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린 피스
토론토 중심지를 동서로 가르며 뻗어있는 블루어(Bloor)스트리트는 우리 교포들이 대거 진출하여 상권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코리아타운으로 알려져 있는 거리이다. 토론토의 차이나타운은 시내 중심가에 남북으로 걸쳐있는 스파다이나(Spadina)거리에 있다. 바로 그 블루어와 스파다이나가 만나는 네거리 한쪽에 트리니티(삼위일체)라는 이름의 낡고 우중충한 큰 교회가 서있다. 나는 몇 년 전 토론토 교외에 있는 캐나다원자력공사(AECL)에 1년 동안 파견되어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트리니티교회 길 건너편의 어떤 집에 기숙했었다. 이 교회의 현관문 계단에는 히피인지 펑크인지 하여튼 보기에 상당히 저속하여 혐오감을 주는 젊은이들 여나믄 명이 낮이건 밤이건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이들의 주위는 항상 지저분했다. 생각건대 그중 몇몇은 분명히 마리화나를 피워대는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집에 혼자 있는데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긴 머리의 억세게 생긴 웬 히피 여자와 펑크족의 추장처럼 생긴 웬 키 큰 남자가 자기들은 평화와 환경을 사랑하는 이른바 그린피스 멤버인데 그린피스가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고 싶어서 찾아 왔다는 것이다. 긴 머리의 히피 여자가 제법 사근사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단풍이 산성비 때문에 죽어 가고 있어서 자기도 따라 죽고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심정이라는 것이며 또 온타리오 호수의 야생 오리가 어디론지 자꾸 없어지는 것 같아 미칠 지경이라는 얘기를 했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온타리오 호반에 있는 피커링원자력발전소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므로 모조리 문을 닫도록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원자력 때문에 단풍이 시들고 야생 오리가 사라진다는 억지 주장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대더니 결론적으로 그린피스 사업을 위해 기부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돈도 돈이지만 우선 그린피스 회원가입 신청서에 사인이나 해 달라고 내밀었다.
나는 실은 저 멀리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여기 캐나다원자력공사에 일보러 온 사람이라고 얘기하고는 돈커녕 회원 가입도 못하겠으니 그냥 가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넌지시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때까지도 잠자코 서 있던 장대 같은 펑크가 무어라 지껄이는데 짐작 같아서는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재수 없는 놈이 걸렸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친구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니 바로 트리니티교회 계단에서 맨날 할 일없이 빈둥거리던 그 펑크족 중 하나가 아니던가? 이 녀석이 그린피스라니! 나는 도대체 당신들이 이렇게 가가호호 방문하여 기부금을 받아서는 어디에 주로 쓰는지를 물어 보았다. 대답은 보나마나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우선 무얼 좀 잔뜩 사 먹는데 쓰고 또 헤비메탈 콘서트의 입장권을 사서 동료들과 함께 거기에도 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마약을 사먹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이쯤 되어 나의 무지몽매한 기존관념은 상당히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를 내세우는 그린피스야말로 행색도 단정하고 논리도 정연하며 돈 같은 것은 초월한 그런 사람들 인 줄 알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바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던가? 결국 돈 달라고 생떼를 쓰는 억지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나중에 캐나다의 유명한 언론인 레이 씰버(Ray Silver)씨로부터 들은 얘기를 소개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캐나다의 그린피스 역시 제약회사, 식품회사, 건설회사, 화학공장 등으로부터 상당한 기부금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 내어 이것저것 운영비, 행사비, 여비 및 판공비 등으로 쓰는데 아무도 1년 예산이 얼마인지 모르며 또 비자금이 얼마나 조성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씰버씨는 그린피스가 워낙 비밀스럽게 우두머리 몇몇이서 움직이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들의 비도덕적인 정체를 파헤치기가 무척 어렵지만 만일 사정기관에서 맘만 먹고 파헤친다면 그린피스야말로 초록색의 향기 나는 단체가 아니라 구린내가 물씬 풍기는 썩어 빠지고 컴컴한 비리 투성이의 단체임에 틀림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최근 ‘구린’피스의 그같은 컴컴한 속사정이 덴마크의 TV-2를 통해 특집 방영됨으로써 이른바 녹색평화 운운하는 그린피스의 비도덕적 면모가 여실히 폭로된 바 있다. 한시간 짜리 그린피스특집인 ‘무지개 속의 사람’에서는 창설이래 12년 동안 국제 그린피스를 휘잡아 움직여 온 데이빗 맥타카트의 온갖 부정비리와 사기행각이 적나라하게 지적되어 있다. 수천만불의 모금된 돈을 몰래 빼내어 은행 비밀구좌에 넣어 둔 얘기, 자기 처가재산까지도 사기해 먹은 얘기, 뉴질랜드에서 시계밀수로 철창신세를 졌다가 그린피스가 보석금을 내고 빼낸 얘기 등등…어쨌든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린피스의 비정상적이고 비논리적인 행태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이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추악한 존재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그린피스가 4월 중순에 금수강산 우리나라를 찾아온다고 한다. 찾아 온다기 보다는 환경운동연합이란 단체가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이번엔 또 무슨 추악한 행동을 하려나? 구린 피스여! (199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