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에피소드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들 - 3

정준극 2014. 6. 25. 21:07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들 - 3

 

○ 이스라엘 

 

기독교의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서이며 위대한 문학서이다. 그래서인지 성서의 인물이나 사건을 주제로 삼은 오페라들이 상당히 있다. 대표적인 오페라들만 생각나는 대로 소개하면, '제루살렘'(예루살렘: 베르디), '나부코'(베르디), '삼손과 델릴라'(생 상스), '마카베우스'(루빈슈타인), '노아의 홍수'(벤자민 브리튼), '바벨탑'(루빈슈타인), '도빗과 천사'(조나단 도우브), '시바의 여왕'(칼 골드마크), '사울과 다윗'(칼 닐센), '요셉'(에티엔느 메울), '입다의 서약'(마이에르베르), '입다'(미셀 피뇰레 드 몽클레어), '다윗과 요나단'(마르크 앙투안 샤팽티에), '하기스'(카롤 치마노브스키), '이집트의 모세'(로시니), '모세와 아론'(아놀드 쇤버그), '그리스도'(루빈슈타인), '최후의 만찬'(해리슨 버트위슬),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마크 아다모) 등등이다. 애굽 총리 요셉의 이야기와 홍해를 가른 모세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포함)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들이다. 다만, '노아의 홍수'의 장소는 오늘날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접경지대에 있는 아라랏 산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주장이어서 이스라엘과는 관련이 없다고 볼수 있다. 하기야 에덴동산도 현재의 이란 타브리즈 지역이 아니겠느냐는 주장이고 보면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에 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에서 제외해야할 입장이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리날도, 아르미다 등이 등장하는 오페라들은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원작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역시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다. 이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삼은 대표적인 오페라들을 점검해 보자.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은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공통된 성지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여 만든 오페라가 없을 수 없다. 예루살렘을 주제로 삼은 오페라는 거의 모두 십자군 전쟁과 연관이 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토르쿠아토 타쏘(Torquato Tasso: 1544-1595)가 쓴 대서사시인 ‘예루살렘 해방’(La Gerusalemme liberta: Jerusalem Delivered)은 십자군전쟁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대작이어서 그것을 바탕으로 삼은 오페라들이 많이 나와 있다.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은 기독교적 주제를 지니고 있지만 호머와 비르길의 대서사시 스타일이어서 신화적이며 로맨틱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예루살렘에 대한 공성장면과 전투장면은 일리아드와 흡사하여서 호머의 서사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늘날 까지 ‘예루살렘 해방’을 테마로 한 오페라는 무려 30편 이상이나 나와 있다. 몬테베르디, 헨델, 로시니, 살리에리, 장-밥티스트 륄리, 비발디, 글룩, 드보르작 등이 타쏘의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타이틀로, 또는 '리날도', '아르미다', '탄크레디' 등의 타이틀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다만, '예루살렘 해방'이라고 해서 무대가 반드시 예루살렘인 것은 아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일수도 있고 상상 속의 장소일 수도 있다.

 

로시니의 '아르미다' 피날레.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을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이다.

 

베르디의 '제루살렘'(Jerusalem: Gerusalemme: 예루살렘)도 타소의 '예루살렘 해방'과 무관하지 않다. 오페라의 제목이 '예루살렘'(제루살렘)이라고 해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던지, 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다룬 것이라든지, 또는 마호멧의 승천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아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의 두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이다. 베르디의 '제루살렘'은 '활슈타프'처럼 코믹 오페라는 아니지만 유일한 해피 엔딩의 오페라이다. 베르디의 나머지는 모두 비극, 또 비극이다. '제루살렘'은 1847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베르디가 34세의 청년일 때였다. 툴루스 백작의 딸인 엘렌은 갸스통과 비밀리에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런데 백작은 갸스통의 아버지를 내란이 일어났을 때 죽인 일이 있어서 사실상 두 집안은 원수지간이었다. 갸스통은 만일 백작이 엘렌과의 결혼을 허락한다면 과거의 원한을 잊어버리고 백작을 용서하고 화해할수 있다고 말한다. 백작이 갸스통의 제안을 받아 들여서 사실상 엘렌과 갸스통의 결혼을 허락하자 사람들은 이제야 내전이 마침내 끝났다고 하며 축하한다. 백작과 백작의 동생인 로저는 십자군 전쟁을 위해 떠나고자 한다. 갸스통도 십자군에 합류하여 팔레스타인으로 갈 예정이다. 로저는 자기의 조카딸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엘렌을 사랑해 왔다. 그런데 형인 백작이 자기의 심정을 헤어려주지 않고 엘렌을 원수의 집안인 갸스통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하자 복수를 다짐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며 결론만 말하자면 모두들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제루살렘이 탈환된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는 것이다. 베르디의 또 다른 오페라인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I Lombardi alla Prima Crociata)도 실은 '제루살렘'의 수정본이다.

