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크레디(Tancredi)
로시니 최고의 오페라 세리아
2013년으로 초연 200 주년
도이치 오퍼의 '탄크레디' 무대
로시니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같은 불후의 걸작 오페라 부파들을 남겼지만 오페라 세리아도 몇 편을 작곡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리아 중에서 최고는 단연 '탄크레디'이다. 내용은 비극이지만 음악만큼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탄크레디'는 1813년 2월 6일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그러므로 2013년은 '탄크레디' 2백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그런 의미에서 '탄크레디'를 재조명코자 한다. 탄크레디는 시라큐스의 용사이다. 용맹한 전사이지만 오페라에서는 주로 메조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가 맡는다. '바지역할'(Breeches role)이다. 탄크레디는 성악적으로 대단히 고난도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특히 저음에서도 성악적으로 민첩함과 경쾌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탄크레디의 아리아는 변조가 많이 되는 것이어서 부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저음이던 고음이던 레가토를 충분히 활용할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때문인지 메조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로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나도 한번 해 보겠다'고 생각하여 도전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탄크레디'는 별로 자주 공연되지 못하였으며 타이틀 롤을 맡을만한 사람도 별로 많지 못하였다. 아마 미국의 마릴린 혼(Marilyn Horne), 폴란드 출신의 에바 포들스(Ewa Podles), 불가리아의 베셀리나 카사로바(Vesselina Kasarova), 이탈리아 출신의 다니엘라 바르첼로나(Daniela Barcellona), 그리고 휘오렌차 코소토(Fiorenza Cossotto) 정도가 탄크레디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스페인의 몽세라 카바예는 메조소프라노 아니지만 탄크레디를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소화하였다.
마릴린 혼은 휴스턴에서 개선장군과 같은 공연을 가진 이래 세계 각지로부터 출연요청이 쇄도하였다. 실상, 20세기 후반에 '탄크레디'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리바이발 된 배경에는 마릴린 혼의 기여가 현저하다. 마릴린 혼이 공연한 대표적인 장소는 로마오페라극장(Teatro dell'Opera di Roma: 1977), 샌프란시스코 오페라(1979), 액상프로방스 페스티발(1981), 베니스의 라 페니체(1981, 1983), 시카고 리릭오페라(1989) 등이다. 에바 포들스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블람세 오페라(Vlaamse Opera: 1991), 라 스칼라(1993), 베를린 슈타츠오퍼(1996), 캐나다오페라(2005), 카라무어국제음악제(2006), 스페인의 테아트로 레알(2007), 오페라 보스턴(2009)에서 탄크레디를 맡았다. 베셀리나 카사로바는 199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탄크레디를 부른 이래 뉴욕에서 공연을 가졌고 1996년에는 뮌헨 라디오 오케스트라와 음반을 취입했다. 1999년에는 페사로의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발에서 '탄크레디'가 공연되었다.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찌(Pier Luigi Pizzi)가 제작을 맡은 것이었다. 피찌의 제작은 2004년에도 리바이발했다. 2005년에는 로마와 플로렌스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때에는 다니엘라 바르첼로나(Daniela Barcellona)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바르첼로나는 새로운 연출의 '탄크레디'를 2009년 테아트로 레지오 디 토리노에서 공연했다. 비엔나 슈타츠오퍼는 2009년 10월에 알라스카 출신의 비비카 즈노(Vivica Genaux)를 타이틀 롤로 내세워서 공연했다.
