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박물관 도시

제국보물전시실

정준극 2013. 5. 25. 19:37

제국보물전시실(Schatzkammer) - Imperial Treasury

합스부르크 제국의 역대 보물 소장

 

성창과 성십자가 조각. 오른쪽의 성십자가 조각에는 못 구멍이 있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후인 성헬레나가 예루살렘에 가서 성십자가를 비롯한 수많은 성물(聖物)들을 발굴하여 더러는 그곳에 두고 더러는 로마제국으로 가져왔다는 것은 모두 잘 아는 내용이다. 그 결과,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매달리셨던 참 십자가의 조각이 합스부르크의 소유가 되었고 현재는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보물전시실(샤츠캄머)에 전시되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병사 한 사람이 창으로 예수가 숨을 거두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가 나오게 했는데 그 창의 조각도 합스부르크의 소유가 되어 역시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보물전시실에 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왼쪽에 있는 것이 성창(聖槍)의 조각이며 오른쪽은 성십자가의 조각을 십자가 형태의 틀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성물들이 비록 조각이나마 우리나라의 어떤 교회에 보관되어 있다면 그것을 보고 싶어서 우리나라 전국에서는 물론, 외국으로부터도 참배하러 오는 순례자의 행렬이 줄을 이을 것이다. 만일 그 성물들로 인하여 병고침을 받았다든지 또는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면 말할수 없는 은사로서 만인의 경배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헌금도 많이많이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성물들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비엔나에는 그런 성물들이 여럿이 있으며 합스부르크 왕실이 수집하여 간직하고 있었다.

 

제국보물전시실 입구. 궁정교회 아랫쪽이 입구이다. 대단한 보안시설이 되어 있다.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보물전시실은 호프부르크의 슈봐이처호프(스위스궁) 내에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궁정교회(부르크카펠레)의 아래층 은밀한 장소에 있다. 은밀하다는 것은 관람시간이 아니면 마치 대형 금고처럼 육중한 철문으로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였던 비엔나에서 가장 소중한 장소는 이곳 제국보물전시실, 카푸친교회 지하에 있는 제국영묘(Kaisergruft), 그리고 격은 조금 떨어지지만 슈테판성당 이교도의 탑 2층에 있는 성물보관실일 것이다. 제국영묘에는 합스부르크 역대 군주와 왕족들의 유해를 담은 관들이 있기 때문에 귀중하지만 그렇다고 보물은 아니다. 슈테판성당의 성물실에도 특별한 성물들이 있지만 일반인이 보기에 귀중하다고 볼수는 없는 것들이다. 이밖에도 비엔나의 자랑으로서 대성당박물관, 독일기사단 보물실 등이 있어서 귀중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호프부르크의 제국보물실과는 비교할수 없는 노릇이다.

 

황금 기둥(골데네 조일레)

 

제국보물전시실에는 1천년 유럽 역사를 커버하는 수많은 종교적 보물들과 세속적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속적 보물들이란 합스부르크와 신성로마제국의 보물들을 말한다.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슈봐이처호프는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로서 16세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페르디난드 1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것을 재건축한 것이다. 제국보물전시실(또는 제국보물박물관)은 행정상 미술사박물관(국립미술관: KHM)에 속하여 있다. 제국보물전시실은 21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16개 전시공간은 세속적인 보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며 5개 전시공간만이 종교적(또는 영적) 보물들을 전시한 곳이다. 세속적인 보물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보물이 아닌 모든 것을 의미한다. 세속적인 보물의 전시실에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왕관, 보주, 홀 등이 전시되어 있고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왕광들과 황제들이 대관식 때에 입었던 예복, 갖가지 왕보(王寶: Regalia)들이다. 예를 들어 약 3천 카라트에 이르는 어머어마한 에메랄드 보석은 세속적인 보물에 들어간다. 하지만 비교적 작은 마노로 만든 접시는 성배라고 생각되어서 종교적인 보물의 범주에 들어간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 8면으로 만들어진 것은 예루살렘의 여덟 문을 상징한다. 그림은 정의의 상징인 다위왕과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을 그린 것이다.