 

베르디의 '제루살렘'

베르디의 '첫 십자군의 롬바르디인'

 

베르디의 '나부코'(Nabucco)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느브갓네살 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1842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된 오페라이다. 막이 열리면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의 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자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대제사장인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라고 말한다. 바벨론의 나부코 왕이 군대를 몰고 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끌고 간다. 한편, 나부코에게는 두 딸이 있다. 아비가일과 페네나이다. 아비가일은 나부코 왕의 사생아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비가일은 아버지 나부코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여 몰아내고 대신 왕좌에 오른다. 그리고 나부코의 유일한 적자인 페네나를 축이고자 한다. 절망에 빠진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의 신인 여호와에게 기도를 드린다. 나부코는 자기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만일 히브리인들의 신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유태교로 개종하겠다고 약속한다. 나부코의 아리아가 유명한 Dio di Giuda(유태의 신이여. 성전의 제단이 다시 세워지리이다)이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부코의 정신이 돌아오고 힘이 생긴다. 나부코는 배반자를 응징하고 페네나와 히브리 포로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나부코는 바알 신상을 부셔버리라고 명령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바알 신상이 바닥으로 넘어지며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나부코는 히브리 포로들에게 이제 모두 자유롭다고 말하고 모두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한다. 아비가일은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독약을 마신다. 아비가일은 페네나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기도한 후에 숨을 거둔다. 스가랴는 나부코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며 왕중의 왕이라고 소리 높여 선포한다는 내용이다. '나부코'라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저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인 Va, pensiero(날아라 황금 날개를 타고)이다.

 

'나부코'의 한 장면

 

헝가리의 칼 골드마크(Karl Goldmark: 1830-1915: Goldmark Károly)가 구약성서 열왕기상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시바의 여왕'(Die Königin von Saba)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1875년 비엔나의 호프오퍼(현재의 슈타츠오퍼)에서 초연되었다. 성서에는 솔로몬이 지혜롭다는 명성을 들은 시바(스바)의 여왕이 그를 찾아와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지만 솔로몬이 막힘이 없이 대답하자 크게 감동하여 찬사를 보내고 가지고 온 보화를 모두 기증하고 갔다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오페라 '시바의 여왕'은 시바의 여왕, 솔로몬 왕의 신하인 아사드, 아사드와 결혼키로 한 술라미스 사이의 삼각관계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여서 성경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장소는 예루살렘과 주변의 사막지대이며 시기는 기원전 10세기 경이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러 온다고 하자 왕은 아사드를 사절로 하여 여왕을 도중에서 영접하여 안내토록 한다. 여왕을 영접하러 나간 아사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 우거진 숲에서 어떤 매력적인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져 하룻밤을 지내고 온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아사드는 왕에게 시바의 여왕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하고 어젯밤의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는 대제사장의 딸 술라미스와의 결혼은 치룰수  없다고 말한다. 그때 시바의 여왕이 왕궁으로 들어선다. 아사드는 자기와 그렇게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 여인이 바로 시바의 여왕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시바의 여왕은 아사드를 보고도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아사드는 절망 중에 사막으로 나가 방황한다. 시바의 여왕의 아사드에게 자기와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아사드는 여왕의 제안을 거절하여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므로 죽음으로서 용서를 구하겠다고 말한다. 얼마후 술라미스는 사막에서 거의 죽어가는 아사드를 발견한다. 아사드는 술라미스에게 용서를 구한 후 술라미스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는 내용이다.

