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컬 뮤직 팟푸리/클래시컬 뮤직 팟푸리

위대한 음악가들과 애완견

정준극 2017. 11. 10. 12:14

위대한 음악가들 애완견

2018년 개띠 해를 맞이하여


작곡가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애완동물들, 특히 애완견들은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일까? 반려자이기도 하고 기분전환을 위한 오락용이기도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다를바가 없다. 그러나 작곡가들에게는 견공이 작곡에 대한 영감을 줄수도 있고 심지어는 처음 만든 작품을 평가해주는 청중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어떤 작곡가는 작곡한 후에 견공을 앉혀놓고 그 작품을 처음으로 연주해서 견공의 반응을 살폈다고 하니 별 사람이 다 있다. 견공을 애완하는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견공들은 작곡가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마치 무슨 석사학위 논문같지만 그런 어려운 논란은 모르겠고 상식적인 견지에서 생각해 보자. 작곡을 한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자기만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 견공이 묵묵히 옆에 앉아서 인내로서 작곡가를 지켜보고 있다면 커다란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애완견을 데리고 조용한 공원길을 산책하면서 좋은 악상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애완견들은 작곡가의 동료가 된다. 엘가를 보라. 바그너를 보라. 자기가 애지중지하는 개들로부터 영감을 얻어서 작품에 반영한 일도 있다. 2018년 무술년, 개띠를 맞이하여 위대한 작곡가들과 일반적으로 말해서 개, 고상하게 말해서 견공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알아본다. 견공들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작곡가들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기 때문에 시끄러워서이다. 조용한 애완동물을 좋아한 작곡가들도 있다. 주로 고양이이다. 모리스 라벨, 알렉산더 보로딘, 표트르 차이코브스키, 콘스탕 랑베르 등등....고양이 족속들이다.


베토벤과 기곤스

베토벤의 피아노 소품인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바가텔르 25번 A 단조. WoO 59)는 가장 사랑받고 있는 피아노 소품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과연 엘리제가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논란이 되었지만 오늘날에는 베토벤이 한 때 피아노를 가르쳤던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 1792-1851)이 틀림없다고 얘기되고 있다. 왜냐하면 베토벤은 '엘리제를 위하여'를 테레제 말파티에게 헌정한 것은 거의 틀림없기 때문이다. '엘리제를 위하여'의 오리지널 악보는 훗날 테레제 말파티의 서류 뭉치에서 발견되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테레제가 엘리제로 되었는가? 베토벤은 악보의 표지에 Therese라고 썼는데 글씨가 워낙 악필이다보니 베토벤의 사후에 출판사에서 이 악보를 출판할 때에 Therese를 Elise라고 보고 그대로 Für Elise라는 제목을 붙여서 출판했고 그로부터 원래의 '테레제를 위해서'는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엘리제를 위해서'가 되었는 얘기다. 베토벤은 테레제 말파티를 사랑하여서 1810년, 그가 40세의 노총각일 때 깊은 생각 끝에 마침내 청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테레제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베토벤의 청혼을 거절했고 1816년에 비엔나의 어떤 귀족과 결혼했다. 테레제가 베토벤의 청혼을 거절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두 사람의 나이가 거의 20년이나 차이가 있으니 문제가 아닐수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별로 볼품도 없고 수입도 많지 않은 것 같으며 지저분해보이기까지 했으니 호감이 갈리가 없었을 것이다. 비엔나에서 태어난 테레제는 야콥 프리드리히 말파티라는 상인의 딸이었다.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동생은 안나였다. 안나는 베토벤의 친구인 이그나즈 폰 글라이헨슈타인이란 사람과 결혼했다. 아무튼 테레제가 누구인지를 소개하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테레제가 데리고 다녔던 기곤스(Gigons)라는 이상한 이름의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베토벤은 비록 테레세로부터 결혼을 거절 당했지만 테레제의 개는 신통하게도 베토벤을 무척 좋아해서 만나기만 하면 졸졸 따라다녔다고 한다. 어떤 때는 베토벤이 식사를 할때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더구나 어떤 때는 베토벤의 집까지 따라 온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베토벤으로서는 큰 위안이었다.