 

수많은 성물들과 왕보들을 비엔나의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여러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첫 시작은 페르디난트 1세의 궁정유물담당관인 야코포 슈트라다(Jacopo Strada)라는 사람이 1556년에 황제의 지시에 의해 제국의 보물들을 정리한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그후 18세기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합스부르크의 보물들을 현재의 슈봐이처호프의 특별 전시실로 옮기도록 하여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그동안 제국의 보물들이 프러시아와의 전쟁 등으로 분실되거나 손실되었던 것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하여 이제로부터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결심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1424년부터 독일의 뉘른베르크에 보관되어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보물들을 비엔나로 가져오려고 노력하였으니 뜻을 이루지 못했다. 뉘른베르크의 보물들이 비엔나로 온 것은 신성로마제국의 말기인 1800년경이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진격해 오고 있으므로 만일 신성로마제국의 보물들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마지못해 비엔나 옮겼다. 그러나 비엔나로 옮겨진 제국의 보물들의 신세는 평탄하지 못했다. 1938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Anschluss)하자 그는 비엔나의 보물들을 모두 나치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뉘른베르크로 가져갔다. 그렇게 가져간 보물들이 비엔나로 다시 돌아온 것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미군들이 협조해 주어서였다. 오늘날의 호프부르크 제국보물전시실이 완성된 것은 1983년부터 1987년까지의 기간이었다.

 

492 카라트의 아쿠아마린(남옥)

 

유럽에서는 항간에 이런 얘기가 퍼진 일이 있다. 그리스도와 관련한 3대 성물 중에서 모두 갖고 있지는 않더라도 한두개만 가지고 있었도 유럽을 제패할수 있다는 얘기이다. 3대 성물이라는 것은 성배, 성창, 성의(聖衣)를 말한다. 성배는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이 간직하고 있다가 영국으로 갈 때 함께 가지고 갔다가 아서 왕의 전설에 나오는 성배의 기사들이 보관하고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성창은 롱기니우스라는 로마 병사가 가지고 있다가 그가 북아프리카에서 순교한 후에는 이리저리 흘러다니다가 결국은 합스부르크가 가지고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창을 가지고 있는 합스부르크가 유럽을 제패할수 있었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성의는 로마제국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유럽을 제패할수 있었던 것이지만 현재는 어디 있는지 알수 없다는 것이다. 성의의 존재가 오리무중이 되자 로마제국은 대신 성수의를 가지고 있다고 내세웠다. 그것이 항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이다. 하지만 토리노의 수의도 과학적으로 연대측정(Carbon dating)을 해 보았더니 2천년 전의 것은 아니었다고 해서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창의 창부분. 창촉의 전부가 아니라 금으로 씌어놓은 부분이 오리지널이라고 한다.

 

그런데 합스부르크가 성창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까지는 수긍을 하겠는데 합스부르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성배까지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합스부르크는 12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왔다는 커다란 마노(瑪瑙)대접(Achatschale: Agate Bowl)을 성배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당연히 오랫동안 그 마노대접이 성배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아무튼 그 마노대접은 제국보물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제국보물전시실에는 세례자 요한의 이빨이라는 것도 전시되어 있다. 이빨 한개를 전시해 놓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것이 아니라 성베드로의 이빨이라는 주장도 있다. 세례자 요한의 이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성헬레나가 예루살렘에서 발굴하여 가지고 온것이 흘러흘러 합스부르크의 손에 들어왔다는 설명이며 성베드로의 이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성로마제국의 초기에 바티칸의 교황으로부터 선물로 기증받은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잘 아는대로 성베드로는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했다. 제국보물전시실에는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가 태어난후 누웠던 구유의 조각도 전시되어 있다.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 구유'의 조각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교회가 그렇다고 인정을 하였으니 믿을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밖에도 별별 것들이 다 있다.

 

그리스도가 사용했던 성배라고 주장했던 마노대접

 

