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기념상/링슈트라쎄 기념상

문학의 향기가 넘쳐 흐르는 링 슈트라쎄

정준극 2015. 9. 20. 15:41

링 슈트라쎄에 감도는 문학의 향기

저명한 작가, 시인들의 기념상

 

오스트리아는 위대한 음악가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했지만 작가나 시인은 이렇다하고 명함을 내밀 만한 인물이 없다. 고작 극작가로서 프란츠 그릴파르처, 요한 네포무크 네스트로이, 페르디난트 라이문트 등이 있을 뿐이다. 연극을 얘기한다면, 기본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연극은 르네상스 시기에는 이탈리아 연극을 가져와서 공연했지만 그후에는 독일에서 가져온 작품, 또는 프랑스어를 번역한 것을 주로 공연하며 좋아했다. 그런 의미에서 링 슈트라쎄를 둘러싸고 있는 기념상 중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나 시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외지인들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부르크테아터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연극극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건물이다. 부르크테아터에서는 과거에는 음악회도 심심치 않게 열렸었는데 지금은 슈타츠오퍼에게 자리를 양보하여서 연극 일변도이다. 부르크테아터 외관의 창문이 있는 곳(이를 펜스터크뢰눙: Fensterkrönung 이라고 한다)에는 여러 저명한 작가, 시인들의 흉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모두 아홉개의 흉상인데 거의 모두 외제 작가 또는 시인들이다. 하지만 국내인이니 외국인이니 하는 것을 떠나서 한편 생각해보면 그나마 그런 뛰어난 시인, 작가들의 흉상이 한데 모여 있다는 것만해도 마음 기쁜 일이다. 스페인의 칼데론, 영국의 셰익스피어, 프랑스의 몰리에르, 독일의 괴테와 레싱과 쉴러와 헤벨, 그리고 오스트리아 출신으로서는 프란츠 그릴파르처와 프리드리히 할름이 있다. 링 슈트라쎄를 일부러 관광을 하던지 또는 부르크테아터 앞에서 누구와 만나기로 했다면 부르크테아터가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외관의 창문 앞에 장식되어 있는 여러 흉상들은 과연 누구의 것인지에 대하여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중에 한국에서 문학소녀 비슷한 사람, 또는 외국 친구들 중에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과 부르크테아에 대하여 얘기를 나눌 경우가 있다면 저건 누구고 이건 누구인데 그 사람으로 말하자면 어쩌구 저쩌구를 약간 언급함으로서 상대방으로부터 존경을 받을수 있을 것이다.

 

1.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의 저명 작가, 시인 흉상들. 빅토르 틸그너(Viktor Tilgner) 제작. 1888년 제막. 우니페어지태츠링(Universitätsring) 2번지.

 

부르크테아터의 창문 앞을 장식한 저명 작가들의 흉상들

부르크 테아터 정면 상단 창문들 앞을 장식하고 있는 저명 시인, 작가, 극작가들의 흉상. 사진은 괴테

 

1) 페드로 칼데론 델 라 바르카(Pedro Calderón de la Barca: 1600-1681). 원래의 풀 네임은 미안할 정도로 길다. Pedro Calderón de la Barca y Barreda González de Henao Ruiz de Blasco y Riaño 이다. 간단히 줄여서 페드로 칼데론 델 라 바르카라고 부르고 더 간단히는 그냥 칼데론이라고 부른다. 칼데론은 스페인의 문화예술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이른바 황금세기(Siglo de Oro: Golden Century)를 대표하는 시인, 소설가, 극작가이다. 스페인의 황금세기는 스페인의 합스부르크의 흥망시기와 일치한다. 대략 1492년부터 시작하여 콜럼버스의 신세계 항래시기까지이다. 대표작은 '인생은 꿈'(La vida es sueno: Life is a Dream)이다. 마드리드에서 태어나고 마드리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2)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영국의 시인, 극작가, 배우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셰익스피어에 대하여 '영국이 인도를 줄지언정 셰익스피어는 줄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영국이 국보 이상으로 여기는 인물이다. 워위크셔어(Warwickshire)의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Stratford upon Avon)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에이본의 시인'(Bard of Avon)이라고 불린다.