1999년 페사로의 무대
과거의 오페라들은 주제를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 또는 영웅담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탄크레디에 대한 이야기도 오페라의 좋은 주제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중세 이후로 여러 작가들이 탄크레디를 소재로 하여 소설이나 시를 쓰고 이를 바탕으로하여 작곡가들이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러나 내용들이 서로 달라서 좀처럼 어떤 얘기가 가장 그럴듯한지 종잡을수가 없었다. 18세기 프랑스의 볼테르가 마침내 탄크레디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하여 희곡을 만들었다. 1759년의 일이었다. 1759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조시대로서 나중에 정조가 되는 이산이 세손으로 책봉된 해이다. 볼테르의 Tancréde(탕크레드)를 이탈리아의 시인이며 작가인 게타노 로시(Gaetano Rossi: 1774-1855)가 Tancredi 라는 오페라 대본을 만들어 로시니에게 주었다. 로시니는 '탄크레디'를 거의 한달 만에 오페라로 만들었다. 놀라은 스피드였고 놀라운 재능이었다. 로시니의 '탄크레디'는 1813년 2월 6일에 베니스의 라 페니체(La Fenice)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로시니가 '탄크레디'의 바로 전에 완성한 오페라는 역시 코믹한 Il signor Bruschino(시뇨르 브루스키노)였다. '시뇨르 브루스키노'는 1813년 1월에 라 페니체의 무대에 올려져서 환영을 받았다. 그러므로 로시니는 오리지널 '탄크레디'의 스토리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당시 관중들의 선호에 따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으로 만들었다. 라 페니체의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로시니의 초기 전기작가인 스탕달(Stendhal: 원래 이름은 Marie-Henri Beyle: 1783-1842)은 '탄크레디'에 대하여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스탕달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을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리릭 오페라 극장에 비유하였다.
아르지리오와 아메나이데(마리엘라 데비다)
로시니의 '탄크레디'는 쉬운 오페라가 아니다. 음악이 무척 어렵다. 로시니의 작품이 원래 그렇다. 타이틀 롤인 탄크레디는 두 곡의 상당히 긴 아리아를 불러야 한다. 하나는 1막 2장에 나오는 O patria!...Di tanti palpti(오 조국이여...이렇듯 가슴이 설레이다니)이다. 이 아리아는 상당기간 동안 이탈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메조소프라노(또는 콘트랄토)의 아리아였다. 다른 하나는 2막 4장에 나오는 Dove son io?....Fran quali orror(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두려움 사이에서)이다. 사랑하는 아메나이데가 배반했다고 생각하여 깊이 원망하지만 그래도 아메나이데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어찌해야 할지 번민하는 내용이다. 로시니는 탄크레디에게 세 곡의 뛰어난 듀엣을 만들어 주었다. 아메나이데와 부르는 L'aura che intorno spiri(주변에는 죽음의 분위기가), 아르지리오와 부르는 M'abbraccia, Argirio...Ecco la tromba!(나를 포함하라 아르지리오...나팔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다시 아메나이데와 부르는 Ah, come mai quell'anima(아, 나를 떠나게 하오)이다. 오페라 '탄크레디'의 서곡은 로시니의 다른 코믹 오페라인 La pietra del parangone(시금석)에서 빌려와서 조금 손질한 것이다. 로시니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이미 작곡해 놓았던 음악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탄크레디'의 서곡은 오늘날 콘서트의 레퍼토리로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19세기에 탄크레디로 이름을 떨쳤던 소프라노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 1797-1865). 이탈리아의 주디타 파스타는 음역이 매우 넓어서 저음은 A까지도 충분히 냈다. 20세기에서 주디타 파스타와 견줄만한 소프라노는 마리아 칼라스뿐이다.
