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과 델릴라(Samson et Dalila) - Samson and Delilah
카미유 생 상스의 3막 그랜드 오페라...독일 봐이마르에서 초연
구약성서 사사기의 삼손 이야기
카미유 생 상스(카미유 생 상)
히브리 헐크인 삼손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사사시(판관기: Book of Judges)가 오리지널이다. 사사기 13장으로부터 16장까지에는 삼손이 태어난 이야기부터 히브리 백성들을 박해하고 우상을 섬기던 블레셋 사람들을 통쾌하게 타격한 이야기, 블레셋 여인인 델릴라(들릴라)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사로서의 본분을 잊고 방종했던 이야기, 델릴라의 꾐에 빠져 하나님이 주신 힘의 비밀을 누설하여 그로 인하여 힘을 잃고 감옥에 갇히고 눈이 뽑히는 굴욕을 당한 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삼손을 잊지 않고서 그에게 힘을 다시 주어서 블레셋 우상을 무너트리고 원수들을기 갚았다는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다. 신앙심이 깊은 카미유 생 상스(Camille Saint-Saens: 1835-1921)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적당한 것을 선정해서 오라토리오로 만들고 싶어했다. 19세기 당시에는 프랑스에서 어쩐 일인지 교회 합창음악이 크게 관심을 끌고 있었다. 때문에 생 상스로서도 무언가 그럴듯한 오라토리오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생 상스는 헨델과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었다. 생 상스는 시인이며 대본가인 페르디낭 르메르(Ferdinand Lemaire: 1832-1879)에게 성경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오라토리오의 대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페르디낭 르메르는 생 상스의 부인의 사촌동생의 남편이었다. 그랬더니 페르디낭 르메르는 생 상스에게 기왕에 성경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려면 오라토리오 보다는 오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그는 성경 이야기들을 조사하여 삼손에 대한 이야기를 제시했고 생 상스도 이에 동의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삼손에 로베르토 알라냐, 델릴라에 엘리나 가란차
르메르가 대본을 완성하자 생 상스는 1867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 상스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2막부터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델릴라를 위한 아리아, 삼손과 델릴라를 위한 듀엣, 그리고 합창곡 몇 곡을 만들었다. 합창곡 중에서 몇 곡은 나중에 1막으로 옮겨 사용했다. 그러나 오케스트레이션은 완성하지 못했다. 생 상스는 완성된 2막만을 가지고 자기 집에서 간단한 비공식 공연을 가졌다. 생 상스 자신이 피아노 반주를 했고 여류 작곡가인 아우구스타 올메(Augusta Holmés: 1847-1903)가 델릴라 파트를, 화가로서 아무추어 성악가인 앙리 르그노(Henri Regnault: 1843-1871)가 삼손의 파트를, 그리고 바리톤 겸 시인인 로맹 뷔생(Romain Bussine: 1830-1899)이 대제사장의 파트를 맡아 몇몇 지인들 앞에서 공연했다. 1870년의 일이었다. 1870년에는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 1870-71)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우선 완성된 2막만을 가지고 약식의 비공식 공연을 가졌던 것이다. 2막에서 델릴라의 장막 안에서의 사랑의 장면은 프랑스 오페라의 전형이라고 할수 있는 세트 피스이다. 말하자면 전체 중에서 가장 고심하고 정성을 들여 만든 장면이다. '삼손과 델릴라'의 음악 중에서는 특별히 델릴라의 아리아 두 곡이 널리 알려져 있다. Printemps qui commence(쁘랭땅 끼 꼬망스)과 Mon cœur s'ouvre à ta voix(몽 꾀르 수브르 아 타 부아)이다. 쁘랭땅 끼 꼬망스는 우리나라에서 '봄이 오면'이라고 번역들을 했는데 '봄이 오면'이라고 하면 우선 김동진 작곡의 우리 가곡인 '봄이 오면 산과 들에 진달래 피네...'가 생각나기 때문에 혼동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봄이 시작되면'이라고 번역해 보았다. 그리고 '몽 꾀르 수브르 아 타 부아'는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라고 번역들을 했는데 그건 그런대로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몽 꾀르'는 메조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의 인기 레퍼토리로서 리사이틀에 자주 등장하는 곡이다.
