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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가는 길

정준극 2007. 5. 22. 15:07
 

인도로 가는 길


10월 9일, 한글날에 즈음한 원자력 단상(斷想) 한토막! 어느 해던가,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한국어웅변대회에서 어떤 인도 여자가 1등상을 받은 적이 있다. ‘외국인 한국어 웅변대회’는 해마다 한글날에 즈음해서 열렸었다. 지금의 태평로 프레스센터 자리에 서울신문사와 나란히 있었던 대한공론사 강당에서 열렸었다. 외국인들의 한국어 솜씨를 겨루는 이벤트였기 때문에 여간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토지 크기를 맛있게 먹었다’라고 말하길래 무슨 뜻인가 했더니 실은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었다’라는 표현이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서대문 밖에 있는 독립문에 영어로 DOG RIB MOON이라고 적혀 있길래 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길래 ‘개 갈비 달’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여 폭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한강변의 어떤 지명 이름이 TTUG SUM(뚝섬)으로 되어 있어서 TTUG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한참 혼났다고 말하는 통에 ‘아하, 우리말의 영문 표기가 문제가 있기는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그때 그 웅변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인도 여자의 웅변 제목은 ‘인도로 가시오!’였다.


한국에 처음 와서 보니 한국 사람들이 인도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감격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써 서울의 중심가, 그것도 대로상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인도로 가시오’라고 크게 써 놓았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니 당시 태평로의 서울신문사와 대한공론사 건물 길 건너편에는 한때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옛날 부민관 건물이 있었는데 건물과 차도와의 폭이 좁아서 사람들이 자꾸 차도를 침범하여 다니므로 관계당국에서는 할 수 없이 ‘인도로 가시오’라는 안내판을 세워 놓았던 것이고 이 인도 여자분이 그걸 보고 그런 주장을 내세웠던 것이다. 하기야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되는 인도 여성으로써 인도(人道)와 인도(印度)를 얼핏 구별하지 못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인도로 가시오!’라는 말대로 사실 우리는 인도로 가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인도라고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가난한 나라’ ‘소를 신성시하는 복잡한 종교의 나라’정도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땅이 넓고 인구가 무척 많으며 역사가 깊은 나라이니만치 탁월한 면도 무척 많다. 원자력분야에서 특히 뛰어난 면이 많다. 인도에는 호미 바바(Homi Bhaba)라고 하는 위대한 원자력 지도자가 있었다. 중간자(meson)이란 것을 발견하여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인물이다. 뭄바이(과거의 봄베이)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이상 떨어진 트롬베이라는 마을에 있는 바바원자력연구센터(BARC)는 바바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연구소이다. 아라비아 바다의 푸른 물결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곳에 있는 바바원자력연구센터에는 열출력 50MW의 사이러스 연구용원자로, 1백MW의 드루바 연구용원자로를 비롯하여 온갖 연구시설이 널려 있어서 위용이 자못 타당하다.

  

인도에는 트롬베이에 있는 원자력연구센터 이외에도 여러 곳에 원자력연구단지 또는 원자력산업단지가 있다. 인도의 동쪽 벵갈만쪽에는 저 유명한 캘커타 부근에 인디라간디원자력연구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캘커타는 테레사 수녀님이 활동하신 도시이다. 인디라간디원자력센터는 캘커타 부근 칼파캄이란 마을에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이곳이 왜 알려져 있는가 하면 인도가 정성을 들여서 추진하고 있는 고속증식로 프로그램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고속증식로는 경수로 다음 단계의 원자로로써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 등은 중도하차했고 프랑스와 일본이 열성을 보였지만 일본은 몬쥬사고 이후 주춤주춤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유일하게 상업단계까지 들어갔지만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내달리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다.


인도만이 푸른 신호등이다. 인도는 열출력 40MW, 전기출력 13MW의 고속증식로 시험로를 완성하여 이미 많은 경험을 쌓은 바 있다. 인도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기출력 500MW의 고속증식로를 건설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워 착착 진행 중이다. 다시 말하여 시험로(試驗爐)에서 곧바로 상용로(商用爐)로 뛰겠다는 것이다. 중간의 시범 단계는 생략하고.... 일견 무모하게 보일지도 모르는 계획이다. 하지만 인도는 21세기에 고속증식로 선진국이 되겠다는 대단한 의욕을 갖고 있으며 걱정 없다는 자세이다. 그만큼 자신을 가지고 있다. 고속증식로에 관한 한 ‘인도로 가시오’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생각인 듯싶다. 우리 연구소도 칼리머(KALIMER)라는 이름의 액체금속로를 개발코자 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로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할지 어쩔지는 모르겠다.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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