오페라 '탄크레디'는 비극이다. 주인공이 비극적인 삶은 마감한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들은 대체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원작이 아무리 비극적인 내용이라고 해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고치는데에 익숙해 있었다. 로시니도 '탄크레디'를 작곡할 때에 처음엔 그렇게 했다. 그래서 1813년 라 페니체에서의 초연 때에는 '탄크레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로시니는 아무래도 원작을 너무 이상하게 만든 것이 아닌지 걱정을 했다. 그래서 시인인 루이지 레키(Luigi Lechi)에게 부탁하여 볼테르의 오리지널 스토리에 맞게 피날레 대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한달 후인 3월에 '탄크레디'가 페라라의 테아트로 코뮤날레에서 공연할 때에는 새로운 비극적인 피날레의 내용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탄크레디는 전투에서 승리하지만 중상을 입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된다. 그때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가 자기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메나이데의 아버지인 아르지리오는 두 사람의 사랑이 변함이 없는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결혼식을 주선한다. 그리하여 탄크레디는 마침내 사랑하는 아메나이데와 결혼하여 그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는 것이 로시니가 새로 고친 마지막 장면이다. 그렇게 고쳤는데도 이탈리아의 관중들이 '비극은 싫다. 해피엔딩이 좋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1816년에 사라센 왕인 솔라미르가 죽어가면서 아메나이데의 결백을 밝힘으로서 탄크레디가 비로소 오해를 풀고 아메나이데와 재결합한다는 내용으로 디시 고쳤다. 그런데 로시니가 페라라극장을 위해 새로운 피날레로 수정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참이나 잊혀져 있다가 비교적 근래에 스코어가 발견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전까지는 1813년 베니스 버전이든지 1816년의 또 다른 베니스 버전이든지 해피엔딩의 피날레로 공연되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관중들은 비극보다는 해피엔당으로 끝나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탄크레디'의 수정본이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는 표준 스코어가 되었다.
1952년 이탈리아 휘오렌티노 무대. 1833년 볼로내에서의 마지막 공연 이후 120년만의 리바이발이었다.
1813년 2월의 베니스 초연에서는 타이틀 롤을 당대의 콘트랄로 아델라이데 말라노테(Adelaide Malanotte)가 맡았다. 아델라이데 말라노테는 탄크레디의 역할을 너무나 뛰어나게 수행하였기에 베니스 초연 이후 이탈리아의 여러 극장에서는 아델라이데 말라노테를 초청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볼로냐(테아트로 코뮤날레 디 볼로냐), 로마(테아트로 아폴로), 토리노(테아트로 레지오 디 토리노), 나폴리(테아트로 델 폰도), 그리고 베니스(테아트로 산 모이세)에서 계속 공연되었다. 영국 초연은 1820년 5월 런던의 킹스 테아터에서였다. 파리 초연은 1822년 4월 테아트르 리리크 이탈리앙에서였다. 라 스칼라 초연은 1823년 브리기다 로렌차니(Brigita Lorenzani)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미국 초연은 1825년 12월 31일 뉴욕의 파크극장(Park Theateer)에서 였다. 이때에는 레키가 대사를 고친 페라라 버전이 공연되었다. 파리의 국립오페라극장(파리 오페라)에서는 1829년 3월에 마리아 말리브란(Maria Malibran)이 타이틀 롤을 맡아 처음 공연되었다. 마리아 말리브란은 나중에 로시니와 결혼하였다. 19세기에 '탄크레디'가 마지막으로 공연된 것은 1833년 볼로냐에서였다. 이후로 120년 동안 '탄크레디'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200년전인 1813년 2월 베니스에서의 '탄크레디' 초연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던 콘트랄토 아델라이데 말라노테
'탄크레디'가 잠을 깬 것은 1952년 5월 휘오렌티노에서의 공연으로였다. 줄리에타 시미오나토(Giulietta Simionato)가 타이틀 롤을 맡은 것이었다. 아메나이데는 테레사 스티치 랜달(Teresa Stich-Randall)이, 아르지리오는 프란체스코 알바네세(Francesco Albanese)가, 오르바짜노는 마리오 페트리(Mario Petri)가 맡았고 지휘는 거장 툴리오 세라핀이었다. 이때에도 베니스 버전이었다. 비극으로 끝나는 페라라 버전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76년이었다. 시카고대학교 연구팀이 페라라 버전을 찾아냈다. 그러나 페라라 버전이 정작 무대에 올려진 것은 휘오렌티노에서의 리바이발이 있는지 25년 후인 1977년 휴스턴에서였다.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공연에서는 마릴린 혼이 타이틀 롤을 맡아 극찬을 받았다. 그로부터 마릴린 혼이라고 하면 탄크레디를 연상할 정도로 그는 탄크레디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마릴린 혼은 비극적인 페라라 버전을 더 선호했다. 선호했다기 보다는 그래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전체적인 오페라의 톤을 감안하면 당연히 페라라 버전이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과, 오늘날 음반으로 나온 '탄크레디'는 거의 모두 페라라 버전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도 로시니가 만든 베니스 버전을 잊을수 없어서 음반의 마지막에 베니스 버전 파트를 추가한 경우도 있다.
