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와 냄비
영국의 개인주택에는 대개 뒷마당이 있기 마련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영국의 주택가는 신통하리만치 집집마다 뒷마당이 정연하게 구획되어 있다. 그래서 영국식 정원도 꾸미고 조그만 채소밭도 가꾼다. 이런 뒷마당을 백야드(Backyard)라고 부른다. 영국의 저명한 원자력계 인사인 월터 마살경(Lord Walter Marshall)은 사람들이 자기집 뒷마당에만은 원자력부산물(방사선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서면 안 된다고 왈왈대는 데 대하여 약간의 개탄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로 아무 걱정이 없다는 설명을 한 바 있다.
다음은 마샬경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자기 집 뒷마당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설치를 반대하는 겉으로의 주장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방사능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방사성폐기물이란 것에서 나오는 방사능의 정도는 알고 나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적은 양일 뿐이다. 만일 어떤 가정에서 일생동안 쓰는 전기를 모두 원자력발전으로 공급받았다고 하자. 그리고 원자력발전으로 생기는 방사성폐기물을 수혜자부담 원칙 아래 각 가정에 골고루 나눠준다고 하자. 그럴 때 각 가정에 배당되는 방사성 폐기물의 양은 2백리터들이 한 두 통의 부피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을 각 가정의 뒷마당에 파묻는다고 하자. 그 폐기물 때문에 생길 수도 있는 방사선의 보건상 영향, 즉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그 집의 가장인 아기 아빠가 일요일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베란다의 안락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신문을 펴들고 단 한 모금의 담배를 필 때 받을 수 있는 건강상의 영향보다도 훨씬 적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과학자인 웥터 마샬경의 주장이 순전한 거짓말이라고 반박할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말하고 싶다.
계속하여 마샬경은 ‘어느 집이든지 뒷마당의 흙 속에는 우라늄이나 토륨과 같은 방사선 물질도 당연히 들어 있다. 이런 방사성물질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방사선의 양은 방사성폐기물을 자기집 뒷마당에 보관함으로써 나올 수 있는 방사선의 양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방사성 폐기물이 무슨 걱정이 된다고 야단들인지 모르겠다’고 설명하고는 ‘문제는 모두들 혜택은 받겠으나 부담은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관념이야말로 추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로부터 지역이기주의 또는 집단이기주의를 표현하는 의미의 님비라는 말이 퍼지게 되었다. 근자에 대전에서도 보면 어떤 동네 사람들은 불쌍한 고아들을 수용하기 위한 고아원의 설치를 막무가내기로 반대했는가 하면 양노원의 설치마저 반대했다. 자기들은 늙지 않나?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방사성폐기물처분장 후보지를 단 한 곳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 님비 현상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 근자에 일부 우리국민들 사이에서는 원자력사안과 관련하여 님비현상 이외에도 이른바 냄비현상이 만연해 있는 것 같아서 상당한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 연휴만 하더라도 우리의 고속도로는 서울을 빠져나가는 자동차행렬 때문에 사상최대의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시시각각으로 북한 핵문제가 긴장을 더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국민들이 과연 이렇듯 위기불감증에 걸려 있어야 하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순국장병들을 기리는 현충일이 아니던가? 온갖 유원지는 물론 서해안 바닷가나 동해안 이산 저산은 행락 인파로 발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물론 한편으로는 얼마나 생활고에 시달렸으면 저렇게 산과 바다로 들로 빠져 나가야 했는지 이해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고급요정은 예약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몰려들고 있으며 골프장도 철철 넘쳐흐른다고 하니 그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데 6월 13일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겠다는 뉴스가 나가자마자 또다른 현상이 우리 사회에 파문을 던져주었다. 마치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불바다로 만들기나 할듯 갑자기 위기과민증이 팽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쌀, 라면, 건빵, 통조림 등 비상식품과 부탄가스, 건전지 등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일부 상류층 주민에 국한된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같은 이상 현상은 마치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런 과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국민의 정서가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는 이른바 ‘냄비 현상’ 때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무슨 일이든지 확실히 알고 나서 나름대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지역이기주의를 내세우는 님비현상도 당연히 타파되어야겠지만 불감증과 과민증을 식은 죽 먹듯 바꿔 생각하는 냄비현상도 사라져야겠다. (199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