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이야기/박물관 도시

비엔나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박물관

정준극 2014. 8. 31. 20:49

비엔나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박물관


루이스 제임스(Louis James)라는 사람이 쓴 Xenophobe's guide to Austria(오스트리아에 대한 제노포브 입문)라는 책이 있다. 제노포브는 원래 문외한이란 의미이지만 일반적으로는 다른 민족을 이유없이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사람 또는 행동도 말한다.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유없이 싫어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방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루이스 제임스가 쓴 책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에 대하여 혹자는 그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느니,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혐오심을 조장하는 사례가 있지만 굳이 그런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자면 오스트리아 사람과 오스트리아의 문화에 대하여 좀 더 솔직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내세웠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여러 특성 중의 하나는 수집벽에 대한 것이다. 비엔나에 박물관이 많은 이유는 무엇이든지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비엔나 사람들의 본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에서 그와 관련한 한가지 스토리를 옮겨 보았다. 비엔나의 박물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해서이다. 루이스 제임스의 책은 국내에서 1998년  번역하여 ‘오스트리아 문화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다음은 그 책에서 퍼온 것이다.

  

비엔나의 장례박물관의 전시품. 관도 수집해 놓았다. 하기야 관도 예술품에 속할수 있다.


강박관념 -싸구려에서 예술품까지-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오페레타와 무도회에 열광하고 있고 스포츠에 있어서는 축구에 열광하고 있다. 별로 이기지도 못하면서 축구라고 하면 먹던 밥던 제쳐놓고 텔레비전만 바라보는 것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이다. 비교적 근자에 와서는 경주용 자동차에 대한 열광이 대단하다. 자동차 경주선수는 국민적 영웅이나 마찬가지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축구와 자동차 경주를 빼놓고 숭배와 열정의 대상이라고 할수 있는 두 가지가 더 있다면 ‘무언가를 모으는 일’과 ‘죽음’이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무얼 수십하는데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들이 있다. 오스트리아 수집광의 원조는 합스부르크 왕가라고 할수 있다.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우표나 동전을 모으는 것처럼 영토와 작위와 귀중한 예술품들을 수집했다. 오늘날 아무리 수집벽이 강한 오스트리아 백성이라고 해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사람들처럼 이 일을 감당해 낼 사람은 거의 없지만 가끔은 유명한 안과전문의 루돌프 레오폴드(Rudolf Leopold)와 같은 예외가 있긴 하다. 그는 구스타프 클림트나 에곤 쉴레 등 20세기 초의 저명한 오스트리아 예술가들이 그린 작품들을 엄청나게 수집하였다. 오늘날에는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려울 만큼 비싼 작품들이다. 얼마 전에 완공된 종합박물관(Museumsquartier)은 오직 레오폴드가 소장한 작품만을 전시하기 위해 커다란 건물 하나를 따로 내어주었으니 그것이 레오폴드미술관이다. 루돌프 레오폴드가 종신 레오폴드미술관장으로 선임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레오폴드의 수집벽에 대한 유명한 일화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일시적으로 재정난에 빠진 그의 가족이 레오폴드에게 소장품 가운데 하나만 팔자고 애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할수 없이 레오폴드는 런던 경매장에 가서 값비싼 그림 하나를 정말로 팔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그 돈으로 그 자리에서 다른 그림을 구입했다는 것이다.

 

무제움스크바르티어의 레오폴드미술관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모을 수 있는 물건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은 서민들에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서 민속학적가치 따위는 있을 법도 없는 외국산 냄비를 부엌 사방 벽이 모자랄 정도로 모아 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휴가를 갈 때마다 부지런히 사 모은 쓰잘데 없는 기념품으로 거실을 가득 채우는 사람도 있다. 유리병 속에 넣은 배, 소의 목에 매다는 세 가지 사이즈의 종, 머리를 끄덕이는 당나귀 인형에 이르기까지, 별별 희귀하고 잡다한 물건들을 구해다가 싫어도 볼 수밖에 없는 자리에다 진열해 두는 것이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특기다. 심지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같은 근엄한 학자조차도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이른바 ‘고대 미술품’이라는 것을 긁어 모았다. 실제로는 허접스러운 기념품들이었다. 얼마전 프로이트가 남기고간 그런 시시콜콜한 수집품 전시회가 열린 적이 있는데, 카탈로그에는 ‘프로이트의 사상과 그가 모은 골동품 사이의 여러 가지 관련성’을 테마로 한 아주 진지한 논문이 실려 있기까지 했다.

 

비엔나 기념품
                                    

자기야 재미가 있겠지만 남들이 보면 쓰잘 데 없는 물건들인데 그런 것들을 한도 끝도 없이 모으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가진 것 가운데 남에게 되팔아먹기 좋은 것만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감각을 얻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기념품업자들은 온갖 종류의 조잡한 물건을 뻔뻔스럽게 만들어 판다. 그 중 유명한 것을 몇가지 들자면,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흉상(이른바 카이저 키치), 모차르트쿠겔(Mozertkugel: 럼주가 든 동그란 초콜릿), 클림트나 쉴레의 모티브가 든 티셔츠 따위이다. 오스트리아의 과거를 디즈니랜드 풍으로 포장해서 팔아먹는 이러한 기념품 산업은 오스트리아 장사꾼들에게는 돈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행복을 안겨 준다. 

 

마치 황학동 골동품 시장을 연상케 하는 프라터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