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에피소드

집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들

정준극 2014. 6. 22. 22:24

집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들

또는 집시가 등장하는 오페라들

 

'일 트로바토레'의 피날레.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루나 백작에게 저기 처형을 당한 저 남자가 당신의 동생이라고 밝히는 장면. 지하 감옥의 한쪽에는 레오노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쓰러져 있다.

 

집시가 등장하는 오페라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는 집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오페라들도 있다. 말 안해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비제의 '카르멘'이 대표적이다. 본란에서는 집시의 역사적인 유래와 세계적인 분포 등에 대하여는 설명하지는 않고자 한다. 그건 필자의 영역 밖이기 때문이다. 집시가 등장하는 대표적인 오페라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만 설명코자 한다. 다만, 용어에 대하여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집시는 무엇이고 로마는 무엇인지 등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가 말하는 집시는 로마니(Romani)가 올바른 표현이다. 로마니라는 단어는 인도어의 롬(Rom)에서 변형된 것으로 롬은 인간이라는 뜻이다. 롬이라는 단어로부터 남자는 로마노(Romano)라고 불렀고 여자는 로마니(Romani)라고 불렀다. 집시의 세계에서는 여성이 가장을 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집시라고 하면 로마니를 연상하게 된다. 로마니라는 단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롬 또는 로마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 사람들, 특히 동구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는 저 멀리 인도 북부에서 14세기 경에 유럽으로 흘러 들어왔다는 민족을 로마(Roma)라고 불렀다. 로마라고 해서 혹시 이탈리아의 로마를 생각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것과 집시라는 뜻의 로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한편, 중부 유럽, 특히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집시를 신티(Sinti)라고 부른다. 아마 이 단어는 신디(Sindhi)에서 나오지 않았느냐는 짐작이다. Sindhi는 남아시아의 신드(Sindh)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이다. 신드는 오늘날 파키스탄의 서남쪽 아라비아해에 면한 지역을 말한다. 그리하여 유럽의 집시들이 남아시아의 신드에서 오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으로 집시들을 신디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단어가 발전하여 신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추측일 뿐, 근거는 없다.

 

