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박물관 도시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ÖNB)의 모든 것

정준극 2014. 9. 1. 09:00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Österreichische Nationalbibliothek: ÖNB)의 모든 것

The Austrian National Library

산하에 지도 및 지구의 박물관, 파피루스 박물관 등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내부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장엄한 도서관도 다 있다. 비엔나의 호프부르크에 연결되어 있는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훌륭한 박물관이며 찬란하게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그렇다고 건물이나 실내 장식만 가지고 훌륭한 박물관이요 뛰어난 도서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도서의 보고이다. 특히 종교서적에 있어서 그러하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에는 귀중하고 희귀한 도서들이 그 어느 곳보다도 많이 있지만 규모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려 7백 40만 종이 넘는 장서를 자랑한다. 정말 대단한 규모이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비엔나의 중심지인 노이에 부르크(Neue Burg)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제국의 영광을 돋보이게 하려고 지은 노이에 부르크 건물은 바로크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궁전으로 지은 건물에 도서관이 들어섰으니 유별하지 않을수 없다. 그런데 소장도서가 너무 많아서 그중에서 일부는 2005년에 헤렌가쎄 9번지의 팔레 몰라르드 클라리(Palais Mollard-Clary)로 옮겼다. 팔레 몰라르드 클라리에는 도서들을 보관한 장서실 이외에도 산하 조직으로 지구의(地球儀) 박물관, 음악자료 전시관, 에스페란토 전시관 등을 함께 거느리고 있다. 14세기에 창설된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처음에 호프 비블리오테크(Hof-Bibliothek: 제국도서관)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920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신성로마제국과 합스부르크 6백년의 역사가 담겨 있는 도서관이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분관인 팔레 몰라르드 클라리. 헤렌가쎄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바로 있다. 이 건물에 지구의 박물관, 음악자료 전시실, 에스페란토 전시실도 있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연혁은 14세기 오스트리아의 알버트 3세 공작(1349-1395)로부터 시작한다. 알버트 3세는 비엔나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자기의 귀중 도서들을 한군데 도서관으로 옮기도록 했다. 호프부르크에서는 귀중 도서들을 황실교회 남쪽 탑에 있는 성물실에 두도록 했다. 알버트 3세는 라틴어로 된 중요한 서적들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많이 했다. 알버트 3세는 예술애호가였다. 그리고 학문의 중요성을 통찰하여서 비엔나대학교를 적극 지원하였다. 호프부르크의 황실교회에 보관하고 있는 도서 중에서 기록상 가장 오래된 것은 1368년에 나온 금으로 만든 '복음서'였다. 이 복음서는 란트스크론의 사제이며 브르노 성당의 위원인 트로파우의 요한네스라는 사람이 금으로 글씨를 써서 완성한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네 성인들의 생애를 버건디 스타일의 그림으로 포현되어 있는 4복음서는 당시 알버트 3세가 통치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티롤, 슈티리아, 카린티아를 상징하였다고 한다. 그후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레데릭 3세(1415-1493)는 합스부르크가 소유하고 있는 귀중 도서 등을 한데 모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기 소유의 귀중 도서들을 비엔나로 가져와서 호프부르크 도서실에 보관토록 했다. 그 중에는 저 유명한 프라하 벤첼 성서(Prager Wenzelsbibel)와 금으로 만든 교황의 교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룬크잘

 

호프부르크 도서실의 장서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것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1459-1519)의 기여가 컸다. 그는 부르군디의 메리와 결혼하여 부르군디 왕국이 소장하고 있던 귀중 도서들의 상당량을 결혼지참금의 일환으로 받아 일단은 비너 노이슈타트에 보관하였던 것이다. 당시 시세로 이 도서들은 약 10만 굴덴의 가치가 있었다고 하며 이것은 메리의 전체 결혼지참금 중에서 8분의 1에 해당하는 액수였다고 한다. 그후 메리가 세상을 떠나자 막시밀리안 1세는 밀라노 공작의 딸인 비안카 마리아 스포르차와 결혼하였는데 그도 결혼지참금의 형태로 이탈리아의 귀중 도서들을 비엔나로 가져왔다. 그래서 합스부르크 황실의 귀중 도서는 더욱 많이지게 되었다. 16세기에 합스부르크의 귀중 도서들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비너 노이슈타트와 인스부르크 궁전에 나누어 보관하였다. 그러다가 막시밀리안 1세가 세상을 떠난후 비엔나와 비너 노이슈타트에 나뉘어져 있던 귀중 도서들은 모두 인스부르크로 집합토록 했다. 인스부르크 궁전에 모아둔 도서들은 대부분 종교서적들이었다. 한편, 비엔나에서는 과학의 진보와 함께 여러 과학서적들이 나오게 되었고 그 중에서 귀중서적들은 호프부르크 도서실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호프부르크 도서실은 과학서적들 뿐만 아니라 지구의와 지도들도 수집하여 보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지구의 및 지도 소장품들은 이때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호프부르크 도서실의 장서들은 책을 좋아하는 황제의 권유로 귀족들과 교회에서 기증들을 하는 바람에 더욱 확장되었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장서

