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연도별 오페라 일람

시대별 오페라 작곡가 - 2

정준극 2012. 9. 4. 15:48

시대별 오페라 작곡가 - 2

 

1700-1799 

                  

○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그는 오페라 세리아도 작곡했지만 오페라 부파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대표작은 '하녀 마님'(La serva padrona)이다.


페르골레시의 '하녀 마님'. 나폴리 라 펠리체


○ 니콜로 좀멜리(Niccolo Jommelli: 1714-1774). '체레레가 화해하다'(Cerere Placata) 등 작곡.


좀멜리의 '체레레가 화해하다'. 콘서트 형식


○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 오페라가 바로크에서 고전으로 이전하는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의 영향력은 비록 19세기에 가서야 빛을 보았지만 한편으로는 18세기의 모차르트를 위한 길을 닦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세기의 베를리오즈와 바그너는 모두 글룩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는 개혁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룩은 지나치게 장식적이며 형식적인 오페라 세리아에서 탈피하여 '아름답고 단순한 음악'을 만들었다.

 

글룩의'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도메니코 치마로사(Domenico Cimarosa: 1749-1801). 대표작은 '비밀 결혼'(Il matrimonio segreto)이다. 코믹 오페라 분야에 있어서 모차르트로부터 로시니에 이르는 교량역할을 하였다.


치마로사의 '비밀결혼'. 현대적 연출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글룩의 개혁 오페라를 더욱 발전시켰다. 로렌초 다 폰테와 합작한 3편의 코믹 오페라(여자는 다 그래,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들은 징슈필인 '마술피리'와 함께 오늘날에도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이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리용 모차르트 페스티발


○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 1760-1842). 글룩의 추종자인 케루비니의 대표작은 '메데'(Medee)이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 롤은 1797년 초연된 이래 소프라노들의 도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케루비니의 '메데'


○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정치적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린 '휘델리오'(Fidelio)를 작곡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이다. 독일어 오페라의 주요한 근간이 되는 작품으로 오페라 학자들은 이 작품을 징슈필의 장르에 넣고 있다.

 

베토벤의 '휘델리오'

 

○ 가스파레 스폰티니(Gaspare Spontini: 1774-1851).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은 '베스타 여사제'(La vestale)이다. 벨리니와 베를리오즈에게 영향을 끼쳤다.


스폰티니의 '베스타 여사제'. 브뤼셀의 라 모네. 현대적 연출


○ 다니엘 프랑수아 에스프리 오버(Daniel-Francois-Esprit Auber: 1782-1871). 수준 높은 오페라 코미크인 '프라 디아볼로'(Fra Diavolo), '르 도미노 누아르'(Le domino noir) 등이 대표작이다. 1830년에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초연한 그랜드 오페라인 '포르티치의 벙어리 소녀'(La muette de Portici)는 상상 외의 정치적 영향을 끼쳐서 벨기에의 독립을 이끈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다니엘 오보의 '프라 디아볼로'. 로마 아폴로 극장. 현대적 연출


○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 1786-1826).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이탈리아의 벨 칸토 오페라에 도전하기 위한 독일 낭만 오페라의 초석을 놓았다. 오케스트라의 컬러와 분위기의 거장으로서 '마탄의 사수'(Der Freischutz)는 대표작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대본이 충실치 못하여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바그너를 비롯한 그후의 독일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베버의 '마탄의 사수'

                                                        

○ 자코모 마이에르베르(Giacomo Meyerbeer: 1791-1864).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의 거대한 스케일의 오페라인 '위그노'(Les Huguenots)와 '예언자'(Le prophete)는 당시에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마이에르베르의 '예언자'. 브라운슈봐이크 슈타츠오퍼


○ 조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1868). 그랜드 오페라에 벨 칸토를 연결하였다. 오늘날 까지도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세빌리아의 이발사'(Il barbiere de Siviglia)이다. 오페라 세리아인 '세미라미데'(Semiramide)와 '에르미오네'(Ermione)등은 오늘날에도 성악가들의 재능을 테스트하는 작품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귀욤 텔'(Guillaume Tell)은 19세기 말의 베르디, 무소르그스키, 바그너 등의 작품에 필적할 만큼 압도적인 것이다.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가짜 음악교사 장면

                                      

○ 게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로시니, 벨리니와 함께 이탈리아 벨 칸토 오페라의 중심인물이다. 대표작은 '람메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사랑의 묘약', '라 화보리타'(La Favorita), '돈 파스쿠알레'(Don Pasquale)등이다.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 다름슈타트 슈타츠오퍼


○ 자크 프로멘탈 알레비(Jacques Fromental Halevy: 1799-1862). 마이에르베르와 함께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이다. '유태여인'(La Juive)은 15세기 독일을 무대로 한 유태교와 기독교의 이야기를 다룬 그랜드 오페라이다.

 

알레비의 '유태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