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화제의 300편

로렌초 페레로의 '마릴린'(Marilyn) - 200

정준극 2018. 7. 21. 19:13

마릴린(Marilyn)

로렌초 페레로의 2막 오페라

맥아더 장군, 이브 몽땅, 엘리자베트 테일러도 등장


로렌초 페레로


영화배우를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거의 없다. 굳이 있다고 하면  스페인의 살바도르 바르카리세(Salvador Barcarisse: 1893-1963)가 작곡한 '샬로트'(Charlot)라는 오페라가 있는데 실은 챨리 챠플린(Charlie Chaplin: 1889-1977)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배우 오페라로 겨우 포함시킬수 있을 정도이다. 미국의 마이클 도허티(Michael Daugherty: 1954-)가 작곡한 오페라 '재키 오'(Jackie O)에는 마리아 칼라스도 나오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은 아니다. 재클린 오나시스가 주인공이다. 그런 중에 1950년대와 60년대를 풍미했던 케네디 대통령의 애인이었다는 소문, 그리고 약물 중독으로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인구에 회자되었던 헐리우드의 섹스 스타 '마릴린 몬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오페라가 나왔다. 영국의 작곡가이며 더블베이시스트인 개빈 브라이아스(Gavin Bryars: 1943-)의 '마릴린 포에버'(Marilyn Forever)라는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근자에 또 하나의 오페라가 나왔다.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의 현대 작곡가인 로렌초 페레로(Lorenzo Ferrero: 1951-)의 2막 오페라로서 1980년에 로마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로렌초 페레로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작곡재능을 보여주었다. 그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12편의 오페라, 3편의 발레, 기타 수많은 오케스트라곡, 실내악, 독주곡, 성악곡 등을 남겼다.  


오페라 '마릴린'은 마릴린 몬로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지만  다른 인물들도 주인공으로서 등장한다. 그 중에는 뜻밖에도 우리의 은인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도 포함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 도당이 일으킨 남침전쟁으로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려 있을 때에 우리를 악랄하고 포악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구원해 준 고마운 분이 위대한 맥아더 장군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인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교수, 미국의 시인인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 프랑스의 가수이며 배우인 이브 몽땅, 미국의 작가인 티모시 리어리(Timothy Leary) 등도 등장한다. 이들 모두 1950년에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인물들이다. 그래서 오페라의 제목은 '마릴린'이지만 부제는 '50년대의 모습'(Scenes from the '50s)이다. 


마릴린의 두 모습을 동시에 무대공간에 올렸다. 정숙하고 명랑한 마릴린과 알콜 중독으로 약에 의해 지내는 마릴린의 모습이다. 제이미 챔벌린과 다니엘르 마르셀르.


대본은 페레로 자신과 플로리아나 보시(Floriana Bossi)가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공동으로 사용해서 완성했다. 영어 대본이 따로 있고 이탈리아어 대본이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니라 노래의 가사는 영어로 만들었고 대사는 이탈리아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어 가사라고 해서 모든 노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네명의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네명의 주인공은 마리린 몬로, 더글라스 맥아더,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를 말한다. 초연은 1980년 2월 23일 로마의 테아트로 델로페라(Teatro dell'Opera)에서였다. 초연에서 마릴린 몬로의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인 에밀리아 라발리아(Emilia Ravaglia)였다. 더글라스 맥아더의 이미지는 베이스 바리톤인 마리오 바시올라(Mario Basiola)가 창조했으며 빌헬름 라이히는 리릭 테너인 로베르 뒤메(Robert Dume)가, 알렌 긴스버그는 재즈 락 가수인 페데리코 크로이아니(Federico Troiani)가 맡았다. 오페라 '마릴린'의 무대는 두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마릴린 몬로(1926-1962)의 개인적인 생활에 비중을 둔 장면들을 엮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마릴린 몬로가 활동했던 1950년대 당시에 미국이 맞이했던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내세운 것이다. 1950년대의 주요 사건들로서는 한국 전쟁, 맥카시 조사, 빌헬름 라이히에 대한 고소사건, 환각제 사용에 대한 티모시 리어리의 강연 등을 내세웠다. 그 사건들을 영화배우로서 마릴린이 어떻게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으며 또한 신비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엮은 것이다. 이 오페라가 전하고자 하는 메인 메시지는 아마도 마릴린을 당시 대중문화의 희생자로 간주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마릴린은 표면상으로는 정숙하고 명랑한 인물처럼 소개되었으나 이것들과는 상반되는 그의 개성들이 2막에 걸쳐 골고루 소개되어 있다.  