  

'시바의 여왕'에서 아사드와 시바의 여왕

 

히브리 헐크인 삼손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사사시(판관기: Book of Judges)가 오리지널이다. 사사기에는 삼손이 태어난 이야기로부터 삼손의 여호와로부터 신비한 힘을 받아 히브리 백성들을 박해하고 우상을 섬기던 블레셋 사람들을 통쾌하게 타격한 이야기, 블레셋 여인인 델릴라(들릴라)를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사로서의 본분을 잊고 방종했던 이야기, 델릴라의 꾐에 빠져 하나님이 주신 힘의 비밀을 누설하여 그로 인하여 힘을 잃고 감옥에 갇히고 굴욕을 당한 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삼손을 잊지 않고서 그에게 힘을 다시 주어서 다곤신전의 우상을 무너트리고 원수를 멸했다는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다. 신앙심이 깊은 카미유 생 상스(Camille Saint-Saens: 1835-1921)가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를 만들었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는 1877년 봐이마르의 대공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이 오페라에 나오는 델리라의 아리아  Mon cœur s'ouvre à ta voix(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는 콘서트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아름다운 곡이다.'삼손과 델릴라'의 무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로 되어 있다.

 

카미유 생 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자코모 마이에르베르(Giacomo Meyerbeer: 1791-1864)의 '입다의 서약'(Jephtas Gelübde: The Vow of Jephtha)도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이다. 입다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의 사사가 되어 외적의 침략하여 왔을 때에 하나님께 약속하기를 만일 외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집에 돌아갔을 때 처음으로 마중하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서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나님은 입다의 손을 들어 주어서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게 했다. 입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마중한 사람은 입다가 사랑하는 딸 이피스였다. 입다는 하나님과의 서약을 크게 후회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므로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딸 이피스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고 그후로부터 이스라엘의 처녀들은 매년 사흘씩 이피스를 위하여 애곡하였다. 그로부터 '입다의 서약'이라는 용어는 '분별없는 공연한 약속'을 뜻하게 되었다. 마이에르베르의 '입다의 서약'은 마이에르베르가 작곡한 첫번째 오페라이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퇴각한 저 유명한 해인 1812년 12월 23일 뮌헨의 호프테아터(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입다의 서약'에서는 입다의 딸의 이름을 이피스가 아니라 술리마(Sulima: S)라고 정했다. 그리고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술리마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아스마베트(Asmaweth: T)라는 청년을 등장시켰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도 이집트가 무대이다.

 

사람들이 입다에게 하나님에 대한 서약을 지키라고 주장하자 차마 자기의 딸을 제물로 드릴 수가 없어서 오열하는 입다의모습. 뮌헨 오페라 현대적 연출

               

○ 이집트

 

오페라의 세계에서 이집트라고 하면 우선 베르디의 '아이다'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모세가 이집트에서 바로의 핍박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가나안 복지 땅으로 돌아가는 얘기도 생각이 난다. 그런가하면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모세의 이야기, 클레오파트라의 이야기 등은 모두 오페라의 좋은 소재이다. 로시니가 '이집트의 모세'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아놀드 쇤버그가 '모세와 아론'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를 소재로 하여서는 많은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헨델의 '줄리오 세사레'(Giulio Cesare), 이탈리아의 도메니코 치마로사의 '클레오파트라', 프랑스의 쥘르 마스네의 '클레오파트라', 독일의 칼 하인리히 그라운의 '체사레와 클레오파트라'(Cesare e Cleopatra), 페르디난트 아우구스트 카우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onius und Cleopatra), 미국의 사무엘 바버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 헨리 킴벌 해들리의 '클레오파트라의 밤'(Cleopatra's Night), 그리고 오페레타로서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클레오파트라의 진주'(Die Perle der Cleopatra) 등이 있다.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맡은 소프라노 다니엘르 드 니스(Danielle de Niese). 메트.

 

베르디의 '아이다'(Aïda)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베르디의 '아이다'는 1869년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작곡되었고 아울러 카이로의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을 기념해서 작곡되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케디비알 오페라 하우스의 개관기념으로는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공연되었다. 그리고 실은 이스마일 파샤가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여서 베르디에게 '아이다'의 작곡을 의뢰했다는 것은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베르디는 '나는 무슨 기념일을 위해 작곡하지는 않습니다'라고 거절하였다고 한다. 과거에 보면 국왕의 생일, 결혼기념일, 전승기념일, 세례 기념일 등을 위해 오페라를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베르디는 그런 형식적인 사항에 얽매이지 않았다고 한다.작곡료는 아마 역사상 최고 금액인 15만 프랑이었다고 한다. 베르디는 돈도 돈이지만 '아이다'의 스토리에 이끌려서 작곡을 약속했다. 그래서 '아이다'가 탄생하였다. 베르디는 작곡료를 받아 밀라노에 은퇴음악가들을 위한 양노원을 지었으며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다시는 오페라 작곡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고향마을로 돌아가 마당이나 쓸면서 지내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들이다. 아이다는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에티오피아의 공주였다. 이집트에 포로로 잡혀와서 이집트 공주인 암네리스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다. 원래 아이다라는 말은 아랍어로서 '방문자'(Visitor) 또는 '돌아온 사람'(Returning)이라는 뜻이며 아랍소녀들의 이름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이다. 오페라 '아이다'의 시기는 대본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냥 고대 이집트라고 생각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장소는 멤피스로 표현되어 있다. 멤피스는 고대에 남부 이집트를 차지한 아넵 헤치 왕국의 수도로서 현재의 카이로 남쪽 약 20km에 있었다. '아이다'는 전체 무대가 이집트적이지만 특별히 개선의 장면에서 '이집트에 영광을'(Gloria All'egitto)은 그 웅장하고 화려함이 다른 어느 오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것이다.