오늘날 세계적으로는 로마니라는 단어 대신에 집시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다. 집시는 영어이다. 영어가 세계어가 되다보니 로마 또는 로마니라는 단어는 슬며시 사라지고 대신 영국에서 쓰기 시작한 집사라는 단어가 판을 치게 되었다. 영국 사람들은 로마니들이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처음에서는 로마니들을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 즉 이집시안(Egyptian)이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집시안(Gipcyan)이 되었고 다시 집시(Gypsy: Gipsy)가 되었다는 것이다. 웨일즈에서는 로마니를 케일(Kale)이라고 부른다. 웨일즈에는 로마니가 18세기 초에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째서 케일이라고 부르는지는 확실치 않다. 영국(주로 웨일즈)의 케일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잉들랜드, 스코트랜드, 그리고 저 멀리 스웨덴과 핀랜드까지 흩어져서 살기 시작했다. 웨일즈로부터 시작해서 흩어져 살고 있는 집시들을 스페인에서는 칼레(Cale)라고 부르며 핀랜드에서는 칼레(Kaale)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집시를 지탄(Gitan)이라고 부르지만 독일과의 접경인 알사스 지방 등지에서는 마누셰(Manouche: Manush)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누셰(또는 마누쉬)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지탄은 아마도 친가로(Zingaro)에서 발전된 말이 아니겠느냐는 짐작이다. 친가로는 이탈리아어로서 동방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독일어의 치고이너(Zigeuner)도 친가로에서 나온 말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집시 남작'의 오리지널 타이틀은 '치고이너 바론'(Zigeuner Baron)이다. 집시들을 일컬을 때에 보헤미안(Bohemian)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보헤미아는 지금의 체코공화국에 있는 지역의 이름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의 사람들은 집시들이 보헤미아에서 살다가 왔다고 생각해서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직접 보헤미아 지방에서 살다가 오지 않았다고 해도 적어도 보헤미아를 통해서 서유럽으로 유입해 들어왔다고 생각해서 보헤미안이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주장도 있다. 오늘날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의 뜻은 자유분방하게 사는 사람들, 주로 예술인들을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Roma-Romani-Romany-Rommany-Bohemian-Gipsy-Gypsy-Gitan-Zingaro-Manouche-Manush-Romanisal-Romanichal-Domba-Lyuli-Lom-Yeniche 등등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집시와 관련된 오페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비제의 카르멘(Carmen)이다. 카르멘은 전형적인 집시 여인이다. 사랑은 길들이지 않은 들새와 같다고 말하는 여인이다. 기회만 있으면 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카르멘은 처음에 세빌리아의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공이었다. 그러다가 동료직원과 싸우다가 체포되었으나 돈 호세가 그만 카르멘의 매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감옥에서 그를 풀어준다. 카르멘은 산속의 밀수꾼들과 함께 지내다가 세빌리아 교외의 주점에서 투우사인 에스카미요를 만나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돈 호세의 질투의 칼날에 그만 목숨을 잃는 비운의 여인이다. 오페라 '카르멘'에는 집시 풍의 음악들이 상당히 나온다. 카르멘의 하바네라도 그렇고 세귀디야도 그렇다. 프라스키타, 메르세데스 등 카르멘의 친구들도 집시들이다. 오페라에서 집시 여인들이 카드 점을 치는 장면은 유명하다. 카르멘의 원작은 프로스퍼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동명 소설이다. 오페라 '카르멘'은 1875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사족: Carmen 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인가? 두가지 주장이 있다. 하나는 라틴어에 뿌리를 둔 것으로 '노래' 또는 '시'를 뜻하는 말이 발전해서 카르멘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영어의 charm(매력)이라는 단어도 라틴어의 카르멘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다른 주장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에 뿌리를 둔 것으로 카르멜(Carmel)이란 단어의 축소형 또는 애칭이라는 것이다. 카르멘이란 단어는 히브리어에 뿌리를 둔 것으로 '하나님의 포도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영어권의 나라에서는 카르멘을 남자와 여자의 이름으로 공동으로 사용하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는 여자의 이름으로만 사용한다.

 

카르멘 역의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란차. 런던 코벤트 가든. 2008.

 

도니체티가 '집시 여인'(La Zingara)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오페라 세미세리아이다. '집시 여인'은 도니체티가 나폴리를 위해 처음으로 작곡한 오페라이다. 1822년 나폴리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초연되었다. 대본은 루이 샤를르 케이그니에즈(Louis-Charles Caigniez)의 '작은 집시 여인'(La petite bohemienne)을 원작으로 삼았다. 돈 라누치오가 돈 세바스티아노를 감옥에 가둔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이다. 돈 라누치오의 딸인 이네스는 페란도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돈 라누치오는 딸을 돈 세바스티아노의 조카인 안토니오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집시 소녀인 아르질라가 페란도와 이네스를 맺어주고 아울러 감옥에 갇혀 있는 돈 세바스티아노의 누명을 벗겨주어 풀려나게 한다. 돈 세바스티아노는 아르질라의 아버지로 밝혀진다. 이처럼 집시와 관련된 스토리를 보면 대체로 어릴 때에 우연히 부모와 헤어져서 집시들과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부모를 되찾게 된다는 내용이 지배적이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집시 여인'에서 아르질라. 소프라노 지아치타 카노니아. 1844년.

