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컬 뮤직 팟푸리/오페라와 영화

감동 영화 속의 감동 아리아

정준극 2014. 12. 28. 20:02

감동 영화 속의 감동 아리아

 

오페라 아리아...참으로 감동적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 아는 오페라 아리아들을 자꾸 들어 보면 정말 어떻게 이런 감동적인 노래를 작곡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라 돈나 에 모빌레', '네순 도르마', '운 벨 디 베드레모'... 이렇듯 오페라 아리아들이 감동적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영화에서는 어떤 감동적인 장면을 더욱 감동적으로 몰고 가고 싶을 때 오페라 아리아 또는 오페라에 나오는 음악을 함께 들려주었다. 영화에서 음악이 얼마나 효과를 주느냐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관중들은 영화를 보는 중에 오페라 아리아가 나오더라도 그 아리아의 가사는 물론 그 아리아를 부르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가 반감이 될수 있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노래만 듣고서도 감동을 느낄수 있기 때문에 효과만점이다. 더구나 만일 오페라의 스토리가 영화의 스토리와 비슷하다면 영화 속의 오페라 음악은 더욱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공연히 쓸데 없는 말을 한 것 같아서 송구스럽게 생각하지만 여기 20세기와 21세기에 사랑을 받은 감동적인 영화 중에서 감동적인 오페라 음악이 나오는 작품 10 선을 소개한다.

 

○ '사랑의 여로'(Sunday Bloody Sunday). 1971년 영국. 피터 핀치, 글렌다 잭슨, 머레이 헤드 주연.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에서 '바람은 산들 불고'(Soave sia il vento)

 

'사랑의 여로'(또는 블라디 선데이)는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어떤 젊은 양성애자가 직장의 여직원과 사귀는  동시에 어떤 중년의 유태인 남자 의사와도 사귄다는 얘기이다. 말하자면 동성연애도 하고 이성연애도 하는 특이한 케이스이다. 그런데 여직원과 의사는 서로의 입장을 알고 있지만 그 남자를 잃고 싶지 않아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코지 판 투테)는 두 젊은 남자가 각각 다른 남자의 약혼녀를 유혹하여 과연 그 여자들이 정절을 지키는지를 테스트한다는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양성애자와 두 애인의 이야기가 흡사한 점이 있다. '바람은 산들 불고'는 이 영화에서 자주 나온다. 원래는 두 약혼녀들이 자기들의 약혼자들이 배를 타고 저 멀리 전쟁터에 나간다고 하자 제발 순풍에 무사히 다녀 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노래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아름다움이 흠씬 배어 있는 노래이다.

 

'사랑의 여로'.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에서 휘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의 듀엣인 '바람은 산들 불고'가 나온다

 

○ '월 스트리트'(Wall Street). 2010년 미국. 마이클 더글라스, 샤이아 라보프, 케라 멀리간, 챨리 쉰 주연.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이 여자도 저 여자도(Questa O Quella) 

 

영화 '월 스트리트'는 1980년대 미국의 탐욕스럽고 자만에 넘쳐 있는 시대를 축소한 전형이다. 영화는 어떤 젊은 주식중개인이 직장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많이 가지기 위해 갖가지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월 스트리트'의 기둥 줄거리이다. '리골레토'는 플레이보이 공작의 이야기이다. 철저하게 자기 위주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리골레토는 여자들을 유혹하고는 어느새 버리는 사람이다. '리골레토'에 나오는 '이 여자도 저 여자도'는 '월 스트리트'에서 주인공인 젊은 주식중개인이 물질에만 집중하는 여자친구와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에 나온다. 가사는 약간 수정하여서 '이 여자도 저 여자도 나에게는 모두 같다'라고 했다. 테너 얀 피어스의 노래로 나온다.

 

'월 스트리트'.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에서 만토바 공작의 아리아인 '이 여자도 저 여자도'가 나온다

 

○ '환타지아'(Fantasia). 1940년. 월트 디즈니 만화 영화.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La Gioconda)에서 '시간의 춤'

 

디즈니가 만든 '환타지아'는 클래시컬 음악을 사용한 음악영화이다. 영화에서 하마들과 타조가 폰키엘리의 '라 조콘다' 중에서 '시간의 춤'에 맞추어서 춤을 춘다. 하마들이 그 육중한 몸에 발레를 위한 추추를 입은 모습이 오히려 귀엽다. 그 모습이 정말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환타지아'에서 히포들의 발레.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의 '시간의 춤'이 나온다

 

○ '갈리폴리'(Gallipoli). 1981년. 호주. 멜 깁슨, 마크 리 주연

비제의 '진주잡이'(Les Pecheurs de Perles)에서 '성스러운 사원에서'(Au fond du temple saint)

 

'갈리폴리'는 1차 대전 중에 자원입대한 호주의 두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청년은 우정을 다짐하면서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치룬다. 그리고 갈리폴리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성스러운 사원에서'는 진주잡이 두 청년인 추르가와 나디르가 죽을 때까지 우정을 변치 말자고 다짐하는 노래이다. 아마 오페라에 나오는 남성 듀엣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곡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플라치도 도밍고와 롤란도 빌라존이 부른다.