 

이 정도면 '아이다'의 무대가 이집트인 것을 당장 알아차릴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무대가 이집트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동화 속의 어느 왕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작에 따르면 타미노 왕자는 저 멀리 자바 섬에서 왔다고 되어 있다. 자바가 어디인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이다. 그래서 혹시 '마술피리'의 배경을 자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집트이다. 그러면 파미나는? 물론 '밤의 여왕'의 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파미나가 힌두교의 여신인 데비의 딸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자바 섬에는 마술피리를 가지고 있는 압사라(천사)가 파미나를 구출한다는 전설이 있다. 무어가 무언지 모르겠다. 아무튼 자라스트로는 이집트 이시스 신전의 고승이다. 그래서 무대 세팅에 이집트 스타일이 많이 등장한다. 의상도 그렇고 소품들도 그러하다. 다만, 이집트와 자바, 그리고 밤의 여왕은 또 어디서 살다가 왔는지 도무지 혼란스러워서 궁금증이 더할지 모르지만 원래 스토리 자체가 동화적이르모 그런데에 관심 둘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에서 이시스 신전의 장면. 이집트의 상형문자들이 배경으로 나온다.

 

'타이스의 명상곡'(Méditation)으로 유명한 마스네의 '타이스'(Thaïs)도 무대가 이집트이다. 타이스는 이집트의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명한 고급창녀의 이름이다. 늠름한 청년 아다나엘과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아다나엘이 인생무상을 외치면서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승이 되자 타이스는 '나는 수도원 생활이 싫어요'라면서 환락의 정욕의 세계에 남아 있게 된다. 당시에 이집트는 비잔틴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아다나엘은 비너스를 숭배하고 있는 타이스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오페라 '타이스'는 당시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사회 풍조에 어울려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초연은 1894년 파리의 오페라 갸르니에(파리 오페라)에서였다. '타이스'는 '마농'과 '베르테르'에 이어 마스네의 가장 대표적인 오페라이다. 하지만 소프라노 주역에게 대단한 성악적 테크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자주 공연되고 있지 못하다. 마스네의 또 다른 걸작인 '에스클라몽'의 타이틀 롤과 같은 성악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에스클라몽'의 이미지를 창조했던 소프라노 시빌 샌더슨(Sibyl Sanderson)이 타이스의 이미지도 창조했다. 그후 캐롤 네블레트(Carol Neblett), 안나 모포(Anna Moffo), 비벌리 실스(Beverly Sills), 레온타인 프라이스(Leontyne Price),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엘리자베스 퍼탈(Elizabeth Furtal)과 같은 콜로라투라 성격의 소프라노들이 타이스의 이미지를 다시 창조하였다.

 

토마스 햄슨(아다나엘)과 르네 플레밍(타이스). 메트로폴리탄

 

이집트라고 하면 아무래도 역사상 최고의 미인이라는 클레오파트라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으며 클레오파트라와 시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로맨스가 오페라의 테마가 되지 않을수 없다. 특히 시저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이 나온 후에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져서 작곡가들이라면 너도나도 한번 오페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것이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이다. 1724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오리지널 타이틀은 '이집트의 줄리어스 시저'(Giulio Cesare in Egitto)이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후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는 오늘날 바로크 오페라 중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초연에서 타이틀 롤은 세네시노(Senesino)라는 예명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알토 카스트라토 프란체스코 베르나르디가 맡았고 클레오파트라는 역시 당대의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쿠쪼니가 맡아서 더욱 성공을 거두었다. 나일강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한 궁전이 배경으로 나오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은 오페라이다.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메조소프라노 에와 포들스(Ewa Poldes)가 타이틀 롤을 맡았고 리사 세이퍼(Lisa Saffer)가 클레오파트라를 맡은 산디에고 오페라의 무대. 간혹 당시의 의상을 입지 않고 바로크적인 의상을 입는 무대가 많다.