빌헬름 라이히와 마릴린 몬로


[1막] 뉴욕의 센트랄 파크이다. 브라스 밴드가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며 행진하고 있다. 밴드의 뒤를 이어 마치 치어 리더들같은 무리들이 손에 바톤을 들고 춤을 추며 따라간다. 마조레트(Majorette)들이다. 장면은 바뀌어 마릴린 몬로가 어떤 공간에 혼자 앉아서 어린시절의 불행했던 일들을 회상한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한국 전쟁의 전사자들 가운데 서 있다. 맥아더 장군은 의회에서 공산주의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회생시키려면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던 것을 회상한다. 마릴린은 지나온 과거들을 생각하며 자기를 다만 섹스 심볼로만 보는데 대하여 불만을 터트린다. 사회각층의 여러 인물들이 단지 공산당과 관계가 있다고 해서 미하원의 비미국적 행위 조사위원회 앞에 선다. 이른바 '맥카시이즘'(McCarthyism)의 후유증이다. 미국 상원의원이던 조셉 맥카시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의 영향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공을 채택하고 공산주의에 동조하거나 소련 스파이라고 의심되는 시민들에 대하여는 적당한 증거가 없더라도 국가반역죄 및 국가전복죄 등의 사유로 체포 및 구금을 할수 있다는 법안을 발의한바 있다. 마릴린은 닥터 존슨에게 전화를 걸어 자꾸만 정신이상이 될 것같은 비정상적인 두려움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 마릴린은 고독하고 공허하며 개인은 무시되고 집단만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배경에서는 서적들이 불에 태워지고 있다. 불에 집어 던지는 책들 중에는 빌헬름 라이히의 저서들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정신과 치료의사인 빌헬름 라이히는 자신이 정신이상의 지경까지 이르자 당국이 체포하여 감금하였다. 빌헬름 라이히와 마릴린의 듀엣이 관심을 끈다. 라이히는 그가 마치 그리스도처럼 박해를 받고 있다고 고함을 친다. 마릴린은 자기의 절망감에 대하여 소리를 지른다.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마릴린과 절망에 빠져 있는 마릴린


[2막] 담배 연기가 자욱한 어떤 지하실이다. 비밥 음악이 귀를 울리듯 연주되고 있다. 알렌 긴스버그의 주위에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이라고 하는 일단의 시인들이 몰려 있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2차 대전후 미국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으로 기성세대와 기존규범 등을 거부하는 세대와 그들의 운동을 말한다. 이들은 마릴린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하여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서방세력에 상응하는 동방세력이 부처 또는 나르바나의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마릴린은 이브 몽땅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마릴린은 이브 몽땅에게 자기가 지은 시를 준다. 이브 몽땅이 떠나고 마릴린이 혼자만 남아 있다. 마릴린은 밤에게 부치는 노래를 부른다. 파치스트 분자들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경찰이 이들을 해산한다. 마릴린은 담당 의사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하지만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떤 신비스러운 남자가 마릴린은 찾아온다. 그 남자는 마릴린의 뺨을 세차게 때린다. 티모시 리어리가 LSD, 흥분제인 메스칼린(Mescaline), 환각제인 실로시빈(Psilocybin)의 효과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러더니 청중들에게 약을 먹어서 실제로 그런 효과들에 대한 경험을 해보라고 부추킨다. 청중들이 약을 먹고 환각의 경지에 이른다. 경찰들이 와서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떼내어서 데려간다. 마릴린은 술을 마시고 수면제인 바르비투르를 과다하게 복용한다. 마릴린은 아직도 정신이 있는지 인형을 들고 자기의 절망감에 대하여 말을 건넨다. 배경에 어떤 두 남자의 모습이 그림자로 비쳐진다. 그림자만 보아도 두려움을 느낄수 있는 그런 상태이다. 마릴린은 소리친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마릴린은 길바닥에 팽개쳐 있다. 마조레트들이 마릴린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밟고 지나간다. 미국의 국가가 연주된다. 사람들은 '미국의 생활방식'(The American Way of Life)을 축하하고 있다. 자유와 행복추구에 대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을 말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어메리칸 드림'이다.


