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만프레드 굴리트(Manfred Gurlitt)

정준극 2011. 10. 22. 12:56

만프레드 굴리트(Manfred Gurlitt)

오페라 '나나' 작곡한 작곡가 겸 지휘자

 

만프레드 굴리트(1890-1973)

 

만프레드 굴리트(Manfred Gurlitt: 1890-1973)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일본 토쿄에서 세상을 떠난 작곡가 겸 지휘자이다. 그는 엥겔버트 훔퍼딩크로부터 작곡을 배웠으며 지휘는 칼 무크(Karl Muck)로부터 배웠고피아노는 모리츠 마이어 마르(Moritz Mayer-Mahr)에게서 배웠다. 그는 유명한 지휘자인 코르넬리우스 굴리트(Cornelius Gurlitt)의 조카의 아들이다. 그는 1908년부터 1910년까지 베를린궁정오페라의 음악코치였다. 그후 바이로이트로 가서 칼 무크의 음악보조로 일했다. 1911-12년에는 에쎈의 부지휘자로 활동했고 이어 아우그스부르크에서 2년을 활동했다. 1차 대전이 일어난 해인 1914년에는 브레멘국립극장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브레멘에서 10년동안 지휘자 생활을 하다가 그후에는 음악총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1920년에 브레멘에서 신음악협회(Society for New Music)를 창설했다. 아방갸르드음악을 고취하고 고전이전 시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발굴하고 연주하기 위해서였다.

 

요절한 천재 극작가인 칼 게오르그 뷔흐너(Karl Georg Büchner: 1813-1837)의 희곡 보체크(Wozzeck)를 바탕으로 1926년에 작곡한 오페라 '보체크'는 알반 베르크가 같은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들어 발표한지 4개월 후에 선을 보였다. 하지만 베르크의 '보체크'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6년 4월 22일 브레멘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그후로 굴리트의 '보체크'는 굴리트의 경력에 빛나는 이력으로 남게 되었다. 굴리트는 이상하게도 브레멘에서 방탕하고 게으른 생활을 한다는 악소문으로 브레멘을 떠날수 밖에 없었다. 1927년 베를린으로 돌아온 그는 샬로텐부르크음악학교(Charlottenburg Musikhochschule)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지휘생활을 했다. 이와 함께 베를린의 크롤오페라극장(Krolloper), 막스 라인하르트의 도이체스 테아터, 베를린 라디오에서도 지휘를 하였다.

 

나치가 권력을 잡자 굴리트의 음악은 퇴폐음악이라는 레벨이 붙어 금지되었다. 그러나 비록 아방갸르드적인 그의 음악은 금지되었지만 제3제국을 위한 음악은 계속 지휘를 맡았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 굴리트는 1933년 5월부터는 나치당원이 되었다. 그러던중 나치는 굴리트가 유태계라고 발표하고 모든 직책에서 추방하였다. 사정이 있었겠지만 굴리트가 유태계라는 것은 잘못된 정보였다. 아무튼 유태계로 낙인이 찍힌 그는 게슈타포로부터 체포되는 것을 피아혀 1939년에 일본으로 이민을 떠났다. 일본에 도착한 굴리트는 유명한 '후지와라 요시에 오페라단'의 지휘자가 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1940년에는 토쿄교향악단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모차르트,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표준적인 레퍼토리의 일본 초연을 상당히 이루어냈다. 굴리트의 나치에 대한 태도는 애매한 편이었다. 나치를 피해 일본으로 왔지만 토쿄에서 그는 독일대사관으로부터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는 1953년에 토쿄에서 굴리트오페라단을 창설했다. 그리고 1969년에는 쇼와음악원의 교수가 되었다.

 

2010년 독일 에어푸르트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 '나나'의 한 장면

                           

굴리트는 1955년에 자기 작품의 순회연주를 위해 독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연주회는 성공을 하지 못했다. 그의 음악은 구태의연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6년에는 당시 서독정부로부터 훌륭한 음악활동으로 공로훈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이후로 작곡을 하지 않았으며 일본에 돌아온 후로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독일을 방문하지 않았다. 전후 독일로부터 그의 음악이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굴리트는 1930년에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Jakob Michael Reinhold Lenz)의 희곡을 바탕으로 '병사들'(Soldaten)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1933년에는 에밀 졸라(Émile François Zola)의 소설 나나를 바탕으로 오페라 '나나'(Nana)를 작곡했다. 오페라 '나나'는 2010년 독일 에어푸르트(Erfurt)극장에서 리바이벌되어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끌었다. '병사들'은 이미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Bernd Alois Zimmermann)이 같은 내용으로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나나'는 알반 베르크의 '룰루'(Lulu)와 같은 내용으로 작곡을 한 것이다. 만프레드 굴리트의 무대음악 작품은 다음과 같다.

 

● Die Heilige(성자): 칼 하우프트만(Carl Hauptmann)에 의한 3파트의 전설 뮤지컬: 1920년 1월 브레멘에서 초연 ● Wozzeck(보체크): 게오르그 뷔흐너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18장과 에필로그의 음악적 비극. 1926년 4월 브레멘에서 초연 ● Soldaten(병사들): 야콥 미하엘 라인홀트 렌츠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3막의 오페라. 1930년 11월 뒤셀도르프에서 초연 ● 나나(Nana): 에밀 졸라의 소설을 막스 브로트(Max Brod)가 대본을 만든 4막의 오페라. 1958년 4월 16일 도르트문트에서 초연 ● Nächtlicher Spuk(밤도깨비): 파울 크누센(Paul Knudsen)의 소설에 의한 3막의 오페라 ● Warum?(어찌하여?): '밤도깨비'의 후편. 프롤로그와 4막의 오페라. 1934-36년, 1942-45년 완성 ● Nordische Ballade(북구의 발라드): 스웨덴의 여류소설가인 셀마 라게뢰프(Selma Ottilia Lovisa Lagerlöf: 1858-1940)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4막의 오페라 ● Wir schreiten aus(활보): 195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