 

이집트와 연관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모세와 바로와 홍해를 다룬 출애굽(엑소도스)이다. 많은 작곡가들이 출애굽을 주제로 삼은 오페라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Mosè in Egitto)와 아놀드 쇤버그의 '모세와 아론'(Moses und Aron)이다.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는 1818년 나폴리의 산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로시니는 1827년에 이 오페라를 수정하고 제목도 '모세와 바로'(Moïse et Pharaon) 또는 '홍해를 건너서'(Le passage de la Mer Rouge)라고 바꾸었지만 오늘날에는 오리지널 타이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집트의 모세'는 특별히 모세의 아리아인 Dal tuo stellato soglio(당신의 별이 반짝이는 보좌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제이스 아리아이다. 아놀드 쇤버그는 유태인이었다. 비엔나의 레오폴드슈타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나치의 핍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출애굽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쇤버그의 '모세와 아론'은 쇤버그의 생전에 완성된 공연을 가지지 못했다. 쇤버그는 1951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완성된 무대 공연은 1957년 취리히에서였다. 모세는 말솜씨가 어눌하여서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지만 아론은 능란한 말솜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론이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절대적인 인식을 백성들에게 거짓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말솜씨가 없음을 한탄할 뿐이다. 일설에는 아론을 유태인 핍박을 위한 나치의 교묘한 선전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로시니의 '이집트의 모세'

 

이밖에 이집트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로서는 프랑스의 에티엔느 메울의 '이집트의 요셉', 비제의 '쟈밀레', 라보의 '마루프', 하이든의 '우연한 만남' 등이 있다. '이집트의 요셉'(또는 간단히 '요셉')은 노예신부이었다가 바로의 신임을 얻어 애급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에 대한 이야기이다.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급(이집트)에 노예로 팔린다. 요셉은 애급에서 바로 왕의 총애를 얻어 총리대신이 되고 이름도 클레오파스(Cleophas)로 바꾼다. 요셉은 7년의 풍년을 통해 곡식을 비축하여 7년의 기근에 대비하였다. 그 지경에 이스라엘에서도 대기근이 들어 야곱의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겪고 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이 곡식을 구하러 애급으로 간다. 요셉의 형제들은 멤피스에 있는 요셉의 궁전을 찾아간다. 한편, 형제 중의 하나인 시메온은 이같은 기근이 자기들이 몇 년전에 동생인 요셉을 노예로 팔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여 후회하는 심정이다. 요셉은 형제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놀라지만 일부러 내색을 하지 않는다. 형제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다. 시메온은 아버지 야곱에게 동생 요셉이 들짐승에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애급에 팔았다는 사실을 비로소 밝힌다. 야곱은 너무나 참담하여서 어찌할줄 모르다가 요셉을 판 아들들을 모두 내치기로 결심한다. 그때 총리대신 요셉이 야곱을 찾아와 짐짓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형제들이 어쩔수 없이 그런 일을 했을 것이므로 자비를 베풀라고 간청한다. 이어 요셉은 비로소 자기가 바로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라고 밝힌다. 그리고는 바로가 모두를 흉년이 지날 때까지 애급에서 지낼것을 허락했다고 말한다. '이집트의 요셉'은 1807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메울의 '이집트의 요셉'.

 