 

베토벤이 한때 결혼을 생각했던 테레세 말파티. '엘리제를 위하여'는 테레세를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쇼팽과 마르키

마리키(Marquis)는 후작이라는 뜻의 단어이다. 쇼팽의 여친이었던 조르즈 상드의 개 이름이다. 작고 귀여운 개이다. 쇼팽이 상드와 별 탈 없이 지낼 때에 쇼팽은 상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르키가 보고 싶습니다. 내 방 앞에 와서 킁킁 거리던 소리도 듣고 싶군요'라고 쓴 것을 보면 쇼팽이 상드의 개를 아주 좋아했던 모양이다. 쇼팽의 피아노 소품 중에서 '미뉴트 왈츠'(Minute Waltz)라는 것이 있다. 원래의 제목은 '강아지 왈츠'(Valse du Petit Chien)이다. 마르키가 자기 꼬리를 물려고 뱅뱅 돌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바그너와 레오

바그너는 여러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를 1862년까지 완성해서 출판사에게 넘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출판사로부터의 독촉은 성화와 같았다. 속된 말로 해서 바그너는 미칠지경이었다. 그때 바그너는 마인츠의 어떤 집을 빌려서 작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레오(Leo)라는 이름의 커다란 불독을 집 현관의 기둥에 매어 놓았다. 레오는 목을 매어 놓은 것이 괴로운지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댔다. 바그너는 레오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레오를 풀어주었다. 그런데 고마움을 모르는 레오는 갑자기 바그너의 손가락을 물었다. 엄지 손가락에 상처가 생겼다. 금방 염증이 생겨서 손가락이 부풀어 올랐다. 그때문에 펜을 들어서 작곡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바그너로서는 레오가 손가락을 문 것이 작곡지연에 대한 좋은 변명이 되었다. 바그너는 완치까지 6개월은 걸린다고 주장해서 출판사로부터 6개월의 말미를 얻었다. 바그너는 레오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는 완성하기까지 5년인나 더 걸렸다. 바그너는 비록 레오에게 물려서 잘못했다가는 큰 고통을 당할뻔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동안 개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다. 바그너는 개를 세마리나 데리고 살았다. 펩스라고 부르는 킹 챨스 스파니엘과 폴이라고 불리는 라브라도르, 그리고 루스라고 하는 뉴파운들랜드 종이었다. 1866년에 바그너의 법적으로는 아직도 부인인 민나 플라너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바그너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민나는 그레스덴에서 살고 있었지만 바그너는 유부녀인 코지마와 함께 스위스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아는대로 코지마는 나중에 남편인 한스 폰 뷜로브와 정식으로 이혼하고 바그너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니, 부인인 민나가 죽었는데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니 도대처 무슨 일이란 말인가?'라고 묻자 바그너는 손가락을 내 보이면서 '손가락에 염증이 생겨서..'라고 대답했다. 손가락이 아퍼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얼마후 데리고 있던 개 중에서 폴(Pohl)이 죽었다. 바그너는 어디를 출타 중이어서 폴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에 바그너의 하인이 폴을 뒷마당에 묻었다. 집에 돌아온 바그너는 폴의 장례식을 그렇게 치룬데 대하여 하인을 크게 나무라고 땅에 묻은 폴을 꺼내서 그야말로 상당히 화려한 장례식을 정중하게 다시 치루어주었다. 폴의 목에 아름다운 칼라를 씌우고 좋은 나무관에 넣어서 양지바른 좋은 장소에 격식을 차려서 매장해 주었다. 아마도 민나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씻어보기 위해 폴의 장례식을 엄숙하게 치루어준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였다.


바그너의 집에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고 있는 바그너. 두 사람은 친구사이였다. 바그너는 부인 민나와 이혼하고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하였다. 왼쪽 아래에 있는 검은 개는 바그너의 개이다. 벽에는 루드비히 2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아서 설리반과 토미

아서 설리반(Arthur Sullivan: 1842-1924)에게는 에드워드 홀이라는 주식브로커가 있었다. 에드워드는 1882년에 아서의 자금을 주식에 잘못 투자해서 아서에게 7천 파운드라는 경제적 손실을 주었다. 물론 에드워드 자신은 한푼도 없는 파산 신세였다. 아서는 조금이라도 원금을 건지려고 했지만 그럴 사정이 아니었다. 아서는 할수 없이 에드워드가 애지중지하던 개 토미(Tommy)를 데려왔다. 아서는 토미와 지내면서 정이 들대로 다 들었다. 그래서 8년 후에 토미가 저 세상으로 가자 유리관을 만들어서 장례식을 아주 잘 치루어 주었다.


