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바·디보의 세계/세계의 디바와 디보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한 프리마 돈나들 - 2

정준극 2014. 7. 1. 05:08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한 프리마 돈나들 - 2

오페라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한 프리마 돈나들

초연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당대의 성악가들

33편의 스탠다드 오페라를 중심으로...영원히 기억될 이름들

 

 

○ Lohengrin(로엔그린) - 엘자(Elsa)

'로엔그린'의 엘자는 브라반트 공국의 공주이다. 엘자는 백조의 기사인 로엔그린과 결혼한다. 1850년 8월 28일 봐이마르의 슈타츠카펠레(Staatskapelle)에서 초연되었을 때 엘자의 이미지는 당시 24세의 소프라노 로자 폰 밀데 아그테(Rosa von Milde-Agthe: 1825-1906)가 창조했다. 로자 폰 밀데 아그테는 튀링겐 출신으로 처음에는 로자 아그테라는 이름으로 봐이마르의 궁정극장(호프오퍼)에서 활동했다. 그후 바리톤 한스 폰 밀데와 결혼하여 이름이 로자 폰 밀데 아그테가 되었다. 로자 폰 밀데 아그테는 엘자의 이미지를 창조한 이외에도 1858년 페터 코르넬리우스의 '바그다드의 이발사'에서 마르지나의 이미지를 창조했으며 1865년에는 역시 페터 코르넬리우스의 '시드'(Der Cid)에서 쉬멘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로자 폰 밀데 아그테의 주요 역할은 루치아, 파미나, 이피제니, 레오노레(휘델리오), 레이디 해리엣(마르타) 등이다.

 

로자 폰 밀데 아그테

 

○ Lucia di Lammermoor(람메무어의 루치아) - 루치아(Lucia)

도니체티 최대의 비극인 '람메무어의 루치아'는 1835년 9월 26일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에서 루치아는 소프라노 패니 타키나르디 페르시아니(Fanny Tacchinardi Persiani: 1812-1867)가 맡았다. 로마에서 태어난 패니는 첼리스트 겸 테너인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부터 음악을 배웠다. 오페라 무대에의 데뷔는 1832년 리보르노에서 주세페 푸르니에 고레(Giuseppe Fournier Gorre)의 '리미니의 프란체스카'로였다. 그후 1837년부터 1848년까지 10년이 넘게 이탈리아는 물론, 파리와 런던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오페라 무대를 장식했다. 패니의 대표적인 역할은 루치아 이외에도 탄크레디(로시니), 도둑까치(로시니), 해적(벨리니), 사랑의 묘약(도니체티) 등이었다. 도니체티는 패니의 노래를 처음 듣고 나서 '음성이 차가운 편이지만 대단히 정확하고 음색이나 음조도 완벽하다'고 말했다.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의 이미지를 창조한 패니 타키나르디 페르시아니

 

○ Madama Butterfly(나비부인) - 초초상(Cho-Cho San)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1904년 2월 17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에서 주인공인 초초상은 베니스 출신의 로지나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 1876-1945)가 맡았다. 이때 스토르키오는 28세 였지만 그동안 무리해서였는지 음성이 크게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기력 하나만은 뛰어나서 무대를 찬란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스토르키아가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것은 1892년 밀라노의 테아트로 달 베르메에서 불과 16세 때에 '카르멘'의 미카엘라를 맡은 것이었다. 그후 그는 레온카발라의 '라 보엠'(1897)에서 미미, 레온카발로의 '차차'(Zaza: 1900)에서 타이틀 롤, 조르다노의 '시베리아'(1903)에서 스테파나, '나비부인'에서 초초상, 그리고 마스카니의 '로돌레타'(1918)에서 타이틀 롤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1904년에 나비부인(초초상)의 이미지를 창조한 소프라노 로지나 스토프키오

 

○ Manon(마농) - 마농(Manon)