스톡홀름 왕립오페라극장 무대. 델릴라의 안나 라르슨, 삼손의 리챠드 데커. 현대적 연출
그런데 참으로 특이하게도 프랑스 시민들은 생 상스가 성경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드는 것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가지고 있었다. 신앙심이 유별나게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생 상스는 이곳 저곳으로부터 '어찌하여 쓸데 없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을 주인공으로 삼아 오페라를 만들었는가?'라는 힐난을 받자 기분도 그렇지 않고 하여서 작곡하던 것을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2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 중에 생 상스는 1872년 여름에 바그너의 '라인의 황금'이 리바이발된다고 하니까 그것을 보러 봐이마르에 갔다. 프란츠 리스트가 지휘를 맡은 공연이었다. 생 상스는 그때 두번째 오페라인 La princesse jaune(노란 공주)의 초연을 가진지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생 상스는 첫번째 오페라인 '삼손과 델릴라'는 작곡을 중단한 채 그대로 놓아두고 두번째 오페라를 완성하고 초연까지 가졌던 터였다. 그때 프란츠 리스트는 봐이마르 궁정오케스트라와 오페라의 음악감독직을 사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봐이마르를 방문한 생 상스를 만난 리스트는 '삼손과 델릴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어서 완성하라고 적극 권유하였다. 리스트는 할 일도 별로 없었던지 시간만 있으면 재능있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발굴하여 공연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추진하고 있었다. 리스트는 생 상스에게 만일 '삼손과 델릴라'를 바로 완성한다면 봐이마르의 대공극장에서 초연을 가질수 있도록 후원하겠다고까지 약속했다. 이말에 용기를 얻은 생 상스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해에 1막의 작곡을 시작하고 그 후에도 시간이 있는대로 나머지를 완성코자 노력을 기울였다. 얼마후 생 상스는 알지에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생 상스는 알지에에 있는 기간인 1874년에 드디어 1막을 완성했다. 1875년에 파리로 돌아온 생 상스는 1막만을 가지고 테아트르 뒤 샤틀레에서 비공식 공연을 가졌다. 그런데 파리 사람들은 '삼손과 델릴라'의 진면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음악적으로 형편없다느니 하면서 비판을 가했다. 그러면 안되는데 아무튼 '삼손과 델릴라'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삼손과 델릴라'의 전막이 초연된 봐이마르의 대공극장
비하인드 스토리이지만 생 상스는 당대의 메조소프라노인 폴랭 비아르도(Pauling Viardot: 1821-1910)를 숭모하여서 처음에 델릴라의 음악을 만들 때부터 폴랭 비아르도를 염두에 두고 작곡을 했다. 그래서 델릴라가 소프라노가 아니고 메조소프라노가 맡도록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폴랭 비아르도는 젊은 생 상스의 생각을 고맙게 여겨서 '삼손과 델릴라'의 2막 만을 가지고 그의 어떤 친구의 저택에서 개인적은 공연을 가졌다. 생 상스가 피아노 반주를 했음은 물론이었다. 폴랭 비아르도는 '삼손과 델릴라'의 음악을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마침 그 자리에 참석했던 파리 오페라의 감독인 올리비에 할란치어(Olivier Halanzier)에게 '삼손과 델릴라'가 완성되면 파리 오페라에서 전막이 공연되도록 힘써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생 상스는 '삼손과 델릴라'를 당장 완성하지 못하고 1876년에야 스코어를 완성했다. 그때에는 파리 오페라도 다른 프로그램 때문에 '삼손과 델릴라'에 대하여 신경을 쓸 형편이 아니었다. 생 상스는 프랑스의 다른 오페라 극장들과 접촉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생 상스의 새로운 오페라인 '삼손과 델릴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한 때에 생 상스는 봐이마르에서 리스트를 만났던 것이고 리스트는 생 상스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삼손과 델릴라'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메조소프라노 폴랭 비아르도. 생 상스는 폴랭 비아르도를 델릴라로 염두에 두고 작곡하였다.
