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더 알기

오페라 세계의 기록들 - 믿거나 말거나 2

정준극 2012. 2. 27. 05:30

* 세계 10대 명문 오페라하우스

- (1) 비엔나 슈타츠오퍼 (2) 파리 오페라극장 (3) 밀라노 스칼라극장 (4) 드레스덴 슈타츠오퍼 (5) 런던 코벤트 가든 (6) 생페테르부르크 마리인스키극장 (7)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8) 프라하 나로드니 디바들로극장 (9) 파리 오페라 코미크극장 (10) 부다페스트 마쟈르 알라미 오페라하우스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내부 계단

 

* 세계 10대 오페라하우스(좌석수)

- (1)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링컨 센터 (3,800석), (2) 신시나티 오페라하우스(3,630석), (3) 시카고 리릭오페라(3,563석), (4)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3,176석), (5) 댈러스 오페라하우스(3,420석), (6) 토론토 캐나디언 오페라 콤페니(3,167석), (7) 로스앤젤레스 뮤직 센터 오페라하우스(3,098석), (8) 산디에고 오페라하우스(2,992석), (9) 시애틀 오페라하우스(3,017석), (10) 몬트리올 오페라하우스(2,874석)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오디토리엄

 

* 가장 층이 높은 오페라 극장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과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이 각각 6층으로 가장 많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사람들은 볼쇼이 극장의 가장 꼭대기 층을 Galiorka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Gallery라고 부르는데 이는 천국에 가깝다는 뜻이다.

 

* 커튼콜 기록

-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오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커튼콜을 받았다. 아마 오페라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연주회에서 제일 많은 커튼콜을 받았을 것이다. 1988년 2월 24일,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네모리노(사랑의 묘약)를 맡아 공연했을 때였다. 무려 167번의 커튼콜을 받았다. 커튼콜에서 박수를 받은 시간은 무려 1시간 7분이었다. 아직까지 167회의 커튼콜 기록을 깬 사람은 없다. 1991년 7월 30일 비엔나 슈타츠오퍼에서 플라치도 도밍고가 오텔로를 맡았을 때에는  101회의 커튼콜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도밍고가 받은 커튼콜 시간은 파바로티보다 많은 1시간 15분이었다. 모두들 집에 늦게 도착했다.

 

   

오텔로 역의 플라치도 도밍고, 오른쪽은 2007년 9월에 세상을 떠난 루치아노 파바로티

 

* 가장 어린 오페라 성악가와 가장 나이 많은 오페라 성악가

 가장 나이어린 오페라 성악가로서 세계 무대에 주역으로 출연한 사람은 미국 버팔로에서 태어난 쟈네트 글로리아 라 비안카(Jeanette Gloria La Bianca)였다. 자네트는 1934년 5월 12일 로마의 테아트로 델로페라(Teatro dell'Opera)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중 로지나 역을 맡아했다. 그 때 자네트의 나이는 15세였다. 테너 조반니 마르티넬리(Giovanni Martinelli)는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1967년 2월 4일 '투란도트'의 알툼 황제를 노래했다. 그가 81세때였다.

 

* 작곡가를 기념하는 극장

작곡가의 이름을 붙여 그를 기념하는 극장들이 있다. 특별한 연고가 있어서이다. 주로 이탈리아에서 그러하다. 러시아에서도 한두 군데에 그런 예를 찾아 볼수 있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에도 모차르트 기념 연주회장이 있다.

 

- 벨리니 기념 극장(Teatro Bellini) - 벨리니가 태어난 시실리의 카타니아, 그리고 나폴리에 있다. 

- 도니제티 기념 극장(Teatro Donizetti) - 도니제티가 태어난 베르가모에 있다.

- 로시니 기념 극장: 로시니가 태어난 페사로에 있으며 이밖에도 라벤나(Ravenna), 루고, 로마에도 로시니 기념 극장이 있다.

- 베르디 기념 극장: 이탈리아 전역에 거의 12개에 이르는 베르디 기념극장이 있다. 브린디시, 부세토, 체세나, 피렌체, 밀라노, 파보다, 피사, 폴렌자, 살레모, 산 세베로, 사싸리, 그리고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기념극장이 아직도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치고 있다. 베르디의 이름을 딴 거리이름, 광장 이름등은 수없이 많다.

-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바그너극장이기도 하다. 바그너가 직접 설계하고 건설하는 일에 참여했다.

- 칠레아 기념 극장: 오페라 '아드리아나 르쿠브러'로 유명한 프란체스코 칠레아를 기념하는 극장(Teatro Francesco Cilea)은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에 있다.

-  폰키엘리 기념 극장: 오페라 라 조콘다로 유명한 폰키엘리 기념극장(Teatro Ponchielli)은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 있다.

- 페르골레지 극장: 이탈리아 중부 동쪽 해안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르 마르케(Le Marche)지방, 제시(Jesi)라는 도시의 공화국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에 있다. 르 마르케시는 이탈리아에서도 음악가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다. 제시에서 가까운 페사로(Pesaro)에서는 스폰티니(Spontini)가 태어났으며 로시니와 화노(Fano)가 탄생한 곳이고 알레싼드로 니니(Alessandro Nini)의 고향이기도 하다.

