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스페인의 산맥

정준극 2007. 5. 22. 15:10
 

스페인의 산맥


뛰어난 극작가 버나드 쇼에게 어느 날 약간 모자라지만 미모만은 상당한 어떤 여배우가 짐짓 자기 과시적 행동에서 이런 말을 건넸다. ‘선생님의 그 두뇌와 나의 미모가 합쳐진다면 아마 우리사이에서 대단한 인물이 나올 것이올시다’-  풍자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버나드 쇼는 이 약간 모자라는 여배우의 느닷없는 주장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반격을 가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신의 그 매우 모자라는 두뇌와 이 몸의 아주 못생긴 얼굴이 합치면 가관이겠소이다’라고 답변했다. 버나드 쇼가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인물은 지성과 격조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분수도 모른 채 주책없이 잘난 체 한다든지, 혹은 무식이 철철 넘치게 행동할 경우, 버나드 쇼의 풍자와 독설은 빛나게 마련이었다.


버나드 쇼의 작품중에 마이 훼어 레이디(My Fair Lady)라는 것이 있다. 세계 연극계를 휩쓸었던 이 작품은 1963년 뮤지컬 영화로 만들어져 온 세계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이 영화 때문에 남자 주인공 헨리 히긴스 교수역의 렉스 해리슨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여자 주인공 일자이자 두리들역의 오드리 헵번은 세계 최고의 여배우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영화 마이 훼어 레이디는 아카데미상을 무려 아홉 개나 받았다. 버나드 쇼는 격조 높은 언어생활이 품위 있는 인격을 유지 시켜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영어의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같은 그의 가치관이 복합적으로 승화된 작품이 바로 마이 훼어 레이디이다. 마이 훼어 레이디는 천박한 말을 쓰는 꽃팔이 아가씨 일라이자를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가 발음 및 교양 교육을 통해 훌륭한 규수로 변화시킨다는 내용이다. 일라이자의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예문으로 내준 문장이 재미있다. ‘스페인에서는 주로 평야에 비가 온다.’(The rain in Spain stays mainly in the plain.)라는 유명한 문장이다.


각설하고 스페인은 면적으로 보아 대충 우리나라보다 열배나 넓은 나라이다. 스페인은 산악지대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그 산악지대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스페인에서는 버나드 쇼의 대사대로 주로 평야에 비가 온다. 스페인은 9기의 원전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 전체 전력수요중 이들 원전에 의한 점유율은 약 25%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스페인은 반핵운동, 정치적 문제 등으로 인하여 더 이상 원자력발전사업을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오래된 원전은 아예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첫 폐쇄 대상으로 결정된 원전은 가스냉각로인 반데요스 1호기(Vandellos-1)이다. 목하 폐로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전반적으로 원자력 발전사업은 정체되어 있지만 반면에 오히려 신나는 것은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이다. 방사성폐기물은 원전이 가동중이든 폐로가 되든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사성폐기물사업이야 말로 대단히 전망이 좋은 사업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스페인의 담당기관인 ENRESA는 은근히 희희낙락이다. 최소한 앞으로 수백년은 사업이 위축될 하등의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은 남부 안달루시아지방 산악지대인 엘 카브릴(El Cabril)이란 곳에 있다. 옛 무어문화의 잔영이 찬연히 빛나고 있는 안달루시아의 고도 코르도바에서 자동차로 두어 시간 가는 곳에 있다. 원래 우라늄 광산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방사능 얘기라면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면역이 되어 있는 곳이다. 게다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역이다. 안성맞춤 지역이다. 그런데도 스페인 당국은 이곳을 영구처분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옮길 수 있는(retrievable) 저장소라고 부른다. 그래서 주민들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삼을만한 얘기다.  (1998년 9월)

 

 스페인 코르도바 지방의 엘 카브릴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서 (1998년 9월)


'보덕봉 메아리 > 보덕봉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인장에 담긴 뜻  (0) 2007.05.22
동방명주  (0) 2007.05.22
메이 데이  (0) 2007.05.22
지우빠에 거는 기대  (0) 2007.05.22
소돔, 그리고 소금  (0) 200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