그리하여 '삼손과 델릴라'는 1877년 12월 2일 독일 봐이마르의 대공극장(Grossherzogliches Theater: 현재의 슈타츠카펠레 봐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그런데 그때 쯤해서 폴랭 비아도르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델릴라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폴랭 비아도르는 56세였다. 그래서 봐이마르 극장의 전속 메조소프라노이며 배우로서 유명한 당시 29세의 아우구스테 폰 뮐러(Auguste von Müller: 1848-1912)가 맡았다. 봐이마르의 초연은 대찬사를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공연되지는 못하였다. 보불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또는 극장사정 때문에 리바이발이 없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1890년대에 들어와서는 세계의 유명 오페라극장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점차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사랑을 받게 되었다. 1877년 봐이마르에서의 초연 이후 처음으로 다시 공연된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인 1882년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였다. 이어 독일의 다른 극장에서 간헐적으로 공연되었다. 그러나 정작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것은 초연 이후 13년이 지난 1890년 3월 루앙의 테아트르 데자르(Théâtre des Arts)에서였다. 델릴라는 제노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칼로타 보씨(Carlota Bossi: 1867-1958)가 맡았고 삼손은 테너 장 알렉산드르 탈라차크(Jean-Alexandre Talazac)가 맡았다. 파리 초연은 그해 10월 31일 9구 부드러가(rue Boudreau)에 있는 에든 극장(Éden-Théâtre)에서였다. 장 알렉산드르 탈라차크가 다시 한번 삼손을 맡았으며 델릴라는 로생 블로흐(Rosine Bloch)가 맡은 공연이었다. 파리 관중들은 이번에는 '삼손과 델릴라'를 상당히 따듯하게 환영하였다. 그후 2년여 동안 '삼손과 델릴라'는 보르도, 제네바, 툴루스, 낭트, 디종, 몽플리에 등에서 절찬리에 공연되었다. 파리 오페라극장( Paris Opéra)도 가만히 있을수만은 없었다. 드디어 1892년 11월 23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생 상스의 감독과 에두아르 콜론느(Édouard Colonne)의 지휘, 그리고 프랑스 콘트랄토 블랑셰 드샹 제앵(Blanche Deschamps-Jéhin: 1857-1923)이 델릴라를 맡아 '삼손과 델릴라'가 공연되었다. 대단한 찬사를 받은 공연이었다. 사람들은 그간의 과정은 잘 모르면서 '아니 어째서 이렇게 훌륭한 오페라를 이제야 파리 오페라에서 공연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면서 의아해했다. 이후 '삼손과 델릴라'는 1890년대에 프랑스 이외에서도 대단한 찬사를 받으며 공연가도를 걸어갔다.
파리 오페라의 초연에서 델릴라를 맡았던 콘트랄토 블랑셰 드샹 제앵
1892년 3월에는 모나코의 몬테 칼로 오페라(Opéra de Monte-Carlo)에서 공연되었고 며칠 후에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미국에서의 첫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카네기 홀의 공연은 콘서트 형식이었다. 미국에서 무대공연이 처음으로 이루어 진 것은 1893년 1월 뉴올리언스의 프랑스오페라극장에서였다. 미국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에서의 첫 공연은 1895년 2월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에우제니아 마르텔리(Eugenia Martelli: 1860-1926)가 델릴라를 맡았고 '오텔로'의 역사적인 라 스칼라 초연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한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Francesco Tamagno: 1850-1905)가 삼손을 맡은 것이었다. 그런데 메트로폴리탄의 첫 공연에서는 무대장치를 새로 만들지 못하고 다른 오페라들에서 사용했던 무대장치를 가져다가 사용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메트로폴리탄은 그 시즌에 이번에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회를 가졌다. 발레 장면은 삭제한 연주회였다. 이탈리아 초연은 1892년 3월 플로렌스의 테아트로 팔리아노에서였다.
