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세기의 왕비 씨씨

헝가리 왕비로의 대관

정준극 2011. 11. 25. 04:16

헝가리 왕비로의 대관

 

부다페스트의 부다 사이드에 있는 성마태성당에서 열린 프란츠 요셉와 엘리자베트의 헝가리 왕과 왕비 대관식

 

1867년, 씨씨가 30세 되던 해의 일이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간의 기나긴 줄다리기 협상이 마무리되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원으로 계속 유지하되 거의 독립국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헝가리 국왕을 추대할 필요가 생겼다. 헝가리 귀족원의 한결같은 소망은 씨씨를 여왕으로 추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란츠 요셉 황제가 헝가리 왕이 되고 그의 부인인 씨씨는 헝가리의 왕비가 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더욱 공고한 유대관계를 지니게 되었다. 이를 K.u.K. 라고 말한다. Kaiser under Koenig의 약자로서 황제와 국왕이라는 의미이다. 지금도 수많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이 K.u.K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화려했던 영화의 발자취를 추상할수 있기 때문이다.

 

헝가리-보헤미아 왕비(퀸)로서의 대관식 후 사진. 1867년

                              

씨씨가 헝가리 여왕(왕비)으로 즉위하는 대관식은 부다페스트의 부다 쪽에 있는 전통의 성 마태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흰 눈처럼 하얀 대관식 가운을 입고 다이어몬드로 장식한 왕관을 쓴 씨씨의 모습은 하나의 조각작품이었다. 헝가리 귀족들이 씨씨의 앞에서 충성을 서약하였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이를 기념하여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에 ‘엘리자베스 다리’를 건설하였다. 아름다운 이 다리는 2차 세계대전중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다. 최근에 새로 건설한 다리는 명칭만 엘라자베스 다리였지 모습은 현대식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이 대관식이 근대 유럽에 있어서 가장 엄숙하고도 화려한 대관식이었다고 기술하였다. 헝가리 귀족을 대표하는 율리우스 안드라씨(Julius Andrassy) 백작은 평생 동안 씨씨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씨씨를 흠모하면서 지냈다. 그러한 친분 관계 때문에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가 분쟁 없이 서로의 명분을 찾아 융합할 수 있었다.

 

영화 '내사랑 영원히'에서 헝가리 왕비로 대관식을 갖는 엘리자베트. 대관식때의 그림에는 프란츠 요셉이 수염을 길렀는데 영화에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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