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팟푸리

오페라에서만 볼수 있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일들

정준극 2018. 6. 12. 19:22

오페라에서만 볼수 있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일들


수탉이 사람을 죽이고 남자가 임신을 하며 무대에서 공연 중에 헬리콥터가 등장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상하고 엉뚱한 일들은 오페라에서나 가능하다. 오페라에서만 볼수 있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일들 몇가지만을 예로 들어본다.


○ 닭이 사람을 쪼아 죽였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금 닭'(Le coq d'oro)에서 주인공인 황금 닭(수탉)이 도돈 왕을 부리로 쪼아서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연은 이러하다. 도돈 왕은 적군이 시도 때도 없이 공격해 오기 때문에 날이면 날마다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다. 그러자 점성술사가 도돈 왕에게 황금 닭 한마리를 소개하면서 '이 닭으로 말씀 드리자면 적군이 공격할 것 같으면 사전에 크게 울기 때문에 방비를 할수 있다'고 말한다. 도돈 왕은 너무 기뻐서 사실이 그렇다면 나중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지 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자 과연 황금 닭은 적군이 공격해 올 것 같으며 미리 울어서 방비를 하도록 해준다. 도돈 왕은 이제 편안히 발 뻗고 잘수가 있게 된다. 아느날 도돈 왕은 전쟁터에서 절세 미인을 만난다. 셰마카 여왕이라고 했다. 도돈 왕은 셰마카 여왕을 데리고 와서 왕비로 삼을 생각이다. 그때 점성술사가 도돈 왕에게 황금 닭이 많은 공적을 쌓았으니 상을 달라고 말한다. 점성술사는 상으로 셰마카 여왕을 달라고 한다. 도돈 왕이 크게 노하여서 거절하자 점성술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도돈 왕을 섬길수 없다고 하면서 떠난다. 점성술사가 데려온 황금 닭은 밤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은 도돈 왕을 부리로 쪼아서 죽인다. 말도 안되는 스토리이지만 동화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황금 닭'에서 황금 닭


○ 자기 언니의 약혼자, 자기 동생의 약혼자인데도 조금 변장했다고 해서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언니의 약혼자와, 그리고 동생의 약혼자와 결혼식을 올릴뻔한 자매가 있다. 문제의 두 여인은 가정환경도 좋은 상류층 여인들로서 배울만큼 배운 지성적인 사람들다. 그런데도 언니의 약혼자, 동생의 약혼자가 알바니아 귀족처럼 변장을 하고 나타나서 서로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해 달라고 간청하자 정말 알아보지도 못하고 결혼을 승낙하였다. 그 두 여자들, 정말 바보가 아닌지 모르겠다.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의 이야기이다. 도라벨라와 휘오르딜리지 자매는 페란도와 구글리엘모와 각각 약혼한 사이이다. 그런데 이들의 친구로서 철학자인 돈 알폰소가 '여자의 마음은 도무지 믿을 것이 못된다'고 주장하자 자기들의 약혼녀들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내기를 건다. 두 남자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처럼 속여서 자취를 감춘 후 알바니아 귀족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서 서로 파트너를 바꾸어서 열렬히 구애한다. 결과 절대로 변치 않는다고 하던 두 여인은 그만 새로 나타난 알바니아 귀족들에게 빠져서 전쟁터에 나간 약혼자들은 어찌 되었는지 상관하지 않고 사랑을 속삭이다가 마침내 새로운 애인들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아니, 그렇게 죽고 못산다고 하던 약혼자들인데 콧수염을 붙이고 이상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타났다고 해서 전혀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닐수 없다. 오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여자는 다 그래'의 한 장면. 언니는 동생의 약혼자를 알아보지 못하며 동생은 언니의 약혼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말도 안된다.


○ 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오페라 '빛으로부터의 수요일'(Mittwoch Aus Licht)에는 실제로 무대에 헬리콥터가 네대나 등장한다. 헬리콥터에서 현악4중주단이 연주를 한다. 헬리콥터의 시동을 켜놓을 필요는 없다. 나무나 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헬리콥터를 한 대라도 가져다 놓지 못할 처지라면 야외에서 비디오로 촬영하여 공연할 때에 대형 모니터로 보여주면 된다.  이 오페라에는 살아 있는 쌍봉낙타들이 등장한 일도 있었기 때문에 헬리콥터가 등장한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빛으로부터의 수요일'에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것에 감동해서 나중에 뮤지컬 '미스 사이곤'에도 헬리콥터를 등장시켰는지도 모른다. 베르디의 '아이다'에는 코끼리까지 등장한 일이 있었다고 하니 쌍봉낙타의 등장도 과히 무어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살아 있는 동물들이 오페라에 출연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헬리콥터는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어쨋든 실물 헬리콥터가 등장하는 일은, 그것도 네대씩이나 등장하는 일은 아무래도 특이한 일이 아닐수 없다.


'빛으로부터의 수요일'에서 첼리스트가 헬리콥터 안에서 연주하고 있다.