 

페르골레지극장 오디토리엄

 

- 무소르그스키 기념 극장: Musorgsky Opera and Ballet Theater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의 생 페테르부르크에 있다. 원래는 제정러시아 니콜라이1세 황제의 동생 미하일로브스키를 기념하기 위한 극장이었으나 10월 혁명이후 무소르그스키 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생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건물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를 기념하여 쇼스타코비치 홀이라고 부른다.

- 스트라빈스키 기념극장: Stravinsky and Nemirovich-Danchenko라는 명칭으로 모스크바에 있다.

- 폴랜드 작곡가 Stanislaw Moniuszko를 기념하여 바르샤바 비엘키국립오페라극장의 대극장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8구에는 헝가리 국민오페라작곡가인 Ferenc Erkel을 기념하여 Erkel Szinhas(에르켈극장)이 있다. 에르켈은 헝가리의 국보라고 하는 Bank Ban을 작곡했다. 

- 모차르트 기념 음악회장: 모차르트가 태어난 잘츠부르크에 Mozerteum 이라는 명칭으로 모차르트 기념 음악회장이 있다.

 

 

모차르트를 기념하는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 슈베르트: 비엔나에 슈베르트기념 교회가 있다. 슈베르트가 오르간 반주를 했던 교회이다.

 

- 이밖에 성악가 Maria Malibran을 기념하는 Teatro Malibran이 베니스에 있으며 Maria Calls를 기념하여서는 그리스 아테네의 올림피아극장에 있는 중앙무대를 Maria Callas Central Stage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모두 마리아!

 

 19세기 최고의 디바였던 마리아 말리브란. 28세로 요절했다.

 

- 루마니아는 루마니아 최고의 작곡가인 게오르게 에네스쿠(George Enescu: 1881-1955)를 기리기 위하여 그가 태어난 Liveni Virnav라는 마을의 이름을 George Enescu라고 변경하였다. 에네스쿠는 오페라의 경우, Oedipe라는 작품을 남겼다. 도시 이름이 통째로 작곡가의 이름인 경우는 이것이 최초이다. 에네스쿠의 부인은 대단히 부유한 귀족이었다. 에네스쿠는 부카레스트의 궁전과 같은 저택에서 살았다. 이 저택은 현재 에네스쿠 기념관이 되어 있다.

 

게오르게 에네스쿠

 

 

* 다작의 작곡가

- 작곡가로서는 과연 누가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을까? 물론 오래 산 사람이 많은 작품을 남겼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느냐는 것은 전체 작품의 전체 연주시간을 합산해서 산출한다. 별 통계가 다 있다.

- (1) 요셉 하이든(1732-1809): 340시간(약 15일), (2) 조지 프레데릭 헨델(1683-1759): 303시간, (3)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202시간, (4)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1685-1750): 175시간, (5) 프란츠 슈베르트(1797-1928): 134시간, (6) 루드비히 반 베토벤(1770-1827): 120시간, (7) 헨리 퍼셀(1659-1695): 116시간, (8) 주세페 베르디(1813-1901): 87시간, (9) 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 79시간, (10) 피터 차이코프스키(1840-1893): 76시간.

 

 작곡하고 있는 프란츠 요셉 하이든

 

* 작곡가들의 3대 악처

-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 하이든의 부인인 마리아 알로이지아, 푸치니의 부인인 엘비라는 악처로서 유명하다. 여기에 비록 몇달 동안의 결혼생활이었지만 차이코브스키의 부인 안토니나 밀류코바도 차이코브스키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준 악처에 속한다. 이들 악처들의 특징은 사치, 낭비, 질투, 무식, 몰이해로 집약할수 있다. 질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은 푸치니의 부인 엘비라이다. 엘비라는 남편 푸치니와 어린 하녀 도리안이 모종의 썸싱이 있다고 생각하여 평소의 장기인 질투심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결국 푸치니와 도리안을 간통죄로 고소하였고 그로 인하여 타격을 받은 순진한 도리안은 자살을 하였다. 엘비라는  재판에서 무고죄로 5개월 5일간의 구류를 선고받았으나 남편 푸치니가 도리안의 가족과 화해하고 위자료를 제공하는 바람에 감옥소 생활만을 면하게 되었다.

 

하이든은 부인인 마리아의 동생을 사랑하였으나 마리아가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였다. 하이든은 마리아의 아버지의 집요한 설득에 항거하지 못하고 연상의 마리아와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너무 무식했고 음악에 대하여도 이해심이 조금도 없어서 하이든의 음악활동에 걸림돌만 되었다. 예를 들어 하이든이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악보를 케이크 바닥 종이로 사용하거나 머리를 컬하는데 사용할 정도였다. 다만, 하이든의 부인 마리아는 하이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 그나마 하이든의 말년에 평안을 주었다.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와 결혼한 것도 어찌보면 하이든의 경우와 비슷하다.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의 언니인 알로이지아를 사랑하여 결혼코자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나중에 우연히 알로이지아의 집에 하숙하게 되어 그의 동생 콘스탄체와 결혼하게 되었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를 매장할 때에 감기 기운이 있어서 비엔나의 생맑스 공동묘지에 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만일 그때 묘지에만 따라 갔어도 모차르트의 진짜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새로운 중앙공동묘지로 이장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콘스탄체가 생맑스 공동묘지에 있는 모차르트의 가묘를 방문한 것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16년후였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에 있는 모차르트의 묘지. 그냥 기념비만 세워 놓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