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와 음악/오스트리아 작곡가

Leopold Hoffmann(레오폴드 호프만)

정준극 2015. 11. 29. 05:56

Leopold Hoffmann(레오폴드 호프만)

모차르트 당시 성슈테판대성당 카펠마이스터

 

레오폴드 호프만

 

레오폴드 호프만(Leopold Hoffmann: 1738-1793)은 모차르트와 관련이 있는 작곡가이다.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살펴보다 보면 이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잘 아는대로 모차르트는 비엔나에 와서 남들이 인정하는 직장을 갖지 못했다.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모차르트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중요한 직책을 가지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는 1791년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 35세였다. 그에 앞서 그해 5월에 모차르트는 성슈테판대성당의 부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었다. 당시에 카펠마이스터는 레오폴드 호프만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레오폴드 호프만이 모차르트는 부카펠마이스터로 아주 지명을 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호프만의 건강이 나쁘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해서 세상을 떠날 것으로 생각하고 그 부카펠마이스터라는 직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곧 죽을 것으로 보이던 호프만은 이상하게도 죽지 않았다. 그러다가 모차르트가 그해 12월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호프만은 2년이나 더 버티다가 1793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호프만이 좀 일찍 죽었더라면 모차르트가 성슈테판대성당의 카펠마이스터가 되어서 이력서에 한 줄 들어갔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레오폴드 호프만은 비엔나에서 태어나서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제국정부의 고위 공무원이었다. 아버지의 연줄 때문인지, 또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 때문인지, 하여튼 호프만은 일곱살 때에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황비(요제프 2세의 부인)에게 속한 교회의 소년 합창단원이 되었다. 당시에는 합창단의 여성 파트를 주로 보이스 소프라노들이 맡았다. 그후 호프만은 여러 훌륭한 선생들로부터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그리고 작곡을 배우게 되었다. 호프만은 20세의 청년으로서 호프부르크 앞에 있는 미하엘교회(미하엘러키르헤)의 무지쿠스(Musicus)가 되었다. 무지쿠스는 지휘자 또는 음악감독은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직책이다. 호프만은 1766년에 페터스키르헤의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었다. 카펠마이스터(Kappelmeister)라는 직책은 교회에 속한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말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음악활동을 주관하는 음악감독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1769년에는 황실 가족들을 위한 음악개인교사로서 임명되었다. 호프만은 얼마후인 1772년에 성슈테판대성당의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었다. 음악가로서는 더할수 없는 영광이었다. 그때만해도 그는 호프부르크에 속한 부르크카펠레(궁정교회)의 음악감독이었으나 성슈테판대성당의 카펠마이스터로 가는 바람에 부르크카펠레의 음악감독직을 사임하였으나 2년 후에는 다시 응모하여서 결국은 세상 떠날 때까지 두 직책을 겸하였다. 호프만은 30여편의 교향곡을 작곡했고 여러 악기들을 위한 협주곡도 상당히 많이 작곡했다. 그리고 물론 미사곡이나 진혼곡 같은 종교음악, 일반 합창음악 등도 다수 남겼다.

 

슈테판스돔의 오르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