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바리톤 대분석

바리테너(Baritenor)

정준극 2014. 6. 21. 12:28

바리테너(Baritenor)는 또 뭐길래?

바리톤과 테너의 합성어

 

베이스 바리톤이라는 용어가 있더니 이번에는 바리테너라는 용어가 있어서 무언지 소개코자 한다. 간단히 말해서 바리톤과 테너의 중간쯤 되는 사람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바리테노레(Baritenore)라고 부른다. 음악 용어는 영어보다는 이탈리아어로 말하면 그럴듯해서 은근히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많다. 바리테너는 기본적으로는 테너이지만 바리톤 처럼 낮은 소리도 낼수 있기 때문에 거의 바리톤처럼 노래를 부르는 테너를 말한다. 그런데 19세기 초에는 오페라 성악가들을 분류하면서 바리테너라는 그룹을 테너보다는 바리톤에 더 가깝게 분류하였다. 그러므로 바리톤으로서 테너 음역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바리테너라고 불렀다. 그런데 요즘은 테너쪽으로 밀어 붙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테너로서 바리톤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테너바리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바리테너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바리톤에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베이스와 바리톤의 중간을 베이스 바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바리테너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한 역할 했다. 특히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인기를 끌었다. 로시니의 오페라가 요구하는 바리테너는 저음에서는 어둡과 무거운 소리를 낼수 있어야 하고 고음에서는 마치 종을 울리듯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낼수 있어야 했다. 게다가 콜로라투라 테크닉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어야 했다. 로시니는 이러한 바리테너를 그의 오페라에서 비교적 나이가 많은 귀족신분의 사람들을 표현할 때에 사용했다. 그런 바리테너는 젊고 열정적인 연인을 표현하는 테노레 디 그라치아(tenore di grazia) 또는 테노레 콘트랄티노(tenore contraltino)의 가볍고 높은 소리와는 대조적이었다. 테노레 디 그라치아의 예를 들어보면 로시니의 '오텔로'에서 베로나의 신사로서 데스데모나를 연모하고 있는 로드리고이다. 로시니는 오텔로를 바리톤이 맡도록 작곡했지만 로드리고는 테노레 디 그라치아로 작곡했다. 로시니의 또 다른 오페라인 '리키아르도와 초라이데'(Ricciarde e Zoraide: 1818)에 나오는 누비아 왕 아고란테(Agorante)와 기독교 기사인 리키아르도의 경우도 바리테너의 범주에 속한다. 아고란테는 바리톤으로 작곡되었지만 리키아르도는 테노레 디 그라치아로 작곡되었다.

 

폴란드가 낳은 위대한 테너인 장 드 레츠케(1850-1925).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트리스탄. 장 드 레츠케는 원래 바리톤으로 훈련을 받았으나 나중에 테너가 되었다.

 

그런데 로시니의 전유물로 생각되던 바리테너는 사실상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다만, 공식적으로 바리테너라는 용어를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예를 들면 오페라의 초기에 자코포 페리(Jacopo Peri)의 '에우리디체'(Euridice: 1600)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의 '율리세의 조국 귀환'(Il ritorno d'Ulisse in patria: 1640)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오늘날 테너와 바리톤의 음역을 모두 소화할수 있는 바리테너였다. 그런데 또 다른 의견도 있다. 영국의 음악학자인 존 포터(John Potter)는 오페라의 초기에 활동했던 비르투오소 테너들이 실은 베이스의 음역도 커버할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바리 테너가 아니라 테너 베이스(tenor-bass)라고 불러야 한다는 얘기였다. 존 포터는 2009년에 History of a Voice라는 저서를 내놓은바 있다. 그의 주장을 결론만 말하자면, 17세기에는 테너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베이스의 역할도 맡아 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7세기에 활동했던 명테너들인 줄리오 카치니(iulio Caccini), 주세피노 첸치(Giuseppino Cenci), 조반니 도메니코 풀리아스키(Giovanni Domenico Puliaschi), 프란체스코 라시(Francesco Rasi)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라시는 1607년에 초연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L'Orfeo)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오늘날 테너 안소니 롤프 존슨(Anthony Rolfe Johnson)등이 맡고 있기는 하지만 바리톤인 사이몬 킨리사이드(Simon Keenlyside)도 오르페오를 맡았다. 음악학자인 존 포터에 의하면 17세기에 테너들은 마치 연설하는 스타일로 노래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존 포터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당시의 테너들이 적어 놓은 자료들을 보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후원자인 빈첸조 주스티니아니(Vincenzo Giustiniani)가 저술한 Discorso, sopra la musica(1628)에 그렇게 설명되어 있다.