페루치오 부소니와 레스코

이탈리아 출신의 페루치오 부소니(Ferruccio Busoni: 1866-1944)는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할 때에 정말로 돈이 없어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어느 해에 여름방학이 되었다. 방학때에 어디를 가지 않고 하숙방에서 지내면 그거야 말로 비참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친구들이 부소니를 찾아 보았더니 하숙방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었다. 모두들 부소니가 휴가를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부소니는 비록 하숙생활을 했지만 개를 한마리 기르고 있었다. 그나마 쓸쓸할 때에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날 오후에 친구 한 두명이 거리를 가다가 보니까 어떤 거지행색의 사람이 개 한 마리를 끌고 가는데 영낙없이 부소니의 개 레스코(Lesko)였다. 레스코라는 말은 북극지방에 사는 에스키모의 개라는 뜻이다.  그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고 푹 숙이고 가는 바람에 누구인지 알수 없었다. 친구들은 저 거지행색의 사람이 부소니의 개를 훔쳐서 데리고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달려가서 그 사람을 바로 세워보니 다름아니라 부소니 자신이었다. 부소니는 노동자 행색을 하면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레스코 때문에 발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소니는 레스코를 절대로 구박하지 않았다.


에셀 스마이스와 마르코

영국의 여류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에셀 스마이스(Ethel Smyth: 1858-1944)는 라이프치히에서 피아노 공부를 할 때에 마르코(Marco)라는 세인트 버나드 종의 개를 데리고 지냈다. 어느날 에셀은 브람스의 현악 5중주곡 리허설을 하러 갔었다. 브람스 자신도 리허설 자리에 와서 있었다. 리허설을 막 하고 있는데 마르코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에셀을 쫓아왔던 것이다. 마르코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에셀에게 아양을 떤다는 것이 지나쳐서 첼리스트의 보면대를 뒤엎는 등 약간의 소동을 벌였다. 커다란 몸집의 털북숭이인 세인트 버나드가 나타나서 난리를 폈으니 얼마나들 놀랐을까? 그러나 브람스는 오히려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듯 마르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브람스 자신도 개사모(개를 사랑하는 모임)의 중요 멤버였기 때문이었다.


에셀 스마이스와 마르코


레이놀드 한과 사디그

레이놀드 한(Raynold Hahn: 1874-1947)은 베네주엘라 출신이지만 프랑스에 귀화하여 프랑스 작곡가로서 활동한 사람이다. 레이놀드 한은 오랫동안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하나라고 하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와 동성연애 관계였다. 잘 아는대로 마르셀 푸르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로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어느때 푸르스트는 애인이라고 할수 있는 레이놀드 한에게 개 한마리를 사주었다. 프루스트는 볼테르의 소설에 나오는 철학자인 자디그의 이름을 따서 개의 이름도 자디그(Zadig)라고 붙였다. 프루스트는 레이놀드 한에게 자기가 옆에 없을 때에는 자디그를 보고 자기를 본듯하라고 말했다. 그런데 프루스트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다. 레이놀드 한이 자디그와 다정하게 지내는 꼴을 볼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짐짓 '자디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긴 글을 써서 발표했다. '내가 개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사람들은 '짖기만 하지 무얼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엘가와 마르코 그리고 미나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 1857-1934)는 개를 사랑했지만 그의 부인 알리스는 그렇지 못했다. 엘가는 알리스를 만나기 전에 마르코(Marco)라고 하는 개 한마리와 함께 지냈다. 그렇지만 결혼하고서는 개를 둘수 없었다. 엘가는 결혼생활 30년 동안을 그렇게 개 없이 지냈다. 다만, 간혹 친구 조지 로버트슨(George Robertson)의 개 댄(Dan)을 빌려서 데리고 산책을 하곤 했다. 엘가는 비록 친구의 개이지만 댄을 무척 사랑하여서 그의 '수수께끼 변주곡'(Enigma Variations)에서 11번째 곡에 친구 로버트슨과 댄을 아주 매력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920년에 알리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때부터는 개를 데리고 살았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였다. 한 마리는 예전에 데리고 있는 마르코을 잊지 못해서 마르코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파니엘이었다. 다른 한 마리는 테리어 종으로 미나(Mina)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술개발로 전화가 등장하자 엘가는 일이 있어서 멀리 가서 있더라도 전화로 사랑하는 마르코와 미나와 통화를 하며 애정을 표현했다. BBC 방송이 엘가의 70회 생일을 축하해서 생방송 연주회를 마련하고 엘가로 하여금 직접 오케스트라를 지휘토록 했다. 엘가는 지휘가 끝나자 마이크 앞에서 간단한 스피치를 했다. 엘가는 미나에게 굿 나잇 인사를 보냈다. 얘기에 의하면 미나는 라디오에서 주인인 엘가의 음성이 들리자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마치 RCA 빅터스 레코드 회사의 로고인 My Master's Voice를 연상케 하는 에피소드였다. 어느날은 엘가가 친구들과 함께 폴 몰에 있는 브룩스 클럽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웨이터가 엘가에게 전화가 왔다고 하면서 전화기를 건네 주었다. 엘가는 전화기를 통해서 상대방과 진지하게 얘기를 했다. 친구들은 도대체 누구와 저렇게 조심스럽게 얘기하는지 궁금했다. 엘가가 전화에 대고 마지막으로 전한 말은 '소파에 있는 쿠션은 물어뜯지 말게!'였다. 그제서야 친구들은 엘가가 마르코와 미나에게 전화로 얘기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튼 엘가의 개 사랑을 대단했다. 물론 아내 알리스를 더 사랑했다.