다곤 신전의 피날레
'삼손과 델릴라'는 1906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200회 이상이나 공연되는 성황을 누렸다. '삼손과 델릴라'는 그 이후에도 상당한 인기를 끌며 공연되었다. 물론 베르디나 푸치니, 또는 바그너의 오페라가 인기를 끈 것에 비교하면 비교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오페라로서는 자주 공연되는 대상이었다. '삼손과 델릴라'는 초기에 많은 난관을 겪었다. 생 상스의 다른 오페라들은 그런 난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난관을 겪은 '삼손과 델릴라'가 다른 오페라에 비하여 더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었다. 북미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콘트랄토인 잔느 제르빌 레아슈(Jeanne Gerville-Réache: 1882-1915)이 '삼손과 델릴라'의 확산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그가 델릴라로 출연하는 공연은 언제나 대성공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델릴라를 맡은 것은 1908년 뉴욕의 맨하튼오페라단의 공연에서였다. 그후 필라델피아, 시카고, 보스턴, 몬트리올 등에서 이름을 떨쳤다.
삼손과 델릴라
메트로폴리탄은 1895년 자체 초연한 이후 20년 만인 1915년에 리바이발했다. 1915/16년 시즌에 마가레트 마체나누어(Margarete Matzenauer)가 델릴라를 엔리코 카루소가 삼손을 맡은 공연이었다. 메트로폴리탄은 20년 만의 리바이발 이후 '삼손과 델릴라'를 정기적으로 공연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려 200 회 이상을 무대에 올렸다. 최근의 공연으로서 괄목할 만한 것은 2006년 생페터스부르크 출신의 메조소프라노/콘트랄토인 올가 보로디나(Olga Borodina: 1963-)와 존 프레드릭 웨스트(John Fredric West)가 주역을 맡은 것이었다. 시카고의 리릭오페라는 1962년에 리타 고르(Rita Gorr)와 한스 카르트(Hans Kaart)를 내세워서 첫 공연을 가졌다. 시카고의 리릭오페라는 그후 계속하여 '삼손과 델릴라'를 마치 정규 레퍼터리처럼 공연하였다. 최근의 공연 중에서는 2003/04년 시즌에 올가 보로디나와 호세 쿠라(José Cura)가 출연한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오페라도 1925년 첫 공연을 가진 이래 지금까지 10회 이상을 공연했다. 마르게리틑 달바레즈(Marguerite d'Alvarez)와 페르낭 안소(Fernand Ansseau)가 출연한 것이었다. 최근의 공연으로서 두드러진 것은 2008년의 올가 보로디나와 클리프턴 포르비스(Clifton Forbis)가 출연한 것이었다. '삼손과 델릴라'는 성악가들이 오페라 스타로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되어왔다. 특히 델릴라의 역할은 아마 카르멘을 제외하고서는 메조소프라노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수 없다.
