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블레의 석면파동
북구의 베니스라고 하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아름다운 발트해안을 따라 우프살라(Uppsala)대학촌을 거쳐 북쪽으로 두 시간 남짓 올라가면 포스마크(Forsmark)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웬만한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이 작은 마을이 일약 세계적 관심을 받으며 유명해진 것은 바로 포스마크 원자력발전소, 그리고 원자력부산물 영구처분장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포스마크 원전은(모두 3기 운전 중) 93년도 세계 최우수 발전소로 꼽힐 정도의 우등생이다. 더구나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저 동굴 처분방식이다. 이 포스마크에서 다시 북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두어 시간 올라가면 예블레(Gaeble)라고 하는 제법 큰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이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스웨덴의 원자력 발전 정책의 뒤안길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아는 대로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가 일어난 직후 스웨덴은 가동 중인 원전을 순차대로 폐쇄키로 작정했다. 1980년의 국민투표 결과를 기본으로 의회에서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서 1995년부터 시작하여 2010년까지 가동중인 12기의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는 것이다. 스웨덴 국민들이 원자력이 필요 없다고 했던 근본 이유는 방사선 때문이다. 만일 원전에서 사고가 생길 경우 방사선으로 인한 영향이 클 것이므로 아예 원자력을 쓰지 않는 것이 방사선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웨덴은 추운 나라이다. 겨울이 무척 길다. 때문에 집집마다 난방 확보는 최대 현안과제이다. 가정의 난방은 전기로 한다. 석탄이나 석유를 때서 난방 하는 일은 워낙 환경 제일주의자들인 스웨덴 국민들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일이 알 수 없으므로 전기난방을 한다. 스웨덴은 원자력으로 전체 전력의 약 50%를 충당하고 있다. 나머지는 수력이다. 만약 50%에 이르는 원자력발전을 완전 중지한다면 당장 부족한 전기는 어떻게 마련해야 될지 방법이 막막하다. 화력은 절대 금물, 수력도 개발 제한! 방법은 단하나! 절약밖에 없다.
예블레 마을은 스웨덴에서 자연 방사선량이 가장 높은 곳이다. 자연 방사선이란 하늘에서, 땅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방사선을 말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1인당 1년에 받는 자연 방사선량은 약 2백 40 밀리렘이다. 예블레 마을은 평균보다 조금 더 많지만 사는 데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브라질의 가리발디라는 곳은 1년에 1인당 약 1천 밀리렘의 자연 방사선을 받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웨덴은 예블레 마을을 모델로 선정하여 ‘전기난방절대금지’를 내걸게 하고 대신 보온방책으로서 석면 슬레이트를 담 벽에 모두 두르도록 했다. 그리고는 추워서 견디기 어려울 때에만 전기난방을 잠깐씩 하도록 했다. 온 동리가 석면 슬레이트를 구하느라고 난리를 쳤다. 어쨌든 석면 슬레이트 방벽 때문에 그럭저럭 지내게 되었으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제기되었다. 보온 목적의 석면 슬레이트에서 나오는 라돈가스가 생각 밖으로 많았던 덧이다. 그래서 오히려 방사선을 더 받게 된 것이다. 집집마다 약 2백-4백 밀리렘의 방사선을 더 받게 된 것이다. 방사선이 두려워서 원자력 이용을 탈피해 보자던 당초 의도가 역전되어 오히려 방사선을 더 받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이게 아닌데…’라고 하면서 원자력발전을 계속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당위성을 찾게 되었다.
어쨌거나 스웨덴 의회는 1992년 6월 별다른 대안이 없는 한 원자력에 대한 ‘당분간 유효 확인’결정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반대 단체들이 타산지석으로 삼아도 좋을 에피소드이다. 6.25의 달 6월! 스잔 블링크의 아리랑이 흩날리듯 들려오는 스웨덴으로부터의 소식 한 토막이었다. (1994년 6월)
스웨덴 포르스마크 방사성폐기물 지하처분장 직원들의 마스코트 잉그리드 (1993년 6월). 지하 깊숙한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가정을 생각하도록 배려한 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