○ 동물들을 의인화한 오페라는 더러 있다. 예를 들면 모리스 라벨의 '어린이와 마법'(L'enfant et les Sortileges)이 그러하고 이번에 소개할 레오시 야나체크의 '교활한 작은 암여우'(The Cunning Little Vixen)가 그러하다. 이 오페라에서 암여우가 멋쟁이 여우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두 여우는 결혼식도 정식으로 올리지 않고 오소리의 집을 빼앗아서 살고 있는데 암여우가 임신을 하게 되고 숲속에서 온갖 동물들의 이런 저런 가십엘 올라가는 바람에 두 여우는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주례가 신부 또는 목사가 아니라 술 속에 사는 딱따구리이다. 왜 하필이면 딱따구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교활한 작은 암여우'의 한 장면. 결혼식 준비. 주례는 딱따구리이다.


○ 수녀들이 줄줄이 길로틴에서 목이 잘리는 장면이 나오는 오페라가 있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신부들도 아니고 수녀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프란시스 쁠랑크의 '갈멜파 수녀의 대화'(Dialogues des Carmelites)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시기는 프랑스 혁명이 한창이던 때이다. 갈멜파는 어쩐 일인지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혁명주의자들은 갈멜파 수녀들까지도 반혁명주의자들로 몰아 처형키로한다. 길로틴을 사용키로 한다. 처음에는 길로틴에서 수녀들의 목을 자르는 그런 끔찍한 장면을 무대에서 보여준 일도 있다. 그러다가 반대 여론이 비등해지자 얼마후부터는 무대 뒤에서 길로틴으로 처형하는 소리만을 내도록 연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들을 한사람 한사람 길로틴에서 처형한다는 내용은 끔찍한 알이 아닐수 없다.


'갈멜파 수녀와의 대화'


○ 사람을 수달로 잘못 알고 총을 쏜 일도 오페라에 나온다. 줄리우스 베네딕트의 '킬라니의 백합'(Lily of Killarney)이라는 오페라에서이다. 가난한 해리는 마을에서 제일 예쁜 에일리와 사랑하여서 비밀 결혼을 한다. 두 사람은 결혼서약서를 나누어 가졌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해리는 빚을 갚기 위해서 부자집 딸인 앤과 다시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다만, 에일리가 문제이다. 해리의 충성스러운 늙은 하인인 대니는 에일리를 제거하면 주인인 해리가 부자집 딸인 앤과 무난히 결혼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마을 사람인 마일스는 던로 호수로 수달 사냥을 간다. 마일스는 멀리서 무엇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수달이라고 생각하여 총을 쏜다. 그것은 수달이 아니라 에일리는 처치하려고 나선 대니였다. 대니는 큰 부상을 입으며 에일리를 처치하려는 음모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나저나  사람이 어떻게 수달처럼 보일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일랜드 킬라니의 아름다운 던로 호수. '킬라니의 백합'의 무대이다.


○ 사냥총을 쏘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마탄의 사수'(Die Freischutz)에서는 사냥꾼 막스가 늑대의 골짜기에서 자미엘로부터 마법의 탄환을 받아 사격대회에서 한번 쏜다는 것이 독수리를 맞춘다. 막스는 사격대회에서 우승해야 했다. 우승해야 마을에서 제일 예쁜 아가테와 결혼할수 있기 때문이다. 아가테는 삼림관 쿠노의 딸이다. 사람이 그러면 안되는데 쿠노는 사격대회의 우승자에게 딸 아가테와의 결혼을 상품으로 내걸었다. 아무튼 막스는 자기의 영혼과 맞바꾼 마법의 탄환으로 사격대회에서 첫발을 쏘았는데 독수리를 맞추었다는 것이다. 독수리는 왕권을 상징한다. 일개 사냥꾼이 보헤미아의 왕권에 도전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내용은 그렇게 전개되고 있다.  


'마탄의 사수'의 무대. 막스가 마법의 탄환으로 관혁을 향해 총을 쏘지만 독수리를 맞추어 떨어트린다.


○ 프란시스 뿔랑크의 '티레지아의 유방'(Les Mamelles de Tiresias)이라는 이상한 오페라가 있다. 뿔랑크는 다른 모든 오페라의 줄거리가 너무나 평범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해서 새로운 내용의 오페라를 구상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티레지아의 유방'이라는 작품이다. 일반 사람들이 보면 미친 사람만이 저런 내용을 오페라로 만들수 있다고 말할 작품이다. 특히 2막의 오프닝에서 그러하다. 모든 여자들이 아기 반대 혁명을 일으킨다. 남자들이 아기를 낳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남자가 임신하여 무려 4만 49명의 아기를 낳는다.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티레지아의 유방'의 무대. 남자가 아기 제조공장이 된다.


○ 폐병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여인이 죽음을 앞두고 아주 긴 아리아를 부르는 오페라가 있다. 다 죽어가는 여인이 어떻게 저런 힘들고 긴 아리아를 부를수 있는지 아무리 오페라이긴 하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에서 미미는 폐병에 걸려 쇠약해져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이다. 그런데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긴 아리아를 부른다. 그런 경우는 또 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도 폐병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인데 긴 아리아를 부른다. 대단하다.


'라 보엠'에서 미미가 숨을 거두기 전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