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정 때문에

정준극 2007. 5. 22. 15:05
정 때문에


‘청실홍실’이라는 라디오 연속극이 전국을 휩쓸었던 때가 있었다. 6. 25사변의 후유증으로 인한 인생유전이 기둥 줄거리였다. 195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청실홍실’이 방송되는 시간에는 온 시가지가 썰렁할 정도였다. 특히 남대문과 동대문의 실향민들은 가게 문을 닿아 놓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지 연속극 ‘청실홍실’의 주제가, 또는 스토리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를 모를 것 같으면 간첩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였다. 어쨌든 ‘청실홍실’은 우리나라 방송 드라마의 획기적인 장을 열어주는 대단한 것이었다. 각설, 세상에서 우리나라처럼 TV연속극이 범람일변도인 경우도 없을 것이다. TV라는 바보상자가 우리네 안방의 무시하지 못할 주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하 실정에서는 더구나 그렇다. 도대체 4개 채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속 드라마가 1주일에 몇편이나 되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서 하도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일일연속극, 수목드라마, 주말연속극, 일요드라마,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전원일기’ ‘짝’ 등등.... 뿐만 아니라 아침연속드라마가 따로 있고 저녁연속드라마가 따로 있다. 우리 민족이 유난스럽게 극적인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까?


파키스탄에 간적이 있었다. TV에서는 코란강좌, 코란 암송대회, 코란 퀴즈대회, 코란 좌담회.... 그런 것 일색이었다. 우리네와 같은 드라마는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의 TV프로그램은 문화유적 탐방이나 음악회 중계, 또는 축구나 스키대회중계가 대부분이지 일일 연속극은 없는 것 같았다. 일본의 TV는 오락프로그램의 천국이다. 그러나 연속극은 잔바라 스타일을 중심으로 한 것과 현대판 멜로드라마가 한두편 있을 뿐이지 우리나라처럼 드렇게 난장판은 아니다. 상업방송의 본산인 미국의 경우에도 우리 스타일의 일일연속극은 찾아보기 힘들다. 솝 오페라(Soap Opera)라고 하는 조금 황당한 드라마라든지 보난자와 같은 서부활극 또는 스타 트랙과 같은 공상과학드라마는 있지만 우리처럼 매일매일 질질 끄는 연속극은 없는 것같다.


우리나라에서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이 시도 때도 없이 환영 받고 있는 것은 별 신통한 내용도 아니자만 그나마 그런 내용에 자기를 비추어 보고 싶기 때문인것 같다. 어느 방송평론가는 우리나라 연속드라마의 특성에 대하여 이렇게 촌평한 일이 있다. ‘엿가락과 말장난의 연속’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것 같다. 예컨대 ‘목욕탕집 남자들’은 공연한 말장난 때문에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미화하여 ‘재치 넘친 대화의 광장’이라고 추켜세웠으나 일반적인 견해는 시시껄렁한 말장난의 연속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에 의하여 그걸 엿가락처럼 질질 늘려 방송했다. 그런데도 장안의 인기를 끌었으니 과연 연속극의 위세가 얼마나 큰지는 짐작코도 남음이 있다. 얼마전 주말연속극으로 ‘모래시계’가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모래시계’시간이면 방배동 카페거리가 한산할 정도였다. 요즘엔 ‘용의 눈물’이 인기상승의 위치에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에는 ‘용의 눈물’을 보느라고 난리도 아니다.


일일연속극은 단연 저녁 여덟시반 시간대가 골든 타임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각 방송국은 그 시간대에 어떤 드라마를 올리느냐를 가지고 전면 신경전 및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8시반 시간대의 드라마는 곧이어 9시 뉴스와 연결되기 때문에 실로 막중한 위치에 있다. 요즘 방영되는 8시반 시간대의 일일연속극으로는 MBC의 ‘세번째 남자’ SBS의 ‘행복은 우리가슴에’ 그리고 KBS의 ‘정 때문에’가 3파전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 중에서 KBS의 것이 약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앞뒤로 광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정 때문에’도 ‘엿가락’과 ‘말장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받고 있다. 도대체 작은댁(강부자)의 존재도 도덕적으로 마땅치 못한 터에 이 드라마가 선량한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고 있으며 어떤 공감을 얻고자 하는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연한 에너지 낭비는 물론, 일반인들의 건전한 사고방식까지 온당치 못하게 유도함으로서 결국 사회적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크게 보아서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처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얘기다. 어째서 좀 더 건전하고 교양 있는 프로그램이 프라임 타임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건 그렇고 근자에 우리 원자력계는 또 다른 ‘정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를 중심으로 하여 국제적인 민망함을 당한 일이 있으니 오나가나 ‘정 때문에’가 문제는 문제인 것 같다. (1997년 7월)

 

비엔나 공항에서 (좌로부터 필자, 최영명 원자력통제기술센터장, 정근모 과학기술부 장관, 심홍기 원지력환경관리센터장, 은영수 원자력안전기술원장) : 최근 직위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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