 

'갈리폴리'에는 비제의 '진주잡이'에서 남성 듀엣인 '성스러운 사원에서'가 나온다.

 

○ '제5원소'(The Fifth Element). 1997년. 프랑스. 브루스 윌리스, 밀라 요보비치 주연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에서 '아름다운 그 음성'(Il dolce suono)

 

'제 5원소'에도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가 나온다고 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런 괴상한 영화에서 무슨 오페라 아리아가 나오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 테마는 인간성이 생존될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 임무는 코르벤 달라스라는 이름의 택시 운전기사의 몫이다. 달라스가 택시를 운전하고 갈 때에 갑자기 외계에서 온 듯한 어떤 여인이 택시 안으로 뛰어들면서부터 그의 임무가 시작된다. 그 젊은 여인이 바로 제5원소이다. 달라스의 임무는 나머지 4개의 원소들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악으로 뭉쳐 있는 검은 위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을 막을수 있다. 영화 '제5원소'에서 디바 플라발라구나가 극장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그 음성'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오페라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되는 달라스가 이 아리아를 들으면서 감동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페라에서 루치아는 사랑하는 에드가르도와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여 '아름다운 그 음성'을 부른다. 그렇지만 루치아는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이미 신랑인 아르투로를 살해한 뒤였다. '제5원소'의 아리아는 알비나이 티라나 출신의 소프라노 인바 물라 차코(Inva Mula Tchako)가 부른 것이다.

 

'제5원소'에는 도니체티의 '람메무어의 루치아'에서 루치아의 아리아인 '사랑스런 그의 음성'이 나온다

 

○ '데이비드 게일'(The Life of David Gale). 2003년. 미국-독일 합작. 케빈 스페이시, 케이트 윈슬렛 주연

푸치니의 '투란도트'(Turandot) 중에서 '차가운 마음도 이제 풀리리'(Tu che di gel sei cinta)

 

영화 '데이비드 게일'은 주인공인 데이비드 게일이 사형에 처해지기 1주일 전에 일어난 일을 그린 작품이다. 대학교수였던 데이비드 게일은 동료 한 사람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데이비드 게일은 어떤 저널리스트와의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인을 저지를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게 된다. 투란도트는 중국의 아름다운 공주이다. 그러나 그에게 구혼하는 사람들은 세가지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영화 '데이비드 게일'에서는 어떤 신비스런 사람이 저널리스트를 은밀히 따라다닌다. 그러면서 얼굴을 마주치게 되면 자기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풀어 놓는다. 그 신비한 사나이는 '투란도트'에서 하녀 류(Liu)의 아리아인 Tu che di gel sei cinta를 무척이나 듣기를 좋아한다. 이 아리아는 류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투란도트 공주에게 들려주는 노래이다. 영화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소프라노 에바 마튼의 음성이 나온다.

 

'데이비드 게일'에는 '투란도트'에서 류의 아리아인 '차가운 마음도 이제 풀리리'가 나온다

 

○ '헝거'(The Hunger). 1983년. 영국. 꺄트리느 드뇌브, 데이빗 보위, 수잰 사란돈 주연

들리브의 '라크메'(Lakmé)에서 '보라, 말리카... 자스민으로 덮힌 돔을'(Viens, Malika...Dôme épais)

 

'헝거'는 1980년대에 뉴욕에 살고 있던 멋쟁이 뱀파이어 미리암과 존 블레이로크에 대한 영화이다. 두 사람은 사실상 오래 전인 18세기에 프랑스에서 결혼했던 사이이다. 불행하게도 존은 나이를 이기지 못해서 현저하게 늙는다. 그런 존을 보고 미리암이 어떻게 해서든지 돕고자 한다. 미리암은 수면장애와 노쇠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사라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라크메'는 19세기에 영국이 지배하던 인도에 살고 있던 브라민 고승의 딸인 라크메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이다. 어느날 라크메는 시녀 말리크와 함께 숲속으로 산책을 떠난다. 라크메는 말리크에게 '보라, 말리카, 자스민이 덮힌 저 돔을...'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듀엣이 아름답다. 아마 오페라의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의 듀엣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일 것이다. 영화에서는 미리암이 피아노를 치면서 사라와 얘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이 노래가 나온다. 미리암과 사라는 라크메와 말리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한다.

