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더 알기

오펜바흐도 그가 몇 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는지 몰랐다

정준극 2012. 1. 13. 17:49

오펜바흐와 오페레타

오펜바흐는 그가 몇 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는지 정확히 몰랐다.

 

오페레타의 왕 '오펜바흐'(1819-1880)

 

오페레타라고 하면 오펜바흐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그 오펜바흐가 도대체 토탈 몇 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는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오펜바흐 자신도 그가 몇 편의 오페레타를 작곡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니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아무튼 오펜바흐는 1819-1880년 사이에 100편 이상의 오페레타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110편이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어떤 학자는 100편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오펜바흐는 주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을 계속 수정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어떤 작품은 너무 수정을 해서 오리지널에 비하여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다만, 오리지널에서 손상되지 않은 것은 타이틀과 스토리일 뿐이고 음악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 된 것이다. 그건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간주할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 수정본들을 새로운 작품으로 간주한다면 110 여편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아무리 음악을 수정보완했다고 해도 기둥 줄거리에는 변함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작품수는 100 편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 오펜바흐의 작품을 검토하면서 상고해야 할 사항은 어떤 작품은 오페레타이고 어떤 작품은 오페라라고 부르냐는 것이다. 사실 오펜바흐에게 있어서 그런 구분은 모호하다. 오펜바흐 자신은 자기의 작품에 오페레타(프랑스어로는 Opérette)라는 명칭을 붙이기를 내키지 않아했다. 특히 단막의 작품은 오페레트 또는 오페라트 부프라는 용어를 붙이기를 주저했다. 오펜바흐는 오페라 부프라는 용어를 여러 막으로 구성된 작품에 사용하였다. 오페레타라는 용어는 오펜바흐의 그런 작품들이 비엔나에 영향을 주고나서부터 생긴 것이다. 오펜바흐는 19세기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엔나의 요한 슈트라우스와 런던의 아서 설리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펜바흐 스타일의 작품은 1870년 이후 비엔나에서 오페레타라는 용어로 불리기 시작했다. 주로 단막이 아닌 여러 막으로 구성된 코믹 오페라를 오페레타라고 불렀다. 오펜바흐는 오페라 코믹이라는 용어를 쓰기를 좋아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그가 오페라 코믹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은 대략 24개 작품이나 된다. 단막이던 2막이던 3막이던 상관 없이 오페라 코믹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붙였다.

 

오펜바흐의 첫 풀 스케일 오페레타인 '지하세계에 간 오르페오'

 

오펜바흐의 초기 오페레타들은 대개 단막이었다. 당시에는 이상한 법이 있어서 코믹한 내용의 오페라는 단막이어야 하며 출연자도 서너명을 초과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오펜바흐도 주로 단막의 단순한 내용의 작품을 썼다. 그런 스타일의 작품은 약 30편이 넘는다. 그러다가 1858년에 출연자 수를 제한한 법이 해제가 되자 처음으로 만든 풀 스케일 작품이 '지하세계에 간 오르페오'(Orphée aux enfers)였다. 그후 오펜바흐는 20편 이상의 그런 풀 스케일 작품을 썼다. 그래도 아직 오페레트(오페레타)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오페라 부퐁(Opéra bouffon)이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의 오페라 부파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오펜바흐의 단막 작품은 다음과 같은 다섯 카테고리로 구분된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음악학자들인 램(Lamb)과 헨젤러(Henseler)가 정리한 사항이다. 첫째는 시골의 목가적인 작품이며 둘째는 도시를 무대로 삼은 오페레타이고 셋째는 군대를 주제로 삼은 오페레타이며 넷째는 익살적인 작품이고 다섯째는 벌레스크(Burlesque) 또는 풍자적인 작품이다. 오펜바흐는 '지하세계에 간 오르페오'가 대성공을 거둔 이래 내놓는 작품마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아름다운 엘렌'(La belle Hélène: 1864), 파리인의 생활(La vie parisienne: 1866), 게롤슈타인 대공부인(La Grande-Duchesse de Gérolstein: 1867), 페리숄레(La Périchole: 1868) 등이다. 그러나 말년에는 지나치게 코믹한 내용을 더 이상 추구하지는 않았다. 무조건 웃기는 것을 좋아하던 대중들의 기호가 변했기 때문이다. 오펜바흐가 진정으로 심각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은 '호프만의 이야기'이다. ETA 호프만의 단편소설을 쥘르 바르비에르가 대본으로 만든 '호프만의 이야기'는 1막 올림피아, 2막 안토니아, 3막 줄리에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펜바흐는 '호프만의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서막과 1막의 피아노 스코어와 오케스트레이션을 완성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1881년의 초연을 보지 못했다. 작곡가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채 세상을 떠났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에 의해 완성되어 유명해진 오페라로서는 푸치니의 '투란도트'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호프만의 이야기. 줄리에타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