디의 오페라 중에서 여러 장면을 공연하였다. 잘 알다시피 Viva Verdi라는 문구는 이탈리아의 통일운동(리소르기멘토)의 표어처럼 사용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트리에스트의 베르디극장을 중심으로 해마다 열리고 있는 '국제오페레타음악제'(International Festival of Operetta)는 날로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베르디극장에서의 뮤지컬 '로즈마리'의 한 장면.

 

트리에스테의 베르디극장에서 초연된 주요 오페라는 다음과 같다.

- 요한 시몬 마이르의 '스코틀랜드의 지네브라': 1801년 4월 21일

-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카푸아의 한니발'(Annibale in Capua): 1801년 5월 20일

- 세자레 푸니(Sesare Pugni)의 '에딘버라의 리키아르도'(Ricciarda di Edimburgo): 1832년 9월 29일

- 오토 니콜라이의 '엔리코2세'(Enrico II): 1839년 11월 26일

- 주세페 베르디의 '해적'(Il Corsaro): 1848년 10월 25일

- 주세페 베르디의 '슈티펠리오'(Stiffelio): 1850년 11월 16일

- 안토니오 스마렐리아(Antonio Smareglia)의 '결혼교육'(Nozze istriane): 1895년 3월 28일

 

베르디의 '슈티펠리오'의 한 장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손드라 라드바노브스키와 호세 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