비제는 '진주잡이'에 이어 '쟈밀레'로서 동양에 대한 동양에 대한 동경심을 다시한번 표현하였다. 무대는 이집트(어떤 버전에는 터키로 되어있다)이다. 그런데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다. 하렘이 나오고 아름다운 여자 노예들의 춤이 나온다. 여기에 비제 특유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흘러넘친다. 비제의 쟈밀레는 파리에서 잠깐동안의 성공만 거두었다. 하렘과 여자노예, 인신매매와 같은 내용이 나오므로 당시의 도덕기준으로는 곤란했으며 자녀교육에도 좋지 않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 1백여년이 지난 오늘날 쟈밀레는 음악적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 이야기는 카이로를 통치하고 있는 하룬과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자 노예 쟈밀레의 사랑에 대한 것이다. '쟈밀레'는 1872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프랑스의 앙리 라보(Henri Rabaud: 1873-1949)의 '카이로의 구두장이 마루프'(또는 간단히 마루프: Mâruf(Mârouf), savetier du Caire)는 1차 대전이 일어난 해인 1914년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초연되었다. 라보는 '마루프'에서 동양적인 멜로디를 최대로 사용했다. 성공이었다. 카이로의 공처가로 유명한 마루프는 마누라의 구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뱃사람들과 함께 저 멀리 키아탄이라는 곳으로 떠난다. 마루프는 키아탄에서 대상들의 물건이 오기를 기다리는 부자 상인의 행세를 한다. 키아탄의 술탄은 마루프에게 좋은 인상을 받아서 삼체딘 공주와 결혼시키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마루프의 거짓이 들통이 나서 도망가야 했다. 어느덧 마루프를 사랑하게 된 삼체딘 공주가 그를 따라온다. 마법사가 마루프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대상이 낙타에 귀한 재화를 가지고 나타나도록 한다. 크게 기뻐한 술탄이 마침내 삼체딘 공주와 마루프의 결혼을 허락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준다. 그런데 카이로의 오리지널 와이프는 어떻게 되었나? 

 

라보의 '카이로의 구두장이 마루프'. 스핑크스 배경이다.

 

'우연한 만남'(L'incontro improvvisio)은 하이든이 합스부르크의 밀라노 총독인 페르디난트 대공을 위해 작곡한 코믹 오페라로서 1775년 헝가리 훼르퇴드(Fertőd)에 있는 에스터하지 궁전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당시 비엔나에서 유행하던 터키 주제의 스토리이다. 음악과 스타일은 터키 풍이지만 이집트의 술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술탄이 사랑하는 여인이 페르시아의 레지아 공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라고 볼수는 없으며 다만 그저 동양에 대한 호기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이든이 하렘을 주제로 삼은 이른바 Seraglio opera를 작곡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 하이든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였는데 그런 입장에서 이교도의 이야기, 그것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하렘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예외적인 일이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중동의 사람들이다. 하렘이 나오는 다른 오페라들을 보면 그래도 유럽의 사람들이 등장해서 하렘의 여인을 구출하는 내용이 보통인데 '우연한 만남'의 경우에는 무슬림이 무슬림을 구출하는 내용이다. 레지아는 페르시아의 공주이다. 어찌하다가 잘못되어서 술탄의 하렘에 들어오게 된다. 레지아는 이집트의 술탄이 하렘의 여인 중에서 가장 총애하는 여인이다. 술탄은 레지아가 페르시아의 공주인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알리라고 하는 애인이 나타나서 도망가려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래서 현상금을 걸고 체포코자 한다. 그러나 술탄은 레지아에 대한 알리의 사랑이 진실된 것임을 알고 알리를 용서하고 축복을 내려 준다는 내용이다. 

 

헝가리의 에스터하지 공자 궁전에서 초연되었을 때의 '우연한 만남' 무대 스케치  

 

○ 알제리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도 유럽 사람의 눈에는 동양이다. 알제리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는 현재로서는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L'italiana in Algeri)이 유일하다. 1813년 베니스에서 초연을 가진 이래 이탈리아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 오페라 극장의 스탠다드 레퍼토리가 되어 있다. 이탈리아 여인인 여주인공 이사벨라는 주로 메조소프라노가 맡는다. 그러나 노래가 대단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웬만한 콜로라투라 메조소프라노가 아니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역할이다. 무대는 알제리의 어떤 해안과 알제리 총독이나 마찬가지인 무스타파의 궁전이다. 궁전의 장면에서는 하렘의 장면도 나오기 때문에 상당한 눈요기가 된다. 전체적으로 무척 재미있는 음악과 재미있는 스토리이다. 무수타파는 부인인 엘비라가 싫증이 나서 신하에게 어디가서 이탈리아 여인을 하나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이탈리아 여인은 고분고분할 뿐만 아니라 재치도 있어서 재미나다는 이유에서이다. 마침 애인 린도로를 찾기 위해서 배를 타고 다니던 이사벨라가 폭풍 때문에 배가 파선되어 알제리의 해안에 겨우 도착한다. 무스타파의 장관은 이사벨라가 이탈리아 여인인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여 이사벨라는 무스타파의 하렘으로 데려간다. 결론은? 무스타파는 원래의 자기 부인에게 돌아가고 이사벨라는 무스타파의 궁전에서 하인으로 잡혀 있는 애인 린도로를 구출해서 무사히 귀국길에 오른다는 것이다. 배경은 온통 아랍 풍이지만 노래는 이탈리아의 벨칸토 스타일이다.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하렘에서.

