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페스티벌/잘츠부르크 축제

이벤트 장소 6: 칼 뵘 홀

정준극 2012. 1. 24. 20:06

이벤트 장소 6: 칼 뵘 홀

Karl-Böhm-Saal(Karl-Böhm Hall)

 

칼 뵘 홀. 천정화는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허수아비처럼 만들어서 매달아 놓은 터키 병사들을 칼과 창으로 찌르는 군사훈련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칼 뵘 홀(Karl-Böhm-Saal)은 그라츠 출신의 위대한 지휘자 칼 뵘(1894-1981)을 기념하는 홀이다. 겨울승마학교에 부속되어 있는 홀이다. 일찍이 1662년에 요한 에른스트 툰(Johann Ernst Thun) 대주교가 건설했다. 현재의 형태로 된 것은 1926년이다. 원래는 휴게실이었다. 그러다가 근자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콤플렉스'(Festspielhauskomplex)에 속한 하나의 이벤트 장소로 인식되어 있다. 종전에는 승마학교 연주회장에서 공연이 있으면 휴게시간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간혹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칼 뵘 홀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천정화이다. 약 6백 평방미터의 천정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이다. 아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천정화라고 한다. 1690년에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궁정화가인 요한 미하엘 로트마이르(Johann Michael Rottmayr)에게 이 홀의 천정화를 그릴 것을 요청했다. 대주교는 홀의 한쪽 발코니에 앉아서 마치 천정화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갖고자 했다. 천정화의 주제는 터키의 침공에 대비하는 군사훈련 장면이었다. 당시는 터키의 제2차 비엔나 공성이 겨우 끝나고 안정을 되찾던 시기였다.

 

모차르트 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얻었던 지휘자 칼 뵘

 

터키는 오스트리아를 1529년에 처음 침공했고 이어 1683년에 다시 쳐들어 왔었다. 이렇듯 터키군은 두번이나 비엔나를 공성하였지만 점령하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터키군이 두번째 비엔나 공성을 풀고 퇴각하자 오스트리아에서는 앞으로 혹시 또다시 쳐들어 올지 모르므로 대비를 단단히 해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강력한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는 군대훈련을 강화하였다. 대주교가 통치하는 잘츠부르크도 마찬가지였다. 요한 에른스트 툰 대주교는 승마학교 휴게실의 천정화를 오스트리아군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터키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오스트리아군이 군사훈련을 하는 장면으로 제작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허수아비처럼 매달아 놓은 터키군을 공격하여 머리를 칼로 찌르고 자르는 훈련 장면이 제작되었다. 이같은 훈련을 튀르켄코프슈테헨(Türkenkopfstechen)라고 부른다. 글자그대로 터키군의 머리를 찌른다는 뜻이다.

 

천정 프레스코는 1926년에 휴게실을 연주회장으로도 사용할수 있게 변경하면서 복구했고 이어 2차 대전의 와중에서 손상을 입어 전후에 복구를 추진하여 1976년에 마무리했다. 특히 승마학교를 공연장으로 변환하면서 포디엄 양쪽에 목제 계단을 설치하였고 여러 조각작품을 설치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구입하여 전시했다. 외르그 임멘도르프와 아힘 프라이어의 타페스트리는 대표적으로 홀의 오른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 방에는 아름다운 주조물로 되어 있는 벽난로가 있으며 이 방의 역사를 알수 있는 여러가지 전시품이 있다. 특히 잘츠부르크 문장, 대주교의 관(冠), 리라, 말편자, 높은 음자리표, 연극을 상징하는 마스크 등도 볼수 있다. 칼 뵘 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지휘자 칼 뵘이 작고한 직후인 1982년이었다.

 

포디움과 양쪽의 계단. 비록 승마학교의 휴게실로 사용했지만 대주교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