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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산정

정준극 2007. 5. 31. 13:31
아담의 산정


아담(Adam)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에서 존경하는 인류의 조상이다. 천지창조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람이다. 아담이란 말의 뜻은 붉은 진흙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붉은 진흙을 빚어서 아담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 아담이 살았던 에덴동산은 지금의 어디쯤일까? 이스라엘의 어디쯤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통상이다. 아담의 후손이라고 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등등 저명인사들이 모두 이스라엘을 연고지로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것도 바로 오늘의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란의 타브리즈(Tabriz)라는 지역이 바로 에덴동산 터였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 그것도 이슬람 국가 이란이 에덴동산의 본적지라고 하니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노아가 대홍수 후에 도착한 곳이 오늘날 터키의 아라랏(Arrarat) 산이라는 고고학적 주장을 생각해보면 이란의 타브리즈가 에덴동산의 원적지라는 주장을 강력히 부인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아담의 산정'. 예전에는 평평한 반석이었는데 지금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그나저나 성경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지시사항을 준수하지 않아 에덴동산에서 쫒겨나서 동쪽으로 갔다고 적혀있다. 어디로 갔다는 것인가? 지리적으로 보면 이락쪽으로 갔다고 추측 할수 있다. 아담 패밀리가 이락으로 이민을 가서 살았는지 아닌지는 도무지 알수 없지만 한가지 추측할수 있는 것은 아담이 여행을 자주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담은 무려 9백 30살까지 살았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긴 기간동안 이란의 동쪽 어느 마을 한구석에서만 심심하게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왕에 에덴동산을 떠나 동쪽으로 여행했던 경력이 있는지라 이락의 옆 동네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을 지나 내친김에 인도까지 여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할수 있다. 그렇다면 기왕 인도까지 간 김에 인도의 남쪽, 마치 인도 대륙에서 달랑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스리랑카에도 가지 않았다는 보장은 없다. 이렇듯 황당하기 그지없는 얘기를 이어 나가는 것은 성경 말씀을 감히 왜곡 내지 격하코자 하는 의도에서가 전혀 아님을 미리 천명하는 바이며 다만, 신빙성은 없지만 그래도 흥미 정도는 가질수 있는 전설을 소개코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스리랑카의 남서부 산맥지대에 ‘아담의 산정’(山頂)이라는 높은 산이 있다. 영어로는 Adam's Peak라고 한다. 지도를 보더라도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다. 산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산꼭대기는 평평한 운동장 같으며 여기에 상당히 넓은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 마치 거인의 발자국처럼 움푹 패인 흔적이 있다. 스리랑카 전설에 따르면 아담의 서있었던 발자국이라는 것이다. 인도를 친선 방문한 아담은 이 나라의 땅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계속 남하하였고 그러다 보니 바다를 만나게 되었는데 얕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을 바라보니 옛날에 살았던 에덴동산 처럼 숲이 우거지고 기화요초가 만발하며 새들이 지저귀고 들짐승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지역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얕은 바다를 건너 그 섬에 가게 되었고 산천경개를 두루두루 살피다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한참이나 서있었다는 것이다. 아담이 인도 남쪽 끝에서 바다를 걸어서 건너갔던 곳은 ’아담의 다리‘(Adams's Bridge)라고 부른다. 지도에 그렇게 적혀있다. 지리학적으로 옛날에는 인도와 스리랑카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얼마후 지각의 변동에 따라 슬며시 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오늘날 이곳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의 거리는 불과 35km에 불과하며 바다도 깊지 않아서 가장 깊은 곳이 고작 15m에 불과하다. 그 옛날에는 더 얕았을 것이므로 아담이 신발을 벗고 조심해서 건너갔다는 것쯤으로 이해할수 있다. 더구나 아담은 아마 키가 대단히 커서 웬만한 얕은 바다는 걸어서 건너 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런데 ‘아담의 산정’에 있는 커다란 발자국과 관련해서는 참으로 또 다른 신통한 전설이 얽혀져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기독교들이 이 발자국을 아담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하는데 반하여 불교도들은 석가모니 부처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이슬람교도들은 그들대로 마호메드의 발자국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바쁘신 석가모니께서 어떻게 스리랑카까지 오셨는지 민망스런 일이지만 마호메트는 기원후 600년 시대의 사람이므로 잘 알아보면 방문하셨다는 기록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003년 6월에 콜롬보에서 원자력관련 회의가 있어서 참석한 김에 조금 알아 보았다. (2003년 6월)

 

캔디의 달라다 말리가와(Dalada Maligawa)사원. 16세기부터 부처의 치아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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