마스네의 '마농'이라고 하면 우선 벨기에 출신의 마리 헤일브론(Marie Heilbron: c 1851-1886)을 연상할 정도로 유명했다. 마스네의 '마농'은 1884년 1월 19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그때 마농이라는 처음에는 청순한 이미지의 소녀였으나 나중에는 관능미에 넘치는 매력적인 여인의 역할을 마리 헤일브론이 맡아서 했다. 그로부터 사람들은 '마농'이라고 하면 마리 헤일브론을 생각하였다. 앤트워프 출신의 마리 헤일브론은 파리에 와서 성악을 공부하고 1866년 파리에서 '연대의 딸'의 마리로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다. 이어 오페라 코미크의 정식 멤버가 되었고 첫 출연은 마이에르베르의 '북부의 별'(L'etoile du nord)에서 카테린을 맡은 것이었다. 이후 그는 마스네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오페라에 집중 출연하였다. 프리마 돈나의 이미지를 창조한 것은 마스네의 '마농'이외에도 빅토르 마쎄의 '클레오파트리의 밤'(Une nuit de Cléopatre), 자크 오펜바흐의 '밀렵꾼'(Les braconniers)의 초연에서도 주인공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최초의 마농인 벨기에 출신의 마리 헤일브론

 

○ Norma(노르마) - 노르마(Norma)

20세기에 마리아 칼라스가 있다고 하면 19세기에는 주디타 파스타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주디타 파스타는 19세기 최고의 오페라 소프라노였다. 주디타 파스타(Giuditta Pasta: 1797-1865)는 1830년 밀라노에서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하여 이름을 떨쳤고 이어 1831년에는 벨리니의 '몽유병자'에서 아미나, 그리고 '노르마'에서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한 위대한 소프라노였다.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 지방의 사론노 출신인 주디타 파스타는 전성기에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파리와 런던에서도 놀라운 정도의 인기를 끌면서 오페라 무대를 장식했다. 주디타 파스타가 오페라 소프라노로서 데뷔한 것은 1816년 스카파의 '세명의 엘레오노레'(Le tre Eleonore)로 였다.

 

19세기 최고의 소프라노인 주디타 파스타

 

○ Otello(오텔로) - 데스데모나(Desdemona)

베르디 최고의 걸작인 '오텔로'는 1887년 2월 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오텔로'의 여주인공인 데스데모나는 라 스칼라의 정상급 멤버인 소프라노 로밀다 판탈레오니(Romilda Pantaleoni: 1847-1917)가 맡아서 데스데모나에 대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판탈레오니는 1870년대와 1880년대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가장 뛰어난 정상의 소프라노였다. 판탈레오니는 폭넓은 레퍼토리로서 유명했다. 벨칸토 오페라로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그랜드 오페라, 베르디 오페라, 베리스모 오페라, 바그너의 독일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수 있는 전천후 프리마 돈나였다. 오늘날 로밀다 판탈레오니라고 하면 데스데모나도 생각이 나지만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의 타이틀 롤을 처음으로 맡아했다는 것, 그리고 푸치니의 '에드가'에서 티그라나의 역할을 처음으로 맡았다는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보다도 뛰어난 연기력과 아름다운 음성으로 더 기억되고 있다. 판탈레오니는 8년간 라 스칼라에서 활동하다가 지휘자인 프랑코 파치오(Franco Faccio)가 세상을 떠나자 홀연히 은퇴하고 조용하게 지냈다. 프랑코 파치오는 오랜 애인이었다. 한편, 오텔로의 초연에서 타이틀 롤은 테너 프란체스코 타마뇨가 맡았다.