                                             

집시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들어간 오페라(오페레타)로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 남작'(Der Zigeuner Baron)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로서는 '박쥐'에 이어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시기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일 당시이다. 집시들도 전쟁에 참가하여 국가에 봉사하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수 있었다. 주인공인 바린카이도 제국의 군인으로서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남작의 지위도 찾고 재물도 얻으며 아름다운 아가씨와 자피와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집시 남작'은 1885년 비엔나의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프란츠 레하르의 '메리 위도우', 그리고 베토벤의 '휘델리오'도 이 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집시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또 다른 오페라는 영국의 마이클 발프(Michale Balfe)가 작곡한 '보헤미아 소녀'(The Bohemian Girl)이다. 영어로는 Bohemian Girl 이지만 프랑스어로는 La Bohème 이며 이탈리아어로는 La Zingara 이다. 오스트리아와 폴란드가 전쟁을 하던 때의 일이다. 아른하임 백작의 어린 딸 아를리네가 집시에게 납치된다. 옛날에는 집시들이 어린아이들을 납치해서 서커스나 유랑극단의 멤버로 삼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폴란드 장교인 타데우스가 우연히 아를리네를 위기에서 구출해 준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나중에 아른하임 백작은 집시 소녀인 아를리네가 자기의 딸인 것을 알게 된다. 타데우스는 적국의 군인이지만 폴란드의 귀족인 것도 밝혀진다. 아를리네와 타데우스가 행복하게 맺어진다는 내용이다. '보헤미아 소녀'는 1834년 런던에서 초연되었다.

 

발프의 '보헤미아 소녀' 포스터

 

오페레타의 주인공으로 집시가 등장하는 경우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 남작' 이외에도 엠메리히 칼만(Emmerich 또는 Imre Kálmán)의 '집시 프리마'(Der Zigeunerprimas)와 '차르다스 공주'(Die Csárdásfürstin), 그리고 프란츠 레하르의 '집시의 사랑'(Zigeunerliebe) 등이 있다. '집시 프리마'는 1914년 뉴욕에서 공연되었을 때에는 '사리'(Sari)라는 제목이었다. 오페레타 '집시 프리마'는 1912년 비엔나의 요한 슈트라우스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유명한 집시 바이올리니스트인 랄리 라츠는 세번이나 결혼한 경력이 있으니 지금은 결혼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의 딸 사리가 대가족을 보살피고 있다. 막내 아들인 라치도 역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아버지 라츠는 조카인 율리스카와 재혼하고 싶어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의 반려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런데 율리스카는 그의 아들인 라치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아버지 라츠가 아들 라치에게 바이올린 연주가 형편없다고 비난할수록 라치의 율리스카에 대한 사랑은 더욱 굳어진다. 결국 라치는 집을 나간다. 얼마후 아버지와 아들은 파리에서 만난다. 아버지 라츠에게는 이리나 백작부인이라는 팬이 있다. 이리나의 중재로 라치와 율리스카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리나의 손자가 사리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 남작'. 라이프치히

 

'차르다스 공주'는 1915년 역시 비엔나의 요한 슈트라우스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몇년 후인 1921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에는 '집시 공주'(The Gypsy Princess)라는 제목이었다. '차르다스 공주'는 1차 대전 이후 어려웠던 시절에 헝가리에서 온 집시 공연팀이 미국으로 순회공연을 떠나는 내용이지만 실은 젊은 연인들이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것을 줄거리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프란츠 레하르의 '집시의 사랑'(헝가리어로 Cigányszerelem)은 1910년 비엔나의 카를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헝가리 귀족의 딸인 조리카는 젊은 귀족인 요넬과 약혼한 사이이다. 그런데 조리카는 과연 자기가 요넬을 사랑하는지 확실치 않다. 어느덧 조리카는 멋쟁이 집시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치를 좋아하게 된다. 이제 조리카는 며칠 후에 요넬과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 조리카는 신부가 체르나의 강물을 마시면 결혼생활이 어떤지를 미리 알수 있다는 말을 믿고 강물을 마신다. 물을 마신 조리카는 잠이 들고 요치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꿈을 꾼다. 조리카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요넬이라는 확신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집시 공주'(차르다스 공주). 쾰른 무대

