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고똥 로용을 아시나요?

정준극 2007. 5. 31. 13:17

고똥 로용을 아시나요

 

 

‘고똥 로용’이라고 하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실분이 많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자바 말이다. ‘함께 일한다.’는 뜻이다. 상부상조를 말한다. 옛날 우리나라에 두레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자바의 농촌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고똥 로용’의 정신에 입각하여 모내기와 수확을 공동으로 작업한다.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에서는 거리 청소를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한다든지 그런 협력활동을 한다. 친척중에 누가 어려운 형편에 있어서 도움을 청하러 오면 없는 살림도 마다하고 도와주려고 애쓴다. 심지어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고똥 로용’이다. ‘고똥 로용’은 실로 인도네시아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전통이며 관습이다. 이러한 전통과 관습이 근간이 되었기에 세계에서도 가장 복잡한 민족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지만 수많은 변혁을 거치면서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면면히 유지될수 있었던 것 같다. 인도네시아는 큰 나라이다. 나라의 면적이 클뿐 아니라 인구도 대단히 많다. 인도네시아 국가(國歌)의 첫머리를 보면 ‘사방에서 므라우께까지’ 라는 말이 나온다. 우라니라 애국가로 치면 ‘동해물과 백두산이...’와 같은 가닥의 가사이다. 사방(Sabang)은 인도네시아의 영토 가장 서쪽에 있는, 수마트라 섬에서도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므라우께(Merauke)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동쪽에 있는, 이리얀자야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사방에서 므라우께까지...’ 수많은 민족, 수많은 섬, 수많은 언어, 수많은 문화와 종교로 구성된 국가이지만 결국 ‘사방에서 므로우께 까지’ 한 울타리에 살고 있는 같은 나라의 국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거의 1억 5천만에 육박한다. 하지만 산속 오지에 사는 이른바 원주민 백성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한번도 호구조사가 정확하게 이루어 진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 뿌리를 달리하는 종족만 하더라도 3백이 넘고 (우리는 단일민족인데) 언어는 2백50가지나 되며 (우리는 우리말 한가지인데) 종교도 수십가지...물론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라고 하면 여자들이 머리수건(히잡)을 꼭꼭 쓰고 다니는 이슬람교 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기독교도들도 많다. 그리고 저 유명한 발리섬 사람들은 거의 전부 힌두교도이다. 그러니 종교의 다양성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이 나라의 국가표언인 ‘빈네가 뚱가 이까’ 라는 말은 ‘다양성속의 통일’을 뜻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국가 문장 (紋章)을 보면 가루다라는 전설상의 새가 발로 단단히 쥐고 있는 글씨가 있다. ‘빈네가 뚱가 이까’이다.

 

마을의 고통 로용. 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길을 만들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도 섬이 가장 많은 나라이다. 대강 1만 7천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간혹 이걸 섬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는 경우도 있어서 자세한 통계를 낼수 없다는 설명이다. 마치 카나다의 Thousand Islands에 섬이 천개가 있는지 세어볼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아무튼 우리가 잘 아는 이 나라의 섬으로는 자바, 수마트라, 칼리만탄 (보르네오라고도 함), 술라웨시(셀레베스), 이리얀자야(뉴기니아), 발리, 마두라, 그리고 동 티모르 사건으로 이름난 티모르섬....등등이 있어서 기억을 새롭게 해주고 있다. 1만 7천여개의 섬들이 동서로 주욱 널려 있는데 그 길이를 환산한다면 무려 5천 1백 Km,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길이와 같으며 서울에서 인도 뉴델리까지의 길이와 같으니 과연 대단한 나라이다.


마두라라는 섬이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주요 섬 중에서 크기로 보면 실상 대단한 편이 못되지만 그래도 상당히 알아주는 섬이다. 마두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중심되는 지역인 자바섬의 동북쪽에 길쭉하게 자리잡고 있다. 행정상으로는 동 자바주에 속하여 있고 동자바주의 수도인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 수라바야와 지척에 있다. 마두라 섬의 인구는 2백 50만이 훨씬 넘는다. 그만큼 인구밀도가 높다. 그래서 그들로서 보면 육지라고 할수 있는 자바섬으로의 진출이 많다. 마두라 사람들의 기질은 매우 거센 편이다. 뱃사람 기질이 배어 있어서 그렇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고향에 대한 애착심 또한 대단하다. 다시 말하여 마두라에 대한 자존심이 그만큼 높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현지인들을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편 마두라 사람들의 교육열은 다른 어느 지방보다도 높다. 자카르타나 수라바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나 저널리스트 중에 마두라 출신이 많은 것은 이들의 교육열과 사회적 진취성을 반영해 주는 일이다.


근자에 이르러 마두라 섬은 발리섬과 마찬가지로 관광산업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야자수 우거진 해안선, 넓게 펼쳐진 백사장, 자바해의 맑은 물, 풍부한 해산물, 그리고 유명한 마두라 소고기 요리...관광산업의 조성과 함께 공업발전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재래적인 농업이나 소금산업 가지고는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수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기술집약적 산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전력과 수자원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최근 인도네시아 원자력연구소 (BATAN)가 우리 원자력연구소가 개발중인 해수담수화용 소형 원자로의 경제적, 기술적 타당성을 IAEA와 함께 검토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한 것은 앞날을 전망하는 선견이라고 생각된다. 모쪼록 이 협력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다만, 우리로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고똥 로용’의 개념이다. 왜냐하면 미안한 말이지만 인도네시아가 외국과의 ‘고똥 로용’에 있어서는 공동 협력이라기보다는 거의 받는 쪽을 더 선호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사람들의 귀띰 때문이다. 마두라 사람들의 전형적인 자존심 및 애향심 역시 사업 추진의 고려 대상이다. 여러 경우에 있어서 타지 사람으로서 상당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자카르타에 있는 사람들조차 마두라 사람이라고 하면 속으로 ‘어이구!’ 라고 말할 정도라니 말이다. 기우일까?  (2002년 3월)

 

학교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도 고통 로용이다.

'보덕봉 메아리 > 보덕봉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뭐 였나?  (0) 2007.06.06
아담의 산정  (0) 2007.05.31
이-팔 전쟁  (0) 2007.05.31
구조조정의 여파  (0) 2007.05.22
산소와 질소  (0) 2007.05.22