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오페라 작곡가/독일-오스트리아

페르디난트 아우구스트 카우어(Ferdinand August Kauer)

정준극 2013. 5. 28. 14:25

페르디난트 아우구스트 카우어(Ferdinand August Kauer)

19세기초 비엔나의 다재다능한 징슈필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페르디난트 카우어

 

비엔나가 제국의 수도이며 문화와 예술의 센터로서 역할을 하자 제국에 속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성공을 이루기 위해 비엔나로 왔다. 페르디난트 카우어(Ferdinand August Kauer: 1751-1831)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모라비아의 츠나임(Znaim) 부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카우어는 피아니스트이지만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어 약 200 편의 오페라와 징슈필을 작곡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어에 의한 오페라보다도 독일어를 사용한 징슈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오늘날 다른 모든 징슈필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징슈필이 공연되는 경우는 뱔로 없어서 그의 작품들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쉽지가 않다.

 

카우어는 고향 마을인 츠나임과 모라비아의 티르나우(Tyrnau) 그리고 그 후에는 비엔나에서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했고 비엔나에서의 공부가 끝나자 1777년경부터 비엔나에 정착하였다. 그는 1781년에 칼 폰 마리넬리(Karl von Marinelli)가 새로 조직한 오페라단의 오케스트라 리더로서 지휘도 맡았다. 그는 이듬해인 1782년부터 이 오페라단을 위해 오페라와 징슈필, 그리고 연극의 극음악과 노래들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대본은 주로 그 오페라단의 전속대본가인 칼 프리드리히 헨슬러(Karl Friedrich Hensler: 1759-1825)의 대본을 이용했다. 무대감독이기도 했던 칼 프리드리히 헨슬러는 오페라와 징슈필의 대본 이외에도 알트 비너 폭스 테아터(Alt-Wiener Volks-theater)의 극본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알트 비너 폭스 테아터는 무대작품의 한 장르로서 요즘 말하는 버라이어티 쇼와 비슷한 공연을 말한다. 카우어의 첫 성공작은 1796-97년에 완성한 Das Faustrecht in Thüringen(튀링겐 정글의 법)이었다. 이 작품은 초연 이후 상당한 갈채를 받았으나 그로부터 2년 후에 나온 Das Donauweibchen(도나우 여인) 때문에 슬며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카우어는 1790년대에 비엔나에서 징슈필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모차르트가 1791년에 세상을 떠난 후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카우어는 레오폴드슈타트극장(Theater in der Leopoldstadt)와 요제프슈타트극장(Theater in der Josefstadt)의 카펠마이스터(지휘자)를 맡았으며 또한 그라츠의 오페라극장의 지휘도 맡았다. 그는 레오폴드슈타트극장이 운영하는 음악학교를 주도적으로 운영하였다. 그는 또한 바이올린, 플륫, 피아노 연주와 성악에 대한 교본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1830년에 도나우가 범람하는 대홍수가 나서 카우어의 모든 재산을 집어 삼켰다. 그의 스코어들도 모두 물에 떠내려갔다. 그는 어쩔수 없이 레오폴드슈타트극장의 제2바이올린 단원으로 일하다가 1년 후에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카우어는 약 200 편의 오페라와 징슈필을 작곡했다. 로맨틱 오페라인 Das Donauweibchen(도나우 여인)은 19세기 초에 비엔나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었다. 이 오페라는 러시아에서 Lesta, dneprovskaya rusalka(레스타, 드네프로브스카야 루살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어 인기를 끌었다. 어찌나 인기를 끌었던지 두 명의 작곡가들이 후편을 작곡했다. 하나는 러시아 이민자로서 베니스 시민이 되어 활동하던 카테리노 카보스(Catterino Cavos)였으며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스테판 다비도프(Stepan Davidov: 1777-1825)였다. 카우어는 거의 200편에 이르는 미사곡, 실내악, 극음악 등을 작곡했다. 12 Neue Ungarische Tänze(12곡의 새로운 헝가리 무곡)은 당시 많은 작곡가들이 그랬던 것 처럼 유랑집시 악단의 음악을 듣고 작곡한 것이다. 그는 1810년 경에 Sei variazioni 라는 곡에 실로폰을 도입하였다. 그 후로 유럽의 음악에서 실로폰이 오케스트라의 정규 악기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음악계는 카우어의 음악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어서 오늘날에도 사랑을 받을수 있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자꾸 잊혀져 가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페르디난트 아우구스트 카우어의 무대작품 수첩]: 모두 레오폴드슈타트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으며 마지막 2편의 Posse 만이 요제프슈타트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카우어의 '소나타 밀리테르'(Sonata militaire)는 요제프 하이든의 '소나타 D 장조'(Hob. XVI: D1)로 잘못 알려져 있다. 카우어의 무대작품들을 보면 여러 장르의 것임을 알수 있다. Kinder-operette, Operette, Singspiel, Schauspiel mit Musik, Romantische-komisches Volksmarchen, Travestiretes Singspiel, Zauberoper, Posse, Lustspiel, Karikatur 등등이다. 오페라의 발전과정을 볼수 있는 좋은 케이스이다.