탄크레디의 마릴린 혼과 아메나이데의 에바 포들스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탄크레디는 추방당한 시라큐스의 전사이다. 콘트랄토 또는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1813년의 초연에서는 아델라이데 멜라노테가 탄크레디의 이미지를 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릭 소프라노인 아메나이데(S)는 탄크레디와 사랑하는 사이의 여인으로 귀족인 아르지리오의 딸이다. 아르지리오(Argirio: T)는 아메나이데의 아버지로서 오르바짜노 가문과는 원수간이다. 오브라짜노(Obrazzano: B) 역시 귀족가문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오르지리오 가문과는 원수간이다. 이사루아(Isarua: Cont)는 아메나이데의 친구이다. 로지에로(Roggiero: MS 또는 T)는 탄크레디의 시종이다. 이밖에 기사들, 귀족들, 시종들, 시라큐스의 시민들, 사라센 병사들, 전사들, 사환들, 경비병들이 참가한다.
'탄크레디'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1005년으로 되어 있다. 도시국가인 시라큐스는 비잔틴 제국과의 분규와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었지만 마침내 비잔틴 제국과 휴전을 하여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지는 모른다. 그러한 때에 솔라미르(Solamir)가 이끄는 사라센 군대가 시라큐스를 침공한다. 시라큐스는 강대한 사라센을 맞이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라큐스의 시민들은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사라센 군대가 물러가기를 바란다. 그러한 때에 시라큐스는 내부적으로도 곤경을 겪고 있다. 용감한 젊은 전사인 탄크레디와 그의 가족들을 반역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재산을 박탈하였으며 모든 직위를 빼앗은채 시라큐스로부터 추방했기 때문이다. 탄크레디는 비잔틴 제국의 궁전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시라큐스의 시민들은 만일 탄크레디가 있다면 사라센 군대를 물리칠수 있을 것이라며 그의 추방을 아쉬워하고 있다. 한편, 시라큐스의 대표적인 두 귀족 가문인 아르지리오 가문과 오르바짜노 가문은 오래전부터 원수처럼 지내며 적대감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라센과의 전쟁이 일어나자 아르지리오는 부인과 딸 아메나이드를 포함해서 가족 모두를 비잔틴 제국의 궁정으로 피난가서 머물러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탄크레디도 추방생활을 하고 있다. 또한 사라센의 장군인 솔라미르도 비잔틴 궁전에 머물고 있었다. 솔라미르는 아름다운 아메나이데와의 결혼을 희망하고 있다. 사라센의 솔라미르 장군은 만일 그가 시라큐스의 아메나이데와 결혼하게 되면 시라큐스와 사라센간의 평화를 이룩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메나이데는 이미 탄크레디와 비밀스런 사랑을 하고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탄크레디의 귀환
1막. 시기는 1005년이라고 되어 있다. 원수처럼 지내던 두 귀족 가문인 아르지리오와 오르바짜노은 시라큐스에 대한 사라센의 침공을 막아내는 것이 더 중대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동안의 해묵은 원한을 벗어던지고 사라센의 침공을 함께 힘을 합하여 방어키로 한다. 시라큐스의 시민들은 두 가문의 화해로 시라큐스에도 평화가 올것으로 믿어 기뻐한다. 군중들의 합창이 Se amista verace(참된 화해)이다. 아르지리오는 오르바짜노가 전체 방어군을 지휘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오르바짜노는 적장과의 협상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우려한다. 그는 또한 추방 당한 탄크레디가 시라큐스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적대적인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두려워한다. 그러나 아르지리오의 딸인 아메나이데는 두 가문이 화해하여 사라센 군대를 공동으로 방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 멀리 추방 당해 있는 사랑하는 탄크레디가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메나이데는 아버지 아르지리오가 원수였던 오르바짜노와 화해하면서 화해의 징표로서 자기와 오르바짜노의 결혼을 약속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아메나이데의 카바티나가 합창과 함께 부르는 Come dolce all'alma mia(이 얼마나 사랑스런 소식인가)이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진면목을 들을수 있는 노래이다. 한편, 탄크레디는 시종인 로지에로에게 사랑하는 아메나이데를 위해서라도 조국에 대한 자기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겠다고 하면서 아메나이데가 없는 삶이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탄크레디의 레시타티브에 이은 카바티나와 카발레타가 유명한 O patria!...Tu che accendi questo core..Di tanti palpiti(오 조국이여...이렇게 가슴이 설레이다니)이다.
