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명소와 공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정준극 2013. 1. 30. 07:43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Stift Heiligenkreuz)

Holy Cross Abbey

 

하늘에서 내려다본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비엔나로부터 서남쪽, 비엔나 숲의 끝자락에 하일리겐크로이츠 인 비너봘트(Heiligenkreuz in Wienerwald)라는 마을이 있다. 비엔나 숲에 있는 성십자 마을이란 뜻이다. 이 마을의 이름은 이곳에 있는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Stift Heiligenkreuz)에서 비롯한 것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이 수도원은 일찌기 12세기 초에 오스트리아의 성레오폴드 3세(1073-1136)가 그의 아들 오토(Otto von Freising: 1114-1158)의 청에 의해 설립한 것이다. 오토는 부르군디(현재는 프랑스 소속)에 있는 모리몽(Morimond) 시토회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고 얼마후에는 프라이징의 주교가 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3세는 이 수도원을 건설하고 모리몽으로부터 12명의 수도사들을 데려와서 수도원을 운영토록 했다. 수도원의 봉헌일은 1133년 9월 11일로 되어 있다. 이 수도원의 이름은 처음부터 하일리겐크로이츠(성십자)가 아니었다. 이곳에 정착한 12명의 수도사들이 십자가의 구원을 믿는 상징으로서 성십자가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그로부터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광장에 있는 페스트조일레와 수도원 교회

                           

그러던중 1188년 5월 31일에 오스트리아의 레오폴드 5세가 성지 예루살렘에서 가져왔다는 참 십자가의 조각을 이 수도원에 기증하였다. 레오폴드 5세는 이 십자가 조각을 1182년에 예루살렘 왕인 볼드윈 6세(Baldwin IV of Jerusalem)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이 갈보리 십자가의 조각은 1983년 이래 수도원 구내에 있는 성십자 교회에 전시되어 있어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설립 이래 설립자인 바벤버그의 레오폴드와 그의 가족들이 성심으로 후원하여 날로 발전하였다. 실제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모체로 하여 다른 여러 수도원들이 설립된 것은 그러한 발전의 증거였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이 설립한 다른 지역의 시토회 수도원들은 다음과 같다.

 

- 1138년에 니더외스터라이히에 츠베틀 수도원(Stift Zwettl)을 설립. 현재에도 운영 중.

- 1142년에 헝가리에 치카도르(Czikador)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나 1526년에 폐쇄.

- 1142년에 오베레외스터라이히에 바움가르텐버그(Baumgartenberg) 수도원 설립하였으나 1784년 폐쇄.

- 1194년에 부르겐란트에 마리엔버그(Marienberg)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나 1526년에 폐쇄.

- 1206년에 니더외스터라이히에 릴리엔펠트 수도원(Stift Lilienfeld)를 설립. 현재에도 운영 중.

- 1263년에 보헤미아에 장크타 코로나(Sancta Corona: 체코어로 Zlata Koruna) 설립. 1785년에 폐쇄.

- 1327년에 슈티리아에 노이버그(Neuberg) 수도원 설립. 1785년에 폐쇄.

- 최근인 1988년에 독일 북라인-베스트팔리아 지방의 보훔 슈티펠(Bochum-Stiepel)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설립.

- 1990년대에 체코공화국의 비씨 브로드(Vissy Brod) 수도원의 재설립을 재정지원함. 비씨 브로드 수도원은 1259년 현재의 체코공화국의 남부 블타바강변에 건설되었음.

 

체코공화국의 블타바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비씨 브로드 시토 수도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도움을 받아 재건축하여 운영되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15세기와 16세기에 여러가지로 많은 난관을 겪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역병이었고 이어 홍수와 화재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1529년과 1683년에는 터키와의 전쟁에서 극심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두번째의 전쟁에서는 터키군이 수도원 구내의 대부분 건물들을 불태워서 피해가 컸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이곳 수도사들의 경건한 신앙과 학문 연마때문에 유럽에서도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다. 요셉 2세 황제는 전국에 있는 수도원을 정리하고 상당수는 폐쇄하여 수도원의 권력화와 비대화를 방지코자 했다. 그러나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나치의 제3제국도 오스트리아와 합병을 이룬 후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폐쇄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실제로 추진하지는 못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도서실. 귀중한 종교서적의 보고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지나간 8백여년 동안 오스트리아 종교음악의 센터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수도원의 도서실에는 중세로부터의 귀중한 교회음악 악보들이 보관되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수도원에서 발견된 악보 중에서 아마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체코 계통의 오스트리아 작곡가인 알베리히 마차크(Alberich Mazak: 1609-1661)의 작품일 것이다. 한편,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그레고리안 성가의 보존센터로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2008년에 이 수도원의 합창단이 취입한 그레고리안 성가 음반인 Chant: Music for Paradise는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위상을 크게 높여준 것이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교회에서의 미사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비엔나 근교의 바덴(Baden)에서 헬레넨(Helenen)계곡을 거쳐 쉽게 갈수있다. 비엔나에서 가려면 A60번 고속도로로 가면 된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중세로부터의 시토회(Cistercian)수도원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그 어느 수도원보다도 장엄하다. 수도원 구내의 삼위일체 기념상은 특별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페스트조일레(페스트 기념탑)이다. 이 수도원의 자랑은 아름다운 조각작품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2세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특별히 귀중한 곳은 도서관이다. 종교서적의 보고이다. 일부는 비엔나 호프부르크의 도서관으로 이관되었지만 아직도 희귀본들이 많이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비엔나 근교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방문할 가치가 있다. 더구나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이얼링 마을이 있다.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황태자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일리겐크로이츠 인 비너발트의 마을 밖에 있는 발트프리드호프(Waldfriedhof. 공동묘지)에는 마리아 베체라(Maria Vetsera)남작부인의 묘지가 있다. 마리아는 1889년 1월 30 이곳에서 3km 떨어진 마이엘링(Meyerling)에서 루돌프 황태자와 동반자살한 여인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발트프리드호프의 마리아 베체라 묘지

