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박물관 도시

비엔나 시가 운영하는 박물관-기념관

정준극 2014. 9. 6. 17:49

비엔나 박물관 - 기념관

Vienna Museum - Wien Museum - Museen der Stadt Wien

비엔나시가 운영하는 박물관들

 

비엔나에는 수많은 박물관들이 있는데 이를 누가 운영하느냐를 두고 구분한다면, 오스트리아정부가 운영하는 국립박물관, 비엔나시가 운영하는 시립박물관,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사립박물관, 교회가 관리하는 종교박물관, 각구청이 운영하는 구립박물관(베치르크무제움) 등으로 나눌수 있다. 이번에는 비엔나시가 운영하는 비엔나박물관들로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비엔나 박물관(Wien Museum)은 주로 비엔나시의 역사에 관한 전시관들을 말한다. 비엔나시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들이다. 미술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등은 오스트리아정부가 운영하지만 아래에 열거하는 전시관(또는 박물관)들은 비엔나시가 운영하고 있다. 비엔나 박물관은 두개의 본부 건물이 있고 그 산하에 각종 특별전시관들이 있다. 두개의 본부 건물은 칼스플라츠에 있는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Vienna Museum Karlsplatz)과 비엔나 시내로부터 서쪽 끝자락의 라인츠 야생동물공원(Lainzer Tiergarten)에 있는 헤르메스빌라(Hermesvilla)이다.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은 '비엔나시 역사박물관'(Historisches Museum der Stadt Wien)이라고도 부른다. 헤르메스빌라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엘리자베트(씨씨) 황비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궁전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프란츠 요셉 황제는 황비인 엘리자베트가 너무 자주 여행을 다니기만 하자 제발 비엔나에도 많이 체류해 달라는 소원으로 아름다운 빌라인 헤르메스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로서 신들의 메신저 역할을 하며 여행자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4구 비덴의 칼스플라츠에 있는 비엔나박물관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이 주관한 특별 전시회: 비엔나박물관 연혁]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은 2008년에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비엔나 박물관이 개최했던 특별 전시회 중에서 중요한 것만을 선별하여 카탈로그를 발간했다. 비엔나시의 문화와 역사를 알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책자이다. 어떤 특별 전시회들이 있었는지 몇가지만 소개한다.

- 1959년 4월 23일 비엔나 역사박물관의 오픈 기념으로 첫번째 특별 전시회를 가졌다. 독일 출신의 동판화가로서 비엔나에서 활동했던 히에로니무스 뢰셴콜(Hieronymus Löschenkohl: 1753-1807) 특별전이었다.

- 1960년 비엔나시립병기고 특별전

- 1961년 비엔나 예술 및 역사 상설전시장 개관 기념전시회

- 1963년 건축가 오토 바그너 특별전

- 1964년 프라터 박물관 개관. 1900년대의 비엔나 특별전

- 1968년 요제프 올브리히(Joseph Olbrich: 1867-1908) 특별전. 제체시온 공동 설립자. 건축가 겸 디자이너.

- 1969년 1800-1850년의 비엔나 특별전. 제국의 위용과 비더마이어 주제

- 1970년 하일리겐슈타트에 베토벤 기념관 오프닝

- 1973년 1850-1900년의 링슈트라쎄 특별전

- 1977년 빈도보나 특별전. 비엔나의 로마인 주제

- 1979년 헤르메스빌라가 비엔나시 박물관으로 편입. 철거 위기의 칼스플라츠 오토 바그너 파빌론 보존

- 1980년 비엔나 커피하우스 특별전

- 1981년 에곤 쉴레(Egon Schiele) 특별전. 10만명 이상이 관람

- 1982년 나이트하르트 프레스코 기념관 오픈

- 1983년 터키의 비엔나 공성 기념. 최초의 대규모 터키문화역사 전시회. 퀸스틀러하우스에서 개최함.

- 1985년 비엔나의 1870-1930년 '꿈과 현실' 특별전. 62만여명이 관람함

- 1986년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씨씨)특별전.

- 1987년 포아메르츠(3월 혁명 이전) 특별전. 퀸스틀러하우스에서 개최

- 1989년 추상화가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 1929-) 특별전. 뉴욕과 시카고 해외전시회.