 

데스데모나의 이미지를 창조한 로밀다 판탈레오니

 

○ Pagliacci(팔리아치) - 네다(Nedda)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는 1892년 5월 21일 밀라노의 테아트로 달 베르메에서 초연되었다. 순회극단의 여주인공인 네다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델리나 슈텔레(Adelina Stehle: 1860-1945)가 맡았다. 아델리나 슈텔레의 오페라 데뷔는 1881년 롬바르디의 브로니에서 아미나(몽유병자)로였다. 슈텔레는 1890년에 라 스칼라로 진출하여 뛰어난 활동을 했다. 그는 1892년에 '라 왈리'(카탈로니)의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했고 같은 해에 '활슈타프'(베르디)에서 나네트의 이미지를 창조했으며 또한 같은 해에 '팔리아치'의 초연에서 네다를 맡았다. 이어 1893년에는 레온카발로의 '메디치'(I Medici)에서 휘오레타 드 고리를 맡았고 1895년에는 마스카니의 '구글리엘모 라트클리프'에서 마리아와 역시 마스카니의 '실바노'에서 마틸데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등 대단한 활동을 하였다.

 

'팔리아치'에서 네다의 이미지를 창조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델리나 슈텔레

 

○ Rigoletto(리골레토) - 질다(Gilda)

'리골레토'에서 질다는 벨칸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역할이다. 1851년 3월 11일 베니스의 라 페니체극장에서 베르디의 '리골레토'가 초연되었을 때 히로인인 질다는 이탈리아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테레사 브람빌라(Teresa Brambilla: 1813-1895)가 맡아서 이미지를 창조했다. 테레사는 음악가정에서 태어났다. 삼촌인 파올로는 상당히 재능이 있는 오페라 작곡가였다. 사촌인 아말리아는 정상급의 벨칸토 소프라노였다. 테레사는 다섯 자매 중의 가운데였다. 다섯 자매가 모두 성악가였다. 큰언니인 마리에타는 콘트랄토로서 도니체티의 오페라 초연에 여러번 출연하였다. 망내동생 주세피나도 콘트랄토였다. 테레사는 밀라노음악원에 다닐 때에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함께 공부했다. 주세피나 스트레포니는 나중에 베르디의 두번째 부인이 된 사람이다. 1837년에는 라 스칼라에서 처음 연주된 In morte di Maria Malibran de Beriot(베리오의 마리아 말리브란을 추모하여서)라는 칸타타에 출연하였다. 이 칸타타는 도니체타, 조반니 파치니, 사베리오 메르가단테, 니콜라 바카이, 피에트로 안토니오 코폴라 등 당시의 유명 작곡가들이 공동으로 작곡한 것이다.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질다의 이미지를 창조한 테레사 브람빌라

 

○ Der Rosenkavalier(장미의 기사) - 옥타비안(Octavian)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는 1911년 1월 26일 드레스덴의 왕립오페라극장(Konigliches Opernhaus)에서 초연을 가졌다. 바지역할의 옥타비안(로프라노 백작)은 독일의 메조소프라노인 에바 폰 데어 오스텐(Eva von der Osten: 1881-1923)이 맡았다. 독일 북단 대서양에 있는 헬리고란트(Heligoland: Helgoland)에서 태어난 에바는 부모가 모두 연극배우여서 어려서부터 무대에 가깝게 지냈다. 에바는 오페라 메조소프라노가 되기 전에 연출가로서 데뷔하였다. 1902년 드레스덴 호프오퍼(궁정오페라)에서 '아라벨라'의 연출을 맡아 오페라계에 데뷔하였다. 그러다가 바그너 오페라에 매료하여 1923년부터는 바그너 오페라의 여자 역할을 맡으며 유럽의 여러 지역을 순방하기까지 했다. 에바는 특히 이졸데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에바는 독일오페라단과 함께 북아메리카에 대한 순회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에바는 25년 오페라 무대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였다. 그 동안 그가 오페라에 출연한 회수는 무려 2천 5백회나 되었다. 남편은 바리톤 프리드리히 플라슈케이다. 그래서 에바를 에바 플라슈케 폰 데어 오스텐(Eva Plaschke-von der Osten)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명한 헬덴 테너인 볼프강 빈트가쎈(Wolfgang Windgassen)은 에바의 조카가 된다.