3) 장 바티스트 몰리에르(Jean-Baptiste Molier: 1622-1673). 극작가이면서 유명한 배우였다. 무대 이름이 몰리에르였다. 원래 이름은 장 바티스트 포켈랭(Jean-Baptiste Poquelin)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아마도 L'ecole des femmes(The School of Wives)일 것이다.

4) 고트폴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 독일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극작가, 소설가, 철학자, 예술평론가이다. 대표작은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이다. 드레스덴 부근의 카멘츠에서 태어났다. 당시 카멘츠는 오버라우지츠(Oberlausitz)라는 백작령이었다. 부라운슈봐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5)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고전주의 작가인 괴테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나서 봐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당시 프랑크푸르트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자유도시국가였다. 괴테의 대표작은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베토벤을 비롯한 비엔나의 여러 예술인들과 친분이 있었지만 비엔나에는 단 한번도 방문한 일이 없다.

6)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시인, 철학자, 극작가, 역사가이다. 신성로마제국에 속한 뷔르템버그의 마르바흐(Marbach)에서 태어났다. 슈투트가르트 인근이다. 봐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는 베토벤이 교향곡 제9번에 사용하였다.

7)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헤벨(Christian Friedrich Hebbel: 1813-1863). 독일의 저명한 시인 겸 극작가이다. 홀슈타인의 디트마르센(Dithmarschen)에 속한 베셀부렌(Wessleburen)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독일 북단의 덴마크와 가까운 곳이다. 비엔나와 와서 활동하다가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은 유디트(Judith), 마리아 막달레네(Maria Magdalene) 등이다.

8)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 1791-1872). 비엔나 출신의 위대한 극작가이다. 폭스가르텐에 별도의 기념상이 있다.

9) 프리드리히 할름(Friedrich Halm: 1806-1871). 지금은 폴란드에 속하여 있지만 당시에는 신성로마제국에 속해 있던 크라크푸(Krakow)에서 태어나서 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서 활동하다가 세상을 떠난 오스트리아 비더마이어 시기의 대표적 시인, 극작가, 소설가이다. 원래 이름은 상당히 길어서 Eligius Franz Joseph Freiherr von Münch-Bellinghausen이다. 프리드리히 할름은 예명이다. 대표작은 그리젤디스(Griseldis) 등이다. 할름은 풀잎을 말한다.

 

  

페드로 칼데론,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레싱, 괴테, 쉴러

  

헤벨, 그릴파르처, 할름

 

2. 니콜라우스 레나우(Nikolaus Lenau) - 1802년 헝가리의 레나우하임에서 출생. 현재는 루마니아이다. 1892년 비엔나의 오버되블링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비엔나 근교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의 봐이들링거 프리드호프(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기념상은 오페른링의 쉴러플라츠에 있다. 칼 슈베르체크()가 제작해다. 1892년 제막되었다. 레나우의 작품들은 세상적인 번뇌와 고통, 우울함을 주제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레나우를 비엔나의 바이런에 비교하기도 한다. 니더 외스터라이히의 슈토커라우(Stockerau)는 레나우를 기념하여서 그 도시를 '레나우 슈타트'(레나우시)로 선포하였다. 기념상의 하단에는 하프를 들고 있는 푸토와 스핑크스 조각이 있다.

 

쉴러플라츠에 있는 레나우 기념상. 하단에는 하프를 들고 있는 푸토(천사처럼 날개가 달린 아기)가 있고 다른 면에는 스핑크스가 있다.