- 1993년 레드 비엔나 특별전

- 1995년 건축가 겸 디자이너 한스 홀라인(Hans Hollein: 1934-2014) 특별전

- 1997년 프란스 슈베르트 특별전

- 1999년 요한 슈트라우스의 '천둥과 번개' 특별전. 1800-2000년의 비엔나 2백년 특별전

- 2000년 화가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 특별전

- 2003년 비엔나역사박물관을 비엔나박물관으로 명칭변경

- 2004년 옛 비엔나 특별전. 비엔나 외국노동자(가스트아르바이테리) 40년 특별전

- 2008년 호에르 마르크트에 로마박물관 오픈

- 2009년 하이든기념관 보수후 오픈

- 2009-2010년 비엔나 전쟁사 특별전

 

칼스플라츠의 퀸스틀러하우스. 비엔나박물관의 특별전시회가 자주 열리는 곳이다.

 

[각 박물관 소개]

 

칼스플라츠 비엔나박물관(Wien Museum Karlsplatz: Vienna Museum Karlsplatz): 4구 칼스플라츠 소재. 비엔나 역사박물관이다. 비엔나 역사박물관은 일찍이 1887년 오픈했지만 1959년까지 라트하우스(시청)에 전시실을 가지고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시립박물관을 별도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칼스플라츠가 후보지로 예정되었다. 당대의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가 새로운 시립박물관의 설계를 맡는 것으로 얘기되었다. 그러나 양대 전쟁을 겪는 바람에 시립박물관 계획은 수십년이나 연기될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중인 1953년에 시의회는 비엔나 시장을 지냈으며 공화국 대통령인 테오도르 쾨르너(Theodor Körner)를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내친 김에 시의회는 쾨르너 대통령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시립박물관을 새로 지어 오픈한다는 계획을 통과시켰다. 설계공모가 이루어졌다. 시의회는 당대의 저명한 건축가 13명에게 반드시 응모토록 권유했고 다른 건축가들도 참여토록 종용했다. 클레멘스 홀츠마이스터, 에리히 볼텐슈테른, 칼 슈봔처 등을 비롯한 도합 80명이 응모했다. 응모작품은 도합 96개였다. 심사결과, 우여곡절 끝에 4등으로 추천된 오스발트 해르틀(Oswald Haertl)에게 설계를 맡기기로 결정되었다. 해르틀은 건물 외관 뿐만 아니라 내부 설계도 책임맡기로 했다. 그리하여 신축 건물은 1959년 4월 23일 개관식을 가졌다.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에서는 처음으로 건설된 박물관이었다. 비엔나 역사박물관은 그동안 여러 특별 전시회를 가져 사랑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은 1985년에 개최한 유겐트슈틸 전시회이다. '꿈과 현실'(Traum und Wirklichkeit)라는 타이틀의 이 전시회는 건너편의 비엔나 퀸스틀러하우스에서 열렸는데 무려 60만명 이상이 관람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비엔나 역사박물관은 2003년에 비엔나 시가 관여하는 박물관들을 모두 하나의 우산 아래로 모아 '비엔나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범하였다. 이에 따라 '비엔나 역사박물관'은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은 선사시대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비엔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엔나가 산출한 예술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칼스플라츠 비엔나 박물관 전시실의 일부

 

헤르메스빌라(Hermesvilla: Vienna Museum Hermesvilla): 13구 라인츠 야생동물공원(Lainzer Tiergarten). 비엔나의 서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헤르메스빌라는 프란츠 요셉 황제가 엘리자베트(씨씨) 황비를 위해 1882-86년에 지은 궁전이다. 헤르메스빌라는 2차 대전중에 참화를 입었으나 종전후 복구하였고 1971년부터는 일반에게 전시실로서 공개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헤르메스빌라의 역사와 프란츠 요제프 황제 및 엘리자베트 황비에 대한 전시로 할애되어 있다. 엘리자베트 황비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매년 이곳을 찾아와서 사나흘씩 묵고 갔었다. 헤르메스빌라에서는 이밖에도 특정문화 주제에 대한 전시회도 기획되고 있다.

 

헤르메스빌라 전경.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부인인 씨씨를 위해 지어준 궁전이다.

 

○ 특별박물관

 

    - 칼스플라츠 오토 바그너 파빌론(Otto Wagner Pavillon Karlsplatz: Otto Wagner Pavilion on Karlsplatz): 4구 칼스플라츠. 2005년 이래 오토 바그너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상설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건물은 1898년 유겐트슈틸 파빌론으로서 칼스플라츠 전차역의 광장에 똑같은 건물 두개를 지은 것 중의 하나를 전시실로 꾸민 것이다. 1960년대에 칼스플라츠 지하철역을 건설할 때에 이 두 파빌론은 철거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철거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1977년에 손상된 부분들을 복구하여 완전한 형태로 만들었다. 물론 현재는 차나 지하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물이 되어 있다.