 

1911년 드레스덴에서의 '장미의 기사' 초연에서 옥타비안의 이미지를 창조한 에바 폰 데어 오스텐

 

○ Tosca(토스카) - 토스카(Tosca)

1900년 1월 4일 로마의 코스탄치 극장에서 푸치니의 '토스카'가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을 때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한 여인은 루마니아 출신의 그리스계 소프라노인 하리클레아 다르클레(Hariclea Darclée: 1860-1939)였다. 20세기 최고의 소프라노 디바로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근 30년이나 오페라 무대를 찬란하게 장식했다. 글자그대로 세계 정상이었다. 그의 음성은 경쾌하고 힘이 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는 세련된 테크닉을 마음대로 구사할수 있었다. 여기에 그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었다. 푸치니의 '토스카'는 하리클레아 다르클레로 인하여 불멸의 작품이 되었다. 그는 마스카니의 '이리스'와 카탈라니의 '라 왈리'에서도 타이틀 롤의 이미지를 창조했다. 푸치니는 하리클레아 다르클레를 '세상에서 가장 아릅답고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마농'이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플로라 토스카의 이미지를 창조한 루마니아의 하리클레아 다르클레. 완벽한 테크닉과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었다.

 

○ Turandot(투란도트) - 투란도트(Turandot)

푸치니의 미완성 오페라인 '투란도트'는 마에스트로가 세상을 떠난지 2년 후인 1926년 4월 25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에서 초연되었다. 최대의 관심사인 타이틀 롤은 폴란드 출신의 소프라노인 로사 라이사(Rosa Raisa: 1893-1963)가 맡게 되었다. 로사 라이사는 러시아의 유태계로서 폴란드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14세 때에 이탈리아의 카프리섬으로 이민을 왔다. 카프리섬의 어떤 부부가 로사 라이사의 음악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나폴리음악원에 다닐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드라마틱 소프라노 중의 한사람이 탄생하게 되었다. 로사 라이사는 뛰어난 음성과 테크닉, 여기에 세련된 감성마저 가지고 있는 정상의 성악가였다. 1924년에 푸치니는 보이토의 '네로네'에 출연한 로사 라이사의 노래를 듣고 '바로 저 사람이다. 지금 구상 중인 새로운 오페라의 주역이로서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로사 라이사가 투란도트의 이미지를 창조할수 있게 되었다. 로사 라이사는 아이다. 노르마, 말리엘라(성모의 보석), 라헬(유태여인)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투란도트의 이미지를 창조한 로사 라이사

 

○ La Traviata(라 트라비아타) - 비올레타(Violetta)

베르디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는 1853년 3월 6일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주인공인 비올레타 발레리는 이탈리아의 소프라노 패니 살비니 도나텔리(Fanny Salvini Donatelli: 1815-1891)가 맡았다. 도나텔리는 베르디와 도니체티 오페라의 해석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베르디가 마음에 두고 있던 그런 소프라노였다. 도나텔리는 1843년 비엔나에서 베르디 자신의 지휘로 '나부코'가 공연되었을 때 아비가일을 맡아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바 있다. 도나텔리는 지금은 잊혀져 있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의 다른 오페라들의 초연에서 주인공 역할들의 이미지를 창조하였다. 대표적인 것은 조반니 파치니의 '알란 캄론'(Allan Camron: 1848)에서 에디타, 살바토레 사르미엔토의 '엘미라'(Elmira: 1851)에서 타이틀 롤, 카를로 보소니의 '죄수'(La prigioniera: 1853)에서 돈나 엘레오노라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하였다.