최근 델릴라 역할로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러시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올가 보로디나
[리브레토]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의 대본은 물론 구약성서의 사사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특히 사사기 16장의 말씀을 발판으로 했다. 그렇다고해서 사사기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은 아니다. 삼손의 영웅적인 행동 중에서 여러 가지는 포함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맨손으로 사자를 죽인 일,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명을 죽인 일, 델릴라를 알기 전에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했던 일 등은 오페라에 나오지 않는다. 생 상스와 대본가인 르메르가 성서의 그런 내용들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오페라 스토리의 초점을 델릴라에게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삼손은 어떤 정신적인 지도자로서 표현되었으며 성서에서처럼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으로는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스토리의 초점은 삼손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마음씨 때문에 상처를 받기 쉽다는 점, 그리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얻고자 우둔하리만큼 몰두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델릴라는 복수를 위해 남자를 능란하게 조정하고 속아 넘기고 거칠게 행동하는 여인으로 그렸다. 성서에서는 삼손이 자기의 힘의 원천이 어디있는지 밝히지를 않고 여러가지 다른 이유를 말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오페라에서는 그런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페라에서는 1막에 아비벨렉(Abimélech)이 죽는 내용이 나온다. 성서와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삼손(T)은 히브리의 사사이다. 사사는 선지자들이 등장하기 이전에 백성들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사람을 말한다. 1877년 12월 2일 봐이마르에서의 초연에서는 테너 프란츠 페렌치(Franz Ferenczy)가 맡았다. 델릴라(MS 또는 Cont)는 이방인인 블레셋의 여인이다. 봐이마르의 초연에서는 아우구스테 폰 뮐러가 델릴라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다곤 신전의 대제사장(Bar)은 간혹 가자 지구의 총독인 아비멜렉의 역할도 맡아한다. 이밖에 히브리인들, 블레셋(Philistines)인등이 등장한다. 시기는 주전 1150년 경이며 장소는 오늘날의 가자(Gaza) 지구이다.
현대적 연출의 무대. 삼손과 델릴라. 사막의 장막에서.
[1막] 가자에 있는 다곤 신전의 광장이다. 밤중이다. 한 무리의 히브리인들이 여호와에게 그들일 블레셋의 압박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이들의 우울한 합창이 Dieu, d'Israel(이스라엘의 신이시여)이다. 그러한 기도는 복잡한 푸가형태의 합창으로 발전한다. Nous avons vu nos cités renversées이다. 삼손은 이스라엘 민족의 사기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높이고자 한다. 삼손의 아리아가 Arretez, o mes fréres이다. 삼손의 아리아는 히브리인들의 기도 소리를 뚫고 높이 솟아나온다. 블레셋의 총독인 아비멜렉이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의 신은 그 백성들을 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비웃고 조롱한다. 이어 그는 블레셋의 신인 다곤(Dagon)이 더욱 뛰어나다고 말한다. 아비멜렉의 아리아가 Ce Dieu que votre voix implore이다. 히브리인들은 아비멜렉의 앞에서 두려워서 어찌할줄 모른다. 그때 삼손이 앞에 나와서 히브리인들에게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항하라고 말한다. 분노한 아비멜렉이 칼을 뽑아들고 아무런 무기도 없는 삼손을 치려고 한다. 삼손은 아비멜렉의 팔을 비틀어 칼을 빼앗아 그를 죽인다. 히브리인들은 모두 삼손을 홀로 남겨둔채 두려움에 도망간다. 다곤의 대제사장이 신전으로부터 나와서 히브리인들을 비난하고 삼손의 무서운 힘을 저주한다.