 

'집시'라는 타이틀의 작품이 두 개 더 있다. 하나는 독일의 크리스티안 고틀로브 네페(Christian Gottlob Neefe: 1748-1798)가 작곡한 '집시'(Die Zigeuner)이고 다른 하나는 오페라라기 보다는 뮤지컬에 더 가까운 작품으로 영국 출신의 미국 작곡가인 줄스 스타인(Jules Styne: 1905-1994)이 작곡한 '집시'(Gypsy)이다. 고틀로브 네페의 징슈필(또는 Lustspiel mit Gesang)인 '집시'(치고이너)는 1777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되었다. 줄스 스타인이 음악을 붙이고 작곡가이기도 한 스테픈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가사를 붙인 '집시'는 사실 유럽의 집시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뮤지컬 '집시'는 미국의 인기 연예인인 집시 로우스 리(Gypsy Rose Lee: 1911-1970)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시 로우스 리가 쓴 '집시: 뮤지컬 전설'(Gypsy: A Musical Fable)이라는 비망록을 바탕으로 자기의 여동생 자매가 어떻게 자랐으며 연예계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집시'라는 뜻을 가진 또 하나의 오페라로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오페라의 하나인 푸치니의 '라 보엠'(La Bohème)이다. '라 보엠'은 '집시 여인'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라 지타느(La Gitane)라고도 한다. 오페라 '라 보엠'에는 두명의 여자와 네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명의 여자는 파리의 라틴 구역에 있는 다락방에서 수를 놓아 살고 있는 루실이라는 아가씨, 그리고 파리에서 양장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돈 많은 노인네를 남친으로 삼아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는 뮤제타라는 여자이다. 네 명의 남자는 별볼일 없는 신세의 예술가들로서 로돌포는 시인이며 마르첼로는 화가이고 쇼나르는 음악가이며 콜리네는 철학자이다. 철학자가 어째서 예술인으로 간주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네 사람은 라틴 구역의 추운 다락방에서 기거하며 낭만만은 잊지 않고 살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오페라의 타이틀인 '라 보엠'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스토리를 보면 미미라고 불리는 루실이 맞는 것 같은데 실은 뮤제타를 의미한다는 얘기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라 보엠'이라는 것이 집시처럼 생활하고 있는 모두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혹시 '라 보엠'이라고 해서 저 멀리 보헤미아(지금의 체코공화국의 지역)에서 살다가 뜻한바 있어서 파리로 온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이 비록 가난하지만 집시처럼 예술을 좋아하고 편한대로 살기 때문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에서 뮤제타

 

집시를 주인공으로 삼은 또 다른 오페라로는 폴란드의 이그나시 얀 파데레브스키가 작곡한 '만루'(Manru)라는 작품과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한 '알레코'(Aleko)라는 작품이 있다. '만루'(Manru)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이며 정치외교관으로 유명한 이그나시 얀 파데레브스키(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의 3막 오페라이다. 파데레브스키는 한때 폴란드의 수상 겸 외무장관까지 지냈으니 음악가로서 그만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만루'는 1901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세계 초연을 가졌다. 독일어 대본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에는 르보브에서 폴란드어에 의한 폴란드 초연이 있었다. 바르샤바 초연은 1902년 5월 바르샤바 대극장(테아트르 비엘키)에서였다. 미국 초연은 바르샤바 초연보다도 석달 앞선 1902년 2월 14일이었다. 폴란드 출신의 테너인 알렉산더 폰 반드로브스키(Alexander von Bandrowski)가 타이틀 롤을 맡은 메트로폴리탄 데뷔 공연이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 공연의 지휘는 작곡자인 파데레브스키와 친분이 두터운 발터 담로슈(Walter Damrosch)가 맡았다. '만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메트로에서 공연된 유일한 폴란드 오페라이다.