엘가와 개들, 어? 한마리가 늘었네. 이웃집 개인가?


쇼스타코비치와 톰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의 개 사랑도 대단한 것이었다. 톰카는 쇼스타코비치의 가정에서 가족이었다. 어느날 모스크바 뉴스의 기자가 쇼스타코비치와 인터뷰하기 위해 집을 방문했다. 응접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는데 옆 방에서 아이들이 짐을 싸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휴일에 멀리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다. 잠시후 콤카가 등장해서는 짖어대면서 아이들이 짐싸는 것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톰카,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소리치지만 소란은 그치지 않았다. 쇼스타코비치는 기자에게 '개들이 다른 동물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이유를 아시나요? 저렇게 온갖 참견을 다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했다. 그 얘기가 모스크바 뉴스지에 보도되었다.


한스 베르너 헨체와 제임스

독일의 베스트팔리아에서 태어난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 1926-2012)는 냉전시대인 1953년에 서독을 떠나 중부 이탈리아의 마리노(Marino) 마을에 정착했다. 헨체가 독일을 떠난 것은 좌익정치 성향을 가졌으며 또한 동성애자로서 주위의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헨체를 맑스주의자였으며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다. 그는 호치민과 체 게바라, 그리고 나중에는 쿠바의 카스트로를 무척 존경해서 그들에 대한 작품도 작곡할 정도였다. 그는 말년에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특히 영국을 좋아했다. 그의 영국 사랑을 남달라서 영국에 관한 것이라면 모두를 좋아했다. 헨체는 1990년대에 제임스(James)라는 개를 데리고 살았다. 헨체는 본인이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고 개의 이름도 영국식으로 지었고 개에게 얘기할 때에도 영어만 사용했다.


조지 크럼과 요다

조지 크럼(George Crumb: 1929-)는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의 아방 갸르드 작곡가이다. 그는 개를 좋아해서 집에 여러 마리의 개를 기르는 중에 요다(Yoda)라는 이름의 개를 특히 사랑했다. 요다라는 이름은 알다시피 영화 '스타워스'에 나오는 가장 뛰어난 능력의 제디(Jedi)를 말한다. 요다는 털북숭이로 아주 쾌활한 성격을 지녔다. 조지 크럼은 개들을 무척 사랑한 나머지 개를 주제로 삼은 관현악곡을 작곡했다. '개의 세상'(Mundis Canis: A Dong's World)이라는 작품이다. 그의 집에 있는 개들을 주재로 삼은 음악이다. 마지막 악장은 당연히 요다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 악장은 템포가 프레스티시모 파시블(prestissimo possible)이라고 되어 있다. 가능한한 매우 빠르게 연주하라는 지시이다. 아마도 요다가 천방지축으로 뛰어 다니며 명랑하게 노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데 연주도중에 음악이 갑자기 중단되고 지로(guiro)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한쪽 손에 들고 있던 막대기를 청중석으로 향하여 Bad dog! 이라고 소리치도록 되어 있다. Bad dog이란 요다를 말하는 것이다. 작곡자인 조지 크럼은 통상 오케스트라의 멤버가 되어서 지로를 연주하며 소리를 지르는 역할을 한다. 일전에 출반된 DVD인 Bad Dog! A Portrait of Crumb에는 표지에 요다가 등장한다.