 

'헝거'에는 '라크메'에서 라크메와 말리카의 듀엣 '꽃의 2중창'이 나온다

 

○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 Life is Beautiful). 1998년. 이. 로베르토 베니니, 니콜레타 브라시 주연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Les contes d'Hoffmann) 중에서 뱃노래(바르카롤레: Barcarolle)

 

홀로코스트 중에 강제수용소에서 일어난 어느 가족의 일을 그린 것이다. 대사는 이른바 모순어법(Oxymoron)처럼 정리되어 있어서 흥미를 준다. 이탈리아의 유태인인 귀도는 다섯살 아들과 부인 도라와 함께 강제수용소로 끌려온다. 귀도는 어린 아들에게 두려움이나 공포를 심어주기 보다는 게임으로서 그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귀도는 아들에게 만일 게임에서 이기면 진짜 탱크를 한 대 주겠다고 말한다. '호프만의 이야기'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마지막 이야기는 주인공인 호프만이 고급 창녀인 줄리에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귀도가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장차 결혼할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호프만의 이야기' 중에서 '뱃노래'는 나중에 강제수용소 막사의 잠 못이루는 장면에서도 나와 마음을 괴롭힌다. '뱃노래'의 제목은 '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Belle nuit, ô nuit d'amour)이다. 영화의 오페라 무대에서는 줄리에타를 소프라노 데니스 그레이브스가 부른다.

 

'인생은 아름다워라'에는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뱃노래'(아름다운 밤, 사랑의 밤)이 나온다.

 

○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1988년. 미국. 마이클 더글라스, 엘렌 폴리 주연

푸치니의 '나비부인'(Madama Butterfly) 중에서 '어떤 갠 날'(Un bel di vedremo)

 

맨하튼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어떤 성공한 남자가 출판사의 편집장으로서 독신으로 살고 있는 여자를 만나 잠시 불륜의 관계에 있게 된다. 남자는 그저 한 때의 바람으로 생각하지만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에 크게 집착한다. 그래서 남자는 물론 심지어 부인과 어린 딸까지 스토킹한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여주인공인 초초상은 미국 애인인 핀커튼이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며 기다린다. 초초상은 핀커튼을 남편이라고 믿고 있지만 핀커튼은 초초상을 그저 잠시 만나 엔조이했던 일본 여자라고 생각한다. 오랜 헤어짐 끝에 마침내 핀커튼이 다시 돌아오지만 이젠 미국에서 새로 결혼한 부인과 함께이다. 초초상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스스로를 포기하기로 결심하여  '명예스럽게 살지 못하려면 명예롭게 죽어라'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자결한다. 영화에서 스토커 여인인 알렉스는 오페라 '나비부인'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나비부인'에 나오는 몇 곡의 아리아들이 영화에 나온다. 어느때 알렉스는 '나비부인'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무아지경 속에 자살할 충동을 받기도 한다. 영화에서 '어떤 갠 날'은 미국의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노래이다.

 

'위험한 정사'에는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이 나온다

 

○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 1979년. 미국. 말론 브란도, 마틴 쉰, 로버트 듀발 주연

바그너의 '발퀴레'(Walküre)에서 '발키리의 기행'(Ritt der Walküren: Ride of Valkyries)

 

'지옥의 묵시록'은 배트남 전쟁 중에 미국이 벤자민 윌라드 대위를 정글로 파견하여 미육군 특수부대 월터 쿠르츠 대령을 암살토록 지시한 내용이다. 월터 쿠르츠 대령이 정신이상적인 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발키리의 기행(驥行)'에는 여덟 명의 발키리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맏이는 브륀힐데이다. 이들은 전쟁터를 다니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한 용사들의 영혼을 발할라로 데려가는 역할을 한다. '발키리의 기행' 음악이 나오는 장면은 미군이 헬리콥터의 굉음과 함께 베트남의 어떤 마을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미군들로서는 마치 거친 파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핑을 완벽하게 즐길수 있는 장소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영웅은 과연 누구인지는 보는 사람들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지옥의 묵시록'에는 바그너의 '발퀴레'에서 '발키리들의 기행'이 나온다.

 

* 추가: 1950년도 워너 브로스의 만화영화인 '세빌리아의 토끼'(Rabbit of Serville)에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서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