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페스티벌/잘츠부르크 축제

이벤트 장소 9: 콜레기엔키르헤(Kollegienkirche)

정준극 2012. 1. 25. 14:20

이벤트 장소 9: 콜레기엔키르헤(Kollegienkirche) - Unser Lieben Frauenkirche

잘츠부르크대학교회(Salzburger Universitätskirche - University Church)

 

콜레기엔키르헤(대학교회)

 

잘츠부르크대학교회(콜레기엔키르헤: Kollegienkirche)는 원래 성모교회라는 이름이었으나 대학교회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콜레기엔키르헤라는 이름을 유지하게 되었다. 콜레기엔키르헤는 1694-1707년간에 건설되었다. 당대의 건축가인 요한 피셔 폰 에어라흐가 책임을 맡았다.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삼위일체교회와 우르술리넨키르헤를 건축했으며 비엔나에서는 칼스키르헤와 쇤브룬궁전을 건축했다. 콜레기엔키르헤는 슈티프트키르헤(Stiftskirche: 수도원교회)라고도 부른다.

 

콜레기엔키르헤에서의 연주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처음 기획한 폰 호프만슈탈과 라인하르트는 이들의 연극인 Das Salzburger Grosse Welttheater(대잘츠부르크 세계극장)을 공연할 장소를 물색하다가 콜레기엔키르헤를 보고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시작된지 2년 후인 1922년의 일이었다. 교회 당국은 연극공연을 허락하기는 하되 교회가 너무 낡아서 보수를 해야 하므로 공사기간 중에 연극을 공연하려면 하라고 말했다. 예산이 없어서 보수공사를 제때에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인하르트는 페스티발 주최측으로부터 받을 연출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으며 폰 호프만슈탈은 작가에 대한 사례비의 절반을 교회 공사비로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페스티발 사무국과 잘츠부르크 시당국도 예산을 기여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체 공사 예산의 3분의 1을 마련해 줄수 있었다.

 

콜레기엔키르헤의 위용

 

이렇듯 폰 호프만슈탈을 위시해서 여러 단체들이 공사비의 상당 부분을 기부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연극은 당장 공연되지 못하였다. 대신에 콘서트와 종교음악 연주회가 콜레기엔키르헤에서 열렸다. 그리고 종전이 된 1945년 이후에는 대학교 대강당을 사용하게 되어 콜레기엔키르헤에서의 페스티벌 연주회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연주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69년부터였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인 에밀리오 데 카발리에리(Emilio de Cavalieri: 1550-1602)의 오페라(오라토리오) Rappresentazione di Anima e di Corpo(영혼과 육체의 표상)가 공연되었다. 이 오페라(오라토리오)는 일종의 종교적 공연으로서 1600년에 로마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이 오페라(오라토리오)에는 막간에 춤이 등장하지만 당시 추기경들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환영하였다. 그후 오래동안 다시 공연되지 않고 있다가 1969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콜레기엔키르헤에서 공연된 것이다. 종교적 오페라(또는 오라토리오)는 1984년에 다시 공연되었다. 이번에는 헨델의 '입다'(Jephtha)였다. '입다'는 1986년에도 다시 공연되었으며 1985년에는 헨델의 '사울'(Saul)이 공연되었다. 그리고 1987년에는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 1874-1939)가 작곡한 Das Buch mit sieben Sieglen(일곱 봉인의 책)이 콜레기엔키르헤에서 공연되었다. 그러나 이 오페라는 초연 직후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잘츠부르크대학교 총장이 공연 금지를 지시하였다. 이후로 콜레기엔키르헤에서는 오페라 또는 오라토리오나 연극은 절대로 공연할수 없다고 되었으며 다만 콘서트만 연주할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1970년대부터 콜레기엔키르헤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종교음악과 합창 연주회의 장소로 빈번하게 이용되고 있다.

 

슈미트의 '일곱 봉인의 책' 음반

 

1993년부터는 잘츠부르크에서 열리게 된 또 하나의 음악축제인 차이트플루쓰 페스티벌(Zeitfluss Festival)이 콜레기엔키르헤를 연주회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차이트플루쓰 페스티벌은 바로 1993년에 아방 갸르드(전위) 작곡가라고 하는 루이지 노노(Luigi Nono)가 설립한 것으로 당시 이 페스티벌을 주관하던 토마스 치어호퍼 킨(Thomas Zierhofer-Kin)과 마르쿠스 힌터호이저(Marcus Hinterhäuser)는 콜레기엔키르헤를 현대음악 발표회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7년에 마르쿠스 힌터호이저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콘서트 프로그램 책임자가 되자 콜레기엔키르헤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중요한 현대음악 연주회장이 되었다. 2007년에 추진한 현대음악 프로그램은 콘티넨테(Kintenente)라고 불렀으며 여러 대륙의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 팔레르모 출신인 살바토레 스키아리노(Salvatore Sciarrino: 1947-)의 오페라 Luci mie traditrici(치명적인 꽃)가 공연되어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유명한 비주얼 아티스트인 레베카 혼(Rebecca Horn)이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맡은 것이었다.

 

오페라 '치명적인 꽃'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