DVD. 호세 쿠라와 줄리아 게르체바
메신저가 뛰어 들어와서 다곤의 대제사장에게 히브리인들이 블레렛 밭의 수확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전한다. 대제사장은 히브리인들을 더욱 저주하며 그들이 삼손의 힘을 믿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므로 삼손의 힘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제사장은 삼손의 힘을 제거하기 위해서 델릴아의 미모를 이용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대제사장의 아리아가 Qu'enfin une compagne infame trahisse son amour! 이다. 동이 터오자 히브리인들은 여호와에 대한 겸손한 기도를 드린다. 단순한 선률의 곡이다. 그때 다곤 신전으로부터 델릴라가 몇몇의 여사제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다. 이들은 신전의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기쁨을 노래한다. 삼손을 본 델릴라는 유혹적인 말과 몸짓으로 이제 삼손이 자기의 마음을 가졌다고 말하고 소렉(Sorek) 계곡에 있는 자기의 장막을 찾아와 달라고 요청한다. 이렇듯 델릴라가 매력을 다하여 삼손을 유혹할 때에 어떤 늙은 히브리인이 삼손에게 델릴라가 대단히 위험한 여자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삼손은 하나님께 델릴라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자 델릴라는 이번에는 여사제들과 함께 탬버린을 치며 선정적인 춤을 추어 오히려 삼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델릴라의 목적은 삼손을 유혹하여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봉기를 이끌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델릴라는 춤을 마친 후에 이번에는 봄이 와서 사방에 꽃이 만발한데 자기의 마음은 아직도 겨울과 같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유명한 델릴아의 아리아 Printemps qui commence 이다. 삼손은 델릴라는 갈망하는 마음으로 갈등한다. 늙은 히브리인이 삼손에게 델릴라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또 다시 경고한다. 그러나 그의 경고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막이 내릴 때에 삼손은 이미 델릴라의 눈길에 사로잡혀 있다.
델릴라의 장막에서
[2막] 소렉 계곡에 있는 델릴라의 화려한 장막이다. 델릴라는 삼손이 자기에게 흠뻑 빠져서 히브리인들의 블레셋에 대한 봉기를 이끄는 대신에 자기를 찾아 올것을 알고 있다. 델릴라는 자기 장막의 입구에 있는 바위에 앉아서 마치 전쟁에서 승리를 한 듯 삼손을 유혹한 자기의 능력을 노래한다. 델릴라는 삼손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델릴라의 아리아가 Amour! viens aider ma faibless 이다. 멀리서 등불이 보이더니 다곤의 대제사장이 나타나서 삼손과 히브리인들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다는 소식을 전한다. 대제사장은 델릴라에게 금을 주며 삼손을 사로잡아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델릴라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복수가 목적이라고 말한다. 델릴라는 삼손을 해치고자 하는 이유는 오로지 다곤 신에 대한 충성과 히브리인들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델릴라와 대제사장은 두 사람이 모두 삼손과 히브리 인들을 증오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듀엣을 부른다. 델릴라는 삼손의 힘의 비밀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맹세한다. 델릴라는 자기의 음모가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
스톡홀름 오페라
삼손은 히브리 백성들의 봉기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별의 말을 하기 위해 델릴라를 찾아온다. 델릴라는 삼손을 덫에 걸리기 위해 삼손이 원한다면 자기의 마음은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유혹적으로 말한다. 델릴라는 삼손에게 다른 모든 것은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해 달라고 간청한다. 결국 삼손은 델릴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Je t'aime! 라고 말한다. 델릴라는 삼손이 그렇게 말하자 저 유명한 아리아인 Mon cœur s'ouvre à ta voix를 부른다. 델릴라의 노래에 삼손이 합류하여 마침내 듀엣을 이룬다. 이제 삼손은 델릴라의 손에 잡혀 있다. 델릴라는 삼손에게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의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그 비밀을 알려 달라고 간청한다. 그때 하늘로부터 천둥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경고이다. 삼손은 델릴라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러자 델릴라는 눈물을 흘리면서 삼손을 멸시하며 자기 장막으로 들어간다. 삼손을 순간적으로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여 델릴라를 따라 장막 안으로 들어간다. 델릴라는 얼마 되지 않아서 삼손의 힘의 비밀이 그의 긴 머리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델릴라는 숨어 있던 블레셋 병사들을 불러내어 삼손이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고 삼손을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삼손의 긴 머리칼을 자른다.
델릴라가 삼손의 힘의 비밀을 캐내고자 하고 있다.