 

○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의 필립 글라스(Philip Glass: 1937-)가 Satyagraha (사티야그라하)라는 오페라를 만들었다. 일명 M.K. Ghandi in South Africa(남아프리카의 간디)이다. 그러므로 이 오페라의 배경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전3막의 이 오페라에는 각 막마다 세기적 인물들과 관련하여 부제목이 붙였다. 제1막은 톨스토이, 제2막은 타고르, 제3막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이다. 사티야그라하는 1919년 인도의 간디가 주창한 비폭력 불복종주의를 말하며 일명 간디주의(Gandhism)라고도 부른다. 이 오페라의 시대적 배경은 1896-1913년이다. 간디가 남아프리카에 있으면서 영국에 대하여 비폭력 평화운동을 벌인 기간이다. 이 기간에 간디는 체포되어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오페라는 간디가 남아프리카에 있었던 시기와 함께 전설적인 신화시대의 전쟁터인 쿠루(Kuru), 그리고 현대의 장면도 잠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무어라해도 주무대는 남아프리카의 감옥이다.

 

필립 글라스의 '사티야그라하'의 무대. ENO

 

○ 브라질

 

남미도 유럽으로서 이국이라고 하면 브라질을 배경으로 삼은 고메스의 '과라니'(Il Guarani)도 이국적 배경의 오페라 범주에 속한다. 브라질 태생의 안토뉴 카를로스 고메스(Antônio Carlos Gomes: 1836-1896)는 남미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에서 인정을 받은 사람이다. '과라니'는 브라질의 작가인 호세 데 알렌카르(José de Alencar: 1829-1877)의 '오 과라니'(O Guarani)를 바탕으로 1870년에 완성한 오페라이다. 과라니는 파라과이강 동쪽에 사는 원주민을 말한다. 무대는 브라질의 리오 데 쟈네이로 부근이며 시기는 1560년대이다. 포르투갈이 브라질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하여 원주민들과의 마찰이 한창이던 때이다. 주인공 페리는 과라니족의 추장으로 인디안이며 여주인공 세실리아는 포르투갈의 귀족(비록 하급귀족인 히달고 집안이지만)으로 백인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백인과 원주민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 상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양쪽 극단주의자들이 두 사람을 모두 처형함으로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음악적으로 이 오페라는 벨칸토 오페라와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의 합성이다. 원주민들의 노래는 민속적인 면이 없으며 유럽풍이다. '과라니'는 1870년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고메스의 '과라니'. 브라질 산페드로극장 무대

                         

○ 페루

 

베르디가 페루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를 작곡했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알지라'(Alzira)이다. 1845년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페루를 배경으로 삼은 원주민들과 스페인 정복자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인지 초연 이후 거의 잊혀져 있다가 근자에야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오페라이다. 베르디는 모두 28편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누가 '선상님, 선상님의 오페라 중에서 어떤 오페라가 제일 싫어하시나요?'라고 물어보았더니 베르디는 서슴없이 '그야 알지라인지 뭔지 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글쎄, 베르디는 자기의 오페라 중에서 '알지라'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베르디 애호가들에게는 '알지라'도 '나부코'나 '아틸라'에 못지 않는 위대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시기는 16세기이며 장소는 남미의 페루이다. 원주민인 페루족들이 정복자인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던 때이다. 페루족들은 스페인이 파견한 페루총독인 늙은 알바로를 붙잡아 감금하고 있고 대신 알바로총독의 아들로서 새로 총독이 된 구즈마노는 페루족의 지도자인 자모로를 감금하고 있다. 자모로는 사랑하는 알지라(Alzira)를 구해내기 위해 총독궁에 잠입하였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던 것이다. 알지라는 페루족의 추장인 아틸리바의 딸로서 아버지 아탈리바와 함께 총독궁에 연금되어 있다. 한편, 젊은 구즈마노 총독은 알지라의 미모에 반하여 마음에 두고 결혼코자 한다. 이런 기미를 알아차린 아탈리바 추장은 스페인과 페루족간의 평화를 위해 딸 알지라에게 자모로를 멀리하고 구즈마노총독과 잘해보라고 권고하던 터였다. 구즈마노 총독에게 체포된 자모로는 모진 고문을 받은후 처형될 운명이다. 이때 페루족들이 대거 총독궁을 공격한다. 구즈마노총독은 전투를 피하기 위해 자모로를 석방하고 대신 페루족에게 잡혀있는 아버지 알바로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한다. 페루족에게 돌아온 자모로는 약속대로 알바로총독을 석방한다. 그리고 이어 구즈마노 총독에게 연금되어있는 아탈리바추장의 석방을 요구한다. 구즈마노도 총독도 페루족과의 평화를 위해 아탈리바추장을 석방한다. 구즈마노 총독이 아탈리바를 석방한 또 다른 이유는 아탈리바의 딸 알지라와 결혼코자 했기 때문이다. 구즈마노 총독은 알지라가 페루반군의 지도자인 자모로와 사랑하는 사이인 것을 모르고 있다. 결론만 말하자면 페루의 위대한 전사 자모로와 알지라가 결혼한다.

