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선인장에 담긴 뜻

정준극 2007. 5. 22. 15:11
 

선인장에 담긴 뜻


아는 분이 문득 조그마한 선인장 화분을 하나 선물해 주었다. 탁자위에 놓아두었더니 삭막하던 터에 나름대로 정서가 보였다. 선인장을 주신 그 분의 속마음을 헤아려 본다. 짐작컨대 아무리 메마른 오늘의 사회일지라도 고사(枯死) 당하지 말고 정서를 간직하며 의연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리라. 선인장이란 식물은 아주 건조한 지역에서도 잘 적응하며 자란다. 식물의 성장에 필수적인 물이 부족해도 견디면서 자란다. 그래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열악한 조건아래에서도 강인하게 버티며 생존해 나갈 때에 선인장과 같다는 비유를 한다.


선인장은 한문으로 仙人掌이라고 쓴다. 깊은 산 속에서 도를 닦는 도인의 손바닥이란 뜻이다. 도인의 손바닥과 이 식물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도인의 손바닥이 선인장처럼 가시투성이에 넙더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별로 관련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도인이란 분들의 손바닥은 삽이나 곡괭이를 쥐고 힘들게 노동을 하지 않아서 보드럽고 하얗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인장의 모습과 도인과는 공통점을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굳이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면 선인장의 끈질긴 생명력, 다시 말하여 한발열사(旱魃熱砂)에도 불구하고 미동조차 없이 버티고 있는 것이 마치 심산유곡에서 의연히 도를 닦고 있는 도인의 자태를 연상할수 있기 때문에 연관이라면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선인장을 또 다른 명칭으로는 백년초(百年草) 또는 패왕수(覇王樹)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하면 오래 사는 풀, 또는 제왕과 같이 위엄이 있는 나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백년을 사는 풀이든지, 또는 제왕과 같은 나무든지 아무튼 그것은 보통 풀이나 나무와 다르기 때문에 에라 기왕이면 선인(仙人)이라고 부르자고 했던 것 같다. 우리 동양에서는 선인장을 이렇듯 추켜세웠지만 서양에서는 그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선인장은 영어로 칵투스(cactus)라고 한다. 어원을 따지면 '모자'라는 뜻이다. 사람이 모자란다는 뜻이 아니라 모자를 쓴 것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선인장의 모습은 괴이할 정도로 호감이 가지 않지만 무슨 조화인지 꽃만은 기가 막히다. 브라질 원산의 엽단선이란 선인장은 노란꽃이 화려하다. 얇은 비단옷감을 겹겹이 누벼 놓은 듯 화사하다. 멕시코 원산의 로비비아라는 선인장의 꽃은 붉은색 양귀비꽃처럼 생겼다. 페루 원산의 단모환이란 선인장은 백설처럼 하얗다. 얼핏보면 하얀 들국화처럼 청초하다.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만 꽃을 피우는 선인장도 있다. 가시로 뒤덮인 주제에 꽃을 피우는 수줍음만은 한량없는 듯 싶다. 선인장은 아무때나 꽃을 피우지 않는다.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친 후에 불현듯 개화한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기쁨과 감격을 느끼게 해준다. 인고의 과정은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격언을 연상케 하는 꽃피움이다. 무슨 꽃이든지 꽃이라면 하나같이 아름답지만 선인장의 꽃은 특별히 아름답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에 제일 처음 만든 꽃이 코스모스이고 제일 나중에 만든 꽃이복잡한 국화라고 하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선인장의 꽃을 가장 나중에 공들여서 만드시지나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다. 아무튼 선인장의 성장과정과 생활형편을 감안할 때 각별한 애정을 지니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큰 이유이다.


선인장은 관상용만이 아니다. 서양배처럼 생긴 선인장의 열매는 사실 여러모로 이용된다. ‘선인장에 웬 열매?’ 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원산지인 남미지역에서는 선인장 열매를 따서 감자처럼 요리해 먹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코코넛처럼 열매 속에 들어있는 물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어떤 선인장의 열매에는 환각성분인 메스칼린이 들어있다. 긴 여행 중 기진할 때 먹으면 잠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또 어떤 선인장의 열매에는 해열제 성분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일사(日射)에 시달릴 때 먹으면 열을 가시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선인장이 TV나 컴퓨터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한때 대단한 인기를 모은 일이 있다. 무슨 큰 재난이라도 막을 수 있다는 듯 집집마다 조그만 선인장 화분을 구해서 TV위에 올려놓는 일이 유행처럼 번진 일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건 근거 없는 주장이다. TV나 컴퓨터의 모니터에서는 아주 적은 양이지만 방사선이 나온다. TV에서 나오는 전자파의 양이란 것은 매우 적기 때문에 가이거 카운터로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전자파의 일종인 엑스선이 나온다. 이러한 방사선은 TV나 컴퓨터뿐만 아니라 전자레인지에서도 나오고, 우유, 계란, 야채와 같은 음식물에서도 나온다. 심지어는 우리 몸의 뼈와 근육에서도 자연적으로 나온다. 그런 방사선을 선인장이 흡수해서 방사선의 영향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고 누가 그랬던 모양이다. 어쨋던 이런 소문 때문에 선인장 보급이 무척 확산되었던 적이 있다. 재미난 현상이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TV를 많이 보면 TV에서 나오는 방사선 때문에 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말 해주어 공부에 전념하도록 유도한다는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이 얘기는 과학적으로 볼 때 근거가 아주 희박한 설명이지만 아이들을 바보상자로부터 떼어 놓을수 있다면 좋은 얘기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TV를 많이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의 시각적 감응효과가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력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력이 나빠지면 안그래도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있다. 요즘에는 PC나 TV위에 10원짜리 동전을 얹어 놓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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