 

칼스플라츠 오토 바그너 파빌론

 

    - 히칭 오토 바그너 궁정파빌론(Otto Wagner Hofpavillon Hietzing: Otto Wagner Hofpavilion at Hietzing): 풀 네임은 Pavillon des k.u.k. Allerhöchsten Hofes(Pavilion of the royal and imperial court)이다. 쇤브룬 궁전에서 가까운 히칭에 오토 바그너의 설계로 1899년 건설되었다. 황제와 기타 지체 높은 황족들이 히칭 역에서 기차를 이용할 때 대합실로 지어진 건물이다. 히칭에 기차역을 만들어야 겠다는 계획은 이곳에 철도를 놓기 이전부터 있었으나 황제를 위한 대합실을 지어야 한다는 것은 원래 계획에 없었다. 그러나 황제를 위한 대합실을 만든다고 하는데 어느 누구도 이의가 있을수 없었다. 히칭역은 1898년에 개통되었고 궁정파빌론은 이듬해인 1899년에 완성되었다. 파빌론은 바로크 양식의 쿠폴라(돔)을 가지고 있다. 오토 바그너가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존경하여서 그런 설계로 했다고 한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히칭의 파빌론이 완성된 이후에 꼭 2번 이용했다. 1899년에 마이들링 하우프트슈트라쎄와 하우프트촐암트(Hauptzollamt)를 잇는 비엔나 계곡선의 개통식을 가질 때, 그리고 1902년 4월에 비엔나 시내로 들어가면서 사용했다. 오늘날 황제의 대합실과 황제의 서재 등은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오토 바그너가 설계한 히칭의 황제 대합실

 

    - 프라터박물관(Pratermuseum: Prater Museum): 20구 오스발트 토마스 플라츠(Oswald-Thomas-Platz) 1번지. 프라터박물관은 프라터 유원지의 대회전관람차(리젠라트) 부근의 플라네타리움 건물에 있다. 프라터박물관은 비엔나 최대의 유원지인 부르스텔프라터(Wurstelprater)의 역사와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옛날 전장이 인형도 있고 유령의 동굴 모델도 있다. 프라터박물관은 1933년에 교사이며 향토사학자인 한스 펨머(Hans Pemmer)가 주도하여 우선 자기 집에 전시실을 만들었다. 그후 1964년에 비엔나시에 전시품 일체를 기증하여서 현재의 박물관이 되었다.

 

프라터박물관 내부의 전시

 

    - 시계박물관(Uhrenmuseum: Clock Museum): 1구 슐호프(Schulhof) 2번지. 팔레 오비찌(Palais Obizzi)에 있다. 1917년에 오픈했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볼수 없는 중요한 시계박물관이다. 1층에는 이 박물관의 초대 관장이며 가장 오래 관장을 지낸 푸돌프 카르탄(Rudolf Kaftan)과 시인으로 유명한 마리 폰 에브너 에센바흐(Marie von Ebner-Eschenbach)가 수집한 시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시계박물관은 '1만개 시계의 집'이라고 불렀다. 2차 대전중에는 박물관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귀중한 시계들은 남부오스트리아의 여러 성에 분산해서 보관했다. 그러나 나치가 상당수 귀중한 시계들을 찾아내어 압류했다. 전쟁 후에 시계박물관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여론의 성화에 따라 비엔나시의 재정지원과 일반 기증자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시계박물관 전시

 

    - 패션 콜렉션(Modesammlung: Fashion Collection Library): 12구 헤첸도르퍼슈트라쎄(Hetzendorferstrasse) 79번지. 비엔나 박물관은 마이들링의 헤첸도르프 궁전에 패션 콜렉션 자료실을 가지고 있다. 슐로스 헤첸도르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엔나 패션디자인학교가 있으며 패션 콜렉션 자료실은 이 학교에 부속되어 있다. 일반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전에 통보하여 자료실은 이용할수 있다. 1만 2천여 종의 패션 자료집과 잡지, 사진, 그리고 약 3천 점의 판화가 있다. 패션 콜렉션 자료실에는 과거의 의상, 모자, 신발, 내복, 악세사리, 우산,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패션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보관되어 있다. 놀랍다.

 

비엔나 박물관에 속한 패션 콜렉션 자료실에서 옛날 의상을 꺼내 보이고 있다.

