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페스티벌/잘츠부르크 축제

이벤트 장소 1: 잘츠부르크대성당과 대성당광장

정준극 2012. 1. 24. 18:24

이벤트 장소 1: 돔과 돔광장(Dom und Domplatz)

Salzburger Dom, Dom zu Salzburg, Salzburg Cathedral

잘츠부르크대성당과 대성당광장

 

잘츠부르크 대성당(돔)과 돔 앞의 광장(돔플라츠)

 

슈테판스돔(슈테판대성당)이 비엔나의 심장이라고 한다면 잘츠부르크돔(잘츠부르크대성당)은 잘츠부르크의 심장이다. 보통 돔(Dom)이라고 부르는 잘츠부르크대성당(Salzburger Dom: Dom zu Salzburg)는 잘츠부르크의 심장이며 상징일뿐만 아니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심장이며 상징이다. 잘츠부르크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트슈필콤플렉스(Festspielcomplex)라는 시설이 있어서 페스티벌의 중요한 이벤트들을 그곳에 모여 있는 대연주회장, 모차르트 하우스, 승마학교 공연장, 잘츠부르크대학교 대강당 등에서 진행하지만 세계적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오프닝은 항상 잘츠부르크돔에서 거행된다. 휴고 폰 호프만슈탈이 대본을 쓴 연극 '예더만'(Jedermann)이 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리며 공연되기 때문이다. '예더만' 공연의 장소는 돔플라츠(Domplatz: 대성당광장)이다. 그리하여 대성당의 건물이 무대의 배경이 되는 놀라운 광경이 연출된다.

 

잘츠부르크대성당을 무대 배경으로 한 '예더만' 공연. 지금은 조명을 하지만 초기에는 조명을 하지 않고 햇빛에만 의존하는 자연조명의 공연이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오프닝으로 '예더만'이 공연되는 것은 페스티벌 초창기부터의 관례였다. 이 관례가 1920년 이래 지금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1920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은 1877년에 설립된 국제모차르테움재단(International Mozarteum Foundation: Stiftung Mozart)이 거의 매년 여름에 며칠 동안 잘츠부르크에서 주로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는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이 효시이다. 그러다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1910년에 행사가 중단되었다. 주최측은 1914년부터는 페스티벌을 재개하자고 결심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1914년에 1차 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계획은 취소될수 밖에 없었다. 1차 대전이 막을 내리기 직전인 1917년 프리드리히 게마허(Friedrich Gehmacher)와 하인리히 다미슈(Heinrich Damisch)라는 분이 국제모차르트재단이 추진했던 페스티벌을 다시 시작키로 하고 '잘츠부르크 페스트슈필하우스 게마인데'(Salzburg Festspielhaus-Gemeinde: 잘츠부르크 페스티벌하우스 협회)를 설립하였다. 음악회만 열 것이 아니라 연극도 공연키로 했다. 또한 매년 반드시 개최키로 결정했다. 물론 음악회의 경우에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강조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쟁의 와중이었기 때문에 계획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던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예더만'의 한 장면. 심판을 받으러 가는 예더만이 세상의 친구들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하지만 모두들 거절한다.

 

자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역사를 설명해서 미안하지만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만 더 하자면, 1918년 1차 대전이 끝나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고 특히 극본가인 휴고 폰 호프만슈탈,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무대디자이너인 알프레드 롤러(Alfred Roller), 지휘자인 프란츠 샬크(Franz Schalk), 연출가 겸 무대감독인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는 페스티벌의 챔피온으로서 임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즉,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부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5명이 말하자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설립자들이다. 당시 막스 라인하르트는 베를린의 독일극장장이었다. 그는 폰 호프만슈탈의 '예더만'을 1911년에 베를린의 치르쿠스 슈만(Zirkus Schumann)에서 처음 공연한바 있다. 그래서 폰 호프만슈탈과 친분이 유난할 뿐만 아니라 '예더만'의 옹호자였다. 그리하여 폰 호프만슈탈과 라인하르트의 주도로 19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리바이벌에서 '예더만'을 공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폰 호프만슈탈과 라인하르트 등은 '예더만' 공연을 확정하고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라인하르트가 당장 잘츠부르크대성당 광장이 최적이라고 제안했다. 1911년 베를린에서 '예더만'을 초연했을 때 타이틀 롤을 맡았던 알렉산더 모이씨(Alexander Moissi: Aleksandër Moisiu)가 무대의 대성당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음을 회상하고 얼핏 잘츠부르크대성당 광장을 연상했던 것이다. 라인하르트는 세계에서 '예더만'의 무대로서 잘츠부르크대성당을 배경으로 삼는 것 만큼 최적인 곳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하여 돔플라츠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생활을 함께 하게 되었다.

 

1930년대 대성당 앞 광장에서 공연된 '예더만'의 출연진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잘츠부르크대성당은 1614-28년에 거장 산티노 솔라리(Santino Solari)가 완성했다. 알프스 북쪽에 있는 교회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래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잘츠부르크대성당은 30년 전쟁의 와중에서 당시 잘츠부르크 대주교인 파리스 로드론(Paris Lodron)이 봉헌하였다. 실상 현재의 건물은 오리지널이 아니고 세번째의 것이다. 그동안 잘츠부르크가 얼마나 전화에 시달렸는지를 알게 해주는 일이다. 대성당의 정면에는 두개의 높은 탑이 양쪽으로 세워져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상이 이 세상의 통치자로서 장엄하게 서 있다. 대성당의 한쪽에는 대주교 공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성베드로 수도원이 있다. 돔플라츠는 이들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천연의 아늑한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프란치스코성당의 첨탑과 저 멀리 묀흐스버그 산과 카푸치너버그 산의 모습은 마치 극중에서 '죽음'이 예더만을 데리고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있다. 대성당의 중간부분에 있는 발코니처럼 생긴 곳은 예더만에게 소리치는 군중들과 팡파레를 울리는 나팔수들이 위치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라이하르트는 조명을 태양의 임무로 남겨 놓았다. 연극은 오후 5시 또는 5시 반에 시작하도록 했다. 아직도 따가운 햇빛이 내려 쪼이는 때이다. 연극이 진행되어 '죽음'이 등장할 때 쯤이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며 '악마'가 나타날 때 쯤이며 햇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별도의 조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돔광장에는 2,544개의 좌석이 마련된다. 무대에는 비밀 문이나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어서 배우들이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것이 마치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게 보인다. 만일 우천이면 '예더만'은 대연주회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잘츠부르크대성당 광장에서의 '예더만' 공연. 대성당의 건물과 주변이 모두 무대배경이며 햇빛은 조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