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페스티벌/잘츠부르크 축제

이벤트 장소 3: 승마학교 공연장

정준극 2012. 1. 24. 18:31

이벤트 장소 3: 잘츠부르크 페스트슈필하우스

대주교 마사 공연장

Kleines Festspielhaus(소공연장)


잘츠부르크 대주교 마사 공연장

 

이곳은 원래 거대한 채석장이 있던 곳이다. 어려운 말로 역암이라는 석재를 캐내던 곳이다. 17세기에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이곳에서 석재를 캐냈다. 석재를 캐내고 난 자리에 당시 대주교이던 요한 에른스트 툰(Johann Ernst Thun)이 위대한 건축가 요한 피셔 폰 에어라흐(Johann Fischer von Erlach)에게 마굿간, 즉 마사(馬舍: Stallburg)를 짓도록 요청했다. 어떤 자료에는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 대주교가 마굿간을 건설했다고 되어 있으나 중요한 것은 1600년대 초반에 이미 건물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말이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말들을 많이 키웠다. 누구든지 말을 잘 탈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승마학교가 있었다. 마굿간은 승마학교를 겸했다. 승마학교는 1662년에 오픈하였다. 승마학교를 라이트슐레(Reitschule)라고 한다. 묀흐스버그 산 비탈을 깎아 만든 승마학교는 바위가 있는 곳에 있기 때문에 펠젠라이트슐레(Felsenreitschule)라고 불렀다. 요한 피셔 폰 에어라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라고 하는 비엔나의 칼스키르헤(Karlskirche), 리틀 베르사이유라고 부르는 비엔나 교외의 쇤브룬궁전을 설계한 위대한 건축가이다. 펠젠라이트슐레 건물은 사람들이 마술(馬術)을 관람할수 있도록 마치 로마시대의 콜로세움처럼 건설되어있다. 19세기에는 기병대 병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1900년대 초반부터 음악회도 열리고 연극도 공연하는 장소가 되었다.

 

1900년대 초반의 펠젠라이트슐레 공연장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설립자 중의 하나인 막스 라인하르트는 펠젠라이트슐레를 잘만 이용하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연극공연장으로 사용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라인하르트는 펠젠라이트슐레를 보수하여 192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기간 중에 연극을 공연했다. 베니스 출신인 카를로 골도니(1707-1793)의 '두 주인의 하인'(Il servitore di due padroni: The Servant of Two Masters)였다.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그 이후로 펠젠라이트슐레의 공연장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위해 충실하게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혹자는 예전에 승마학교가 여름에만 개방되었던 것을 생각하여 여름승마학교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굳이 여름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카를로 골도니의 연극 '두 주인의 하인' 피날레

                

1933년에 건축가이며 무대 디자이너인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Clemens Holzmeister: 1886-1983)는 펠젠라이트슐레의 무대에 '파우스트 시티'라고 불리는 대단히 인상적인 무대를 디자인했다. 그래서 소규모의 연극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오페라도 공연할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48년, 2차 대전이 끝난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책임 맡게 된 허버트 폰 카라얀은 펠젠라이트슐레의 무대를 오페라 무대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글룩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공연하였다. 그로부터 펠렌라이트슐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기간 중에 오페라와 기타 연주회가 공연되는 장소로 사랑을 받아 왔다. 이 공연장은 1969-70년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건축가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가 또 다시 공사책임을 맡았다. 무대는 40미터 길이로 확장되었다. 무대 아래도 4미터난 되는 공간이 마련되고 각종 기계장치가 설치되었다. 더구나 노천이었던 공연장에 간이 지붕이 마련되었다. 무대 위를 중심으로 방수포로 만든 대형 이동식 천막을 설치하여 비가 올 때에는 덮도록 하고 보통 때에는 접어 두도록 했다. 방수포 지붕을 만든 것은 공연 도중에 빗소리를 완화하기 위해서이다.

 

오늘날의 펠젠라이트슐레 공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