 

베르디의 알지라. 이탈리아 파르마극장 무대

 

페루와 멕시코를 번갈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가 있다. 오페라라기 보다는 세미 오페라이다. 연극와 음악과 춤의 혼합이지만 연극이 우선되는 작품이다. 영국의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8?-1695)의 세미 오페라인 '인디안 여왕'(Indian Queen)이다. 퍼셀의 사후인 1697년에 런던에서 초연되었다. '인디안 여왕'은 남미가 스페인의 점령을 받기 이전이 배경이다. 멕시코의 영웅으로서 나눙에 멕시코의 왕이 되는 몬테추마와 페루의 공주인 오라치아의 사랑이 주제이다.

 

페루를 배경으로 삼은 오페레타가 있다. 자크 오펜바흐의 '페리숄레'(Perichole)이다. 1868년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남미의 페루를 배경으로 삼은 것이지만 스토리의 배경만 페루이지 원주민의 등장은 없고 완전 스페인 스타일이다. 주인공인 페리숄레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가씨이다. 미모가 뛰어나서 페루 총독인 돈 안드레아스의 눈에 든다. 유여곡절 끝에 페리숄레는 페루 총독의 손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사랑하는 피키요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더구나 두 사람은 알고보니 귀족이어서 피키요 백작, 페리숄레 백작부인이 된다.

 

오펜바흐의 '페리숄레.

           

○ 미국

 

미국도 초창기 식민지 시대에는 유럽인이 보기에 동양이나 마찬가지의 이국이었다. 베르디와 푸치니가 그러한 미국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를 각각 내놓았다. 베르디의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와 푸치니의 '황금서부의 아가씨'(La fanciula del West)이다. '가면무도회'의 경우엔 원래가 스웨덴이 배경이었으나 검열 당국의 압박으로 배경을 스톡홀름에서 영국 식민지 시대의 보스턴으로 변경했으며 주인공도 스웨덴의 구스타브 왕으로부터 보스턴 총독인 리카르도로 바꾸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미국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푸치니의 '황금서부의 아가씨'는 1849년에 즈음해서미국에서 골드 러쉬가 벌어지던 시기이다. 그러므로 서부개척사의 에피소드 중의 하나라고 보아도 무관하다. 그렇다고 인디안과 전투를 벌인다던지 하는 내용은 없다. 서부의 척박한 마을에서 금찾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벌이는 얘기이다.

 

푸치니의 '황금서부의 아가씨'. 원래 이탈리아어 제목을 번역하면 '서부의 아가씨'(The girl of the west)인데 미국에서 공연될 때에 '황금서부의 아가씨'(The girl from the golden west)라고 내세운 바람에 어쩔수 없이 그렇게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바꿔야 할 것이다.

 

○ 캐나다

 

오페라 '루이 리엘'(Louis Riel)은 캐나다 작곡가인 해리 소머스(Harry Somers: 1925-1999)가 작곡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리 소머스는 토론토 출신의 영국계 캐나다인으로 아방 갸르드 음악을 추구하여 왔다. 오페라 '루이 리엘'은 캐나다 건국 100주년 기념으로 1967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캐나다 원주민인 메티스(Métis)족의 지도자 역할을 해온 루이 리엘의 활동을 그린 것이다. 루이 리엘은 캐나다 정부에 의해 반역죄로서 1885년 처형되었다. 오늘날 루이 리엘은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버린 캐나다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다. 오페라 '루이 리엘'은 해리 소머스의 대표작일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이다. 오페라 '루이 리엘'은 1967년 9월 23일 토론토의 오키프센터(O'Keefe Centre)에서 초연되었다. 이어 그해 10월에는 몬트리얼의 플라스 데자르(Place des Arts)에서 공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