 

당대의 테너 프란체스코 라시(1574-1621).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러다가 카스트라토가 인기를 끌게 되자 바리테너들은 어쩔수 없이 카스트라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잠시 물러나 있어야 했다. 카스트라토가 주인공을 맡을 경우에(17세기 말과 18세기 초반에는 대부분 오페라가 그랬지만) 바리테너들은 평범한 역할을 맡거나 그나마도 없으면 형편 없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맡기 싫어하는 악한, 괴기한 사람, 노인, 심지어는 여자의 역할까지도 바리테너들이 차지할수 있는 몫이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대체적으로 중기 및 후기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들은 음성이 매우 높고 이국적이기기까지 한 카스트라토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예를 들면 비발디의 '다리오의 대관식'(L'incoronazione di Dario)에서 주인공인 다리오 왕을 카스트라토가 아닌 테너가 맡도록 한 것이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도 오페라의 주인공은 주로 카스트라토 또는 테너였다. 물론 프랑스에도 바리테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별로 활용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테너라는 이탈리아 용어가 등장하기 전에 테이유(Taille) 또는 오트 테이유(Haute-taille)라고 해서 바리테너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다. 프랑스어에서 Taille는 '키가 크다'는 등의 의미이다. 그나마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와는 달리 테이유를 주역으로 삼는 경우가 좀 더 많았다. 그러다가 프랑스의 대중들은 카스트라토를 싫어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남녀간의 사랑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에서 거세한 남자들이 여자처럼 소리를 질러대니 은근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는 카스트라토 대신에 오트 콩트르(Hautes-contre)라고 하는 높은 소리를 내는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특히 남녀간의 러브 스토리가 나오는 오페라에서는 카스트라토 대신에 오트 콩트르가 당연직이었다. 그런 전통이 남아서인지 옛날에 테이유가 나오는 오페라를 현대에 공연코바 하면 그 역할은 주로 바리톤들이 맡고 있다.

 

당대의 카스트라토 카를로 스칼치. 1737년 경

 

오늘날 음악교육자들은 젊은 남성으로서 음역이 C4에서 F4에 이르는 사람을 바리테너로서 분류하고 있다. 말하자면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연적이던 또는 교육을 통해서든 나중에 대체로 하이 바리톤이 되었다. 하이 바리톤은 예를 들어 '플레아스와 멜리상드'에서 플레아스의 역할을 맡기에 적합하였다. 독일에서는 이렇듯 나중에 하이 바리톤으로 발전하는 사람들을 슈필테노르(Spieltenors)라고 불렀다. 슈필테노르는 예를 들어서 '후궁에서의 도주'에서 페드리요로 적합했다. 슈필테노르는 헬덴테노르(Heldentenors)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발퀴레'의 지그문트 또는 '휘델리오'의 플로레스탄을 맡기에 적합하였다. 이런 타입의 테너 주인공들은 아무리 테너지만 사실상 너무 높은 음을 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의 음성은 대체로 저음에 중점을 둔 바리톤적이 것에 집중되었다. 나중에 드라마틱 테너 또는 헬덴 테너 레퍼토리를 부르는 테너 중에는 처음에 바리톤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장 드 레츠케(Jean de Reszke), 조반니 체나텔로(Giovanni Zenatello), 레나토 차넬리(Renato Zanelli), 로리츠 멜히오르(Lauritz Melchior), 에릭 슈메데스(Erik Schmedes), 그리고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를 들수 있다. 도밍고는 근자에 다시 바리톤으로 돌아왔다. '시몬 보카네그라'의 타이틀 롤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

 

플라시도 도밍고는 성악가로서의 첫 경력을 바리톤으로 시작하였다가 테너로 활동하였고 지금은 다시 바리톤으로 활동하고 있는 케이스이다. LA 오페라의 '시몬 보카네그라'에서 타이틀 롤인 바리톤 역을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