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명소와 공원

헬덴버그(Heldenberg)

정준극 2013. 8. 11. 06:44

헬덴버그(Heldenberg)

현충원+선사시대 유적지+리피짜너 백마 여름훈련원

비엔나에서 북쪽으로 50km 거리의 야외 판테온

 

헬덴버그 기념관의 가장 중심되는 시설인 라데츠키 기념관과 그 앞의 영웅들 흉상

 

비엔나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헬덴버그가 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물며 비엔나를 잠시 방문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헬덴버그(Heldenberg)는 글자그대로 '영웅의 산'이다. 그렇다면 어떤 곳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판테온이며 크게 보아서는 현충원이다. 판테온이건 현충원이건 나라를 위해 영웅적인 생애를 보낸 사람들을 기리는 곳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의미가 같다. 세상에서 판테온으로 대표적인 것은 파리의 판테옹일 것이다. 프랑스를 빛낸 위대한 인사들의 영묘이므로 참배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독일에도 그런 장소가 서너 군데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에 있는 발할라(Walhala)이다. 발할라라는 말은 원래 북구의 전설에 나오는 명칭으로서 전장에서 죽은 영웅들의 혼령을 기리는 곳이다.  독일의 뮌헨에는 루메스할리(Ruhmeshalle: 명예의 전당)이라는 곳이 있다. 글자 그대로 명예의 전당이다. 또한 켈크하임(Kelkheim)이라는 곳에는 베프라이웅스할레(Befreiungshalle: 해방의 전당)라는 것이 있다. 역시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헬덴버그의 라데츠키 기념관(Radetzky Museum)

 

비엔나에도 판테온과 비슷한 건물이 있기는 있다. 궁정극장(부르크테아터) 옆의 폭스가르텐(Volksgarten)에 있는 테세우스 신전이다. 테세우스 신전의 앞에는 '우리들 청춘의 힘'을 상징하는 조각이 있다. 그러나 폭스가르텐의 테세우스 신전에는 오스트리아 영웅들의 묘소 또는 기념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규모는 작지만 호프부르크 궁전의 정문, 즉 부르크토르 또는 헬덴토르라고 불리는 개선문처럼 생긴 건물의 안에 나폴레옹 전쟁에서 숨진 용사들을 기리는 장소가 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유명한 영웅들이 아니라 무명용사의 사당인 것을 생각하면 파리의 판테온과는 차이가 있다. 한편, 비엔나의 남쪽, 짐머링에 있는 중앙공동묘지에 연방대통령들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묘역이 있지만 그것들과 판테온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에 판테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단히 훌륭한 국가 영웅 기념관이 있다. 오스트리아의 판테온은 바로 비엔나에서 서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헬덴버그라는 곳에 있다. '헬덴버그 메모리얼'(Heldenberg Memorial: 헬덴버그 현충원)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런데 헬덴버그 메모리얼은 국가에서 만든 국립묘지 성격의 현충원이 아니라 개인이 조성한 것이다.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Joseph Gottfried Pargfrieder)라고 하는 사람이 뜻한바 있어서 1849년에 자기의 땅이 있는 이곳에 재산을 털어서 현충원을 세웠다. 오스트리아 제국 군대에 군수품을 납품하여 돈을 많이 번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는 클라인베츠도르프(Kleinwetzdorf)에 있는 커다란 궁전을 매입하여 그곳에 현충원을 만들고 헬덴버그라는 이름을 붙였다.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는 요셉 2세 황제의 아들(사생아)이라고 주장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당시 사람들은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가 비록 사생아이긴 하지만 혹시 요셉 2세의 진짜 아들이라면 대단한 입장이 아닐수 없기 때문에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를 존경하였고 그가 조성한 헬덴버그 현충원을 크게 치하하였다.

 

라데츠키 오벨리스크

 

헬덴버그(Heldenberg)는 현재 행정구역 상으로 니더외스터라이히주의 홀라브룬(Hollabrunn) 지구에 속한 작은 지자체 마을이다. 1970년대에 이 지역에 있는 글라우벤도르프(Glaubendorf), 클라인베츠도르프(Kleinwetzdorf), 운터테른(Unterthern), 오버테른(Oberthern)의 네 마을을 합쳐서 헬덴버그라고 부르게 되었다. 네 마을을 합친 새로운 마을의 이름을 헬덴버그라고 부르게 된 것은 클라인베츠도르프 인근에 있는 '헬덴버그 현충원'을 기념하여서이다. 이곳에서 추모되고 있는 인물들은 크게 두부류이다. 하나는 합스부르크의 역대 군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들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들의 기념상이 야외에 설치되어 있다.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1218-1291)로부터 프란츠 요셉 1세(1830-1916) 황제까지 흉상 또는 기념상이 정연하게 설치되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은 헬덴버그 현충원을 조성할 당시에 없었기 때문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두번째는 오스트리아(나중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를 위해 헌신한 영웅들이다.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1663-1736)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를 위해 싸운 장군들을 기리고 있다.  