아메나이데가 시녀인 이사우라와 함께 등장한다. 아메나이데는 탄크레디를 사랑하고 있지만 반역죄로 추방 당해 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오르바짜노가 나타나서 아메나이데에게 아메나이데의 아버지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아메나이데는 아버지의 뜻을 감히 거역할수는 없지만 그 결혼식을 조금이라도 미루어볼 생각이다. 이사루아는 혼자서 아메나이데의 불행을 한탄한다. 아메나이데가 탄크레디와 결혼을 하기로 은밀하게 약속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루아의 아리아가 Amenaide sventurata!(불행한 아메나이데)이다.
감옥에 갇힌 아메나이데를 찾아온 오르바짜노
작은 선박 한 척이 시라큐스의 아르지리오의 정원에 도착한다. 탄크레디가 시종 로지에로, 그리고 그를 따르는 기사들과 함께 메시나로부터 은밀히 돌아온 것이다. 탄크레디는 그리운 조국 시라큐스에 돌아오게 되어 가슴이 벅차다. 그보다도 사랑하는 아메나이데를 만날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설레인다. 탄크레디의 레시타티브에 이어 카바티나로 시작되다가 나중에는 카발레타로 마무리되는 아름답고도 장엄한 노래가 O patria!...Tu che accendi questo core...Di tanti palpiti(오 조국이여...내 마음에 불을 밝히게 만든 그대...이렇게 마음이 설레이다니)이다. 이 노래는 당시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아리아이다. 내용도 조국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의 공감을 얻었던 것이다.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시종인 오지에로에게 어서 가서 아메나이데를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보낸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기사들에게는 시중으로 가서 '알려지지 않은 전사'가 시라큐스의 방어를 돕고 싶어서 왔다고 알리라고 한다. 그때 아메나이데가 아버지인 아르지리오와 함께 나타난다. 탄크레디는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를 엿듣는다.
페사로 무대
아르지리오는 딸 아메나이데에게 사라센의 장군인 솔라미르가 시라큐스를 이미 포위하고 있다는 얘기와 평화를 원한다면 아메나이데와 결혼을 주선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거리에 탄크레디가 돌아 왔다는 소문일 떠 돈다는 얘기도 해준다. 아르지리오는 딸 아메나이데에게 사라센 군대의 침공이 있기 전에 어서 오르바짜노와 결혼을 서둘러야겠다는 얘기도 한다. 아메나이데는 처음에는 오르바짜노와의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아버지가 시라큐스를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고 설득하자 비록 탄크레디를 사랑하고 있지만 시라큐스를 위해서 어쩔수 없는 일이라면 자기를 희생키로 결심한다. 아르지리오가 딸 아메나이데를 설득하면서 부르는 아리아가 Pensa che sei mia figlia(딸아 잘 생각해보아라)이다. 아메나이데는 만일 탄크레디가 시라큐스에 돌아온 것이 발각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걱정한다. 그런데 아메나이데는 오르바짜노와의 결혼 얘기가 나온 직후에 탄크레디에게 은말히 편지를 보내어 시라큐스의 평화를 위해서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얘기와 함께 어서 돌아와서 자기를 번민에서 구원해 달라고 전한 일이 있다. 아메나이데는 만일 그 편지가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 탄크레디가 무척 곤란하게 될 것이므로 편지에는 일부러 탄크레디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편지를 오르바짜노의 스파이가 가로챘던 것이다.