비엔나 패션디자인학교가 있는 마이들링의 슐로스 헤첸도르프

 

 

○ 음악가 기념관(박물관) 

 

    - 모차르트 기념관(비엔나 모차르트하우스)(Mozart Wohnung: Vienna Mozart Haus: Mozart Residence): 1구 돔가쎄(Domgasse) 5번지. 전에는 '피가로하우스'라고 불리던 건물이다. 모차르트는 비엔나의 여러 곳에서 거주했지만 슈테판스돔 뒤편 골목길인 돔가쎄 5번지만이 지금까지 제대로 보존되어 있다. 물론 가구들은 모차르트가 사용했던 것들이 아니다. 다만, 책상 하나는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를 작곡할 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이 집에서 1784년부터 1787년까지 3년 동안 살았다. 그는 이 집에서 여러 작품들을 작곡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다. 그래서 전에는 '피가로 하우스'라고 불렀다. 이 집은 2006년 초에 재단장하여 비엔나 모차르트 하우스로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지하실에는 뵈젠도르프 피아노가 후원하는 조그마한 연주회장도 있다.

    -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기념관(Beethoven Wohnung Heiligenstadt: Beethoven Residence in Heiligenstadt): 19구 프로부스가쎄(Probusgasse) 6번지. 베토벤이 1802년 여름에 지냈다는 집이다. 당시에 하일리겐슈타트는 비엔나의 교외여서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마을에는 온천이 있었다. 아마도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고치고 싶은 생각에서 하일리겐슈타트의 온천을 이용하지 않았나 싶다. 베토벤은 이 집에서 교향곡 제2번을 작곡했다. 그리고 청각장애가 점점 악화되자 절망감에서 저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 테스타멘트'(유서)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프로부스가쎄 6번지이지만 당시에는 헤렌가쎄(Herrengasse) 6번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곳에서 지내던 당시에는 비엔나 교외의 집들에 대한 주소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헤렌가쎄 6번지인지, 또는 프로부스가쎄 6번지인지는 확실치 않다. 베토벤 자신도 이 집에서 지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주소를 명확히 기록하지 않았다. 주소가 없어서였다.

    - 베토벤 에로이카하우스(Beethoven Eroicahaus: Eroica House): 19구 되블링거 하우프트슈트라쎄(Döblinger Hauptstrasse) 92번지. 베토벤이 1803년 여름에 지내던 집이라고 한다. 이 집에서 교향곡 제3번 '영웅'(에로이카)을 작곡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을 에로이카하우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실상 베토벤은 이 집에서 살았던 일이 없다고 한다. 베토벤 연구가인 요제프 뵈크 그나데나우라는 사람이 이 집에서 베토벤이 지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 일대의 주소는 1804년에 다시 책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과연 베토벤이 오늘날의 되블링거 하우프트슈트라쎄 92번지에서 살았었느냐는 것은 분명치 않다. 한편, 1872년에 알렉산더 휠로크라는 사람은 베토벤이 오버되블링에서 지내던 집이 현재의 호프차일레(Hofzeile) 15번지라고 주장했다. 호프차일레 15번지는 철거되어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보눙(아파트)이 들어섰다.

    - 베토벤 파스크발라티하우스(Beethoven Pasqualatihaus: Pasqualati House): 1구 묄커 바슈타이(Mölker Bastei) 8번지. 베토벤은 1804-08년, 1810-14년의 두번에 걸쳐 이 집에서 지내면서 교향곡 제5번(운명), 교향곡 제6번(전원)을 작곡했다. 그리고 피아노 소품인 '엘리제를 위해서'(Fur Elise)도 이 집에서 지낼 때에 작곡했으며 오페라 '휘델리오'도 이 집에서 마지막 손질을 했고 '대공 트리오'(Archduke Trio)도 이 집에서 작곡했다. 이 집에서 베토벤이 실제로 살았던 방은 현재 다른 사람이 세들어 살고 있기 때문에 베토벤 기념관은 그 옆방을 사용하고 있다.

    - 하이든 기념관(Haydnhaus: Haydn Hous): 6구 하이든가쎄(Haydngasse) 19번지. 하이든인 이 집을 런던에서 돌아온 직후인 1793년에 취득하여 그가 세상을 떠나던 1809년까지 살았다. 당시의 주소는 클라인 슈타인가쎄(Klein Steingasse) 71번지였다. 이 주소는 1795년에 73번지로 바뀐 일이 있다. 하이든은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작품들을 작곡했는데 대표적인 것은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와 '사계'이다. 이 집에서는 나중에 브람스가 세를 들어 산 일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집의 방 하나는 브람스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 슈베르트 생가(Schubert Geburtshaus: Schubert's Birthplace): 9구 누스도르퍼 슈트라쎄(Nussdorfer Strasse) 54번지. 현재는 구의 명칭이 알저그룬트이지만 당시에는 힘멜포르트그룬트(Himmelpfortgrund)라고 했다. 슈베르트는 이 집에서 태어난후 4년 반 동안 살았다. 이 집의 2층 부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기념관에의 전시품 중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슈베르트가 쓰던 안경이다. 그리고 약 50점에 이르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Adalbert Stifter)의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슈티프터 전시실은 아달베르트 재단이 운영하고 있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는 화가라기 보다는 작가로서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집(Schubert Sterbewohnung: Schubert's Deathplace): 4구 케텐브뤼켄가쎄(Kettenbrückengasse) 6번지. 나슈마르크트 인근이다. 슈베르트는 이 집에서 생애의 마지막 2년 2개월을 보냈다. 이 집은 슈베르트의 형인 페르디난트가 세들어 살고 있던 곳이다. 슈베르트는 이 집에서 1828년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는 이 집에서 미완성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전시품 중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의 초안과 그가 친구인 프란츠 폰 쇼버에게 보낸 친필 편지의 사본이 있다.