이브 몽땅과 저녁식사를 하며 시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 행복한 시절의 마릴린과 술과 약에 쩌들어 지내고 있는 마릴린



개빈 브라이아스의 단막 실내 오페라

'마릴린 포에버'(Marilyn Forever)


개빈 브라이아스


영국의 개빈 브라이아스(Gavin Bryars: 1943-)는 영국이 자랑하는 현대음악작곡가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시절부터 재즈에 심취하여서 재즈 베이시스트로 활동하다가 작곡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아방 갸르드, 팝, 실내악, 실험음악 등 여러 장르에서 현대음악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역사주의에 입각한 클래시컬 음악도 작곡하였다. 그가 뜻한바 있어서 단막의 실내 오페라인 '마릴린 포에버'를 작곡하였다. 마릴린 몬로의 생애 마지막 밤을 조명한 작품이다. 대본은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마릴린 보우어링(Marilyn Bowering: 1949-)이 만들었다. 출연진은 소프라노 1명(마릴린), 바리톤 1명(남자), '트리톤'(The Tritones)이라고 하는 소규모의 합창 그룹이 전부이다. 반주는 8명으로 구성된 앙상블이 맡는다. 여기에 무대 위에 재즈 트리오(테너 색스폰, 피아노, 더블 베이스)가 등장한다. 오페라 '마릴린 포에버'는 2013년 9월에 캐나다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빅토리아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초연에서 마릴린 몬로의 이미지를 창조한 사람은 파로 아일랜드(Faroe Islands) 출신의 소프라노 에이뵈르 팔스도티르(Eivor Palsdottir)였고 '남자'는 덴마크의 테너 토마스 샌드버그가 맡았다. 파로 아일랜드는 북대서양의 작은 섬으로 덴마크의 영향을 받고 있는 독립국이다. '마릴린 포에버'는 2015년에 아델라이데와 롱비치 등에서 리바이발되었다. 이 오페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인 마릴린 몬로의 사랑과 죽음, 그리고 야망에 대한 관계를 음미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관계는 1962년 8월 5일 마릴린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낼 때에 밝혀지는 것으로 구성했다.  


마릴린의 레베카 넬슨. 비엔나 폭스오퍼


1962년 8월 5일 밤, 어떤 남자들이 마릴린의 침실에 들어선다. 남자들은 마릴린의 물건들에서 무엇인가를 찾고자 한다. 무엇을 찾는것일까? 아마도 마릴린의 과거를 찾았던 모양이다. 남자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듯 소리없이 나간다. 그제서야 마릴린이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밖으로 급하게 뛰어나간다. 얼마후 마릴린은 리허설 장소에 모습을 보인다. 마릴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리허설 감독과 백 그룹인 트리온이다. 트리온의 멤버들은 좋지 않은 소문으로 얼룩진 마릴린의 과거를 자세히 알아 보았던 터였다. 리허설이 시작된다. 마릴린은 사랑과 미에 대한 감정을 표현코자 노력한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려는 연기이다. 사람들은 마릴린이 노마 진이라는 본래의 정체는 지워버리고 배우로서, 그리고 섹스 심볼로서 마릴린 몬로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에는 보상이 따르는 법이다. 그 보상은 자기의 정체를 잃어버리고 대신에 영화 기업이라는 어두운 면과 계약을 맺는 것이다. 마릴린이 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그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릴린의 어머니는 정신이상으로 어린 딸을 버려야 했다. 어려움 끝에 헐리우드에 진출한 마릴린은 유명한 극작가인 아서 밀러와 결혼한다. 마릴린으로서는 그토록 갈망했던 사랑을 찾아서 결혼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유명해지려는 욕망 때문에 결혼한 것이라는 말들을 했다. 아서 밀러는 마릴린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준다. 그는 마릴린에게 마치 꽃을 가꾸기 위해 주는 영양분처럼 지성을 공급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 집을 구해서 살면서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마릴린은 아이를 가짐으로서 정상적인 여인이 되고자 한다. 가정을 통해서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코자 한 것이다. 그러나 마릴린은 몇번에 걸친 유산을 경험하자 결국 아서 밀러와의 관계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아서 밀러가 가정보다는 사업에 더 집중하였던 것도 두 사람의 관계를 어렵게 만든 것이었다.


박수와 갈채. 마릴린의 욕망은 유명해지는 것이었다.


마릴린은 이제 자기를 위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지 자신의 가정을 꾸미는데 헌신한다. 물론 마릴린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있지만 사랑과 예술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진다. 하지만 마릴린은 판도라의 상자라고 말할수 있다. 그가 이런 저런 사연으로 관계를 맺었던 영향력있는 남자들이 누구인지는 밝힌다면 그건 분명히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이다. 마릴린은 그 비밀을 권세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권세가 마릴린을 압도하였고 결국은 파멸로 이끈 것이다. 마릴린이 죽고 나서야 마릴린의 신비와 어릴 때의 굴레로부터 해방이 된다. 죽음이야말로 마릴린이 그토록 갈망하였던 동정과 사랑을 진정으로 받을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마릴린은 은막의 우상으로서 사랑과 욕망과 아름다움을 모두 소유한 여인이 된다. 하지만 그런 승리도 죽었기 때문에 누릴수가 없다.


마릴린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그와 관계를 맺었던 인사들의 명단이 발표된다면 그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