아메나이데
잠시후 아르지리오가 떠나자 탄크레디가 아메나이데 앞에 나타난다. 깜짝 놀라는 아메나이데...아메나이데는 탄크레디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메나이데는 탄크레디를 구하기 위해서 탄크레디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야 했다. 그리고는 탄크레디에게 어서 도피하라고 말한다. 탄크레디와 아메나이데의 듀엣이 L'aura che intorono apiri(주변에는 죽음의 분위기가)이다. 아메나이데는 두려운 마음으로 마음에도 없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한다.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의 마음이 차가워진 것을 느끼고 상심한다. 광장의 성당 앞에는 기사들과 귀족들이 오르바짜노와 아메나이데의 결혼식을 기다리며 모여 있다. 탄크레디가 무모하게도 그들의 앞에 나서서 자신을 '알리고 싶지 않는 전사'라고 소개하고 자기도 시라큐스를 방어하는데 목숨을 바치겠다고 선언한다. 탄크레디를 알아보지 못한 아르지리오는 미지의 기사의 청을 받아 들이며 사라센의 공격에 앞장 설 것을 당부한다. 그러한 모습을 본 아메나이데는 괴로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오르바짜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할수 없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오르바짜노는 자기의 스파이가 가로 챈 아메나이데의 편지를 내보이면서 이것은 아메나이데가 적장인 솔라미르와 내통한 것이라고 밝히고 배반자인 아메나이데를 당장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메나이데는 탄크레디를 위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 오르바짜노를 비롯한 군중들이 아메나이데를 처형하라고 소리친다. 군중들의 합창이 Ciel! Che Feci! Fier Cimento! Me Infelice(하늘이여, 이 얼마나 저주스러운 일인가, 무서운 위험을 안겨주려네, 불행하도다)이다.
페사로 무대
2막. 오르바짜노는 아메나이데를 사형하라는 의회의 명령서를 가져와서 아르지리오에게 서명하라고 강요한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직접 승인해야하는 아버지 아르지리오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질 것 같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메나이데가 적장 솔라미르와 내통했다는 것을 믿고 증오의 마음도 생긴다. 아르지리오는 마지못해 사형장에 서명을 한다. 아르지리오의 아리아가 Oh Dio!...Ah! segnar invano io tento(아 신이시여...아 내 손으로 헛되게 흔적을 남기는구나)이다. 아메나이데의 시녀인 이사우라는 아메나이데가 결백하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하나님에게 아메나이데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사우라의 아리아가 Tu che i miseri conforti(당신만이 이 비통함을 위로해 줄수 있도다)이다. 한편, 감옥에 갇혀 있는 아메나이데는 사랑하는 탄크레디로부터 오해를 받고 조국으로부터도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게된 자기의 운명을 탄식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사랑이 그가 죽은 후에 이루어질 것이며 배신하지 않고 결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으로 희망한다. 하지만 아무튼 탄크레디에 대하여 정절을 지키지 못했으므로 죽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메나이데의 카바티나가 Di mia vita infelice...No, che il morir non é(나의 불행한 삶...아니야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이라도)이다.
잠시후 오르바짜노가 아르지리오와 병사들을 데리고 아메나이데를 찾아온다.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아메나이데는 편지의 진짜 속내용을 끝내 말하지 않는다. 오르바짜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관례에 의해 누구든지 아메나이데의 결백을 위해서 결투를 요청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다. 그때 탄크레디가 아메나이데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결투에 응한다. 아메나이데는 탄크레디가 자기를 용서해 주기를 빌고 또한 결투에서 이기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메나이데의 아리아가 Gran Dio!...Giusto Dio che unile adoro(위대하신 신이시여...정의의 신이시여 겸손히 경외하나이다)이다. 병사들이 아메나이데를 데리고 먼저 나간다. 감옥에는 아르지리오와 탄크레디만이 남아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아메나이데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나이데가 죽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드디어 탄크레디와 오르바짜노의 결투가 시작된다. 오르바짜노가 탄크레디의 칼날에 쓰러진다. 아메나이데의 결백이 입증된 것이다. 그러나 탄크레디는 아직도 아메나이데의 배신을 믿고 혼란스러워한다. 탄크레디가 시라큐스를 떠나려 하자 아메나이데가 애타게 그를 붙잡는다. 그러면서 자기의 마음은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듀엣이 Lasciami, non t'ascolto(나를 그대로 놓아 두시오, 그대의 말을 듣지 않으렵니다)이다. 이윽고 탄크레디는 떠난다. 탄크레디는 시종인 로지에로마저 따라오지 못하게 한다. 이사루아가 로지에로를 붙들고 그 편지와 관련한 진실을 얘기해 준다. 로지에로는 탄크레디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였음을 원망하고 아메나이데를 믿어 주기를 바란다. 로지에로의 아리아가 Torni alfin ridente e bella(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쁘게 돌아오리라)이다.
