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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빠에 거는 기대

정준극 2007. 5. 22. 15:09
 

지우빠에 거는 기대


중국 사람들은 외국어를 한문으로 표기할 때 기막힌 재치를 발휘한다. 뜻도 통하고 발음도 비슷하고... 우리로서는 도저히 흉내 내기 어려운 신통한 번역 작업이다. 다 아는 대로 코카콜라는 可口可樂이라고 표기한다. 이 글자를 발음 나는 대로 읽으면 신통하게도 커카커라가 된다. 코카콜라를 마심으로써 ‘입에도 좋고 즐겁기도 하다’는 것이다. 펩시콜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百事可樂이라고 표기한다. 발음 나는 대로 읽으면 페이시커라가 된다. ‘모든 일에 즐겁기도 하다’는 의미이다. 중국의 어느 도시를 가던지 可口可樂과 百事可樂의 간판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갖 양주 광고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하튼 마시는 것에 있어서는 당할 재간이 없는 백성들인 것 같다.


요즘 들어 중국에서는 값비싼 양주의 소비량이 엄청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게으른 탓에 최근 것은 조사하지 못했지만 94년 통계를 보면 중국에서 소비된 브랜디 계통의 순 수입 양주만 1천 6백만 병이 된다고 된다.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양주는 레미 마르탱(Remy Martin)이라고 한다. 레미 마르탱 XO라는 술은 전체 생산량 중 아시아 지역에서의 소비량이 65%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이 중국에서 소비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까지도 값비싼 양주를 커다란 맥주 컵에 가득 따르고 코카콜라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제적 및 정신적 신분 상승의 욕구를 충족시켜 보자는 것이다. 마치 우리 나라 졸부들처럼... 때문에 일반 슈퍼마켓을 보아도 우리 돈으로 수십 만원씩 하는 양주가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물론 강남의 룸살롱에서처럼 한 병에 2백60만원씩이나 하는 ‘루이 13세’인지 뭔지 하는 것은 아직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레미 마르탱은 런미마(人米馬)라고 표기하고 있다. 억지 해석하자면 ‘사람이 쌀로 만든 술을 마시니 말처럼 힘이 솟는다!’고나 할까? 레미 마르탱을 쌀로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중국사람들은 수수나 조, 감자로 만들지 않고 귀한 쌀로 만든 술이 고급술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게 번역한것 같다. 위스키는 발음 그대로 威士忌라고 쓴다. ‘위스키를 마시면 위세 있는 선비가 되지만 너무 많이 들이키면 걱정이 되니 금기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어쨌든 중국 사람들처럼 술 잘 마시는 백성들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세계 랭킹으로 보면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다음 번쯤은 될 것 같다.


양주 및 콜라 소비뿐만 아니라 맥도날드 햄버거 판매에 있어서도 중국은 일일 번창의 기개를 드높이고 있다. 이 모두가 부(富)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인 듯싶다. 중국 사람들은 돈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철학을 몸에 배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돈을 만지는 은행원이 누구보다도 존경받는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돈이나 재물과 관계되는 에피소드가 수두룩하다. 예컨대 중국 사람들은 9 字 와 8 字를 무척 좋아한다. 九(지우) 字는 ‘오래간다’ 는 뜻의 久 字, 또는 그 좋아하는 술 酒 字, 그리고 구해 준다는 뜻의 救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좋아한다. 재물을 오래 가지고 있고, 술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쉽게 구원받을 수 있으면 그 얼마나 좋으냐는 생각이다. 그래서 당연히 九 字를 좋아한다. 九 字는 술집이나 약방 이름에 많이 사용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중국인 경영의 ‘九九九 약방’은 좋은 예이다.  八(빠)字도 대단히 길한 숫자로 여기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발전하고 나아간다는 뜻이 있기도 있지만 ‘돈은 벌다’라는 뜻의 ‘發財’(빠차이)에서 發자의 발음과 같기 때문에 八 字를 기를 쓰고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새해인사는 시도 때도 없이 꿍시빠차이(恭喜發財)이다. 8888의 전화번호나 자동차 번호는 돈으로 살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와 관련된 숫자에 八이나 九가 하나만 들어 있어도 좋다고 야단들이다.


이젠 며칠 후면 98년을 맞이한다. 구원받는다는 九와 돈을 벌어들인다는 八이 겹쳐 있는 해이다. 글자 그대로 정말 ‘경제 난국이 구원받고’ ‘달라를 많이 벌어들이는’해가 되었으면 원이 없겠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이게 무슨 꼴인가? 그거야 정치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문제는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를 잘 따져 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과감히 고쳐야 한다. 잘못을 뻔히 알면서도 고칠줄 모른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내년은 좋다는 숫자가 두 개씩이나 들어 있는 해이므로 우리도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 봄직도 하다.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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