어찌하여 이런 성물들이 비엔나에 모이게 되었는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샤를르(칼) 6세의 공로가 컸다. 샤를르 6세는 저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버지였다. 샤를르 6세는 성물이라고 하면 그저 이런저런 생각할 것 없이 무조건 주워 모았다. 그래서 수백 종류의 성물을 수집할수 있었다. 그렇게 수집하다보니 재미난 일도 있었다. 구약성경 신명기 33장 17절을 보면 들소의 뿔이라는 말이 나온다. 합스부르크는 어느 때 참으로 기이하게 생긴 길다란 외뿔을 구한 일이 있다. 틀림없이 신명기에 나오는 외뿔이 들소의 뿔이라고 믿어서 소중히 간직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건 전설적인 외뿔이 들소의 뿔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일각수(一角獸: 유니콘), 즉 말처럼 생겼는데 이마에 큰 뿔이 있는 전설적인 짐승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합스부르크는 '그래요? 성경에 나오는 들소 뿔이 아니라 전설에 나오는 일각수의 뿔이라면 더 좋지요!'라며 더욱 애지중지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그 뿔이 성경에 나오는 외뿔이 들소의 뿔, 또는 전설적인 일각수의 뿔이 아니라 일각과의 고래(Narwahl)의 이빨이 특이하게 자라서 그런 뿔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경에 나오는 외뿔 들소의 뿔이라고 믿었던 물건. 고래의 어금니가 특이하게 자란 것이라는 설명이다.

 

합스부르크의 군주들은 처음에는 보물들을 제국예배당(궁정교회)의 성소에 보관했다. 그곳이 제격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따지고보면 영토와 백성들을 통치하는 군주들은 자기들의 권세를 강조할수 있는 보석이나 귀중한 문서 또는 성자들의 유물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했다. 그런것들을 모아서 가장 중요한 교회의 지성소에 두면 그 물건들의 권위가 더욱 높아지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들의 권위도 높아진다고 믿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런 보물들의 수량도 늘어났다. 특히 페르디난트 1세와 루돌프 2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런 보물들을 열심히 수집하였다. 너무 많아서 교회의 지성소에는 더 이상 두기가 어려웠다. 호프부르크의 어떤 방 하나를 보물들만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다. 그 방을 쿤스트하루스(Kunsthaus: 예술의 집)이라고 불렀다. 18세기에 들어와서 별도의 전시실 및 보관실이 필요하게 되어 보물들을 슈봐이처호프의 현재 장소로 옮겼다. 슈봐이처호프의 전시실은 21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16개 방에는 세속적인 보물들을 전시하였고 나머지 5개 방에는 종교적인 보물들을 두었다. 종교적인 보물실에는 각종 성자들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황금과 각종 보석으로 장식한 성만찬 주전자와 접시

 

합스부르크 보물실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왕관이다. 화려하고 엄숙한 황금 왕관은 앤트워프레서 온 금세공장인이 프라하에서 만들었다. 홀과 보주는 그로부터 약 10년 후에 만든 것이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첫 황제인 프란시스 1세(프란시스 2세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1830년에 헝가리 왕으로 대관식을 가졌을 때 입었던 만토는 금사로 수를 놓았으며 밍크 모피로 만든것이다.

  

 오스트리아제국 황제의 왕관, 보주, 홀

 

요람도 하나 전시되어 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두번째 부인인 합스부르크의 마리 루이제가 낳은 나폴레옹 2세가 어릴 때 누웠던 요람이다. 마리 루이제는 프란시스 1세 황제의 딸이었다. 나폴레옹 2세는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그러다가 아버지인 나폴레옹 1세가 실각하자 비엔나에서 연금생활을 하다가 21세의 나이에 폐렴에 걸려 사망했다. 보석류의 전시를 보면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예를 들면 세계에서 가장 큰 에메랄드이다. 커팅까지 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몰락의 길을 걷던 1910년대 말에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는 귀중한 보석류의 상당량을 오스트리아에서 해외로 반출했다는 주장이 있다.

 

나폴레옹 2세의 요람

 

또 하나 하이라이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왕관들이다. 그 중에서도 8각형 모양의 왕관이 특히 눈을 끈다. 962년에 오토 1세의 대관식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10세기에 샬레마뉴 대제가 사용했던 검, 11세기의 황제 검, 13세기 프레데릭 2세의 의식용 검 등이 눈길을 끈다. 합스부르크의 보물 리스트는 막시밀리안 1세 개동이 1477년 브루군디의 메리와 결혼함으로서 상당히 증가하였다. 지참금조로 가져온 보물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었다. 브루군디의 메리는 오죽하면 Mary the Rich(부자 메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재산이 많았으니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부르군디 보물 중에는 황금 양털 훈장이 눈길을 끈다. 훈장이라고 하니까 오늘날의 메달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목에 거는 체인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막시밀리안 1세가 황금양털 기사단의 수장이 되었을 때 브루군디의 메리의 아버지인 샤를르 대공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물려 받은 것이라고 한다.

 

2,860 카라트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아직까지는 세계 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