기사들이 탄크레디에게 시라큐스를 방어하는 일에 도와 달라고 간청한다. 잠시후 아르지리오와 아메나이데가 탄크레디를 찾아온다. 탄크레디는 아메나이데의 결백을 믿고 싶다. 하지만 아메나이데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정한 데 대하여는 배신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는 오르바짜노를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결혼을 거부했고 그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결백하다는 것을 믿지는 못한다. 탄크레디는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겠다고 생각하고 사라센과의 전투를 위해 떠난다. 그러면서 비록 그의 마음은 분노에 넘쳐 있지만 아메나이데를 믿고 아직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탄크레디의 아리아가 Or che dici? or che rispondi? 이다. 전투에 나서서 주변을 둘러싼 웅장한 산들을 바라보자 아음 속에 아직도 아메나이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탄크레디의 카바티나가 Dove son io...Ah! che scordar non so(내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아,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이다. 아메나이데와 이사루아는 탄크레디가 무사하기만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시라큐스의 병사들은 마침내 사라센 군대를 물리친다. 탄크레디의 헌신적인 전투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탄크레디는 전투 중에 부상을 입는다. 아메나이데가 탄크레디에게 다시 한번 자기를 믿어 달라고 간청한다. 아르지리오는 아메나이데가 보낸 편지가 사라센의 솔라미르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탄크레디에게 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제서야 탄크레디는 자기의 오해였음을 인정하고 아메나이데의 손을 잡는다. 두 사람의 듀엣이 Quel pianto mi scende al cor(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이다.
[명음반] - 탄크레디, 아메나이데, 아르지리오, 오르바짜노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78년: Fiorenza Cossotto, Lella Cuberli, Werner Hollweg, Nicola Ghiuselev - Gabriele Ferro, Capella Coloniesis and Chorus of Westdeutschen Rundfunks
- 1981년: Marilyn Horne, Lella Cuberli, Ernesto Palacio, Nicola Zaccaria - Ralf Weikert, La Fenice Orchestra and Chorus
- 1992년: Bernadette Manca di Nissa, Maria Bayo, Raul Gimenez, Ildebrando d'Arcangelo - Gianluigi Gelmetti, Radio Symphony Orchestra and Chorus, Stuttgard
- 1995년: Ewa Podles, Sumi Jo, Stanford Olsen, Pietro Spangnoli - Ablerto Zedda, Collegium Instrumentale Brugense, Capella Brugensis
- 1995년: Vesselina Kasarova, Eva Mei, Ramon Vargas, Herry Peeters - Roiberto Abbado, Munchener Sinfonieorchester, Bayischer Rundfunkchor
- 2003년: Daniela Barcellona, Mariola Cantarero, Charles Workman, Nicola Ulivieri - Paolo Arrivabeni, Orchestra e Coro del Teatro Lirico Giuseppe Verdi di Trieste
- 2005년: Daniela Barcellona, Darina Takova, Raul Gimenz, Marco Spotti - Riccardo Frizza, Orchestra and Chorus of Maggio Musicale Fiorentino
시라큐스에 돌아온 탄크레디. 2009년 토리노. 메조소프라노 다니엘라 베르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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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세미라미스는 누구? (0) | 2013.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