 

'만루'의 무대는 갈리치아와 헝가리 사이에 있는 타트라 산맥이다. 산간 지대의 마을에 사는 헤드비히는 하나 뿐인 예쁜 딸 울라나가 어느날 집시인 만루를 따라서 몰래 가출하자 비탄에 젖어 있다. 얼마후 가출했던 울라나가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다. 만루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자꾸 울라나를 멀리하기 때문에 속이 상해서 집을 찾아온 것이다. 울라나가 돌아 왔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당장 달려와서 울라나에게 만일 만루라는 집시 청년을 앞으로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그동안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고 용서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울라나는 그럴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만루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는 사이에 만루는 다른 집시 여인을 만나서 아예 멀리 사라진다. 그 소식을 들은 울리나는 슬픔에 강물로 몸을 던진다. 집시 무리의 우두머리인 오로스가 만루를 찾아내어 그를 저 아래 깊은 계곡으로 던져버린다는 내용이다. '알레코'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 1873-1943)의 오페라로서 1892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알레코는 도시에 사는 러시아 청년이다. 알레코는 답답한 도시 생활이 싫어서 산속에 살고 있는 집시 캠프를 찾아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다. 알레코는 쳄피라라는 집시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얼마후 쳄피라는 알레코에게 싫증을 느껴서 다른 젊은 집시 남자와 지내기 시작한다. 질투심에 불탄 알레코는 참다 못해서 쳄피라와 그 집시 청년을 모두 살해한다. 집시들은 알레코가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다만 알레코를 집시 캠프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는 내용이다.

 

파데레브스키의 '만루'

 

베르디는 집시에 대하여 상당한 연민과 동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베르디의 오페라에는 집시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 트로바토레'와 '운명의 힘'이다. 그런가 하면 '라 트라비아타'의 2막에서는 파리에 있는 어떤 살롱에서 집시들이 춤을 추며 여흥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온다. '일 트로바토레'는 1853년 로마의 테아트로 아폴로에서 초연을 가졌다. 무대는 15세기 스페인의 비스케이와 아라곤이다. 어떤 집시 노파가 무고하게 누명을 쓰고 선대 루나 백작에 의해 화형에 처해진다. 집시 노파는 불길 속에서 죽어가면서 딸 아주체나에게 복수를 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주체나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백작의 성에 몰래 들어가서 백작의 작은 아들을 납치하여 타오르는 불길 속에 던진다. 그러나 잘못해서 자기가 데리고 간 자기의 진짜 아들을 불길 속에 던진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그로부터 아주체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백작의 아들을 자기의 친아들처럼 기른다. 만리코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만리코는 늠름한 집시 청년으로 자란다. 만리코는 음유시인이 되어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면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는 중에 레오노라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2막에서는 아침이 밝아오자 아주체나와 같은 마을에서 살고 있는 집시들이 새날을 맞아 열심히 일하자는 내용의 합창을 한다. 유명한 '대장간의 합창'이다. 이처럼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음유시인)는 집시와 깊은 관계가 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에서 집시들의 대장간의 합창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도 집시들이 등장한다.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은 1862년 제정러시아의 생페터스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제1막의 무대는 어느 시골의 주막집이다. 레오노라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알바로와의 결혼을  반대하자 알바로와 함께 몰래 멀리 도망가기로 한다. 그러나 알바로는 실수로 레오노라의 아버지를 권총으로 죽인다. 알바로와 레오노라는 카를로 백작이 보낸 병사들의 추격을 피해 도피한다. 알바로와 레오노라는 함께 있으면 추격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서로 헤어지기로 한다.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가 죽은 것으로 믿는다. 레오노라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고 남자로 변장한 후 수도원을 찾아 나선다. 한편, 에로노라의 오빠인 카를로는 대학생으로 가장하고 알바로와 레오노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두 사람을 찾아나선다. 저녁이 되자 집시들이 주막에 나타나서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 중에서 젊은 집시 여인인 프레지오실라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실은 카를로)의 손금을 보아주겠다고 말한다. 집시 여인은 카를로가 전쟁에 나갈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프레지오실라가 부르는 노래가 Al suon del tamburo(작은 북이 울릴때)라는 사랑스러운 곡이다. 이렇듯 '운명의 힘'에서도 집시들의 운명적인 예언이 한 몫을 한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서 집시들의 노래