 

제국도서관이 계속 확장되다 보니 체계적인 관리가 더욱 절실해졌다. 막시밀리안 2세는 1575년에 초대 제국도서관장으로 네덜란드 출신의 유명한 도서학자 겸 역사학자인 휴고 블로티우스(Hugo Blotius)를 임명했다. 그가 첫번째로 수행한 작업은 약 9천 권에 이르는 도서의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와 함께 오스트리아 내에 있는 다른 소규모 도서실을 제국도서관으로 통합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1624년에는 제국도서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서의 대여가 규제되었다. 페르디난트 2세의 지시에 의해 제국도서관에서 귀중 도서를 빌려 보려면 반드시 복사본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규제는 이때에 생겼다. 이와 함께 황실은 더 많은 귀중 도서들을 구매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제국도서관은 계속 확장되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샤를르 6세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황실 소유의 수많은 귀중 도서들을 종합적으로 관리할 별도의 건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샤를르 6세는 호프부르크 궁전 구내에 영구 도서관을 건설토록 했다. 그리하여 거장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얼라흐에 의해  노이에 호프부르크에 제국도서관이 건립되었다. 노이에 호프부르크의 새로운 제국도서관은 오픈과 함께 사보이의 오이겐 공자가 소장하고 있던 귀중 도서들을 기증받아 보관하게 되었다. 무려 1만 5천 종에 이르는 도서였으며 그 중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도서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때 이미 제국도서관의 중앙홀에는 20만권에 이르는 도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한편, 일반 대중들은 제국도서관이 전시목적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진정한 학문의 탐구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의견들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주치의인 제라르드 반 스비텐(Gerard van Swieten)과 그의 아들인 고트프리트 반 스비텐(Gottfired van Swieten)은 제국도서관에서 부족한 분야의 서적들을 보충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주로 과학분야 도서들이 수집되었다. 그리하여 제국도서관은 바야흐로 유럽에서도 뛰어난 과학도서관으로서도 이름나게 되었다. 아무튼 제국도서관의 발전을 위한 반 스비텐 부자의 공로는 길이 기억되는 일이었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장서

 

세월은 흘러서 1차 대전이 끝나자 오스트리아제국이 막을 내리고 신생 오스트리아공화국이 되었다. 국립도서관의 명칭이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으로 바뀐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러다가 독일의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였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나치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오스트리아 전역에 산재하여 있는 귀중 도서들을 취합하여 독일로 보내는 중간기착지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그중에서도 유태인들이 소장하고 있던 귀중 도서들의 약탈은 공공연한 일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종전후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이 약탈한 도서들의 상당부분이 다른 곳으로 보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약탈한 도서들을 원래 소유자에게 반환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였다. 법적으로도 그렇지만 도덕적으로도 반환이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1998년에 예술품목의 반환에 대한 연방법(Federal Law on Restitution of Art Objects)이 만들어졌다. 그로부터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은 재고 도서 등을 모두 확인하여 그 중에서 불법적으로 취득했다고 간주되는 품목들의 원소유자를 찾는 일을 하였다. 2003년 이후 도합 3만 2천 937개 품목이 법적 소유자에게 반환되었다. 상당량의 장서들은 1966년에 요셉스플라츠의 빌딩으로부터 헬덴플라츠의 노이에 부르크로 옮겨졌다. 노이에 부르크에는 새로 열람실이 마련되었다. 한편, 1995년부터는 도서목록을 전산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2001년부터는 유태인으로부터 압수한 도서들을 연고자에게 반환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약 2만 5천 권의 도서가 유태인 원소유자에게 반환되었다.

