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씨의 남다른 생활
씨씨와 시종부인들
씨씨의 몸매는 한마디로 가냘픈 형이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아서 160 cm 정도이다. 허리는 유난히 가늘다. 20인치라고 한다. 씨씨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호프부르크에 있는 씨씨의 거실을 보면 기계체조기구가 있다. 이를 통하여 몸매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씨씨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특별한 다이어트를 했다. 주로 생송아지고기를 주스처럼 짜서 끊인후 간을 하여 먹었다고 한다. 씨씨는 승마에 탁월하였다. 원래 어린 시절 바바리아에서 살고 있을 때부터 말타기를 좋아 하였다. 호프부르크에 연결하여 있는 왕립 스페인 승마학교에는 씨씨를 위한 특별한 말들을 관리하고 있을 정도였다. 씨씨는 화초 가꾸기에도 남다를 취미가 있었다. 또한 시를 좋아하여 직접 시를 쓰기도 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를 가장 좋아했다. 씨씨가 남긴 시로는 '북해의 노래'(Nordseelieder)와 '겨울노래'(Winterlieder) 등이 있다. 씨씨는 시를 통하여 자기 자신만의 환상적인 세계를 꾸몄다. 씨씨는 자신을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티타니아(Titania)로 비교해 생각했다. 씨씨는 그리스 문학에 대하여 심취하였다. 호머의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는 늘 가지고 다니며 읽은 책이었다. 기왕 말 얘기가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씨씨에게는 여러명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조지 베이 미들턴(George Bay Middleton)이란 사람이다. 그는 유명한 승마인으로 아마도 씨씨와 승마 때문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윈스턴 처칠경의 부인이 된 클레멘틴 호지어(Clementine Hozier)는 조지 베이 미들턴의 딸이라고 한다. 한편 일설에 의하면 씨씨의 친정집인 비텔스바흐(Wittelsback) 가문에서는 정신 질환자가 있었기 때문에 씨씨도 그 영향을 받아 정신적으로 불안하였다는 얘기가 있다. 때문에 합스부르크 왕실에서의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승마를 즐겨한 씨씨의 승마자세 그림
기왕에 얘기가 나온 김에 또 한마디 더 하자면 집을 떠나 오랜 기간 여행을 다닌 씨씨는 남편 프란츠 요셉 황제와 비엔나의 유명한 여배우 카타리나 슈라트(Katharina Schratt: 1853-1940)의 데이트를 묵인 내지 은근히 후원까지 했다고 한다. 프란츠 요셉 황제가 카타리나 슈라트를 처음 만난 것은 1885년 비엔나에서 열린 만국산업박람회에서였다. 이 기간중 연극 공연이 있었는데 프란츠 요셉 황제가 카타리나의 연극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며칠후 프란츠 요셉 황제는 카타리나를 초청하여 러시아 황제(짜르) 알렉산더3세를 위해 별도의 연극 공연을 부탁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친교는 1916년 프란츠 요셉 황제가 서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카타리나를 프란츠 요셉 황제의 정부라고 불렀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카타리나 슈라트에게 쇤브룬 궁전 부근의 글로리에타가쎄(Gloriettagasse)에 맨선을 하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슈타츠오퍼 건너편의 캐른트너 링에 있는 3층 건물을 하사하였다. 카타리나 슈라트는 프란츠 요셉의 사후 캐른트너의 이 건물에서 여생을 보냈다.
프란츠 요셉 황제의 정부였던 카타리나 슈라트
씨씨의 등록 상표는 유난히 긴 머리와 부채이다. 부채는 항상 지니고 다녔다. 자기의 얼굴을 가릴수 있어서 필요했다는 얘기였다. 보기 싫은 사람에게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심정에서 였다고 한다. 씨씨의 머리는 어느 누구보다도 길다. 아름다운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왜 그렇게 긴 머리칼을 유지하였는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백작부인들의 시종을 받아야 했던 씨씨는 그것이 귀찮았다. 머리를 가다듬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간섭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가다듬는데 너댓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에 씨씨는 조용히 책을 일거나 시를 쓰기도 했다. 씨씨는 하이네의 시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자기의 일기책에 하이네 스타일의 시를 써서 남기기도 했다. ‘아름다운 시절 5월, 나무마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맺힐 때에, 나의 마음 그곳에 머물러 사랑이 꽃송이처럼 맺히기 시작하였네...’ 그런 시였다.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긴머리의 씨씨 초상화.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 작품
'합스부르크 > 세기의 왕비 씨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로운 죽음 (0) | 2011.11.25 |
---|---|
헝가리 왕비로의 대관 (0) | 2011.11.25 |
황태자의 죽음 (0) | 2011.11.25 |
아우구스틴교회에서의 결혼식 (0) | 2011.11.25 |
사촌인 남편 (0) | 2011.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