 

괴테가의 소설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Lehrjahre)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앙브루아즈 토마(Ambroise Thomas: 1811-1896)가 '미뇽'(Mignon)이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미뇽은 집시 아가씨의 이름이다. 미뇽은 집시들로 구성된 유랑극단의 멤버이다. 1막의 무대는 독일의 어떤 작은 마을에 있는 여관 안뜰이다. 손님들을 위해서 방랑하는 음유시인인 로타리오가 노래를 부르고 집시들이 춤을 춘다. 유랑극단의 단장인 야르노는 어린 미뇽이 몸이 아파서 춤을 못추겠다고 하자 어서 춤을 추라고 하면서 회초리로 때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늙은 로타리오와 젊은 학생 빌헬름이 야르노를 말린다. 미뇽이 고마워하면서 들판에서 꺾은 꽃로 만든 작은 부케를 로타리오와 빌헬름에게 준다. 미뇽은 빌헬름에게 어릴 때에 집시들에게 잡혀와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살고 있다고 얘기해 준다. 그때 부르는 미뇽의 아리아가 유명한 Connais-tu le pays(그대는 아는가 저 남쪽 나라를)이다. 미뇽이 식탁 위에 계란들을 늘어 놓고 추는 춤은 역시 집시 스타일이다. 빌헬름은 어느덧 미뇽을 사랑하게 된다. 그후 로타리오는 기억이 되살아나서 성주인 것으로 밝혀지고 미뇽은 로타리오가 어릴 때에 잃었던 딸인 것으로 밝혀진다. 해피엔딩이다.

 

토마의 '미뇽'의 피날레 장면

 

스위스의 현대 작곡가인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의 3막 오페라인 '오르페의 슬픔'(Les malheurs d'Orphée)에서 여주인공인 외리디스(Euridice)는 집시 처녀로 설정되어 있다. 반면, 오르페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평범한 농부로 설정되어 있다. 오르페에게는 다치거나 병든 동물들을 고치는 신통한 능력이 있다. 오르페는 집시처녀인 외리디스를 사랑한다. 하지만 집시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오르페와 집시처녀의 사랑을 반대한다. 두 사람은 가족과 마을을 떠나 먼 곳으로 도망가기로 한다. 산속에서는 오르페의 친구들인 동물들이 외리디스를 따듯하게 맞이한다. 오르페와 외리디스는 행복하다. 얼마후 외리디스가 병에 걸린다. 오르페는 동물들의 병을 고칠수는 있지만 외리디스에 대하여는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다. 결국 외리디스가 숨을 거둔다. 오르페는 힘없이 마을로 돌아온다. 외리드스의 자매들이 오르페에게 외리디스를 죽게 만들었다고 하면 온갖 비난을 다 퍼붓는다. 그중에서 외리디스의 쌍둥이 여동생이 가장 격렬하여 결국 오르페를 칼로 찌른다. 오르페는 죽어가면서 환상을 통해 외리디스와 다시 결합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이 오페라의 줄거리이다.

