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가 놀랄 '로엔그린'도 있다
살바토레 쉬아리노의 '로엔그린2'이다
현대적 연출의 로엔그린. 엘자역의 아네타 다슈. 이런 무대가 '로엔그린'이라고 한다면 바그너는 상당히 언짢아 할 것이다. 그런데 쉬아리노의 '로엔그린'은 더 하다.
'로엔그린'이라고 하면 바그너의 오페라만을 생각하게 되지만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쉬아리노(Salvatore Sciarrino: 1943-)가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도 있다. 그렇다고 쉬아리노의 '로엔그린'이 바그너의 '로엔그린'의 후편이란 것은 아니다. 후편으로서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바그너의 '로엔그린'과는 어느 정도의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굳이 표현하자면 이설(異說) 로엔그린이다. 그래서 '로엔그린-2'라고 부르기도 한다. 살바토레 쉬아리노의 '로엔그린'에는 Azione invisibile per solista, strumenti e voci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무대에서 솔리스트, 악기 및 음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인 로엔그린은 등장하지만 엘자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엘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해설자(스피커)를 두어 대부분 대신 말하도록 했다. 쉬아리노의 '로엔그린'은 1982년 밀라노에서 초연되었다. 그후 쉬아리노는 내용을 일부 수정하여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다. 새로운 버전은 1984년 9월 이탈리아 반도의 남단, 두개의 바다가 만나는 지역에 있는 카탄자로(Catanzaro)에서 초연되었다. 공연시간이 1시간도 채 안되는 이 오페라는 실내오페라의 장르에 들어간다.
새로운 버전의 '로엔그린'이 초연된 이탈리아 남부의 카탄자로
바그너의 '로엔그린'이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관점에서 본 내용이라고 하면 쉬아리노의 '로렌그린'은 엘자의 입장에서 본 내용이다. 엘자는 브라반트 공국의 공주가 아니라 베스타 여사제로 등장한다. 베스타 여사제는 당연히 처녀성을 지켜야 하는 신분이다. 그런데 간통을 범하고 남자를 살해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고소를 당한다. 그런 엘자를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 결혼하겠다고 나서서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첫날밤에 로엔그린은 엘자의 집요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완성하지 않는다. 즉, 부부로서의 첫날밤을 지내지 않는다. 로엔그린은 엘자의 섹스 공세를 피하기 위해 본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다. 그러자 침대에 있던 베개가 백조로 변한다. 로엔그린은 백조를 타고 달나라로 날아간다. 쉬아리노의 오페라는 엘자가 실제로는 정신병원에 입원되어 있는 환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으로 끝난다. 바그너가 알면 놀랄 내용이다.
작곡자 살바토레 쉬아리노
쉬아리노의 '로엔그린'은 되도록이면 독일적인 전설을 인용하지 않고 대신 거의 한시간에 걸친 정신착란적인 대사로서 시간을 충당하고 있다. 살인자인 엘자와 그런 엘자를 구원하고자 나타난 백조신분의 로엔그린은 찐득한 섹스 얘기, 분노와 번민, 위협, 어린시절의 비전, 정신이상적인 대화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룩하고 엄숙한 대화는 찾아 보려고 해도 찾아 볼수 없다. 게다가 주인공인 엘자는 소프라노라고 지적되어 있지만 무대에서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가 있기는 하다. 어떤 경우에는 해설자가 단편적으로 얘기해 주기도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연인들의 대화라는 것이 한숨, 꼴깍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 딸꾹질하는 소리, 마치 오르가즘을 느낄때 내는 것과 같은 신음소리, 비둘기들이 구구하는 것과 같은 소리로 점철 된 것이다. 여기에 타악기와 앙상블이 교묘하게 이런 이상한 소리들에 맞추어서 소리를 낸다. 그리고 소프라노도 타악기의 하나로서 작용을 한다. 즉, 이상한 소리만 낼뿐 노래를 기대하지는 못한다. 음악에 있어서도 사일렌스(침묵)가 효과적으로 작용토록 했다. 아무튼 악기를 사용하는 소리는 정도가 아닌 괴상한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이 오페라에는 남성합창단만이 나온다. 그렇다고 바그너의 남성합창을 기대한다면 곤란하다. 역시 평범하지 않는 소리로서 일관하기 때문이다.
작곡가인 살바토레 쉬아리노는 아방 갸르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현대적 고전음악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대표적인 극장작품(오페라)은 '사쿤탈라의 전설'이다. 간단히 말해서 보기에는 좋지만 듣기에는 힘든 오페라이다. 한편, 쉬아리노는 제2의 작품을 선호하는 듯하다. 대충 로엔그린을 바탕으로 하여 또 다른 '로엔그린'을 만들어냈고 베르디의 '맥베스'를 대충 바탕으로 하여 또 다른 '맥베스'를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로렌그린 2' '맥베스 2'이다. 이는 페터 빈트의 '미로'(Das Labyrinth)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후편이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후편인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족] 알리앙스 프랑세는 바그너 이벤트를 기획했다. 그같은 이벤트의 일환으로 2006년 4월에 쉬아리노의 '로엔그린'을 공연했다. 최근의 또 다른 이벤트는 '바그너: 환상가인가 무덤을 파는 사람인가?'라는 강연회였다. 무덤을 파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마지막으로 처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인도의 전설을 오페라로 만든 사쿤탈라는 쉬아리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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