 

아방 갸르드 작곡가 조지 크럼과 애견 요다. 영화 스타워스에 나오는 제다이의 요다처럼 생겼다.


로리 앤더슨과 롤라벨르

세상에, '개 콘서트'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개들을 위한 그런 콘서트가 있었다. 2016년 1월에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렸다. 미국의 아방갸르드 예술가인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1947-)과 그의 남편인 록스타 루 리드(Lou Reed)가 주관한 음악회이다. 시드니뿐만 아니라 인근에 살고 있는 개들이 보호자들과 함께 구름처럼 몰려온 콘서트였다. 콘서트 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야외의 계단에서 거행되었다. 로리 앤더슨은 개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단히 높은 피치의 음악들을 들려주었다. 음악을 작곡한 사람들조차 너무 높은 피치여서 잘 들을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리노이 출신인 로리 앤더슨과 루 리드가 음악을 만들 때에 이들의 애견으로 테리어종인 롤라벨르(Lollabelle)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무어 대단한 것을 자문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높은 피치의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롤라벨르가 반응을 하였기에 계속 그런 음악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로리 앤더슨을 아방갸르드 예술가라고 소개했는데 그것은 그가 작곡가, 연주자, 영화감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덕 콘서트(Dog Concert)에 참석한 수많은 견공들과 견주들


이밖에도 개를 유별나게 사랑한 음악가들을 짚어본다. 영국의 아서 블리스 경(Sir Arthur Bliss: 1891-1975)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옆에는 어딜가나 항상 개가 있었다. 블리스 경은 런던 교외의 반스(Barnes)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1차 대전 중에는 영국군 장교로서 프랑스 전선에 나가서 싸웠다. 2차 대전 중에는 미국에 있다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BBC의 음악국장으로서 전쟁중의 군인들과 민간인들 모두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음악을 책임맡았다. 그 공으로 전쟁이 끝나자 작위를 받았으며 Master of the Queen's Music으로 임명되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도 개를 좋아했다. 스트라빈스키는 18세기 연극인 풀치넬라(Pulchinella)를 발레음악으로 작곡한 것이 있다. 사람들은 스트라빈스키가 개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풀치넬라'를 푸시넬라'(Poochinella)라고 부르며 미소를 보냈다. 러시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출신인 첼리스트 겸 지휘자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1927-2007)도 에견센터 주인처럼 개를 사랑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알반 베르크(Alban Berg: 1885-1935)는 개사모회의 멤버로서 보다는 무조의 실험적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두 분야에서 모두 유명했다. 자세한 얘기는 지면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미국 인디애나주 출신으로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를 작곡한 콜 포터(Cole Poeter: 1891-1914)도 대단한 애견가였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로 활동한 예후디 메누힌(Yehudi Menuhin: 1916-1999) 역시 개가 없으면 못살겠다고 선언했던 사람이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개를 꼭 붙잡고 있다.


프란츠 슈베르트가 개를 좋아했는지 어쩐지는 기록이 없어서 확실히 모르지만 아래 그림을 보면 아무래도 슈베르트가 개를 좋아했다고 볼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개가 슈베르트를 좋아했던지! 아무튼 비엔나의 어떤 모임에서 슈베르트가 피아노 앞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 바로 뒤에는 개 한마리가 충성스럽게 앉아 있다. 마치 슈베르트의 보디가드와 같다. 소란스러운 무리들로부터 슈베르트를 보호하려는 모습이다. 슈베르트는 사람들이 너무 시끄럽게 구니까 약간 신경질이 나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중단하고 옆으로 방향을 바꾸어 앉아 있는 듯하다.