 

'오르페의 슬픔'

 

조르즈 비제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거의 15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물론 '카르멘'이 대표적이며 다음은 아마 '진주잡이'일 것이다. 나머지들은 간단한 오페라들이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 '퍼스의 예쁜 아가씨'(La jolie fille de Perth: The Fair Maid of Perth)라는 것이 있다. 1867년에 파리의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초연된 4막의 오페라이다. 이 오페라는 월터 스콧의 소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무대도 스코틀랜드의 고도인 퍼스이다. 시기는 14세기이다. 당시에 이미 집시들이 스코틀랜드에도 와서 살았던 모양이다. 마브라는 이름의 집시 여왕이 사랑때문에 복잡하게 얽힌 퍼스 사람들의 사연들을 풀어준다는 내용이다. 성 발렌타인 데이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보헤미아 출신인 스메타나가 작곡한 오페라 '팔려간 신부'(Prodaná Nevesta)에도 집시 아가씨가 등장한다. 순회 서커스단에서 춤을 추고 묘기를 부리는 에스메랄다라는 아가씨이다. 지주의 아들인 바세크는 소작인의 딸인 마렌카와 결혼키로 되어 있다. 마렌카는 신분을 잘 모르는 예니크라는 청년 농부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런데 지주의 아들 바세크를 좋아하는 아가씨가 서커스에 있는 집시인 에스메랄다이다. 우여곡절 끝에 모두들 해피엔딩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에스메랄다라고 하니까 빅토르 위고의 걸작 '파리의 노트르 담'(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집시 아가씨 에스메랄다가 생각난다.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 담'은 프랑스의 여류 작곡가인 루이스 베르탱(Louise Bertin: 1805-1877)아 '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라는 제목으로 오페라를 만든 것이 있다. 물론, 집시 아가씨 에스메랄다의 집시 춤이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 담'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 874-1939)가 오페라를 작곡한 것이 있다. 이번에는 타이틀을 '노트르 담'이라고만 붙였다. 슈미트의 오페라에 나오는 간주곡은 너무나 유명한 곡이다.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에서 집시들의 서커스 장면

 

아일랜드의 윌리엄 빈센트 월레이스(William Vincent Wallace: 1812-1865)가 프랑스의 유명작가인 아돌프 데너리(Adolphe d'Ennery) 원작인 Don Cesar de Bazan(바잔의 돈 세사르)를 바탕으로 '라 마리타나'(La Maritana)라는 타이틀의 오페라를 만들었다. 아돌프 데너리의 원작 소설은 쥘르 마스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어서 Don Cesar de Bazan(바잔의 돈 세사르)라는 오페라 코미크가 나오게 했다. 마리타나는 마드리드의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집시 아가씨이다. 마리타나라는 단어는 '결혼하다'는 뜻의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스페인의 왕인 카를로스 2세가 우연히 아름답고 노래를 잘 부르는 마리타나를 보고 마음에 둔다. 하지만 마리타나는 바잔의 돈 세사르를 사랑한다. 돈 세사르와 마리타나는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이다. 로시니의 걸작 오페라 부포인 '이탈리아의 터키인'(Il turco in Italia)의 여주인공인 자이다는 집시 여인이다. 자이다는 원래 터키왕자 셀림의 애인이었다. 그러나 셀림의 하렘에 있는 여자들이 자이다를 너무 질투하는 바람에 터키를 뛰쳐나와 나폴리로 온다. 자이다는 나폴리에서 제로니오라고 하는 멋있는 남자를 만난다. 제로니오는 물론 기혼남이다. 그런데도 자이다를 보자마자 정신을 치리지 못한다. 자이다는 나중에 제로니오가 어떻게 될지 빤히 알고 있으므로 우스워 죽겠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의 부인 휘오릴라는 나폴리에서도 알아주는 질투의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이다를 심히 사랑하는 셀림이 나폴리를 찾아와서 자이다를 만나 함께 터키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밖에도 집시가 등장하는 오페라로서는 이탈리아의 카를로 솔리바(Carlo Soliva: 1791-1853)의 오페라 '아우스트리의 집시 아가씨'(La zingaa delle Austrie), 영국의 유명한 토마스 아느(Thomas Arne: 1710-1778)의 '메이 데이: 귀여운 집시 아가씨 프레스키오사'(May-Day: The Little Gypsy Presciosa) 등이 있다.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