 

● Der Streit zwischen dem Zauberer Scionco und der Fee Galantina(마법사 스키온토와 요정 갈란티나의 다툼). 기계장치와 음악으로 구성한 코미디. 3막. 1784. 레오폴드슈타트 극장 (일명 Kasperl beibt Kasperl) ● Der unschuldige Betrug(어리숙한 사기). 어린이 오페레타. 1막. 1790. ● Bastien und Bastienne(바스티엔과 바스티엔느). 오페레타. 1790. ● Der Serenade(세레나데 또는 Der gefoppte Alte <놀림받은 노인>). 징슈필. 2막 1792 ● Das Faustrecht in Thüringen part 1(튀링겐 정글의 법 파트 1). 샤우슈필. 4막. 칼 프리드리히 헨슬러 대본. 1976 ● 〃part 2. 1796 ● 〃part 3. 1797 ● Das Donauweibchen part 1(도나우 여인  파트 1). 로맨틱 코믹 민속동화. 3막. 1798 〃part 2. 1798 ● Die Löwenritter(사자 기사). 샤우슈필. 1799  ● Das Sternenmädchen im Meidlinger Walde(마이들링 숲의 별소녀). 로맨틱 코믹 민속동화. 3막. L. Huber 대본. 1801 ● Telemach Prinz von Ithaca(이타카의 왕자 텔레마흐). 코믹 징슈필. 3막. 1801 ● Philibert und Kaseprl(필리베르트와 카스페를 또는 Weiber sind getruerer als Männer<남편처럼 진실된 부인들>). 차우버오퍼(Zauberoper). 3막. 1804 ● Faschingswehen(사육제 후유증). 루스트슈필(Lustspiel). 3막. J.F. Kringsteiner 대본. 1805 ● Die Kreutzerkomödie(크로이처코미디). 포세(Posse). 3막. 1805 ● Der travestierte Telemach(코믹한 텔레마흐). 카리카투르(Karikatur). 3막. Joachim Perinet 대본. 1805 ● Heinrich der Stolze, Herzog von Sachsen(작센의 영주 막강한 하인리히). 샤우슈필. 3막 J. A. Gleich 대본. 1806 ● Orpheus und Euridice(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또는 So geht es im Olympus zu<올림푸스에서는 이런 일이>). 신화적 카리카투르. 2막. K. Meisl 대본. 1813 ● Antonius und Cleopatra(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포세. 1막. M. F. Perth 대본. 1814. 요제프슈타트극장 ● Die Musikanten am Hohen Markt(호엔마르크트의 음악가). 포세. 3막. J.A. Gleich 대본. 1815. 요제프슈타트극장

 

 

알트 비너 폭스 테아터(Alt-Wiener Volks-theater)에 대하여.

 

알트 비너 폭스코뫼디(Alt-Wiener Volkskomödie)라고도 부른다. 19세기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했던 극장 공연형태의 하나이다. 바로크시대의 한스부르스트(Hanswurst)에서 발전한 것으로 요제프 알로이스 글라이히(Josef Alois Gleich)의 대본으로 된 작품이 대부분이 그렇다. 이밖에도 칼 마이슬(Karl Meisl)과 아돌프 보이에를(Adolf Bäuerle)의 작품도 그러하다. 비엔나에서는 1848년 3월 혁명 이후 차우버슈필과 포세(Pssse)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중심되는 작가는 페르디난트 라이문트(Ferdinand Raimund)와 요한 네스트로이(Johann Nestroy)이다. 한스부르스트는 16세기에 독일어권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종의 슬랩스틱형 코믹한 무언극이다.

 

요한 네스트로이의 '탈리스만'(Der Talisman)의 한 장면. 알테 비너 폭스테아터의 장르에 속하는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