 

3. 아나스타시우스 그륀(Anastasius Grün). 1806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라이바흐(Laibach: 현재의 류블리아나)에서 태어났고 1876년 카르니올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기념상은 오페른 링의 쉴러플라츠에 있다. 칼 슈베르첼레(Karl Schwerzek)가 제작했다. 1891년 제막되었다. 아나스타시우스 그륀의 원래 명칭은 안톤 알렉산더 폰 아우어슈페르크 백작(Graf Anton Alexander von Auersperg)이다.

 

쉴러플라츠에 있는 아나스타시우스 그륀의 기념상. 역시 하단에는 푸토가 있다.

 

4. 프란츠 그릴파르터(Franz Grillparzer).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에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1872년 장장 향년 81세로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기념비는 독토르 칼 렌너 링(Dr.-Karl-Renner-Ring)의 폭스가르텐(Volksgarten)에 있다. 인물조각은 칼 쿤드만(Carl Kundmann)이 맡았고 대좌등은 칼 하제나우어(Carl Hasenauer)가 맡았다. 1889년 5월에 제막되었다. 가운데 그릴파르처를 중심으로 양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벽면에는 그의 대표작의 장면들이 부조로 소개되어 있다. 왼쪽 병풍에는 조모(Die Ahnfrau), 인생은 꿈과 같아(Der Traum ein Leben), 오토카르왕의 행운과 종말(König Ottokars Gluck und Ende)의 장면들이, 오른쪽 병풍에는 사포(Sappho). 메데(Medea), 바다와 사랑의 파도(Des Meeres und der Liebe Wellen)의 장면들이 있다. 그릴파르터의 묘지는 히칭공동묘지에 있다. 폭스가르텐의 기념비과 같은 모양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폭스가르텐에 있는 프란츠 그릴파르터 기념비

왼쪽의 병풍과 부조. 그릴파르처의 원작을 바탕으로 공연된 연극의 장면들

오른쪽의 병풍과 부조

 

5.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오페른링의 괴테가쎄(Goethegasse) 소재. 에드문트 헬머(Edmund Hellmer) 제작. 1900년 12월 15일 제막.

  

오페른링-괴테가쎄의 초입에 있다. 링 슈트라쎄 건너편의 쉴러 기념상과 마주보고 있다.

 

6. 프란츠 페르펠(Franz Werfel). 1890-1945. 오페른링의 쉴러플라츠 소재. 오한 페트로스얀(Ohan Petrosjan)이 조각을, 롤란트 마르티로스얀(Roland Martirosjan)이 아키텍트를 맡았다. 2000년 제막. 하단에는 IN DANKBARKEIT UND HOCHACHTUNG DAS ARMENIISCHE VOLK(아르메니아 국민들에게 감사와 존경을)이라고 적혀 있다. 보헤미아의 프라하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화가 겸 작곡가인 안나 말러 그로피우스 베르벨(Anna Mahler Gropius Werfel)로서 위대한 작곡가 겸 지휘자인 구스타브 말러,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와 결혼했던 여인이다. 대표작은 '베르나데트의 노래'(The Song of Bernadette).

 

쉴러 플라츠의 프란츠 베르펠 기념상

 

7. 요제프 봐인헤버(Josef Weinheber). 오스트리아의 서정시인. 1892-1945.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니더 외스터라이히의 키르흐슈테텐(Kirchstetten)에서 세상을 떠났다. 기념상은 오페른링의 쉴러플라츠에 있다. 요제프 보크(Josef Bock)가 제작. 1975년 제막.

 

요제프 봐인헤버 기념상의 상단

 

8. 페르디난트 라이문트(Ferdinand Raimund). 비엔나에서 보헤미아 벌목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니더 외스터라이히의 포텐슈타인(Pottenstein)에서 세상을 떠난 배우 겸 극작가. 원래 이름은 페르디난트 야콥 라이만(Ferdinand Jakob Raimann)이다. 1790-1836. 유스티츠팔라스트(Justizpalast) 뒷편 무제움스슈트라쎄(Museumstrasse)에 있는 베그후버파르크(Weghuberpark)에 있다. 프란츠 포글(Franz Vogl) 제작. 1898년 제막. 기념상 상단의 뮤즈가 인상적이다. 대표작은 '낭비자'(Der Verschwender).