 

수도원의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호프(안뜰)가 나오고 여기에 상당히 규모가 큰 바로크 양식의 성삼위일체탑이 서 있다. 1739년에 조반니 줄리아니(Giovanni Giuliani)가 설계한 것이다. 페스트가 물러간 것을 감사하여 세운 탑이라고 한다. 수도원 교회의 정면에는 대개의 시토회 교회가 그렇듯이 삼위일체를 뜻하는 세걔의 창문이 있다. 원래 이 교회에는 종탑이 없었으나 바로크 시대에 교회건물의 북쪽에 추가하였다. 수도원 교회는 두가지 건축 양식이 복합되어 있다. 건물의 정면, 회랑, 십자가 형태의 수랑(트랜셉트)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그러나 콰이어는 고틱 양식이다. 단아한 모습의 회랑은 오스트리아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이다. 콰이어의 상단에 있는 스테인드 글래스 그림의 창문은 중세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귀중한 것이다. 수도원의 최고의결 기구인 참사원(Chapter house)에는 바벤버그 왕조의 13명 군주들의 석관이 보관되어 있다. 바벤버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프레데릭 공작도 이곳에 있다. 프라이징의 복자 오토의 유해는 사제석(프레스비터리)의 동쪽 끝에 있는 제단의 안쪽에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볼수 있는 페스트조일레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는 1802년에 철학 및 신학연구소가 설치되었다. 이 연구소는 비교적 근자인 1976년에 대학(Hochschule)이 되었다. 이 대학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사제교육기관으로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2007년 1월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대학을 Pontifical Athanaeum, 즉 로마에 있는 신학대학과 동일한 학위를 줄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승급하였다. 그러므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대학은 오스트리아의 신학교와 같은 수준의 학위를 주는 대신에 로마 신학교와 같은 수준의 학위를 줄수 있게 되었다. 현재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는 약 80명의 수도승들이 봉직하고 있다. 대부분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라틴어로 보존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며 일부는 수도원의 관할 아래에 있는 17개 교구의 교회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일을 맡아하고 있고 또 일부는 철학-신학 대학에서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은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기관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수도원들에서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에 젊은 수도승들을 파견하여 신학공부를 하고 수도원 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 합창

 

수도원은 문화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수도원의 건축양식은 로마네스크, 고틱, 바로크 양식이 복합된 것이다. 바로크 종탑을 가진 수도원 교회는 12세기 로마의 바실리카 스타일이다. 콰이어 부분은 13세기의 고틱 양식이다. 콰이어 상단에는 대단히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Glasfenster)가 설치되어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여러 차례의 전쟁에도 아무런 손상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수도원의 유리창은 특별하다. 124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유리창은 특별한 테크닉으로 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비법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유리창 중에서 몇장은 20세기에 바꿔 달았다. 하지만 최근에 바꿔 달은 유리창은 곧 퇴색이 되어 아름답지 못했지만 8백년전에 만든 유리창들은 아직도 원래의 아름다움을 찬란하게 유지하고 있다.

 

십자기의 길

 

수도원 내에는 별채로 작은 집이 하나 있다. 고틱 십자가형 천정으로 된 집이다. 그 안에 이 수도원에서 유일한 샘물이 있다. 모든 수도승들이 세면실로 사용하는 유일한 곳이다. 샘물의 물은 매우 차갑다. 그래서 추운 겨울이라도 차가운 물로 세면을 해야 했다. 수도원에는 바벤버거 왕조 사람들의 묘소가 있다. 바벤버거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프리드리히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툼바(Tumba)라고 하는 석상은 머리가 없다. 파괴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는 1246년 라이타(Leitha) 전투에서 적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목없는 석상을 만들어 세웠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교회의 종탑과 후면의 수도원묘지

 

바로크 시대의 위대한 조각가인 조반니 줄리아니(Giovanni Giuliani)는 1700년대에 이곳 수도원에서 오래동안 편안하게 지냈다. 모든 침식을 제공받았으며 무엇을 하는지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대신 줄리아니는 수도원과 그 주변에 수많은 조각 작품을 남겼다. 수도원 마당에는 페스트조일레인 성삼위일체 기념탑이 웅장하게 서있다. 줄리아니의 작품이다. 요셉스브룬넨(Josephsbrunnen: 요셉의 샘)도 줄리아니의 작품이다. 줄리아니의 최대 작품은 수도원 교회의 콰이어 좌석(Chorgestuehl)이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자랑거리중 하나는 종탑에 설치되어 있는 43개의 종들이다. 이들 종을 교회의 오르간과 함께 연주하게 되면 장관중의 장관이다. 교회의 절기에는 간혹 매시간 마다 오르간과 종의 연주하는 교회음악을 들을수 있다. 수도원 교회 이외에도 별도의 채플 건물이 있다. 최근인 1983년에 세운 건물이다. 이 채플에는 레오폴드5세가 1188년에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을 위해 만들어 증정한 24cm의 십자가 부조가 걸려 있다. 이 십자가 때문에 이 수도원의 이름을 성십자라고 붙였는지도 모른다. 마이엘링에서 비운의 황태자 루돌프와 동반 자살한 마리아 베체라 남작부인의 묘지는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의 공동묘지에 있다.

 

하일리겐크로이츠 수도원 고틱 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