 

프룬크잘의 한쪽

 

프룬크잘(Prunksaal)은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중앙 홀이다. 원래 독일어의 프룬크(Prunk)라는 단어는 '화려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프룬크잘은 '화려한 홀'이라고 말할수 있다. 영어로는 State Hall 이라고 부른다. 프룬크잘은 노이에 부르크가 아니라 호프부르크 건물 내에 속하여 있다. 과거 제국도서관 시절의 중심 장서실이었다. 프룬크잘은 북쪽으로 요셉스플라츠와 남쪽으로 부르그가르텐 사이에 있다. 미노리텐클로스터(Minoritenkloster: 미노리텐 수도원: Conventual Franciscans 수도원)에 있던 귀중 도서들이 프룬크잘에 보관되어 있다. 프룬크잘이 있는 건물은 1721년에 거장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얼라흐가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1723년에 그의 아들 요제프 에마누엘이 완성했다.

 

프룬크잘의 위용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조각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후기 바로크 조각가인 로렌초 마티엘리(Lorenzo Mattielli: 1678-1748)의 작품이다. 프룬크잘의 장서는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한쪽은 '평화'라는 타이틀로 그에 관한 도서들, 다른 한쪽은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그에 관한 도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전쟁과 평화이라는 주제는 벽면의 프레스코에서도 반영되어 있다. 비엔나 출신의 화가인 다니엘 그란(Daniel Gran: 1694-1757)의 작품이다. 중앙 천정의 돔에는 샤를르 6세의 초상화를 헤르큘레스와 아폴로가 받들고 있어서 샤를르 6세를 신격화한 프레스코가 그려져 있다. 샤를르 6세의 이미지 주변에는 합스부르크의 위대한 치적과 합스부르크 영토의 부유함을 비유적으로 그린 인물화들이 있다. 프룬크잘의 중앙에 있는 대리석 조각상은 샤를르 6세이다. 그 주위를 합스부르크의 다른 황제들의 인물상들이 장식하고 있다. 샤를르 6세의 기념상은 오스트리아 조각가 겸 화가인 페터 슈트루델(Peter Strudel: 1660-1714)와 그의 아들 파울 슈트루델의 솜씨이다. 그리고 네 개의 커다란 지구의 제품은 빈첸초 코로넬리(Vicenzo Coronelli)의 작품이다. 프룬크잘의 돔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에 금이 가는 일이 있었다. 궁정 건축가인 니콜라우스 파카씨(Nikolaus Pacassi: 1716-1790)가 돔을 철제 빔으로 보강하여 안전하게 만들었다. 니콜라우스 파카씨는 캐른트너토르 극장을 건축하는 등 여러 작품을 남긴 사람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에 프룬크잘을 호프부르크와 성아우구스틴교회로까지 확장하였다. 그렇게 하는 바람에 나중에 요셉스플라츠가 된 광장이 만들어졌다.

 

요셉스플라츠 쪽에 있는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 입구 건물 상단의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 등의 조각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에는 별별 희귀도서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대표적으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비엔나 디오스커라이드(Vienna Dioscurides: Der Wiener Dioskurides (또는 Anicia-Juliana-Kodex)이다.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Programme Register)에 등재된 도서이다. 이 도서는 6세기 경에 고대 그리스의 의사인 페다니우스 이오스쿠리데스(Pedanius Dioscurides)가 작성한 것으로 원래 타이틀은 De Materia Medica(의학자료집)이었다. 그리스어로 기록된 이 도서에는 의학에 관련한 세밀한 도록이며 조류나 식물의 도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고대의 박물지(博物誌)라고 할수 있는 책이다. 유네스코는 이 도서가 역사적인 뛰어난 가치가 있다고 해서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어느 모임에서 비엔나의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면 코덱스 빈도보넨시스(Codex Vindobonensis)라고도 불리는 비엔나 디오스커라이드에 대하여 아는 체를 하면 대단한 존경을 받을 것이다.  

 

비너 디오스쿠리데스에 들어 있는 컷 중의 하나. 6세기경 로마의 귀부인인 아니카 율리아나에게 헌정된 그림.