 

팔라멘트 뒷편 길에 있는 페르디난트 라이문트 기념상.

기념상 윗편의 뮤즈 디테일

 

9. 요제프 포퍼 린케우스(Josef Popper-Lynkeus). 작가 겸 엔지니어로서 여러가지 발명을 했다. 예를 들면 증기보일러 내부의 가스키트 발명 등이다. 보헤미아 콜린(Kolin)의 유태인구역에서 태어났고 프라하와 비엔나의 폴리테흐니쿰을 졸업했다. 당시 보헤미아(현재의 체코공화국)은 오스트리아제국의 영토였다. 1838-1921. 우니페어지태트링의 라트하우스파르크(Rathauspark) 소재. 후고 타글랑(Hugo Taglang) 제작. 1926년 제막.

 

라트하우스파르크에 있는 포퍼 린케우스 흉상

 

10.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독일의 시인, 작가. 759-1805. 오페른링의 쉴러플라츠 소재. 요한네스 쉴링(Johannes Schilling) 제작. 1876년 제막. 대좌의 인물상들(Sockelfiguren)은 인생의 네 단계를 표현한 것이다. (1) 유년시절(Kindheit)-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 (2) 청년시절(Jugend) - 젊은이가 여행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 (3) 장년시절(Erwachsener) - 주물공으로서의 어른의 모습 (4) 노년시절(Greis) - 커다란 책을 펼쳐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 또한 쉴러 기념상에는 여러 조각들이 비유로서 설치되어 있다. 시작(시작: Dichtkunst), 드라마(Drama), 페가서스(Pegasus: 날개 달린 천마), 비극적 및 희극적 마스크(Tragische und Satyrische Maske), 서사문학(Epik), 현명(Weisheit), 펠리칸(Pelikan: 고향사랑을 표현), 지혜의 여신 팔라스 아테네와 부엉이(Pallas Athene mit Eule: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다.

 

비엔나미술대학교 앞의 쉴러파르크에 있는 쉴러 기념상

 

유년시절(어머니와 아이), 청년시절(여행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

 

장년시절(주물장인으로서의 활동 모습), 노년시절(2절판의 대형서적인 폴리안트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

 

11. 루드비히 안첸그루버(Ludwig Anzengruber). 비엔나 출신의 작가 겸 아야기꾼. 1839-1899. 기념상은 독토르 칼 렌너 링(Dr.-Karl-Renner-Ring)의 작은 광장인 슈멜링스플라츠(Schmerlingsplatz) 소재. 한스 셰르페(Hans Scherpe) 제작. 1905년 제막. 대표작은 '네번째 기도'(Das vierte Gebot). 기념상의 아랫쪽에는 그의 동화의 주인공인 '채석장이 요한'(Der Steinklopferhannes)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다.

 

안첸그루버촤 동화속의 주인공 슈타인클로퍼한네스(Steinklopferhannes)

 

12. 아브라함 아 산타 클라라(Abraham a Santa Clara) - 현재는 독일에 속한 메스키르흐(Messkirch)의 크린하인슈테텐(Kreenheinstetten)에서 태어나서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명설교가 겸 소설가. 1644-1709. 그는 특히 페스트가 만연하였을 때 회개하라고 외쳐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앞으로 인도하였다. 기념상은 오페른링의 부르크가르테 출입문 옆에 있다. 주소로서는 괴테가쎄이다. 한스 슈바테(Hans Schwathe)가 제작. 1928년 제막. 그의 위트가 넘치고 신랄하면서도 대단 도덕적인 소설로는 '망나니 유다'(Judas der Erzschelm)가 있다. 성직자가 되기 전의 이름은 요한 울리히 메겔레(Johann Ulrich Megerle)이다.

 

궁정공원(부르크가르텐) 입구에 있는 아브라함 아 산타 클라라의 기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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