[3막] 1장은 가자에 있는 지하감옥이다. 머리칼이 잘린 삼손을 앞을 보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삼손은 쇠착고를 차고 있다. 커다란 맷돌을 돌리고 있는 삼손은 자기의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한다. 삼손은 히브리 백성들의 외침을 듣는다. 1막에서 여호와께 부르짖던 그 간구의 소리이다. 삼손은 후회의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자기의 생명을 희생할 생각이다. 멀리서는 히브리 백성들이 삼손의 비참한 운명을 탄식하고 있다. 2장은 다곤 신전이다. 무대의 장면이 변환되는 동안 간주곡이 연주된다. 다곤 신전의 앞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승리를 기념하는 제사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다. 신전의 남녀 사제들이 1막에서 봄을 찬양하며 부르던 그 노래를 다시 부드럽게 부른다. 그러더니 음악이 갑자기 광란의 춤곡으로 바뀐다. 남녀 사제들이 어울려서 야만적이고도 광적인 춤을 춘다. 춤이 끝나자 삼손이 어떤 소년에 끌려서 나온다. 대제사장과 군중들이 삼손을 조롱하며 비웃는다. 델릴라가 삼손에게 자기의 사랑은 삼손을 유혹하여 힘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덫이었다고 말하고 전에 불렀던 사랑의 노래를 삼손을 조롱하는 가사로 바꾸어 부른다. 사제들이 삼손을 다곤 신상 앞에 무릎 꿇이려고 한다. 삼손은 그를 안내했던 소년에게 신전의 커다란 기둥 사이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삼손은 여호와에게 힘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는 신전의 기둥을 밀어서 쓰러트린다. 신전이 무너진다. 히브리 백성들의 원수들인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깔려 죽임을 당한다. 삼손도 함께 묻힌다. 막이 내린다.
호세 쿠라와 데니스 그레이브스. 메트로폴리탄
[명음반] 삼손, 델릴라, 다곤 신전의 대제사장, 아비멜렉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41: Rene Maison, Rise Stevens, Leonard Warren, Norman Cordon - Wilfrid Pelletier,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49: Ramon Vinay, Rise Stevens, Robert Merrill, Osie Hawkins - Emil Cooper,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54: Jan Peerce, Rise Stevens, Robert Merrill - Robert Shaw, NBC Symphony Orchestra and the Robert Shaw Chorale
- 1955: Ramon Vinay, Ebe Stignani, Antonio Manca-Serra, Giovanni Amodeo - Fritz Rieger, Teatro di San Carlo Orchestra and Chorus
- 1963: Jon Vickers, Rita Gorr, Ernest Blanc, Anton Diakov - Georges Pretre, Orchestre du Theatre National de l'Opera di Paris
- 1970: Richard Cassily, Shirley Verrett, Robert Massard, Giovanni Foiani - Georges Pretre, Orquestra do Teatro alla Scala
- 1973: James King, Christa Ludwig, Bernd Weikl, Alexander Malta - Giuseppe Patane, Muchner Rundfunkorchester
- 1978: Placido Domingo, Elena Obraztsova, Renato Bruson, Pierre Thau - Daniel Barenboim, Orchestre et Choeur de Paris
- 1981: Placido Domingo, Shirley Verrett, Wolfgang Brendel, Arnold Voketaitis - Julius Rudel, San Francisco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82: Jon Vickers, Shirley Verrett, Jonathan summers, John Tomlinson - Colin Davis, Royal Opera House orchestra and chorus
- 1989: Jose Carreras, Agnes Baltsa, Jonathan Summers, Simon Estes - Colin Davis,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and chorus
- 1991: Placido Domingo, Waltraud Meier, Alain Fondary - Myung-whun Chung, Bastille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98: Placido Domingo, Olga Borodina, Sergei Leiferkus - James Levine,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98: Jose Cura, Olga Borodina, Jean-Philippe Lafont - Colin Davis, London Symphony Orchestra and Chorus
- 2007: Clifton Forbis, Denyce Graves, Greer Grimsley - Karen Keltner, San Diego Symphony Orchestra and San Diego Opera Chorus
히브리 백성들을 위로하는 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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