 

[지도 콜렉션 및 지구의 박물관](Map Collection and Globe Museum)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지도 콜렉션은 19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멀리는 16세기의 지도로부터 현재의 과학적인 지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류의 지도가 보관되어 있다. 지도 소장품 중에서 17세기에 제작된 블라에 반 데어 헴(Blaeu-Van der Hem)이라는 타이틀의 지도책이 대단히 귀중하다. 전체 50권에 도합 2천 4백장의 지도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지도책이다. 지도 뿐만 아니라 각종 관련 도형도 포함되어 있는 책이다. 2003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차 대전 이후 합스부르크의 지도 콜렉션은 새로운 정부가 강제로 수용해서 국립도서관에 별도의 '가족자산도서실'(Family Estate Library: Familien-Fideikommiss-Bibliothek)을 만들고 보관하였다. 지도 콜렉션을 하다보니 지구의 콜렉션도 따라오지 않을수 없었던 모양이다. 현재 380개가 넘는 지구의가 보관되어 있다. 어떤 지구의는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지구의 박물관은 아마 세계에서 유일한 지구의 박물관일 것이다. 지구의 박물관은 1956년에 문을 열었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보관되어 있는 지구의는 1850년 이전의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지구의 뿐만 아니라 다른 기구들도 있다. 아밀라리 천구의(Armillary Sphere)는 대표적이다.

 

몰라르트 클라리의 지구의 박물관

 

[파피루스 콜렉션 및 파피루스 박물관](Papyrus Collection and Papyrus Museum)

현재의 파피루스 소장품들은 오스트리아제국의 수상을 지냈던 페르디난트 라이너 대공(Archduke Ferdinand Rainer: 1827-1913)이 수집했던 것을 프란츠 요셉 1세 황제에게 기증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합스부르크의 일원인 페르디난트 라이너 대공은 예술과 고고학에 대하여 조예가 깊었던 사람으로 그가 수집한 파피루스 자료들은 주로 고대 이집트의 화이윰(Faiyum: Fayum)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화이윰은 카이로 서남부 약 100 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로서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아마 아프리카 전체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라이너 대공으로부터 파피루스 자료들을 기증받은 프란츠 요셉 황제는 이를 제국도서관에서 관리토록 했다. 현재의 파피루스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파피루스 자료들은 기원전 15세기로부터 기원후 16세기에 이르기까지의 대단히 광대한 시기의 작품들이다. 현재 약 18만 점의 파피루스가 보관되어 있다. 이밖에도 점토를 기와처럼 구워서 만든 점토판 자료들, 목판, 왁스, 금, 은, 청동, 돌, 뼈, 직물에 기록한 자료들도 보관되어 있다. 아무튼 이 분야에서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다. 2001년에 유네스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파피루스 박물관은 노이에 부르크의 호프부르크 궁전동에 있다. 전시된 품목은 약 200점이다.

 

파피루스 박물관 자료

 

[음악자료]

안톤 브루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저명 작곡가들의 초판 스코어들을 비롯한 수많은 귀중한 악보들이 보관되어 있다. 이와 함께 레코드, CD 등도 소장하고 있다. 저명 작곡가들의 친필 오리지널 스코어들도 상당수가 보관되어 있다.

 

[인큐나불라, 고판본]

인큐나불라(Incunabula)는 1500년 이전의 인쇄본을 말한다. 고판본(古版本)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5대 목판인쇄(Block printing) 콜렉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1995년에야 본격 전시하기 시작했으므로 가장 최근에 오픈한 인큐나풀라 전시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소장된 인큐나불라는 약 8천 종에 이른다. 목판인쇄물은 1501년부터 1850년까지의 작품들이다. 이와 함께 중국이나 일본의 목판본 및 고판본들도 있다.

 

[에스페란토 박물관](Planned languages and Esperanto Museum)

에스페란토는 폴란드의 안과 의사인 L.L. Zamenhof(1859-1917)가 창안한 국제 보조어로서 앞으로 언젠가는 세계가 공동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언어이다. 이에 대한 자료들이 정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에스페란토 연구의 메카이다.

 

에스페란토 박물관

 

 

[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의 조직]

 

● Department of Broadsheets, Posters and Ex Libris

● Department of Manuscripts, Autographs and Closed Collections

● Department of Music(음악 자료부서)

● Department of Incunabula, Old and Precious Books(인큐나불라, 고판본, 희귀본 부서)

● Department of Planned Languages and Esperanto Museum

● Papyrus Musuem(파피루스 박물관)

● Globe Museum(지구의 박물관)

● Austrian National Library Museum(오스트리아국립도서관 박물관)

● Picture Archive(사진자료 아카이브)

● Archives of the Austrian Folk Song Institute(오스트리아 민요 연구소 아카이브)

● Austrian Literary Archives(오스트리아 문학작품 아카이브)

● Prunksaal(State Hall) 운영

 

프룬크잘. 샤를르 6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므로 로마제국 시대의 의상을 혼합하여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