 

최초의 비올레타인 패니 살비니 도나텔리

 

○ Tristan und Isolde(트리스탄과 이졸데) - 이졸데(Isolde)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1865년 6월 10일 뮌헨 슈타츠오퍼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의 지휘는 당시 코지마 리스트의 남편인 한스 폰 빌로브가 맡았다. 이졸데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소프라노로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말비나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Malvina Schnorr von Carolsfeld: 1825-1904)가 맡았다. 초연에서 이졸데의 상대역인 트리스탄은 말비나의 남편인 루드비히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가 맡았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한 말비나 슈노르

 

○ Il Trovatore(일 트로바토레) - 레오노라(Leonora)

베르디는 나폴리 출신인 로지나 펜코(Rosina Penco: 1823-1894)의 노래를 듣고 계획 중인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로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 트로바토레'는 1853년 1월 19일 로마의 테아트로 아폴로에서 초연을 가졌다. 우아하고 품위있는 귀부인이면서도 열정적인 레오노라의 역할은 로지나 펜코가 맡게 되었다. 로지나 펜코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벨칸토 스타일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없이 그의 노래를 좋아했다. 로지나의 트릴은 특히 유명했다. 로지나는 도니체티, 벨리니, 로시니의 벨칸토 역할에 충실했다. 그가 특히 좋아하는 역할은 노르마, 엘비라, 파올리나(폴리우토) 등이었다. 그러나 베르디는 벨칸토 스타일은 구시대의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로지나는 드레스덴, 베를린, 콘스탄티노플 등지에서도 리릭 콜로라투라 역할을 맡아 찬사를 받았다.

 

로지나 펜코

 

○ Un Ballo in Maschera(가면무도회) - 아멜리아(Amelia)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는 1859년 2월 17일 로마의 테아트로 아폴로에서 초연을 가졌다. 아멜리아는 프랑스의 소프라노 유제니아 줄리안느 드장(Eugenia Julienne-Dejean: 1815-1864)이 맡았다. 유제니아 줄리앙 드장은 1840년대와 1850년대에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서 도니체티, 알레비, 마이에르베르, 베르디의 오페라 주인공으로서 이름을 떨쳤었다.  

 

유제니아 줄리안느 드장 

 

○ Die Zauberflöte(마술피리) - 파미나(Pamina)/밤의 여왕(Königin der Nacht)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지금으로부터 2백 20여년전인 1791년 9월 30일에 비엔나의 프라이하우스 테아터 아우프 데어 비덴(Freihaus-Theater auf der Wieden)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그로부터 두어달 후인 12월 5일 모차르트는 세상을 떠났다. 1791년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 이산이 임금이 되어 통치하던 때이다. '마술피리'의 초연에서 여주인공인 파미나는 비엔나 출신의 소프라노인 안나 고틀리브(Anna Gottlieb: 1774-1856)가 맡았다. 어릴 때부터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소프라노이다. 안나 고틀리브는 다섯살 때에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 출연하였고 열두살 때에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르바리나를 맡아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15세 때에는 파울 브라니츠키(Paul Wranitzky)의 '요정의 왕, 오베론'(Oberon, König der Elfen)에서 아만드로 출연하였다. '요정의 왕, 오베론'에서 오베론의 부인인 타티아나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요제파 호퍼(Josepha Hofer)가 맡았다.

 

마술피리에서 파미나로 나온 안나 고틀리브

 

그리고 17세 때에는 비덴극장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의 파미나를 맡았다. 그런데 '마술피리'의 초연에서 '밤의 여왕'은 바로 요제파 호파가 맡았으니 그 또한 기이한 인연이다. 요제파 호퍼가 누구냐하면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의 언니이다. 즉, 모차르트의 처형이다. 그런데 또하나 흥미로운 사항은 모차르트와 안나 고틀리브가 실은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이다. 증거나 기록은 없지만 말이다. 고틀리브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자 인생무상을 외치면서 그 다음해에 레오폴드슈타트 극장(Theater in der Leopoldstadt)로 자리를 옮겨 그로부터 17년간 이 극장의 주역 멤버로서 활동했다. 특히 페르디난트 카우어의 오페레타인 '도나우 요정'(Das Donauweibchen)에서 훌다 역을 맡아서 대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소리도 나빠지고 하자 극장에서 해고되어 가난과 싸우다가 82세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나 고틀리브는 비엔나에서 모차르트를 알고 지내던 마지막 소프라노였다. 고틀리브는 모차르트가 처음 묘지가 있던 생맑스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모차르트의 첫번째 묘지에서 가까운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