오벨리스크 주변에는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장군들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헬덴버그 현충원의 설립자인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는 오스트리아의 영웅인 라데츠키 장군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유명한 바로 그 라데츠키 장군이다.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는 라데츠키 장군의 빚을 갚아준 일이 있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더 할수 없는 친구로 지냈다. 라데츠키 장군은 자기가 유언으로 자기의 장례식과 매장지 선정등 일체의 업무를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에게 일임하였다. 라데츠키 장군(요제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 Joseph Radetzky von Radetz)은 1858년 1월 5일 밀라노에서 갑자기 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하지만 향년 92세였다). 이에 따라 당연히 라데츠키 장군은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가 몇 해전에 조성한 클라인베츠도르프의 헬덴버그에 묻히게 되었다. 라데츠키 장군의 시신은 헬덴버그의 기념탑(오벨리스크) 아래에 매장되었다. 그 옆에는 유명한 장군인 빔펜의 막시밀리안(Maximilian von Wimpffen) 원수의 묘소가 있고 또 다른 옆에는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 자신의 묘소가 있다. 세 사람은 모두 평소에 친분이 있던 터였다. 라데츠키 장군이 세상을 떠나자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그를 합스부르크 황실납골당인 비엔나 시내의 카이저그루프트에 안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라데츠키의 유언을 존중하여 헬덴버그에 묘소를 만들도록 했고 카이저그루프트에는 라데츠키 장군을 추모할수 있는 표시만을 해 두었다. 한편, 헬덴버그의 소유자인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는 헬덴버그 경내의 중심지역에 우아하고 장엄한 라데츠키 기념관(Radetzky Museum)을 만들었다.

 

헬덴버그 입구. 라데츠키 오벨리스크와 지게스조일레(승리의 탑: Sieges Saule)

 

오늘날 헬덴버그는 역사와 문화를 혼합한 애국적인 교육의 장소이며 아울러 가족들이 즐겁게 보낼수 있는 오락휴양시설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중심 건물인 라데츠키 기념관 이외에도 원형 해자로 둘러싸인 신석기 시대의 모임장소, 비엔나의 스페인승마학교에 속하여 있는 리피짜너 백마들의 훈련소, 골동품적 가치가 있는 옛날 자동차들 전시장 등 여러 시설들이 있는 곳으로 확장되었다. 또한 영국정원도 마련되어 있고 카페와 기념품점 등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은 일명 앵밸리드 하우스라고 불리며 전상자들을 치료하던 곳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러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으며 두개의 승리의 탑(지게스 조일레)도 있다. 흉상의 장군들은 대개 오스트리아 최고의 훈장인 마리아 테레지아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들로서 주로 이탈리아 전투와 헝가리 전투에서 무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의 기념상은 젊은 시절의 모습을 실물대로 만들어 놓아서 특별하다. 기념관 앞의 조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뮤즈인 클레오(Cleo: 클리오)이다. 클레오는 제우스의 딸로서 역사의 여신이다. 클레오의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의 지하에는 라데츠키 장군의 유해가 묻혀 있고(1854년) 다른 한쪽에는 막시밀리안 폰 빔펜(1854)의 유해가 묻혀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요제프 고트프리트 파르그프리더 자신의 묘소가 있다.

 

젊은 시절의 프란츠 요셉 1세 황제 기념상

 

현재의 헬덴버그가 있는 일대에는 이미 5천년전 구석기시대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았었다. 홀라브룬 지역에 대한 공중사진을 찍어 보니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촌락형태인 해자로 둘러싸인 원형 마을이 유적이 발견되었다. 헬덴버그는 그것을 기념하여 원형 해자 마을을 재현해 놓았다. 이를 크라이스그라벤(Kreisgraben)이라고 이름붙였다. 사진에 나온 해자의 지름은 40 미터에서 180미터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헬덴버그에는 그렇게까지 넓게 재현할 필요가 없어서 간단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아무튼 구석기시대의 풍습을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구석기 시대에 해자 내의 담장 안에서 어떤 일들이 행하여 졌는지는 분명치 않다.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는지 또는 천체를 관측하는 장소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피난의 장소이거나 또는 선조들을 추모하는 장소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입구로 추측되는 곳에 장대한 문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은 확실하여 이곳이 일반 주거지역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정문의 경우에도 천문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설치한 것 같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묘지가 있던 곳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다. 헬덴버그의 구석기시대 마을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추측해서 볼수 있다. 구석기시대에 곡식을 빻는 시설이 있고 화덕에 빵을 굽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은 활쏘기, 비누와 같은 동석(凍石: 솝스톤)으로 조각하기 등을 체험할수 있다.