    -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관(Johann Strauss Wohnung: Johann Strauss Residence): 2구 프라터슈트라쎄 54번지. 1860년대에 요한 슈트라우스가 살던 집을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이 집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작곡했다. 그래서 '푸른 다뉴브 왈츠의 집'이라고도 부른다.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라고 까지 불리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비엔나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신년을 맞이하면서 듣는 곡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기념관의 요한 슈트라우스 캐리캐추어

 

○ 고고학적 발굴 기념 장소

 

    - 미하엘광장 발굴장소(Ausgrabungen Michaelerplatz: Michaelerplatz Excavations): 1구 미하엘러플라츠(Michaelerplatz).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발굴작업에 진행되었다. 당시에 비엔나의 1구에 해당하는 지역은 빈도보나라고 불렀다. 로마 유적이 발굴된 곳은 아마도 빈도보나의 수비대 병영터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병사들의 부인들과 아이들이 거처하던 집터라고 보고 있다. 발굴 장소는 1991년에 영구보존키로 했다. 전시 디자인은 유명한 건축가인 한스 홀라인(Hans Hollein)이 맡았다.

 

미하엘광장의 로마 유적지

 

    - 비르질 카펠레(Virgilkapelle: Virgilius Chapel): 1구 슈테판스플라츠(Stephansplatz). 비르질 교회는 125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다가 14세기에는 부유한 가족들의 납골당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1781년에 옆에 있던 성막달라 마리아 예배처가 화재로 전소하자 비르질 예배처도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로부터 약 200 년도 더 지난 1973년에 지하철 역을 설치하다가 비르질 예배처가 발견되었다.

 

지하철 1호선 슈테판스플라츠의 지하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비르질 카펠레

 

    - 로마유적 박물관(Römermuseum: Musuem of the Romans): 1구 호에르 마르크트(Hoher Markt) 3번지. 이곳에서 빈도보나 시절 로마군 장교들의 숙사로 사용되던 집들이 발굴되었다. 당시의 도자기들, 비석들도 발굴되어 전시되고 있다. 2008년에 발굴장소를 확장하고 보수하여 '로마인 박물관'(Museum of the Romans)라는 명칭으로 재개관하였다. 그 전에는 그저 '로마 폐허지'로 알려졌었다.

 

로마유적 박물관

 

    - 암 호프 로마 주거지(Römische Baureste Am Hof: Roman Ruins under Am Hof(Fire Headquarters)): 1구 암 호프(Am Hof: 소방서). 암 호프에 있는 소방서의 지하실에서 운하의 수도 시설이 1950년대에 비로소 발견되었다. 빈도보나의 남쪽으로부터 현재의 티퍼 그라벤(Tiefer Graben)에 이르는 수도시설이었다. 소방서 건물이 2차 대전의 포화로 파손되자 복구하기 위해 지하실을 살피다가 발견되었다. 로마시대의 성벽과 성루도 발굴되었다. 지상으로부터 거의 3미터 깊이에 있었다.

 

암 호프의 소방서 건물(왼편 장식이 많은 집)

 

    - 나이트하르트 프레스코 전시관(Neidhart Fresken: Neidhart Frescoes): 1구 투흐라우벤(Tuchlauben) 19번지. 나이트하르트 프레스코화는 현존하는 비엔나의 그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림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들은 1398년 어떤 부자 상인이 자기 집 연회장을 꾸미기 위해서 의뢰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의 대부분은 음유시인인 나이드하르트 폰 로이엔탈(Neidhart von Reuental)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이 프레스코들이 발견된 것은 1979년이었다. 벽의 횟벽을 한겹 벗겨냈더니 그림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1982년부터 전시실로 만들어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나이트하르트 프레스코 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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