비엔나 슈타트콘빅트에서의 슈베르트. 구석에 개 한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영국의 요크셔어 출신인 하이든 우드(Haydn Wood: 1882-1959)도 애견가였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도 반드시 개를 데리고 나갔다. 친구들이 '아니 왜 개까지 데려 왔냐?'라고 말하면 '우리 식구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영국의 전설적인 지휘자이며 또한 작곡가이고 오르가니스트였던 말콤 사젠트(Malcolm Sargent: 1895-1967)도 개를 사랑하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의 작고 귀여운 개를 데리고 다녔다. 영국의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도 애견가였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대로 브리튼은 전설적인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연신 개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중요한 얘기인듯 한데 그러면 개를 좀 내려 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데, 물론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이라서 그런지 아무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브리튼과 피셔 디스카우


'카르미나 부라나'로 유명한 독일 뮌헨 출신의 칼 오르프(Carl Orff: 1895-1982)도 대단한 애견가였다. 자식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자기가 먹기 전에 개부터 주었다. 프랑스의 쥘르 마스네'(Jules Massenet: 1842-1912)는 자기의 콧수염을 사랑하는 것 만큼 자기의 개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2018년으로 탄생 1백주년을 맞는 미국의 마에스트로이며 작곡가인 레오나드 번슈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도 개를 무척 사랑하였다. 대체로 동성애자들이 개나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번슈타인도 말하자면 동성애자였기에 개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영국의 메조소프라노인 캐서린 젠킨스(Katherine Jenkins: 1980-)도 개를 남못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드비시, 카사노바의 사촌쯤 되었던 클로드 드비시(Claude Debussy: 1862-1918)도 개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엠마와 결혼하고나서 딸 클로드 엠마(애칭으로는 슈슈)가 태어나자 애완동물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슈가 좋아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마스네와 애견. 그리고 드비시와 딸 슈슈가 파리의 공원에서. 드비시의 뒤에 큰 개가 한마리 서 있다. 폭스 테리어종이다.


아래 사진은 미국의 글렌 굴드(Glenn Gould)가 소년시절에 찍은 사진이다. 글렌 굴드의 피아노 파트너는 잉글리쉬 세터라는 재미난 제목의 사진이다. 글렌 굴드는 개 뿐만 아니라 새도 좋아했다. 이탈리아의 페루치오 부소니(Feruccio Busoni)도 대단한 애견가였다. 레스코(Lescaut)라는 이름의 개는 주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는 라브라도 종의 개를 데리고 살았다. 친구 이상이어서 하이킹을 가거나 산책을 할 때에는 방드시 동행하였다. 체코의 레오시 야나체크(Leos Janacek)는 마스네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카이저 수염만큼이나 개를 사랑했다. 보후슬라브 마르티누(Bohuslav Martinu) 역시 개를 사랑했다. 목줄을 맨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었다. 프랑스의 프란시스 풀랑크는 테리어 종의 개를 길렀는데 한시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잠도 함께 잤고 먹기도 함께 먹었다. 스위스 출신이지만 네덜란드에서 평생을 보낸 프랑크 마틴(Frank Martin: 1890-1974)은 자이언트 콜리를 가족처럼 대하며 지냈다. 개가 말을 알아 듣는지 자주 얘기를 나누었다. 아놀드 쇤버그(Arnold Schoenberg)는 비츠라는 개를 길렀다. 영리한 개여서 쇤버그의 심중을 읽을줄 알았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ergei Rachmaninov)는 검은 개를 길렀다. 어찌나 좋아해서 어디나 함께 데리고 다녔던지 친구들이 '제발 개 좀 데리고 다니지 말아달라'고 간청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소년 글렌 굴드가 마치 세터와 듀엣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도 개를 좋아했다. 다행히 부인도 좋아해서 별 탈이 없었다. 오히려 개가 부인을 더 좋아하는 바람에 시무룩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스 베르너 헨체(Hans Werner Henze)는 제임스라는 그레이 하운드 개를 길렀다. 지안 카를로 메노티(Gian Carlo Menotti)도 대단한 애견가였다. 스파니엘 개를 특별히 사랑해서 손에서 놓지를 않았다. 히치코크 영화의 음악을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버나드 허만(Bernard Hermann: 1911-1975)도 개라고 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애견가였다. 행진곡의 제왕이라고 하는 미국의 존 필립 수자(John Philip Sousa)는 개를 한마리도 아니고 여러마리나 길렀다.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개사랑은 유명하다. 언제나 데리고 다녔다. 차마 실제 공연에는 무대에 데리고 나가지 못했지만 리허설에는 반드시 함께 했다. 성악가 중에서 유별나게 개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리아 칼라스였다. 푸들을 언제나 데리고 다녔다.


로스트로포비치와 개. 루치아노 베리오 지휘의 리허설에서.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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