 

라이스그라벤의 입구

 

헬덴버그 메모리알에는 비엔나의 스페인승마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백마들을 훈련시키는 시설이 있다. 그 백마들을 리피짠이라고 부른다. 리피짠에 대한 훈련은 비엔나의 스페인승마학교에서도 이루어지지만 헬덴버그가 더 이상적인 훈련장소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변환경이 좋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리피짠들의 여름별장이라고 보면 된다. 리피짠이 처음 언급된 것은 일찍이 1786년이라고 한다. 리피짠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말이다. 재배말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모두 다 잘 알 것이므로 생략한다. 다만, 리피짠이라는 단어는 리피카(Lipica)라는 종마의 이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만 덧붙이고자 한다. 스페인어의 리피카가 이탈리아에서 리피짜가 되었다. 리피카는 합스부르크 왕실에서 원래의 종마를 기르던 장소의 명칭이다. 리피짠은 망아지 때에는 색갈이 어둡다가 4살서부터 아홉살 사이에 흰색으로 변한다. 리피짠 말들은 우아하게 생겼고 사이즈가 중간 정도여서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각종 스포츠에 제격이다. 그러한 리피짠을 훈련시키는 곳이 바로 헬덴버그이다. 이들을 훈련시키는 방식은 거의 3백년이 지나도록 변한 것이 없다. 처음부터 승마용 말로서, 그리고 마차용  말로서 훈련을 받는다. 리피짠에 대한 훈련이 가능한 것은 리피짠들이 스스로 훈련에 열심이기 때문이다.

 

헬덴버그에서의 리피짠 시범

 

옛날 명품 자동차들의 전시장은 '콜러의 올드타이머'(Koller's Oldtimer)라고 부른다. 자동차 120년의 역사를 볼수 있는 곳이다. 초기의 마차 형태의 자동차로부터 현대의 스포츠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찍이 유럽에서 1886년에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때의 모델들과 이어 1920년대의 모델, 1950년대와 60년대의 모델들, 그리고 1970년대와 80년대의 모델들도 있다. 자동차 메이커로는 포르셰, 페라리, 부가티, 롤스 로이스, 메르세데스 등이 있고 특히 부가티(Bugatti), 히스파노 수이자(Hispano Suiza), 패카드(Packard)자동차는 세계에서 유일한 제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전체적으로 세계 70여개 자동차 제조회사의 100여 대 이상의 자동차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장에는 자동차 이외에도 자전거와 트랙터의 변천과정도 볼수 있는 전시품들이 있다.

 

콜러의 올드타이머 자동차 전시장

 

[카이저알레(Kaiserallee)에 있는 역대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기념흉상]

 

- 루돌프 1세(Rudolf I: 1218-1291)

- 알브레헤트 1세(Albrecht I: 1255-1308)

-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1289-1330)

- 알브레헤트 2세(Albrecht II: 1397-1439)

-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415-1493)

-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59-1519)

- 카를 5세(Karl V: Charles V: 1500-1558)

-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II: 1503-1564)

- 막시밀라인 2세(Maximilian II: 1527-1576)

- 루돌프 2세(Rudolf II: 1552-1612)

- 마티아스(Matthias: 1557-1619)

- 페르디난트 2세(Ferdinand II: 1578-1637)

- 페르디난트 3세(Ferdinand III: 1608-1657)

-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40-1705)

- 요셉 1세(Joseph I: 1678-1711)

- 카를 6세(Karl VI: Charles VI: 1685-1740)

- 프란시스 1세(로트링겐)(Francis I v. Lothringen: 1708-1765)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1780)

- 요셉 2세(Joseph II: 1741-1790)

- 레오폴드 2세(Leopold II: 1747-1792)

- 프란츠 2세(프란시스 2세: 프란시스 1세)(Franz II: Francis II: Franz I: Francis I: 1768-1835)

- 페르디난트 1세(Ferdinand I: 1793-1875)

- 프란츠 요셉 1세(Franz Joseph I: 1830-1916)

 

카이저알레의 역대 황제들의 흉상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장군들 기념흉상]

 

-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Eugen, Prince of Savoy: 1663-1736)

- 리네의 카를 공자(Karl, Prince of Ligne: 1735-1814)

- 코부르크 잘펠트의 프리드리히 요시아스 공자(Friedrich Josias, Prince of Coburg-Saalfeld: 1737-1815)

- 리히텐슈타인의 요한 요셉 공자(Johann Joseph, Price of Liechtenstein: 1760-1836)

- 슈봐르첸버그의 카를 필립 공자(Karl Philipp, Prince of Schwarzenberg: 1771-1820)

- 합스부르크 에스테의 페르디난트 대공(Ferdinand, Erzherzog von Habsburg-Este: 1781-1850)

- 합스부르크의 요한 대공(Johann, Erzherzog von Habsburg: 1782-1859)

- 슈봐르첸버그의 펠릭스 공자(Felix, Prince of Schwarzenberg: 1800-1852)

- 리히텐슈타인의 프란츠 요아힘 공자(Franz-Joachim, Prince of Liechtenstein: 1802-1887)

- 슈봐르첸버그의 에드문트 공자(Edmund, Prince of Schwarzenberg: 1803-1873)

- 리히텐슈타인의 프리드리히 공자(Friedrich, Price of Liechtenstein: 1807-1885)

- 몬테누오보의 빌헬름 공자(Wilhelm, Prince of Montenuovo: 1821-1895)

- 러시아의 콘스탄틴 대공(Constantin, Erzherzog von Russia: 1827-1892)

 

오스트리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장군들의 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